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세 첸이 마흔을 앞두고 나이에 안 맞게 주책 떠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이거 수영복이랑 박사랑 엮으면 개꼴리겠는데? 라고 생각되서 써봤다
주책을 떨어야 되겠더라 역시 37세가 최고야!
뒷이야기도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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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빛이 내려쬐는 시에스타 해변가에서 첸은 파라솔 아래 선글라스를 낀 채로 누워 있었다.
오래간만에 얻은 휴가라지만, 애초에 별 신경도 쓰지 않았고 곁에 있던 스와이어가 시끄럽게군 나머지 반 강제로 떠난 거라 그녀 입장에선 뭘 해야할지 몰랐다. 매사 꼼꼼하고, 엄격하게 그리고 합리적이고 계획적으로 사는 그녀였지만 휴가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37세란 늙었다면 늙었다고 생각되는 나이라 어디 쏘아다니지도 못했다. 마음껏 몸을 흔들고 돌아다니고 싶어도 주책으로 보일까봐 그러지도 못한채, 이것도 저것도 못하다가 시에스타의 해변가로 쫓기듯이 온 그녀였다.
에라, 모르겠다란 심정으로 해변가에 드러 눕는 걸 택했지만 나쁘진 않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바닷 냄새가 그녀의 오감을 만족시켜 주었고, 따뜻한 공기가 몸을 노곤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은 기분에 몸이 긴장을 풀린 탓에 경계의 끈을 풀려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적소를 가져와 위장겸 천으로 꽁꽁 싸메고 있었지만 지금은 장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서서히 감겨져 가는 눈과 함께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다, 문득 가까이 다가온 인기척에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문에 이마에 눌러 쓰고 있던 선글라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떤 이상한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고 이렇게 무방비하게 있었던 거지? 그나저나 누구야? 겁 없이 함부로 다가온 녀석이.
첸은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옆에 있던 적도를 움켜쥔 채 인기척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곳엔, 그녀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 서 있었다.
"박사?"
그녀가 놀란 듯이 쳐다본 그 곳에는 로도스의 수장인 박사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런데서 다 보네요."
"박사, 너 왜 여기 있어? 여기서 뭐해? 날 어떻게 찾은 거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분명 시에스타였다. 로도스도, 용문도, 하다못해 체르노보그도 아니었다.
이런 곳에서 마주칠 상대가 전혀 아니었기에 첸의 눈동자가 크게 동그랗게 떠졌다.
"어떻게 찾긴요. 웬 여자가 해변가에 대자로 드러 누워서 코까지 골며 자고 있으면 누구든 관심가지. 게다가 아는 얼굴이잖아요."
"아, 그, 그런가..."
알고 보니 넓디 넓은 해변가에 자신만 이러고 있다는 걸 깨달은 첸은 부끄러운 듯 볼을 긁적였다. 목적지도 정하지 못한 채 방황하다보니 이런 꼴이 되버렸나보다.
"넌 여기에 어쩐 일이지? 로도스가 이런 곳까지 다 오고. 여기에 무슨 할 일이 있어서 왔나?"
"아뇨, 우리도 휴가차 온 거에요. 대원 몇 명 데리고. 요즘 일에 하도 치이다 보니 시에스타로 쉬러 왔고. 전 잠시 대원들한테서 빠져나온 거고."
그 말에 첸은 고집스럽게 눈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흥, 로도스 수장이란 사람이 경계심이 부족하군. 너, 어디에서나 관심 받는 인물일텐데. 리유니온 눈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리유니온이 여기서 없는 걸 알고 온거니까 너무 그렇게 뭐라 하지마세요. 나도 생각 있는 사람이라 다 조사하고 온거니까."
박사가 삐딱하게 웃으며 말하자 그를 노려보다 고개를 돌렸다. 이전 작전 때부터 보였던 능글거린 태도는 그대로인가 보다.
"그나저나 그 모습은 처음 보는 군."
"네?"
"넌 항상 가면 쓰고 있잖나.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로 말이지."
"가면 벗은 것도 불만이에요?"
박사가 보여주듯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 내밀었다. 그 때문에 그의 숙여진 몸이 첸의 시야에 들어왔다.
문득 그녀의 시선이 박사의 몸으로 내려갔다. 이미 어디서 한바탕 놀고 온 건지, 풀어진 단추 몇개와 함께 하얀 셔츠가 군데군데 젖어 있었다. 그리고 셔츠 사이로 가볍지만 적당히 잡혀있는 가슴 근육이 보였다. 그 밑으로 이어지는, 의외의 탄탄한 복근들과 잔근육들.
그 모습에 첸도 모르게 침이 삼켜졌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멋지다던가 근사하다던가였지만, 이내 얼굴이 화끈해 지면서 내가 미쳤다란 생각이 들었다. 친하지도 않는 남자 몸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키는 제정신이 아닌 행동에 첸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 그런 뜻이 아냐. 단지 새롭게 보여서 그럴 뿐이야. 그래도 벗으면 다행이긴 하겠네. 나도 네 맨얼굴은 처음보니까 누가봐도 네가 로도스 박사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겠지."
"팀장님도 새롭네요. 솔직히 멀리서 보면 못 알아볼 뻔 했어요."
"아, 그, 이건...!"
첸은 황급히 무릎을 구부려 양팔을 끌어안고서 자신의 몸을 가렸다. 정신차리고 보니 낯부끄러운 모습을 박사에게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잠깐 잊고 있었다.
시에스타의 환경에 알맞게 첸은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원래 그냥 평상복 차림으로 가려고 했으나 스와이어가 끈질기게 달라 붙은 결과, 그녀가 골라준 걸로 어쩔 수 없이 입고 온 것이다.
그게 노출도가 꽤 돼는 옷인게 문제였다. 얇은 끈으로 마무리 지은 탱크탑과 수영복 팬티가 짧은 핫 팬츠 안에 가려져 있었지만 끈이 치골까지 올라와 노출되어 있어 은근 야시시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물론 더할나위 없이 어울린 차림이었지만, 그녀가 37세인 걸 고려하면 조금 주책 맞은 복장인 건 확실했다. 겉보기에 그녀가 나이를 말하지 않는다면 37세인지 아닌지 알아 차릴 수 없겠지만 말이다.
"이건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스와이어 녀석이 골라준 거야. 난 이런 노출도 높은 옷은 별로 내키지 않은데 그 녀석이 너무 시끄럽게 뭐라고 하길래 하는 수 없이 입고 온 거라고. 돈까지 썼는데 안 입으면 아까우니까."
"전 아무 말도 안했어요. 그리고 좋아 보여요. 그 차림. 잘 어울리네요."
박사가 웃으며 말하자 첸은 고개를 흔들었다. 쑥쓰러웠다.
그녀가 이런 일에 솔직하지 못하다고 해서 칭찬해주는 상대방을 비난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조롱할 생각 없이 진심으로 칭찬해주는데, 그건 기쁜 일 아닌가.
"일행은 없어요? 근위국 단체로 온 건가? 그럼 호시구마와 스와이어 그 두 사람도?"
"혼자 왔어. 좀 쉬러."
박사는 입을 벌리고 첸을 쳐다보다가 이내 깔깔거리며 웃었다.
"왜 웃는 거지?"
"아니, 되게 의외라서요. 항상 셋이 뭉쳐 다니잖아요. 특히 스와이어 그 사람이랑."
"난 상관 없는데 걔가 자꾸 귀찮게 달라 붙는 거야. '스 아가씨'라고 부르면 얼굴 잔뜩 붉어져서는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니까 귀에서 피날 지경이라고."
첸이 한숨을 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박사에게 토로하듯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에스타로 휴가 가는데 물어보지도 않는 이것저것 알려주기나 하고. 시에스타에 왔으면 여기는 꼭 가보라고 하는데, 솔직히 난 그런덴 관심 없고 그냥 시간 떼우러 온거야."
"그럼 바닷가에 들어가서 수영이나 하시지. 모래밭에서 자기만 하면 그것도 아까운데."
"아니, 그게..."
박사의 말에 첸이 머뭇거리듯 대답했다.
"난 수영을 못해서...물과는 별로 친하지 않아."
머리를 긁으며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 갑자기 박사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소악마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어라, 이거 안 좋은 예감이...
"이봐! 뭐하는 거야?!"
첸이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박사가 그녀를 번쩍 안아 올리더니 그대로 해변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답지 않은 가냘픈 비명과 함께 반사적으로 박사의 목덜미를 꽉 껴안고 달라 붙었다.
"안 돼, 안 돼! 진짜 잠깐만! 나 수영 못해. 정말 못한다고! 내려줘!"
"별로 깊지도 않으니까 걱정하지마세요. 빠지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니, 됐다니까! 이거 내려! 안 내리면 진짜 가만 안둔다?!"
첸의 맨살에 닿는 박사의 몸은 매끈해고 따뜻했다. 벌어진 셔츠 사이로 살이 맞닿으니 느껴져서는 안될 묘한 감각이 치솟기 시작했다. 무언가 따끔거리고 가슴이 부풀어지는 느낌. 그렇다고 박사를 밀어내자니 바다에 빠질까봐 두려웠다.
"내려달라고! 제발!"
"그럼 저랑 같이 시간 좀 떼워주세요."
"그런 건 그냥 말해도 되잖아! 사람 당황하게 이래야 겠어?"
"그냥 말하면 안 들어 줄 거 같아서."
"말이 되는 소릴 좀 해. 아, 알겠으니까 빨리!"
그녀가 주먹에 힘을 주고 박사의 어깨를 강하게 내려쳐서야, 그제서야 박사가 그녀를 모래밭에 내려놓았다.
안전한 곳에 있게되자 다시금 박사와 맨살이 닿았던 감각이 느껴졌다. 여자를 냅다 던지듯 내려놓을 수 없었으니 천천히 내려준 것이겠지만, 그 때문에 서로의 피부가 미끌리듯 닿자 그 감각만이 생생히 다시 떠올랐다.
온갖 뒤섞인 감정 때문에 혼란이 찾아왔다. 첸은 그게 뭔진 알고 있었다.
꼴에 37세라고 아마 순전히 남자가 굶주려서 그런 것일 거다. 그뿐일 거다. 나이도 어린 박사에게 다짜고짜 안겨 그의 몸과 맞닿았으니 그럴 것이다.
"괜찮아요?"
박사가 그녀를 관찰하기라도 하듯 빤히 쳐다보고 있자 얼굴이 달아 오르는 것을 느껴졌다. 첸은 뭔가 할 말을 하려다 이내 삼키고 모래를 털어내며 일어섰다.
결국 그와 함께 떠돌게 되었지만, 나쁘지만은 않다고 느껴졌다.
◆
"아─, 재밌었다. 한참을 돌아 다녔네. 팀장님도 괜찮았죠?"
"으...다리 아퍼..."
첸은 아픈 다리를 두드리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박사의 꾐에 넘어가 이곳저곳 쉴새 없이 둘러보면서 관광지란 관광지는 다 둘러봤을 것이다. 한참을 이리저리 걸어다닌 결과는 힘이 빠져 부들거리는 두 다리였지만 말이다. 박사의 의욕 넘치는 모습에 거절하기도 뭐 했고.
범죄자 잡는 답시고 뛰어다니면서 일할 땐 이러진 않았는데. 이것도 나이 먹어서 그런 건가? 관절 쪽이 욱신거리는 게 느껴졌다.
"잠시 저기서 쉬고 갈까요?"
첸의 상태를 눈치 챈 박사가 길 한켠에 있던 야외 의자를 가리켰다. 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에 쓰러지듯 털석 주저 앉았다. 돌아 다니느라 재밌긴 했지만 그만큼 피곤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서 박사는 갑자기 어딜 가더니,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맥주 두 캔을 들고 왔다.
"맥주?"
"음료수보다 이게 나을 것 같아서 가져왔는데, 다른 걸로 바꿔 올까요?"
"아니, 됐어. 이미 사왔는데 굳이 다시 가지마."
첸은 박사가 건네준 맥주 캔 하나를 받고는 곧바로 따서 마셨다. 맥주의 맛과 청량감이 잠시나마 몸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한 캔을 금방 비운 첸이 개운한 듯 크게 한숨을 내밷자 옆에 앉아있던 박사가 재밌는지 쿡쿡 웃었다.
"다리 많이 아파요? 아직 많이 돌아 다니지도 않았는데, 아줌마처럼 왜 그래요."
"...아줌마 맞아."
아줌마라는 게 민감한 단어일 순 있겠지만, 첸은 그와 반대로 그려러니 하고 넘어갔다. 표정의 변화가 있던 쪽은 오히려 박사 쪽이었다.
"왜 그래?"
"아니, 화 낼줄 알았거든요. 소리치면서 "아직 아줌마 아니거든!" 이라던가 "너도 이 나이 돼봐!"라던가,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어요."
그 말에 첸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처음엔 그랬지. 자꾸 주변에서 뭐라고 하니까 짜증났지. 그런데 시간 지나니까 전부 의미 없더라. 그래서 요즘은 그냥 그려려니 하고 넘어가고 있어."
일에 쫓기듯 생활한 탓에 나이를 먹는 건 금방이었다. 처음엔 첸도 크게 개의치 않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분이 언짢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앞만 본 나머지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풀만한 곳도 없었다. 나이도 많은 주제에 주책일까봐 뭘 하지도 못했다. 똑같은 일상을 바꿀만한 그 어떠한 것도 없어서 분홍빛 로맨스 같은 건 꿈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내년이면 반 꺾인 환갑이야. 처음엔 나이 앞에 3자 달리는 게 큰 충격이었는데, 오히려 신경 쓰는게 피곤하더라고."
처음엔 화가 났지만 그 끝은 포기였다. 결국 무시가 정답이란 걸 깨달은 첸은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다가, 아마 그것도 버티기 힘든 나머지 시에스타로 도망치듯 휴가를 온 걸지도 몰랐다.
괜시리 느껴지는 처량한 신세에 그녀가 잡고 있던 맥주캔이 살짜 구겨졌다. 첸은 그냥 캔을 내려놓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쓸쓸했다.
박사가 가만히 첸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눈가에 주름이 좀..."
"어, 지, 진짜?"
박사의 말에 첸이 황급히 눈가에 손을 올렸다. 정말로 주름이 있는 지 찾으려는 모습에 박사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장난인 걸 안 첸이 얼굴을 붉히며 버럭 화를 냈다.
"야, 너!"
"미안해요. 너무 귀여워서."
큰 소리 치다가도 귀엽다고 던진 말 한마디에 분이 풀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박사 저 사람, 원래 저렇게 사람 마음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이었던가?
싱긋 웃으면서 말하는 그의 모습에 진심으로 받아들일 뻔한 첸은 심장이 덜컥 뛰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 정말, 왜 이래. 박사의 시선이 의식되기 시작한 첸은 고개를 돌렸다. 이야기의 주제라도 바꿔야 했다.
"너 이제 돌아가지 않아도 돼? 아미야가 걱정하지 않나? 그 아이, 너 엄청 신경 쓰던데."
"제가 따로 연락했으니까 괜찮아요. 혼자서 시간 보내고 싶다고 하니까 알겠다고 하더라구요."
"너 혼자서 시간 보내는 거 아니잖아. 나랑 같이 있다는 거 알면─."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박사가 첸의 말을 가로 막았다.
"게다가 아미야가 오라고 해도 전 안 갈거에요.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즐기지 않으면 아깝잖아요. 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쉴거면 제대로 쉬는 거엔 찬성이야. 하지만 그것도 너 같은 젊은 사람들한테나 해당되는 일이지, 난 아줌마라 피곤해서 오래 돌아다니지도 못해."
"에이, 팀장님이 어떤 사람인데요. 용문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사람이잖아요. 범죄자 때려잡을 체력이면 지금쯤 아직 거뜬할텐데."
"아니래도."
박사의 말 하나하나 대답하는 그녀였다. 첸의 행동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어째 박사의 얼굴엔 불만이 표정이 띄어져 있었다.
"...정말 그렇게 시간 보낼 거에요?"
"응?"
"눈치 정말 없으시네. 원래 나잇밥 먹으면 눈치도 빨라진다던데."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박사의 말에 첸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도 박사의 말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눈치 챈 그녀였다.
요컨데, 박사는 아마 더 놀고 싶은 걸 거다. 그것도 자신과 함께. 하지만 이해가 가진 않았다. 다른 좋은 사람 놔두고 굳이 37세인, 늙어빠진 자신과 함께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으로는 그녀도 바라고 있을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오늘 박사와 시간을 보낸게 재밌었으니까. 이 순간만큼은 근위국 특별 감찰대 팀장과 로도스 수장이 아닌, 그냥 휴가지에서 만난 남녀 사이였고, 연하의 남자와 같이 논게 미련이 남을 만큼 인상이 깊었기도 했다.
어쩌면 한번도 이런 적 없었던 첸에게 이건 꿈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일 것이다. 이대로 넘어가면 정말 아까운데...
라고 생각하다가 첸은 허겁지겁 표정을 숨겼다. 분명 얼굴로 자신의 생각이 드러났을 것이다. 한번도 내 보인 적이 없던, 본능에 굶주린 그녀의 표정이.
미쳤네, 미쳤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갑자기 왜 조용해져요?"
생각에 잠기다가 박사의 말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불과 몇 센티를 남겨두고 박사의 얼굴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첸은 자신의 얼굴이 끝까지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너, 뭐, 뭐해."
"팀장님, 솔직히 말해봐요. 사실은 일부러 그러시는 거죠?"
"....."
박사 저 사람, 눈치 빠르고 속내를 알 수 없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무섭다고 생각될 정도로 느껴졌다. 생각을 읽은 박사는 킥킥 웃으면서 맥주를 들이켰다.
"이런데 오면 뭘 해야 하는지 아세요?"
"뭔데?"
"휴가지에서 눈이 맞는 사람이랑 화끈하게 즐기고 노는 거죠. 일상 속에서 묵혀놨던 갈증도 풀고 삶의 활기도 되찾고."
첸은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랐다.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야 하나? 하지만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오히려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서 손으로 부채질까지 해야할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에 면역이 없던 첸은 혹시 박사가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취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알고 싶었다. 실수로 그런 말을 했다면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며 넘어가고 싶었다.
"박사, 취했어? 맥주 한 캔인데?"
"아뇨? 전혀요. 저 제정신이에요."
"...너 이런 사람이었어?"
"이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죠."
씨익 웃으며 대답하는 그였지만 첸은 아니었다. 그러다 불현듯 또 다른 상황이 상상되었다. 내가 만약 여기서 OK하고 나머지 시간을 박사와 보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마 불 보듯 뻔하겠지. 이런 짓 저런 짓, 말 못할 짓거리를 다 하겠지. 그것도...괜찮은 걸까?
...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첸은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분위기에 떠밀려서 아마 자신도 미쳐버린게 아닐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사 앞에서. 다음에 어떻게 보려고. 머릿 속에서 별의 별 시나리오를 다 쓰고 있네.
첸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이려고 피식 웃었다.
박사의 눈이 가늘어 졌다.
"생각만 해도 웃겨요?"
"웃기지, 그럼. 이게 안 웃겨─."
첸의 뒷말이 삼켜진 것은, 박사의 손이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자신 쪽으로 끌어 당겨 입술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맥주 향이 섞인 비릿한 맛이 나는 혀가 첸의 입 안으로 파고 들었다. 첸은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박사의 혀가 첸의 입술을 크게 벌리면서 턱을 잡고 아래로 끌어당겼다. 그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지만, 그 덕택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첸은 자신의 속마음을 인정했다. 그녀는 그렇게까지 둔한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경험이 없었을 뿐. 이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고 있었다.
단지 알았음에도 피하지 않았을 뿐.
"음─."
사실 첸은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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