응접실에 실수로 레드넣었다가 써봣습니다


 그날따라 응접실이 유독 조용했다.

 점심시간을 10분 앞두고 압생트는 조금 집중력을 잃은 채 괜히 신발을 고쳐 신거나 앞머리를 정리하거나 했다. 주의산만, 조야에게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지만 압생트는 또 다른 모양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녀의 주의를 흐트려 평정심을 잃게 하는 원인은 이미 파악하고 있는 것들과 파악하지 못한 것들을 전부 포함하여 압생트 그 자신에게 있는 법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이야기가 달랐다.

 로도스 아일랜드 ─ 제약회사라고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 민간군사기업은 현재 겪고 있는 상황이 나쁜 점과는 별개로 상당히 많은 대원들이 저마다 있어야 할 곳에서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무리 스스로 친분을 쌓아가려 노력한대도,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압생트에게 있어서 하루를 보내는 동안 만나는 얼굴의 절반 이상이 초면인 것은 별로 이상하지 않은 일일 터다. 

 그렇지만 프로젝트 레드는 단순히 초면인 것을 떠나서, 조금, 아니 솔직히 말해서 꽤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일단 초면부터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베인다’던가 하는 말을 들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마저도 프로젝트 레드 본인이 아니라 응접실 앞까지 따라왔던 다른 오퍼레이터에게 들은 것이다. 자신을 프로스트리프라고 밝힌 여자는 그래도 좋은 녀석이니 겁먹지 말라며 흐르는 듯한 발걸음으로 휴게실을 향해 사라져버렸다. 그 뒤로는 자신을 레드라고 부르는 회색 루포와 잘 기억나지도 않는 인사를 한 뒤 쭉 이런 상황이었다. 집무를 도우며 이런저런 맞는 일을 찾아볼 겸 3일 정도에 걸쳐 인프라스트럭처 컴플렉스, 간단히 인프라라고 부르는 기반시설에서 매일 두어 개 씩 시간을 나눠 견습을 맡기로 정해진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이대로 아무런 친분도 쌓지 못한 채 끝나면 다음에 말을 거는 일은 훨씬 어려워지지 않을까? 이따금 긴장으로 혹은 습관으로 파르륵 하고 떨리는 귀에 꽂히는 시선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압생트는 업무를 끝마쳤다.

 점심시간을 뜻하는 알람이 울리자 프로젝트 레드는 낭비 없는 몸짓으로 일어나 일거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조급함에 쫓기는 마음이 되었음에도 겉으로는 평온을 가장하며 압생트는 말을 꺼냈다.

 “저기.”

 또르륵 구른 시선을 마주하며 그녀는 소리없이 침을 삼켰다.

 “그…… 레드.”

 여전한 무응답.

 “레드 씨, 라고 부르면 될까요.”

 “레드.”

 “네?”

 모양을 정리할 셈인지 외투의 털 달린 후드를 깊게 눌러 썼다가 이내 벗어 넘기며, 프로젝트 레드는 말했다. 무감하지만 어딘가 풀려있는 듯도 한, 그러면서도 귓전을 소름돋게 하는 목소리였다.

 “레드는, 레드.”

 “레드…….”

 “너는, 압생트.”

 아까 말했다, 그러고는 혼자 고개를 주억거린다. 예상보다 호의적인 반응에 다행이라고 느낀 압생트가 한결 나아진 투로 말을 이었다.

 “네, 레드. 단서는 제가 정리해두겠습니다.”

 “……레드 일, 레드가 하는 것.”

 “저는 여유가 있으니까요.”

 그러자 프로젝트 레드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힘든 ─ 아마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 별로 변화 없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압생트를 바라보았다. 그 작은 동공 너머로 어떤 사고가 이루어지는 중인지 알 도리가 없는 압생트는 그저 이 조용한 선임 대원이 무언가 말을 꺼내기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발 끝으로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눈을 맞춘 그가 의외라면 의외로 금방 답을 꺼냈다.

 “알았다.”

 “네.”

 “고마워.”

 “별 일을.”

 그렇게 짧은 의사소통은 끝날 터…… 였으나, 압생트는 곧 의아함을 품게 되었다. 금방 소리없는 걸음으로 응접실을 나갈 줄 알았던 프로젝트 레드가 그녀의 자리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탓이다. 지근거리에서 프로젝트 레드 같은 사람을 올려보는 상황이 되어서 긴장하지 않는 이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엄청난 멍청이거나, 엄청난 강심장이거나. 긴장에 굳은 어린 우르수스인을 내려보던 프로젝트 레드가 조용히 손가락을 들었다.

 그녀가 가리킨 것은 압생트의 신발이었다.

 “레드, 압생트 도와줄 수 없어.”

 “……?”

 “레드는 네 신발 알아. 도망치는 사람의 신발.”

 좀 전 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말이 멎은 압생트를 두고 프로젝트 레드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신발을 향하던 손끝이 점차 올라와서는 붉은빛 눈동자를 가리켰다.

 “레드, 실재하는 것, 벨 수 있어. 아닌 것, 힘들어.”

 “나…… 저는.”

 “지금 압생트, 손쉬워. 여기선 안 돼.”

 “……말하고 싶은 게 뭔가요.”

 그러자 프로젝트 레드는 손을 거두었다. 그제서야 압생트는 자신의 눈 앞에 서있는 사람, 항상 강박하는 듯 붉은 외투를 놓지 않는, 말수가 적으며 다른 이와 다른, 프로젝트 레드라고 하는 오퍼레이터와 인사를 나눈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말했다.

 “신중하게, 베도록 해.”

 혼자 남은 응접실에서 단서를 모아 번호별로 정리하다 말고, 압생트는 불현듯 발 밑을 내려보았다. 조야가 체르노보그에서 걷고 뛰고 넘어면서 남은 흔적은 그 당시의 흙먼지나 눌러붙은 핏자국과 함께 씻겨져 나간 줄 알았다.

 압생트가 그렇듯이, 그럴 리 없다고 알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