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의 불이 꺼진다.


소등시간. 지금은 오직 연구실을 제외하고는 모든 불이 꺼져 암흑 상태가 된다.


복도로 나와보면 보이는 것은 어둠 속에 빛나는 붉은빛.

하루종일 돌아가고 있는 cctv이다.


저것을 피해서 행동하긴 어렵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의 신분은 명실 명부 로도스의 '수장'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 이날을 위해 살아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나의 카드를 이용해 서버 관리실의 문을 연다.


"인식, 로도스의 '수장' 반갑습니다"


관리실의 가운데에서 초록빛에 불이 들어오며 차가운 기계음이 흘러나온다.


로도스의 AI PRTS.


아니, 이제 와선 이 녀석을 '로도스'라고 봐도 무관하다.

이 녀석의 데이터 안에는 이미 수년간의1 나의 지휘 데이터, 대원들의 데이터, 운행 데이터, 의료 데이터

등 수많은 정보가 집합해있다. 나 켈시 아미야 그 무엇이 빠져도 그걸 대신해서 들어갈 수 있겠지


만약 내가 기억을 잃은 채로 로도스에 구해지지 않았다면 지금까지의1 나의 지휘를 바탕으로 이 녀석이 지휘해나갔을 거다.


"어쭙잖은 말 집어치우고 보안이나 해제해"


"보안 해제 프로토콜 입력 중..."


"생체 데이터 '수장'일 확률 98.9%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기계의 불빛이 마치 나에게 경고를 하듯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하고 방 곳곳에 위치한

사이렌들이 소리 없이 빛나기 시작한다.


"보안 해제 코드를 입력해 주세요"


이 순간을 위해 이 코드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을까

죽어선 안될 대원이 죽고 날 지키려던 대원이 죽고 비밀을 지키기 위해 대원이 죽었다.


처음 내 기억을 찾기 위해 모인 인원은 5명 하지만 그 5명에 의해 인원은 8명 10명 점차 늘었고

또 기억을 찾기 위해 모인 인원은 10명, 9명, 7명... 4명.. 점차 줄어들었다.


마지막의 마지막 코드를 알아낸 대원이 종이 한 장을 넘기며 비밀을 위해 권총으로 자살하는 걸 막지 못했다.

감성이 뭐라고 하더라도 어딘가에서부터 흘러오는 나의 '이성'이 그걸 막았으니깐.


결국 5명으로 시작한 모임은 종이 한 장과 나밖에 남지 않았다.


피와 눈물, 흙에 더럽혀질 대로 더러워진 구깃구깃한 종이를 펴나간다.


박사를 위하여, 당신이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주시길, 믿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 호기롭게 적어나간 글들.

술잔을 들고 잘 부탁한다며 죽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 그날을 떠올리며 가운데에 적혀있는 글자를 읽는다.


"바벨"


"... 보안 해제 코드 입력 완료 최심부의 데이터의 권한을 수락합니다"


이제 켈시와 아미야에게 내가 정보를 확인하는 중이라는 알림이 갔겠지

아니, 이건 조사할 필요도 없었다. PRTS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리 없이 울리던 사이렌들이 이젠 그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으니깐.


마치 종말을 알리듯 울려가는 사이렌의 소리 속에서 나는 나와 관련된 정보들을 찾아 나선다.


마지막 정보를 다 읽었을 무렵 굳게 닫혀있던 서버실의 문이 열리고 켈시와 아미야 가 동시에 들어온다.


동시의1 나는 입속에 숨겨뒀던 약을 깨문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평소와는 다른 살기를 담은 말을 정면으로 받는다.


"박사님 그 옷은...?"


아미야의 말에 뒤늦게 켈시도 나의 옷을 확인한다.


지금 내 옷은 로도스에서 지급된 옷이 아닌 과거 바벨 시절 내가 입었다는 옷이다.


약간이지만 나의 과거를 앎으로서 기억이 약간씩 돌아오기 시작한다.


과연 켈시는 내가 어느 정도까지 알아냈는지 알고 있을까.


사실 많이 알아낸 건 없었다.


과거 내가 했던 전투기록들과 바벨에서의 기록들 하지만 이것만으로 켈시는

충분히 위험하다고 판단한 거겠지.


내가 마스크를 벗지 않는 한 나의 표정은 들키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히려 벗는다.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봐! 네가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미안 켈시, 그냥 궁금해서 열어본 것뿐이었어"


"너 그 표정은 뭐야? 왜, 왜 네가 울고 있는 거야?"


완전히 기억을 되찾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트릭.


"아니야 미안.. 미안해..."


슬슬 약효가 들 때쯤이라고 생각했을 무렵 다리에서부터 힘이 풀리며 나는 쓰러지게 됐다.



다시금 눈을 뜨면 내 방. 틀림없이 출입문은 잠겨있을 것이다.


침대에 누운 채로 눈만을 돌려 상황을 판단한다.


평소엔 없었던 CCTV 한 대가 천장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다.

출입문을 고려하지 않는 오직 감시만이 목적인 CCTV겠지.


약효가 다 돌았는지 어느 수준 이상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내가 평소에 기억을 되찾지 못했던 이유. 그건 내 주변 모든 것에 있었다.


오리지늄, 음식, 하다못해 커피, 물까지 전부 기억 억제 약물이 들어가 있는 게 확인됐다.

기억이 온전한 자들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지만 나와 스펙터같이 기억이 불분명한 자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내가 먹은 약은 그 약물의 반대, 즉 그 약물의 효과를 억제하고 뇌를 활성화시켜주는 약이다.


뇌에 큰 대미지를 입어 기절한 것 같지만 다 예상 안이다.


또한 아까 모든 대원이 죽었다고 했지만 아직 한 명이 더 남아있다.


오로지 혼자 활동하며 우리의 뒤를 봐주고 관리실에서 씹은 약을 구해다 준 인물.


코드 네임 멘티코어.


아마 지금쯤이면 그녀가 목표에게 무전기를 건네줬겠지


나는 책상으로 가 1번째 서랍을 열어 무전기를 하나 꺼낸다.


"아, 아아 들리나?"


"헤에~ 뭐야? 현재 로도스 내에서 가장 유명해진 박사님께서 나한테 직접 연락이야?"


"크큭... 테레시아랑 함께 있을 땐 나에게 말 한마디 못 걸더니 많이 컸군 W"


"... 어디까지 알아낸 거야"


"글쎄 나도 내가 어디까지 알아냈는지 몰라서 말이지. 그건 됐고 지금 당장 명령이 하나 있어"


"하! 내가 왜 너의 명령을 들어야 하지?"


"아니 넌 들을 수밖에 없어 W 안 그래?"


"이런 씨발! 뭘 원하는 건데"


"지금 당장 식당과 발전소를 순서대로 폭파시키고 갑판으로 나와 나머진 만나서 말할게"


무전기를 끄고 뒤를 돌자 곧바로 켈시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일어나자마자 꽤나 재밌는 일을 꾸미고 있는 거 같네?"


"그럭저럭 바쁘네"


아직이다.


"그래서, 이번엔 뭘 할 생각이지?"


아직이다.


그녀를 부추기기 위해 과장되게 연기한다.


"부실 거야 모든 걸, 재로 되돌리는 거지... 모르겠어? 애초에 이동 도시라는 것부터가 잘못됐던 거야!

크하하하하..크윽,풉...하하하! 웃어! 웃기지 않아? 살기 위해 만든 이동 도시가 삶을 파괴하는 근원적 요소였던 것인 게?"


"그 미치광이 같은 발상은 질리도록 봐왔으니까 멈추지그래?"


지금이다. 켈시에 유일한 약점.

그녀의 몬3터는 소환할 때는 움직이지 못하고 위치가 고정된다.


그녀가 몬3터를 소환하려 함과 동시에 가지고 있던 무전기 옆에 달려있는 핀을 뽑고 공중에 던진 후 앞으로 달린다.


이 무전기는 자체 개조한 물건으로 무전을 위한 목적 외에도 1회용으로 섬광탄이 들어있다.


팡! 쾅! 섬광탄이 터짐과 동시에 로도스 아일랜드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런 씨발!"


급하게 몸을 날려 나를 잡으려고 하지만 실제 전투에 나갔던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움직임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나는 켈시를 가볍게 추월한 뒤 갑판을 향해 달린다.


방 밖에는 수많은 대원들이 무기를 소지한 체 대기 중이었지만 W의 폭탄 테러로 인해 혼잡스러운 상황.


이윽고 한 번 더 진동과 함께 폭발음이 들리고 더욱 혼잡스러워진 틈에 달려 갑판 위에 도착하자

W가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가 아는 용병으로서의 W가 아닌 나와 처음 본 바벨에서의 W가 묻는다.


"다음은?"


당연히 계획이 세워져있을 거라는 확신.


그리고 그 확신에 보답하듯 나는 근처에 있는 헬기로 달린다.


붕, 붕, 붕 돌기 시작하는 프로펠러에 맞춰 몇몇 정신을 차린 대원들이 우리를 쫒기 위해 갑판으로 올라온다.


나는 헬기의 총기 발사 버튼을 누른다. 마치 번개와 같은 빛이 양옆에서 번쩍하더니

굉음과 함께 앞에 있던 대원들의 몸은 바람구멍만 남은 체 하나 둘 털썩하고 쓰러진다.


"쯪, 제대로 기억이 되돌아왔나 보네"


"글쎄 아니라니깐? 그때의 내가 이렇게 말을 하던가?"


서서히 헬기의 고도를 높여간다.


"섞인 건가?"


"뭐 그런 거지"


"하아... 그래서 목적지는 어딘데"



"혼란과 파괴가 일어나는 곳 통합운동"












프롤로그 https://gall.dcinside.com/hypergryph/268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