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鋳)는 곧 중(衆)이니.

 즉 주조는 모든 모양의 대들보가 될지어다.






 들끓는 홍염이 용광로 위를 흘렀다. 사내의 쇠가 붉은 바다를 거슬러 찬 공기와 만났을 때. 강철은 벌겋게 달구어져 태양처럼 빛났다. 탄탄한 근육은 기계처럼 움직여 망치를 내리쳤다.


 캉.

 캉.


 빛나는 강철은 쉽게 넓어졌다.


 처음.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던 검이 어느새 모양을 잡아가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되돌아가듯. 사내의 망치가 경쾌한 쇳소리를 낼 때마다 번듯한 칼날이 되어갔다.


 그리고 니엔은 몇 발짝 떨어져 그 기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칼날 속 열기가 사라지고, 서늘한 날이 빛을 발했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너. 또 저질렀네. 기포를 그대로 방치했잖아.”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니까요. 게다가 이 정도면 충분히……”

 “우리 일에 충분이 어딨어.”


 사내가 입을 다물었다.


 이젠 어디에 내놓아도 장인 소리를 듣는 그였건만. 니엔의 앞에선 한없이 작아졌다. 그녀의 눈은 심히 정밀해서, 그의 솜씨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항변을 하기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무릇 장인은 실력으로 말하는 법이었으니까. 그의 실력으론 니엔과 말싸움을 붙을 수도 없었다.


 물론. 가만히 당하고 있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계속 그러시면 오늘 저녁 안 할 거요.”

 “뭐? 그건 안되지!”

 “그게 싫으면 심술 그만 부리고 알려주쇼. 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있나. 쇠를 너무 달구면 형태가 망가진단 말이요.”

 “직접 보여주지. 잘 봐.”


 곧. 니엔이 직접 움직였다.


 사내는 그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듯 그녀를 직시했다. 쇠를 다루는 손놀림. 용광로의 열기. 망치질의 강도와 리듬. 무엇 하나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대장은 더 빨랐다. 더 정교했다. 더 섬세했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적을 바라보며, 솔직히 감탄했다.


 “그나저나 요즘 창검을 많이 만드는구나.”

 “그런 주문인 걸 뭐 어쩌겠수. 국경이 요즘 흉흉한 모양이더만.”

 “또 병란인가. 정말 어느 시대에도 피할 수가 없다니까.”


 하얀 피부 위로 땀방울이 떨어졌다. 자색의 눈동자는 그저 철을 바라볼 따름이었으나, 그 시선은 시대를 담고 있었다. 사내는 그녀의 영겁을 훔쳐볼 수 없었다.


 “무기를 치는 대장장이는 말이야.”

 “예, 누님.”

 “그걸로 흐르는 피까지 짊어져야 하는 거야.”

 “그렇겠지요.”


 니엔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장 일은 흔한 공예에 지나지 않는다.

 생활에 뿌리내려 시작했으나, 이젠 속세의 영향을 받아 싸움에 불을 지피고 있다.

 무기를 든 감촉에 익숙해져선 안 된다.


 대신 그녀가 해왔던 말들이 사내의 가슴에 하나하나 박혔다. 아니, 오래전부터 박혀있던 가시가 새삼 아파졌다는 쪽이 옳겠지. 기껏 둔 제자가 허구한 날 무기나 만들고 있다니. 마음이 편치는 않으리라.


 그러나 니엔은 질책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내는 죄악감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사내의 죄악감은 그의 입을 옭아맸다.


 “몇 달 정도 자리를 비울 거야.”

 “가고 싶은 곳이라도 생기신 거요?”

 “아니. 오랜만에 남매가 다 모일 것 같아서. 내가 빠질 순 없지. 내 동생 중에 요리를 끝내주게 하는 녀석이 있거든.”

 “거, 누님다운 이유구만.”


 며칠 뒤.

 약속대로 니엔은 떠났다.

 곧 돌아올 예정이었기에 대장간엔 그녀의 물건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 * *











 인간은 무례한 종족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집에 찾아와 갑자기 떠나는 손님과 같았다. 성격을 얼마나 난폭한지. 그들이 떠난 자리는 언제나 난장판이었다. 짧게 머문 주제에 강렬한 흔적까지 남겼다. 덕분에 방을 말끔히 치우기까진 오랜 시간이 들었다.


 갑작스레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갑작스레 떠났다.

 행복은 짧은데 이별은 길었다. 망각의 축복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되었구나.”


 니엔이 무너진 대장간을 보았다.


 긴 시간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남매들과 회포를 풀고. 자식 자랑하듯 제자 자랑도 좀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괜찮은 선물들을 챙겨왔다. 한 달이나 되었을까? 아니면 두 달은 되었을까?


 아무래도 좋았다. 몇 달이 되었건 이별을 준비하기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었다.


 ‘소년’을 만난 이후 한 시도 꺼지지 않았던 용광로가 잿빛이 되어 있었다. 대장간의 공기를 타고 흐르던 열기는 이제 먼지가 되었다. 방치된 시체엔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처음으로 받은 제자였다. 어린 것이 대장일에 꼬치꼬치 묻는 것이 귀여워서 대답을 해줬다. 녀석이 처음으로 만든 건 망치였다. 끝은 울퉁불퉁하고, 철엔 불순물이 껴있었다. 니엔은 그 망치를 1년간 사용했다. 새 망치는 3년간 사용했다.


 “내가 그리 말했는데도 듣지 않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어.” 


 제자는 끝까지 자신의 작품과 함께 있었다.

 무기는 인간보다 느리게 썩었다.


 자신이 만든 무기에 죽은 대장장이. 그 모습은 마치 패륜처럼 보였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의 죽음은 니엔의 가슴 어딘가에 비수를 꽂았으니, 별다르지도 않았다.


 어떤 경위였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적군이 노획해 사용한 걸 수도 있겠고, 탈영한 병사들의 짓일지도 몰랐다. 니엔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건 그녀의 성미에 맞지 않았으니까.


 “무기를 만든 대장장이는 피의 무게까지 짊어져야 하지.”


 언젠가.

 그에게 해줬던 말을 되짚었다.


 네가 만든 무기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죽일 것이다.

 불온한 제자는 미처 죽음을 수습하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상황이 이리 된 걸 어찌할까.

 제자의 업은 스승의 업인 것을.


 “이만큼 오래 살고 있으면 꿈도 몽롱해지지.”


 니엔이 손으로 철을 쥐었다. 비록 용광로는 없지만, 그녀의 체온은 충분히 철을 녹일 수 있었다. 다음은 그의 제자였다. 하얀 백골이 검게 물들어갔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삶을 실감할 수 있어.”


 처음 만든 것은 한 자루의 대검이었다.

 파편화된 칼날이 부유하며 검의 신형을 이뤘다. 제자의 작품을 이어붙인 물건이었다.


 “덕분에 할 일이 생겼구나. 바삐 움직이면 슬픔도 잊히는 법이지.”


 그다음은 방패였다. 본디 검이었던 것을 십수 개 이어붙였다. 멀리서 보면 수레바퀴처럼도 보였지만, 나름 그녀의 역작이었다.


 “복수는 하지 않을 게다. 다만 회수를 할 뿐.”


 대장장이는 복수하지 않는다.

 다만 작품을 회수할 권리 정도는 있겠지.


 너의 작품을 가진 놈들을 모두 죽이다 보면, 그 안에 널 죽인 녀석도 있겠지.

 장례는 그때 치르도록 하자.


 정확히 하루 뒤. 니엔은 길을 떠났다.

















 

 글 너무 어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