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다시 봐요"
업무 시간이 끝나자 난 서류를 모두 정리 한 다음 인사부 대원들에게 인사하며 일어났다.
"어 그래, 로사 너도 수고했어"
인사부장이 웃으면서 인사해주었다. 한 점 때도 없는 웃음 이였다.
나도 가볍게 웃음으로 보답하고 인사부를 나왔다.
숙소의 문을 열자 내 방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깨끗하고 평범한 방 이였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전등, 푹신한 침대,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창문, 좋은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여러가지 찻잎 상자, 학교에 있을 때 하곤 다른 풍경 이였다.
난 방에 들어와 테이블에 앉은 다음 천천히 홍차를 우렸다.
홍차를 우린다음 나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바깥은 어두운 반면 숙소는 밝아서 창문에는 나와 내 방이 비쳐졌다.
그러나 창문에 비친 모습은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방과, 찻잔을 들고 있는 나는 온데간데없고
깨져 버린 전등, 책상으로 만든 간이 침대,
의자와 책상으로 만든 바리케이드로 막은 문 그리고 피로 얼룩져 있는 내가 보였다.
그 날, 학교가 봉쇄된 첫 날, 여러 학교에서 모인 귀족 학생들은 서로 싸우기 바빴다.
너무 싸움이 심각하여 귀족끼리 죽일 뻔한 일까지 갔었다.
우리는 살아남아야 했다. 봉쇄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데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귀족끼리 죽이는 것 만큼은 피해야만 했다.
이에 나는 권위 있는 백작의 장녀와 학생 회장이라는 배경을 이용하여 귀족 집단의 지도자가 되었다.
내가 지도자가 되어 귀족 간 싸움은 멈췄다. 하지만 그들의 불만은 계속 남아있었다.
집단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선 외부로 표출할만한 계기가 필요했다.
나눠져 있는 저 마음을 하나로 모을 어떠한 계기가 필요했다.
가령 저 바깥 평민 학생에게 귀족의 권위를 내세운다던지...
그래서 난 그들이 평민 학생을 약탈 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난 찬성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은 나한테 계획을 물었다.
"듣기로는 2층에 규모가 큰 평민 집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물자를 얻어봅시다."
"그들이 거부한다면 어떻게 합니까"
"다시는 귀족에게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 줘야겠지요."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우리를 공격하려고 한 평민 놈들입니다. 죽이는 것이 가장 깔끔할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학생 몇몇을 붙잡아 왔다.
"좋습니다. 뒤탈은 없어야 하니깐요"
나는 그들이 평민을 죽이는 것에 동의했다.
"이번에 한 평민 놈들로부터 가져온 식량입니다. 이 정도면 이틀 정도는 버틸 거 같습니다"
그들은 가져온 음식을 내보이며 말했다.
"잘 하였습니다. 그 학생들은 어떻게 하셨나요?"
나는 물었다.
"놈들이 감히 귀족을 공격하려고 해서 죽였습니다. 걱정 하지 마시죠"
난 웃으면서 말하였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내일을 준비합시다"
나는 이게 잘못된 방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평민이더라도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건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귀족도 살아남아야만 했다. 생존해야만 했다.
일단 우리가 살아남는다면 그들을 살릴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평민들과 같은 처지였다.
우리도 살고 싶었다.
이 모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한심한 자기 위안이었다.
그녀가 귀족 학생들을 다 죽여버리고 나의 목에 도끼를 겨눴을 때까지도
난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살기 위했을 뿐이라고. 그들의 말에 휘둘렸을 뿐이라고.
그러나 그녀가 내 목에 있던 도끼를 거두고 나보고 자치단에 들어오라 했을 때,
자치단 학생들이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었을 때,
자치단이 귀족들로부터 고통 받는 학생들을 지켜낼 때,
로도스 아일랜드한테 구출된 다음 우르수스 출신 대원이 우르수스 귀족을 구하는 것을 보았을 때,
모든 게 뒤틀리는 느낌 이였다.
속으론 어쩔 수 없다고 되뇌었지만 그것은 그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나를 속이는 것에 불과했다.
그들이 평민들을 약탈할 때 어쩔 수 없다고 했지만 난 약탈한 물자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들이 더러운 공로를 세웠을 때 난 기뻐했다.
그들이 누군가를 죽이자 할 때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들이 평민 집단을 공격하자 했을 때 난 기쁜 마음으로 승인했다.
..잠깐 '그들'이 아니라 '우리'였다.
속으론 '그들'이라며 선을 그을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였다.
학생들을 죽인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였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짓은 '그들'이 저지른 짓, 자신이 필요 할 때만 '우리'가 한 행동이였다.
우리는 약탈한 물자에 안도감을 느꼈다.
우리는 더러운 공로를 세웠을 때 나는 기뻐했다.
우리는 누군가를 죽이자 할 때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우리는 평민 집단을 공격하자 했을 때 난 기쁜 마음으로 승인했다.
평민을 살리기 위해선 우리가 살아야 한다고 했을 생각하고 있을 때 이미 우리는 평민을 죽이고 있었다.
나는 자책했다. 나는 절망했다.
자기 위안을 다 걷어내고 바라본 곳에는 추악하고 더러운 나의 모습이 있었다.
결국엔 나 역시 학생을 죽이고 약탈하고 기뻐했던 귀족 학생 중 하나였다.
학교에 있을 땐 전혀 꾸지 않았던 악몽을 꾸었다.
학교에서 피가 묻은 초코바를 먹을 땐 멀쩡하게 먹더니 로도스 자판기에서 뽑은 초코바는 구역질이 났다.
학교에서 보았던 공포로 얼굴이 일그러진 시체가 숙소 복도에서 보였다.
학교에서 보았던 배가 찢겨 죽은 학생이 식당 저 멀리서 보였다.
가끔씩은 그 시체들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그랬냐는 것처럼.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나도 더러운 귀족 학생 이였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아직도 마음 속으로는 그건 어쩔 수 없었다고 내가 속삭이는 것 이였다.
잘못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면서도
그 속삭임은 예전 학교에 있었을 때처럼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어 나를 스스로 증오하게 만들었다.
저 속삭임이 들릴 때마다 나는 내 목을 스스로 조르고 싶었다.
저 속삭임이 들릴 때마다 나는 칼로 내 배를 찌르고 싶었다.
저 속삭임이 들릴 때마다 로도스 갑판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난 이런 마음의 무게를 버텨낼 수가 없다.
하지만 한심하게도 난 번번히 실패했다.
내 목을 조를 때 마다, 칼로 배를 찌르려고 할 때마다, 갑판에서 뛰어 내릴려고 할 때마다
난 주저하였다.
한참 창문을 보다 나는 아까 인사하고 나갈 때 인사부장이 웃었던 것 처럼 웃어보았다.
그러나 창문엔 해맑게 웃는 웃음이 아니라 뻣뻣한 얼굴이 억지로 입술을 올리고 있는 내가 보였다.
아무리 웃으려고 해도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결심했다.
찻잔을 내려놓고 나는 침대 옆에 있는 서랍장으로 갔다.
서랍장을 열어보니 언제나처럼 커터칼이 있었다.
'난 방관자야'
난 또 커터칼을 꺼내 다시 테이블로 돌아갔다.
'나 역시 살인자였어'
왼팔을 또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나도 다를 바 없었어'
오른팔로 또 커터칼을 들고 드르르륵 칼날을 꺼냈다.
칼날은 깨끗하지 않고 붉은 얼룩이 있었다.
지익!
그리고 난 커터칼로 상처가 다 낫지 않은 왼팔 손목을 베었다.
손목에선 익숙하지만 편해질 수 없는 매우 끔찍한 고통과 함께, 언제나 그랬듯이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고통과 피가 흐르는 광경은 애석하게도 다시 한번 나를 살고 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살고 싶다는 마음은 이번에도 그 속삭임을 불러 일으켰다.
'난 어쩔 수 없었어!'
난 저번처럼 당황하며 황급히 커터칼을 버리고 오른손으로 피가 줄줄 흐르는 손목을 부여잡았다.
'그들이 저지른 거였어!'
난 핏자국이 남은 수건으로 급히 출혈 부위를 붙들어 묶었다.
수건은 피로 조금씩 적셔졌다.
'난 살고 싶다고!'
난 울음을 터트렸다.
이번이 26번째 시도였다.
이번에도 실패했다.
속삭임은 날 죽음으로부터 떼어 내 버린다.
속삭임을 나를 죽고 싶게 만들면서도 나를 죽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스스로 목을 조를 때도 언제나 어두워지는 시야와 죽음의 공포에 '어쩔 수 없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스스로 배를 찌르려고 할 때도 언제나 그 칼이 내 내장을 갈기갈기 찢을 거란 공포에 '어쩔 수 없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난간에 서 있을때도 언제나 떨어지는 동안의 괴로움과, 떨어졌을 때의 고통의 공포에 '어쩔 수 없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은 누구나 쉽게 죽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삶을 저평가하고 자책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너무나도 알량하고 연약하여,
막상 죽을 순간이 되어버리면 죽고 싶다는 마음은 사라지게 되어
삶을 경탄하게 되고, 살고 싶게 만든다.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 이번에도 죽지 못했다는 절망, 그리고 살아 남았다는 기쁨, 그리고
그 기쁨을 느끼는 내가 가증스러워 나를 소리 지르고 울게 만들었다.
"흐아아아아아아아!!"
난 죽음한테도 버림받았다.
다음 날 난 그녀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
"...그 순간 난 귀족들의 단결을 위해 그들을 약탈하는 걸 동의한 거야."
쾅!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먹이 얼굴을 가격했다.
맞은 충격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얼굴엔 쓰라린 고통이 올라오고, 입에선 피가 나왔다.
그녀의 표정은 분노로 가득 찼다.
'그래, 나를 계속 원망해도 좋아.'
'이렇게라도 마음이 풀린다면 난 괜찮아.'
이것도 하나의 자기 위안이라는 것은 나 자신도 잘 안다.
결국엔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기 위한 비겁한 짓 이였다.
이런 행동을 하는 내가 매우 위선적이라 역겨웠다.
마음 속으론 살고 싶어하면서 저 주먹에 죽길 바라는 내 행동에 토가 쏠렸다.
죽는 순간의 고통은 두려워하면서, 그녀한테 맞았을 때의 고통은 속죄 받는 거 같아 마음의 안식을 느끼는 나를 증오했다.
죽지도 못하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서워서 자살을 못 하는 주제에 살 가치도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역겹고, 토가 쏠리고, 증오해도
이런 식으로라도 마음속 짐을 덜어내고 싶었다.
애껴줘
애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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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시시해서 죽고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