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보니까 링크 관련해서 뭐 있다는 거 같아서 전편 링크 올리는 게 힘들듯... 좀 불편하겠지만 갤로그 가서 봐주면 ㄱㅅㄱ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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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로 한가해진 주말. 외부로 파견 나간 대원들을 제외하고 전원 휴일이 주어졌다. 켈시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건지 대원들의 능률 향상을 위해 모든 부서에 명령을 내렸다고는 하는데... 평소부터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 녹색 악마가 갑자기 좋은 일을 하다니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추천받은 건 한 달 전인데 이제서야 읽어볼 수 있게 된, 이스티나한테 빌린 서적조차 눈에 안 들어오고 있다. 그토록 소망했던 휴일이 주어졌는데 그거 가지고 끙끙대고 있다니. 아이러니한 내 상황에 무심코 한숨을 내뱉었다.

“산책이나 할까...”

멍하니 있으면 뭐하나. 뭐처럼 있는 휴일. 알뜰하게 사용하는 게 좋겠지.
책을 소파 옆 테이블에 던져두고 옷장에서 어제 다림질한 와이셔츠를 꺼냈다. 면도를 해서 꽤나 말끔해진 턱을 쓰다듬으면서, 딱히 이상한 게 없는걸 확인하고, 기지개를 펴면서 곧바로 방 밖으로 나왔다.

중간에 만나는 대원들이랑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다시 걷기를 반복하며 창가의 경치를 천천히 감상했다. 저 멀리 햇살을 품으며 하늘을 비추고 있는 푸른색 호수와 그 근처의 산림이 내 시야를 느긋하게 채우면서, 바쁜 일상에 치여 피폐해진 내 심상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것만 같았다. 역시 가끔씩은 이렇게 휴식을 취해야 사람이 안 지친다.

“어? 박사님이시네요?”

이윽고 내 앞에서 들리는 여성의 로우톤에, 전신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진동했다. 한동안 바빠서 잊고 있었던, 내게 있어 켈시와는 다른 의미로 공포의 대상인 그 사람의 목소리. 절대 잊을 리가 없다.
기름이 다 떨어진 양철 나무꾼의 관절과도 같이, 어색하게 목을 정면으로 돌리자, 나랑 머리 절반 정도 차이가 나는 보랏빛 단발의 포르테 여성이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드 오퍼레이터이자 내 헬스 트레이닝 담당인 사이드로카다.
광택이 번쩍이는 검은색 가죽 재킷 안의 하늘색 와이셔츠 너머로 당당하게 위용을 뽐내고 있는 저 거대한 흉부에 무심코 시선을 뺏길 뻔했지만, 이 처자랑 오래 있으면 위험해진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발을 조금씩 내빼서 도주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 사이드로카구나. 산책 중이었니?”
“오늘 휴일이라고 해서 트레이닝 하러 가는 중이었어요.”
“그렇구나. 열심히 해. 난 마저 할 일 하러...”

곧바로 180도 회전해서 땅을 박차기 시작하려 했다. 한가한 도중에 만난 상황인데 마침 트레이닝을 하러 간다? 99.9퍼센트 확률로 끌려가서 같이 운동하고 2시간 후에 흐물흐물해진 채로 방으로 돌아와 기절해버리는 엔딩이 보인다. 이건 고민도 없이 도망쳐야 된...

“그리고 박사님도 데려가려고 박사님 방으로 향하는 중이었고요.”

아 젠장. 망했네.
도망치려는 순간 내 오른쪽 팔에서 중압감이 느껴졌다. 그 찰나의 순간을 캐치하여 사이드로카가 못 도망가게 단단히 붙잡은 것이었다.
식은땀이 등골을 가로지르는 것이 느껴진다. 포식자에게 붙잡힌 초식 동물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사이드로카는 그대로 한 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서 통나무 드는 것처럼 날 번쩍 들어 올린 채 트레이닝실로 발걸음으로 옮겼다. 키 160 중반대의 처자가 머리 하나 정도 더 큰 성인 남성을 이렇게 가볍게 들어 올리다니. 참으로 무시무시한 근력이다.
“휴일인데 그냥 쉬면 안 돼...?”
“휴일이니까 운동해야죠. 오늘까지 못한 분량 채울 예정이니까 각오하세요.”
누나 나 죽어...



“허리... 허리가... 영 좋지 못해...”

간신히 샤워를 마치고 비틀거리는 몸을 견디며 어찌어찌해서 방에 도착해 소파에 기절한 것처럼 드러누웠다. 운동 며칠 못 했다고 그렇게 엄하게 하다니. 진짜 못 하겠는데 한 세트 더 시키는 거 뭔데? 도베르만에게 훈련받는 예비작전팀의 고뇌를 조금이나마 알 거 같은 기분이다. 나중에 걔네들 힘내라고 밥이라도 한 끼 사줘야겠네...

시계가 오후 3시를 가리켰다. 혀가 심심하다고 어리광을 부려온다. 평소라면 이 사소한 욕구를 무시하고 업무에 집중했지만, 휴일인데다가 방금 전까지 운동을 빡세게 하고 오다 보니 당분에 대한 욕망이 욕실 속 곰팡이처럼 증식해갔다. 운동을 하면 식욕이 돋는다더니 그런 이유 때문인가?
생각해보니 클로저가 크레딧 상점에 신규 간식 세트를 들여놨다고 들었다. 그거라도 하나 사먹으면 이 당분 욕구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몸을 일으켜 보았다. 허나 몸은 마치 침대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못 움직이겠다고 대놓고 파업 선언을 하고 있다. 아, 그냥 다 귀찮은데 낮잠이나 잘까...

“박사님? 계신가요...?”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는 깜짝 놀라서 소파에서 나뒹굴었지만, 사람은 발전하는 생물인 법. 이번엔 별 반응 없이 고개를 들어서 문 앞의 손님의 얼굴을 확인했다.

“어서 와. 무슨 일이야? 블루포이즌.”
“아뇨, 그... 주무시려는 거 같은데... 나중에...”
“자는 거 아니야. 그냥 피곤해서 누워 있는 거야.”

1도씩 움직일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서 등을 소파 측면에 붙였다. 모든 혈관에 냉각수를 집어넣은 것 같이 시린 게 파스라도 붙여야 되지 않나 싶다.

“그래서, 손에 들고 있는 걸 보아하니, 새로운 디저트를 가져왔나 보네?”
“아, 네. 간식 시간이라 시장하시지 않으실까 해서...”

블루포이즌은 작은 접시에 담긴 디저트를 조심히 테이블 위에 올렸다. 역시 이번에도 변함없이 푸르뎅뎅하구먼. 다만 색상 배합이 어려웠던 건지 평소보다 훨씬 짙은 남색에 가까운 색인 게 특징이다.

원본이 둥그런 원형이었다면 얼추 8분의 1 정도의 사이즈로 잘랐을 법한 조각 케이크. 어제의 팬케이크 세트에 비하면 꽤나 소박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겉표면 바로 아래부터 케이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정체불명의 흰색 물체가 특징이다. 설탕 시럽인가? 마시멜로? 아니면... 과일 잼? 설마...?

“혹시 자허토르테야?”
“알고 계셨네요. 네. 맞습니다.”

자허토르테. 근대 라이타니엔에서 발명된, 살구 잼으로 채워진 초콜릿 스펀지케이크. 예전에 에이야퍄들라랑 담소를 나누면서 들어본 적이 있다. 당도가 장난 아니게 높은데 거기에다 가격도 케이크 치고 비싼 편이라고 했던데... 이걸 실제로 먹어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 아닐까?

“너무 달면 물리실 거 같아서 당도를 어느 정도 줄였긴 했는데... 아마 커피를 곁들이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이번에도 블랙으로 가져올게요.”
“뭔가 번거롭게 해서 미안한걸.”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블루포이즌은 싱긋 웃으면서 곧바로 커피포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콧노래를 부르며 물을 끓이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나이 차이 꽤 나는 여자아이한테 디저트를 대접받는 이 상황이 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째 뭔가 발상이 좀 변태적인 거 같긴 하다마는, 한가한 휴일과 맛있는 디저트, 그리고 옆에 있는 미소녀 한 명. 남자라면 한 번쯤은 가져볼 수 있는 망상의 일각이지 않을까? 물론 이런 걸 직접 행동으로 실행하려는 건 그냥 미친놈인 거고.

“아무튼, 오늘도 고마워. 잘 먹을게.”

며칠째 멈추지 않고 내게 맛있는 디저트를 가져다주는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며, 앙증맞은 포크를 들어서, 케이크를 살포시 눌렀다. 푹신한 케이크의 단면이 서서히 갈라지는 걸 보니 왜인지 모를 쾌감이 느껴졌다.
이윽고 절단된 한 조각을 찍어서 한 입. 케이크는 무사히 내 입속으로 들어와 사르르 녹기 시작했다.

“오, 맛있네.”

매우 달다. 이 단어 외에 딱히 설명이 될 만한 단어가 없었다. 얇은 초콜릿 코팅에서 흘러나오는 진득한 풍미가 혀를 채우자마자 그 안의 살구 잼이 경사면 위의 바위처럼 데굴데굴 구르더니 은은하면서도 확실한 감촉이 내 입을 가득 채웠다. 거기에 꿀꺽 삼키고 나서도 확실히 느껴지는 초콜릿과 살구 잼의 달콤한 잔향(殘香). 그야말로 묵직한 달콤함의 향연이었다. 이 정도가 당도를 줄인 수준이라고 하니, 실제 맛은 어떨지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았다. 먹으면 혀가 마비될 수준이려나?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서 삼키자마자 곧바로 블루포이즌이 건넨 커피를 한 모금 입에 갖다 댔다. 향긋하면서도 진하지 않은 맛이 커피랑은 색다른 디저트와의 조화가 이루어져, 갈증에 허덕이던 내 목을 잠재웠다. 디저트의 맛의 강도에 세팅, 그리고 그것에 어울리는 음료까지. 이런 세세한 것까지 생각하면서 그녀는 나에게 간식을 권하는 거겠지. 몇 번이고 생각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잘 먹었습니다.”
사이즈가 작기는 했어도 5분 만에 접시와 머그컵 위의 내용물은 내 위장으로 사라졌다. 어째 날이 갈수록 먹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게... 슬슬 조절을 해야 될 듯 싶다.

“덕분에 살 거 같아. 정말 고마워.”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셨으니까요. 충분한 휴식도 필요하죠.”
“그야 그렇지... 음? 내가 운동한 건 어떻게 알았어?”

아차,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블루포이즌의 몸이 흠칫 떨리는 것이 보였다. 내가 뭐 잘못 말한 거라도 있는 건가?

“사실... 복도에서 사이드로카씨와 함께 어딘가로 가시길래... 궁금해서 따라가 보니... 그...”
“아.”

생각해보니 간식을 가지러 온 타이밍이 절묘하게 딱 맞다 싶더니, 내가 운동을 하러 가는 걸 보고 준비하러 간 거였구나. 난 또 말실수라도 한 줄 알았네.

“기분 상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결코 미행을 할 생각은...”

당황스러운 듯 이리저리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불안과 초조함이 섞인 듯, 그 목소리엔 약하지만 확실한 떨림이 느껴졌다.
이해가 안 가는 상황에 한동안 머리와 혀가 굳었다. 애가 갑자기 왜 사과를 하는 거지?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리고 우연찮게 본 것일 뿐인데 미행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소리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우연찮게 본 걸, 그것도 고의로 한 게 아닌 거 가지고 이렇게까지 사과한다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곤란할 따름. 예의를 너무 바른 것도 문제다. 아니다, 설마 로프나 헤이즈 같은 애들한테 둘러싸여 있다 보니 내 도덕관념이 이상해진 건가? 당분 섭취로 충전된 두뇌를 풀가동해봤지만 마땅히 나오는 정답은 없었다.

“그런 걸로 사과할 필요 없어.”

에라 모르겠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답해주는 게 좋겠다는 심정으로 탁, 하고 블루포이즌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바, 박사님...?”
“예의를 차리는 건 좋지만, 너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손이 닿자마자 블루포이즌의 몸이 용수철처럼 상하로 흔들렸다. 그런 반응에 피식 웃으면서, 난 좌우로 그녀의 분홍빛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치 최고급 비단을 만지는 것 같은 감촉에 그만, 계속 이렇게 있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설마 내가 이걸로 기분 나빠졌을까 고민했으면 걱정 안 해도 돼. 난 오히려 요 며칠간 너에게 감사하고 있는걸? 마음만 같아선 유급휴가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야.”

물론 내게 그런 권한은 없지만,이라며 같잖은 농담을 덧붙였다. 진짜로 그랬다간 켈시에게 두들겨 맞을 테니 말이지.

“답례라고 하긴 뭐하지만, 뭐 필요한 거라도 있어? 내가 되는 선까진 어떻게든 도와줄게.”

블루포이즌은 아무런 답 없이 멍하니 날 바라보고 있었다. 선명한 옥색 눈동자가 마치 잔잔하고 깊은 호수와도 같이 투명해서, 무심코 넋을 잃고 바라볼 것만 같았다.

“머리...”
“응?”
“머리를... 만졌...”
“어...? 아...! 미, 미안! 기분 나빴어?”

생각해보니 며칠 전에도 안젤리나의 머리를 만지다가 지팡이로 얻어맞았는데... 까먹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카락은 함부로 손대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일났네. 이제 용문 경찰한테 부하 성추행을 명목으로 잡혀가는 건가? 조만간 생길 거 같은 미래의 은팔찌가 내 시야에서 아른거렸다.
그런 내 생각이 현실이 되려는 건지, 블루포이즌은 양손으로 내 손을 콱, 하고 붙잡았다. 과연 무슨 말이 나올지 두려워 자연스레 몸이 석상처럼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한 번만...”
“응?”
“한 번만, 더 부탁해드릴 수 있을까요?”

허나, 내 생각이 쓸모없는 기우라고 비웃는 것처럼, 블루포이즌의 답변은 생각 외의 것이었다.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 나오면서 안 그래도 과부하가 걸리던 내 뇌내 프로세스가 시스템 다운을 시작했다. 한 번만 더? 뭘 해달라는 거지? 운동을 다시 갔다 오라는 건가? 아니면 다른 거?

“머리를, 한 번만 더... 안 될까요?”
“음...? 어...? 응...???”

내가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걸 알기나 할까. 블루포이즌은 그대로 내 손이 자신의 머리랑 맞닿도록 당겼다. 다시금 부드럽고 푹신한 그녀의 머리카락의 감촉이 손바닥에서 느껴졌다.
내가 지금 피곤해서 헛것이라도 보고 있는 건가... 머리 다듬어둔 게 흐트러지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블루포이즌도 대원 기록을 본 바로는 안젤리나나 소라 못지않게 패션에 관심이 많은 아이일 텐데...?

“어... 블루포이즌...? 머리 세팅 망가지지 않아...?”
“괜찮아요. 그러니, 부디... 계속...”

어째선지 무겁고 애절하게 느껴지는 저 대사에 무심코 내 손은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렇게까지 부탁하는데 거절하기에도 뭐하고...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나도 계속 만지고 싶었고... 뭔가 어감이 변태적이지만 어디까지나 머리카락 말하는 거다.

“이걸로 괜찮은 거야? 다른 거 원하는 거라던가 없어?”
“이것만으로 충분하답니다.”

옅은 분홍빛을 띠는 뺨과 함께, 블루포이즌은 왜인지 눈가가 살짝 젖은 채, 싱긋 웃으면서 내 손길을 즐기고 있었다. 좋아해 준다면 나야 다행이다마는... 뭔가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계속 내 몸을 감싸는 것만 같았다.

모처럼 얻은 휴일의 오후 시간은, 그렇게 알쏭달쏭한 이벤트(?)와 함께 유유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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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허토르테는 알다시피 오스트리아의 디저트임. 라이타니엔이 오스트리아 모티브라길래 넣어둠.

@원래 4일에 1번씩 올리려 했는데 시험준비를 해야하다보니 다음편부터 좀 늦어질 거 같음. 최대한 일주일에 한 번씩 올리도록 노력할게 ㅠ

@주1시가 왜 금지어냐 ㅋㅋㅋ 웃기네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