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컵 속에 담긴 커피에서 모락모락 김이 흘러나왔다.
"···입에 안 맞나?"
"아니, 그런 건 아니다만··· 이렇게 쓸 줄은 몰랐다."
"조금 달콤하게 해 올 걸 그랬군."
"괜찮다."
나는 찰랑이는 커피에 비친 나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마시게 해 다오."
"그래.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문 너머로 들리는 우당탕거리는 소음이 눈앞의 여자가 말을 아끼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다시 시끄러워지겠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요란스럽게 문이 열리고, 로도스에서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이 방으로 들어왔다.
"프로스트노바 씨!!"
윽, 시끄러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 ■■■ ■■■■?"
"얼마 안 됐어. 이제 막 환복하고 상담을 시작한 참이야."
"■ ■■ ■■ ■■."
"딱 좋은 타이밍의 기준은 모르겠다만, 그래 보이는구나."
아미야, 그리고 박사.
내 삶의 새로운 번째 국면을 열어젖힌 주역들이 날 바라보았다.
얼빠진 것 같기도 하고, 간절한 얼굴 같기도 했다.
어쩌면 정말로 주인 만난 강아지처럼 이유 없이 반가운 건지도 모르겠군.
"일단 좀 앉아주세요, 프로스트노바 씨."
"아니, 내 입장을 고려하면 너희가 먼저 앉고 내가 앉는 편이 맞겠지."
"입장이라뇨! 그렇게 따지면 저도 프로스트노바 씨가 먼저 앉으실 때까지 안 앉을 거예요!"
그래, 생각이 없었던 편이 정답이었나 보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와 피식였다.
"그럼 서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예? 에에에··· 박사님, 뭐라고 좀 해 주세요!"
"■ ■■ ■■ ■■■■■"
"박사님!"
"아미야, 그쯤 해둬. 우리에게 쌓인 일이 아주 많아."
"아, 그렇죠··· 그럼, 크흠, 프로스트노바 씨. 어딘가 불편하신 곳은 없나요?"
"···이런 질문에 꼭 대답해야 하나?"
"반드시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강한 의지를 표명한 눈이지만, 입에서는 미묘한 우월감이 배어난다.
이러니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나 듣지.
"없다."
"그··· 러신가요? 그건 다행이지만··· 정말로 아무런 문제도 없으신가요?"
"너희들이 준 이 옷이 너무 깔끔하고 얇은 것만 빼면, 그래."
"그게 불편한 부분이잖아요! 흠, 의복은 개인의 특성을 고려해서 여러가지 모델이 준비되어 있으니 잠시 후에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그 밖에는요?"
"후후, 정말로 없다."
"■■■ ■■■ ■■■■■."
"실례인가?"
"아뇨! 전혀요! 오히려 전 좋은걸요!"
"일일이 과하게 반응하지 마라."
짤막하게 놀란 뒤, 긴 귀가 살짝 처지며 "제가 너무 흥분하긴 했네요···"라고 중얼거린다.
"그것보다도 앞으로의 일정 쪽이 중요하지."
"마, 맞아요! 켈시 선생님,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요?"
그 질문에 한걸음 물러서서 우리를 지켜보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눈에 띄게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프로스트노바 씨는 이제―"
"너무 문제가 없는 게 문제야."
희망찬 분위기를 단호하게 끊어내며 이 여자는 말을 이었다.
"우리는 프로스트노바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일반적인 대원 입사 시험과는 다른 형태의 시험을 준비했어."
"다른 형태요···?"
"그래. 프로스트노바의 첫 훈련을 위해 나는 오퍼레이터 블레이즈의 협조를 요청했어. 자진해서 요청한 일이기도 했지만."
"블레이즈 씨도 이 일의 중요성을 알고 계시니까요."
"그래, 나도 오퍼레이터 블레이즈만큼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하지만 난 무력하게 패배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대련이라고 부를만한 것도 아니었지."
켈시가 내 뒤에서 첨언했다.
"■■ ■■···?"
"난 그 여자의 손끝조차 건드릴 수 없었다."
"···"
이런 거북한 침묵은 딱 질색인데.
"프로스트노바의 몸을 죽음에서 억지로 끌어내린 탓에, 아츠를 비롯해서 생전에 가졌던 능력들이 대다수 소실되었다는 소리야."
납득할 수 없다는 두 사람에게 냉혹한 판결이 내려졌다.
"그래, 이래서야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가 되겠다는 소리는··· 가련한 감염자의 망상이나 다름없지."
두 사람이 현실을 받아들일 시간을 벌기 위해 억지로 커피를 홀짝였다. ···이런 걸 왜 마시고 싶어 했던 거지?
"아니요, 아니에요! 설령 기존의 힘을 잃었다 하더라도, 로도스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거예요!"
"이해가 안 되나 보군."
"■■ ■■■?"
"너희들은 프로스트노바를 되살렸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그날, 눈의 악마와 함께 죽었다. 그게 사실이야."
"그런···"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셈이지? 난 이제 어찌해야 하지? 날 되살린 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지?"
"···■■"
그래, 그럴 줄 알았다.
"■■ ■■■, ■■■ ■ ■■■■ ■■■■■■, ■■ ■ ■■■ ■■■■ ■■."
"박사님···"
"타당하군. 하지만 뭘 어떻게? 난 이제 아무런 힘도 없는 여자일 뿐이다."
"로도스의 대원은 물리적인 파괴력만을 요구하는 직책이 아니에요!"
"그래, 너희의 생각은 그렇군. 하지만 저 바깥의 적들은 그리 단순하지 않을 거다."
"■■■ ■?"
"프로스트노바는 리유니온의 가장 강력한 유격대의 리더이자, 최강의 캐스터 중 하나이며, ···누군가의 딸이기도 했다."
"하지만 너희들 앞에 있는 건 흔해빠진 감염자일 뿐이지. 무력하고 혐오스러운 감염자."
"프로스트노바 씨···!"
"난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을 거다. 새삼스럽게 부정하려 들지 마. 이게 지금의 나이자, 나의 본래 모습이다."
"■■■ ■■ ■■■ ■■■■ ■■ ■■ ■■. ■■■■ ■■."
"대단한 자신감이군. 너의 지휘 능력은 인정하지만, 아무리 너라고 해도 일반인을 정예 전사로 탈바꿈시킬 수는 없다."
"박사, 내가 보기에도 이번 일은 너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야."
"···"
"그래도 로도스 아일랜드는 프로스트노바 씨를 우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조그만 게 고집은 그 노인네에 맞먹는군.
"그 어떤 형태라 하더라도, 프로스트노바 씨는 살아계십니다. 그러니까 저희도 포기할 순 없어요."
"■■ ■■■■■."
"···"
"안타깝게 됐네, 내 생각이 그대로 들어맞았어."
"켈시 선생님?"
"나는 탐탁치 않지만, 너희들의 의지가 확고하니 나도 최선을 다해서 이 여자를 돕겠어."
"■■■ ■■■ ■■ ■■■■?"
"글쎄, 의심스러우면 거절해도 좋아."
"아뇨, 프로스트노바 씨와 저희는 켈시 선생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해요."
"■■■■■■."
"···프로스트노바를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로써 고용하는 것이 최선책이었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 ■ ■■■ ■■■ ■■ ■ ■■."
"그래, 프로스트노바가 로도스의 대원이 되었다고 대외적으로 알릴 순 없어."
"그래서 나는 죽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 ■■■■■?"
"후후, 마음대로 생각해."
"프로스트노바는 로도스와의 전투로 사망했고, 시체는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처분되었다. 이 사실이 변하는 일은 없을거야."
"■■■ ■■ ■■■■■■■ ■■■■ ■■■ ■■■■■ ■■■ ■■■■ ■■?"
"그래. 프로스트노바가 로도스의 일원으로써 싸울 준비를 갖추었다 판단될 때까지 비밀리에 로도스에서 생활하면서 필요한 처치를 받을 거야."
"프로스트노바 씨는 그걸로 만족하시나요?"
"내겐 선택지가 없다.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너라면 내 진심을 알 수 있겠지."
"하지만···"
"이미 결정된 사안이다. 내가 로도스에 합류하길 가장 바랐던 사람은 너희들이지 않았던가?"
"■■ ■■■■ ■■■ ■■■."
"바라지 않았다고? 살아있는 자들은 모두 원치 않는 일들을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 ■■ ■■■■?"
"이 여자가 손쓸 방법이 없다면 누구도 할 수 없다는 의미겠지."
"받아들여야 해. 나는, 그리고 로도스는 최선을 다했어. 이제 남은 일은 최악을 피하기 위해 신중히 할 일을 고르는 거야."
"···그렇네요, 저희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그래, 감염자 동포들을 향한 악의를 완전히 뿌리뽑기 위해···
"■■■■ ■■■■■■■ ■■■ ■■ ■■■■■?"
그 의문을 제기한 사람에게 일제히 시선이 쏠렸다.
"···■? ■■?"
"나는 이미 관리하고 있는 인원이 많아서."
"정말로 죄송하지만 저는 프로스트노바 씨 곁에 머무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요."
"그런 고로, 앞으로 잘 부탁한다. 박사."
"■■■, ■■ ■■■■ ■■ ■■■■■?"
"프로스트노바가 옆에 있으면 이상한 데다 자원을 낭비하는 헛짓거리도 조금은 덜 하겠지."
"■■ ■■ ■■■■ ■■?"
"프로스트노바 씨, 박사님이 끓는 물을 입에 붓기 시작하면 반드시 막아야 해요!"
"노력해 보겠다."
"■■ ■ ■■■―"
그렇게, 로도스 아일랜드와의 첫 회담은 막을 내렸다.
???
"흰 토깽이, 잠깐만 기다려."
···뿌리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날 기다렸군."
"그래, 어떻게 널 안 기다릴 수 있겠어?"
블레이즈는 내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것 처럼 머리를 긁적였다.
"어어, 어떻게, 얘기는 잘 됐어?"
"앞으로 얼굴 보기 힘들 거다."
"뭐? 너 로도스에 들어오기로 한 거 아니야?"
"그래, 이제 난 로도스 소속이다. 자세한 사항은 곧 너에게 전달되겠지."
"뭐?? 뭔데, 약속은?"
"약속은 틀림없이 지킨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는 편이 좋을 거다."
"야, 너 내가 선배인 건 알고 있지?"
"그래, 아미야도 가장 신뢰하는 대원이 이런 인간이었다는 걸 알면 꽤 놀라겠지."
"치사하게 그러기야?!"
"아, 박사, 기다렸다. 여기 있는 블레이즈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게 있다만···"
"아익, 박사도 하필이면 지금 나타나냐! 눈치도 없게시리! 토깽이! 나 그냥 갈테니까, 다른 토깽이한테 고자질하지 마!"
박사가 몇 미터 남짓 되는 거리를 걸어올 동안 그녀는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 ■■ ■■■."
"그래. 나도 그냥 장난이었다."
"■■■■ ■■■ ■■ ■■■■?"
"그런가? ···친구라, 날 누님이라 부르는 녀석들을 친구 취급하기는 쉽지 않지."
"■ ■■■■ ■■■ ■■■■■ ■■■."
"후후, 그래. 어쩌면 날 친구라고 생각해서 누님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르지."
"■ ■■ ■■■ ■■■ ■■■ ■■. ■■ ■■■ ■ ■■."
"내 취향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리 확신하지?"
"■, ■■ ■■ ■■ ■ ■■■■■."
"걱정하지 마라. 난 그럴듯한 곳에서 지내본 경험이 없다."
"■■■ ■ ■■■ ■■■ ■■■■■."
"그거 기대되는군."
"■ ■■■■ ■■ ■■■ ■■ ■■ ■ ■■■ ■■■ ■ ■■."
"그럼 저 여자도 출입할 수 있다는 소리인가?"
"■■■■? ■■■. ■■■ ■■■ ■■■ ■■■ ■■■ ■■■■ ■■■■ ■■■ ■."
"아니, 너무 조용한 것도 그러니··· 멋대로 들어오는 편이 더 좋겠군."
"■, ■■ ■■■■ ■. ■■■■ ■■ ■■■■ ■■■■ ■■■."
"그건 처음 듣는 소리이다만?"
"···■■ ■■■ ■■■ ■ ■■."
"후후, 그냥 네 얼빠진 얼굴이 궁금했을 뿐이다. 눈의 악마들이 그렇게 섬세한 녀석들은 아니었으니."
"■■ ■■■."
"그래. 너는 이제부터 내 가족이다."
···가족. 가족이라.
"■■ ■■■■, ■■."
"그렇게 부르지 마."
그때 처음 들었던 박사의 모양빠지는 비명소리는 어느새 귀에 익어 버렸다···
그리고 옷 속에 얼음조각들을 집어넣는 사소한 장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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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들 읽을거리 써 왔음
열심히 썼으니까 댓글이든 추천이든 읽었다는 티 조금만 내주면 감사할덧
아! 내가 보냈다
압도적 감사
"너희들은 프로스트노바를 되살렸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그날, 눈의 악마와 함께 죽었다. 그게 사실이야." 이 대목은.. 작중에 프로스트노바가 다시 살아날 수 없는 이유인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