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지?
여기를 전에 와 본 적 있나? 여긴
여기는...
우리 집 거실이다.
"소냐, 방 장식하는 것 좀 도와줄 수 있니?"
"돕는 건 좋은데... 귀찮게 이런 걸 대체 왜 하는 거예요."
"얘 좀 봐. 생일 파티를 하는데 방도 안 꾸미고 그냥 하니?"
"그러니까 파티 같은 거 꾸역꾸역 매년 할 필요 없다니까..."
"무슨 말이니 소냐. 오늘은 일 년 중 가장 축복받은 날이야. 축하하지 않으면 죄를 받을 거란다."
엄마가 나를 안아준다.
"생일 축하해 소냐. 사랑해."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엄마, 저도 사랑해요."
"착하지. 그럼 저 방문 위에 리본 좀 달아줄래?"
"저긴 키가 안 닿을 것 같은데... 아빠한테 부탁하면 안 돼요?"
"그런가... 엄마보다는 훨씬 크니까 닿을 줄 알았지."
"아빠는 언제 와요?"
"그러게, 케잌 사러 나간 지 한 시간이 넘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철컥
"나 왔어~"
"여보? 뭐 하다 이렇게 늦었어요?"
"말도 마요. 길거리에 이상한 가면을 쓴 인간들이 어슬렁대고 있어. 보이는 사람마다 전부 붙잡아서 시비걸고 강도짓을 하질 않나."
"어머어머. 경찰은 뭐 하고 있대?"
"모르지 뭐. 뇌물이라도 먹었는지. 소냐는?"
"저 왔어요, 아빠."
"아 소냐. 생일 축하한다. 오늘 학교는 어땠니?"
"...그저 그래요."
"학교에서 또 싸우고 온 건 아니지?"
"여보! 애 생일날에 또 뭔 잔소리를 그렇게 하는 거예요."
"아......"
아빠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길거리에서 무언가 내 생각보다 더 무서운 일을 겪고 왔는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소냐. 미안해."
"아니에요 아빠."
"아니야. 아빠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파이도 다 됐네. 소냐, 초에 불 붙여 줄래?"
"붙였어요."
"시작하자."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딸
생일 축하합니다
후욱
"양초도 끌까요?"
"아니 놔두렴. 분위기 있잖아."
"네."
"어때 소냐? 한 살 더 먹은 기분은?"
"별 생각 없는데..."
"어느샌가 우리 소냐도 7학년이네. 뭔가 좀 달라지거나 하진 않았니?"
"......"
"앞으로 뭔가 해 보고 싶은 공부라던가 하는 건 없어?"
"몰라요 엄마. 전 아직 7학년이라고요."
"벌써 7학년인 거야. 세월은 금방이란다. 정말 금방이야."
"생각해 볼게요..."
"소냐, 아빠도 한 마디 해도 괜찮을까?"
"페테르 당신 또 애 기부터 죽이려고"
"아니에요 안나, 그런 얘기 아니야. 잠깐 한 마디만 해 주고 싶어서 그래."
"네 아빠."
"아까는 아빠가 미안했다. 아니... 언제나 미안하다. 아빠가 배운 게 없으니 자꾸 쓸데없는 말만 많아지는구나.
아빠도 우리 소냐가 소중한 내 딸이다 보니까, 그... 사랑하다 보니까, 그것만 알아줬으면 좋겠어."
"괜찮아요 아빠... 알고 있어요."
"소냐는... 앞으로 정말 큰 사람이 될 거야. 사람들을 이끌어 나갈 상이야. 어쩌면 진짜로 장군님이 될 수도 있고. 학교에서 '동장군'이라 불린다면서?"
"아빠가 그 별명을 어떻게 알아요?"
"어제 네 담임 선생님이랑 통화를 좀 했어."
"......"
"그 뭐냐, 학교 일진 애들이나 귀족 자제분들한테도 막 덤비고 그래서 문제만 일으킨다고 뭐라고 하길래 말이야, 네 선생님이랑 전화기 붙잡고 한참동안 싸웠지 뭐냐.
난 말이야, 네가 정말 자랑스럽단다. 성격은 좀 그... 거칠어도, 약한 사람들을 감쌀 줄 안다는 게. 그런 사람은 정말 드물단다. 정말 드물어."
"......"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소냐. 이걸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 것인지를 스스로 알 수 있어야 한단다. 그래야 네가 정말로 큰 사람이 될 수 있어.
그러지 못하면... 너는 널 따르는 사람들을 방주에 태워 주는 것밖에 할 수 없을 지도 몰라."
"방주요?"
"그래. 못 들어봤니?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벌을 피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아뇨 알죠. 그건 아는데 왜 갑자기..."
"사람들을 올바로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야. 재앙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 지 모르니까... 뭐라 말로 표현을 못 하겠네.
어쨌든 아빠는 소냐를 믿는다. 우리 소냐는 분명... 사람들을 구하는 지도자가 될 거야."
"......"
딩동
"어머, 이 시간에 누구래?"
"제가 나가 볼게요."
"얘 좀 봐. 아빠 말씀하고 계시잖니?"
"아냐 여보. 말 다 끝났어요. 괜찮으니까 나가 보거라 소냐."
"네."
아빠한테는 미안하지만 낯간지러워서 더 앉아있기 싫었다.
지도자라니, 그딴 건 모른다. 난 아직 7학년이다.
촛불의 열기가 얼굴에 들러붙은 것만 같다.
타이밍 좋게 찾아온 외판원을 쫓아내고 잠깐 바깥 공기나 쐬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현관문 구멍 사이로 가면을 쓰고 손도끼를 든 사람이 보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콰직
"꺄아악!! 뭐야!? 뭐야 저거 여보??"
"진정해 안나! 강도 새끼 같은데, 내가 쫓아낼 테니까 물러나 있어. 소냐 너도 문에서 떨어져!!"
"아빠 조심해! 리유니온이야!!"
"리유니온?? 소냐,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러게?
'리유니온'? 뭐야 그게. 생전 처음 듣는 말이다.
하지만 난 저 가면 쓴 새끼들을 알고 있다. 어떻게? 어디서?
'리유니온'이 현관문을 걸레짝으로 만들고 걷어차면서 들어온다.
가면을 보고 사지를 덜덜 떨기 시작한 아빠를 밀쳐내고 그 자식과 대치한다.
내 손에는 그와 똑같은 손도끼가 들려 있다.
내가 지키겠어.
"너 누구야."
"......"
"개같은 버러지새끼가..."
먼저 공격한 것은 나였다. 그 자식은 맞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도끼를 휘두를 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대로 내 옆구리를 노리고 반격이 들어왔다. 나는 맞지 않았다. 이 자식이 어떻게 도끼를 쓰는지 난 다 알고 있다.
이 자식은 누구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서로를 향해 휘두른 도끼가 맞부딪혀 튕겨나갔다.
'리유니온'이 내 목을 조르려고 달려들었다. 나는 그 자식의 가면을 벗기려고 같이 달라붙었다. 우리는 엎치락뒤치락하며 뒤엉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식탁에 부딪혔고, 불붙은 초가 방바닥에 엎어졌다.
불은 순식간에 온 집을 집어삼켰다.
'리유니온'은 당황한 듯, 한두 걸음 뒷걸음질 치더니 그대로 돌아서 내빼버렸다. 나는 그 자식을 뒤쫓았다. 가면을 벗기려고.
우리는 달리기도 똑같았다. 아무리 달려도,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
문득 불타고 있는 내 집이 생각났다. 그제서야,
멀어지는 그 자식의 뒷모습에 이를 갈면서 뒤돌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불을 놓아두면 끄지 못한다.
돌아온 나를 맞이한 것은 이미 잿더미로 변해 버린 내 집의 흔적들 뿐이었다.
무너져내린 천장, 새까맣게 그을린 딸기 파이, 검게 타서 늘어붙은...
"우욱, 욱!"
난 이 냄새를 알고 있다. 인간의 지방이 타는 냄새.
"우웨에엑, 욱, 큭, 우욱!!"
집 앞 공중전화
[네 경찰입니다]
뭐야 이건. 소름끼치는 기계목소리가 난다.
"집에 강도가 들었어요. 불이 나서 제 부모님이 죽었어요. 도와주세요."
[당신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뭐?
[명심하세요]
"야 이 씹새끼야, 지금 뭐라했어"
[과거는 죽지 않습니다. 사실 그것은 아직 끝나지도 않았습니다]
"도와달라고!!!"
뚜 뚜 뚜
무너져내린 지붕 속에서, 유일하게 내 손도끼 하나만은 나무 손잡이조차 상하지 않은 채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난 도끼를 쥐어들고 아까 중간에 돌아왔던 길을 다시 따라 나선다.
그 새끼가 어디로 갔는지 나는 알고 있다.
죽여 버리겠어.
얼마 지나지 않아, 난 학교에 도착했다.
우리를 가두고 있던 리유니온은 어느샌가, 처음부터 거기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를 혼란과 굶주림 속에 내버려두고.
그러나 내가 찾는 그 '리유니온'은 분명 이 학교 어딘가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 난 알고 있다.
난 자치단의 부실로 향했다.
"소냐 언니...?"
"라다, 뭐하는 거야 안 자고."
"에헤헤, 배고파서..."
"...많이 고파?"
"아냐아냐, 그냥 쪼오끔!"
"그래..."
"소냐? 어쩐 일이야, 이 밤중에..."
"아무것도 아냐. 잠이 안 와서 바람 좀 쐬고 올게."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고민은 안나 네가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눈 밑에가 다크써클로 썩창이 나 있다고."
"......"
"잠깐 나갔다 오자."
"라다가 배고파하고 있어."
"그 자식은 먹성이 남다르니까 말이지."
"그런 문제가 아니야. 우리 모두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잖아. 이대로는..."
"안나."
"난 모르겠어... 그 귀족들은 왜, 왜 자기들끼리만 먹을 걸 독차지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우리를 약탈하려 하는 걸까?"
"귀족은 원래 쓰레기 병신들이니까 그렇지. 너도 알고 있잖아?"
"언젠가 책에서 본 적이 있어. 전쟁은 인간을 바꾼다고, 인간의 마음 속 가장 어두운 부분을 끄집어 낸다고. 이것도 그런 걸까?"
"아니라니까. 만약에, 우리가 지금 저 귀족새끼들이 갖고 있는 식량 창고를 대신 가졌다고 해도, 나나 너는 저 머저리새끼들처럼 굴지 않아. 배고픈 애들한테 나눠 줄 거야. 아니야?"
"...소냐, 있잖아. 내가......"
"네가?"
"...아니야. 아무 것도."
"아 뭔데, 사람 궁금하게."
"미안해... 지금은 말을 못 하겠어."
"......"
내가 지켜줘야 한다.
"안나."
"왜?"
"뭘 그렇게 낑낑 앓는 건지 모르겠는데, 말만 해. 내가 도와줄 테니까.
라다가, 그리고 우리가 먹을 것도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내가 리더니까. 알았어?"
"......고마워, 소냐."
"알았으면 들어가서 자."
"소냐는?"
"바람 좀 쐬고 들어갈게."
거짓말이다.
난 안나가 뭣 때문에 저렇게 낑낑 앓는지 알고 있다.
그녀는 귀족을 싫어한다. 심지어 나보다도 더. 그리고 그녀는 자치단을 데리고 귀족들 밑으로 들어간다는 게, 날 팔아넘긴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라다는 지금 배가 고프다. 그리고 안나가 데려온 애들도, 내가 구해 온 애들도.
저 쓰레기같은 귀족들을 믿을 수 있을까? 아니다.
내가 지켜줘야 한다.
아빠는 내가 사람들을 구할 거라고 했다. 난 자치단을 이끌 것이다.
그리고... 바람만 좀 쐬고 들어가겠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두 번째 식량 창고로 가는 길에 '리유니온'을 만났다.
그는 내 얼굴을 보고도 도망치지 않았다.
"너 이 씨발새끼..."
"지금 나랑 싸우려고? 그만 두는 게 좋을텐데."
"......"
가면 밑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온다.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귀족들이 깨어날 거야. 네가 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잖아?
넌 네가 할 일이 뭔지 알고 있어."
"호로새끼가..."
"일이 끝나면 여기로 돌아와. 기다릴 테니까. 그 때는 이 가면도 벗어 줄게.
하지만 그 때가 되면 가면 따위 벗을 필요도 없이, 넌 내가 누군지 알게 될 거야."
난 잠입에는 소질이 없다.
조용히 녀석들의 리더만 처리하려고 했던 계획은 시작부터 파투가 나 버렸고, 결국 혼자 수십 명의 귀족 조무래기에게 둘러싸이는 처지에 놓였다.
별 수 없이 보이는 대로 족쳐 버리기로 한 나는 귀족들이 말하던 '나탈리아'라는 갈보년을 찾을 때까지 식량 창고 방을 이잡듯 하나씩 뒤져 나갔다.
네 번째 방은 문이 잠겨 있었다.
콰직
난 나무로 된 그 문을 걸레짝으로 만들고 걷어차면서 들어갔다.
날 보고 사지를 덜덜 떨고 있는 소녀를 감싸듯 조무래기 하나가 내 앞으로 기어나왔다.
그의 손에는 나와 똑같은 손도끼가 들려 있다.
"'나탈리아'라는 게 그 년이야?"
"더러운 평민의 입으로 그 분의 이름을 들먹이지 마라!"
"머저리 병신새끼가..."
도끼에 옆구리를 찍혀 바닥을 구르던 조무래기가 허파에 바람빠진 소리로 "도망치세요 이리나" 같은 말을 주절대고 있었다.
아마도 눈 앞에 있는 이 년은 '나탈리아'가 아닌 모양이다. 이리나? 상관없다.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저희가 잘못했어요..."
"됐고, '나탈리아'는 어디야. 그것만 불어."
"저흰 몰라요, 나탈리아 님은 소란이 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측근들과 같이 어디론가 사라지셨어요... 제발..."
"니기미..."
"빅터! 이리나!! 다들 괜찮으신..."
떼로 몰려 들어온 귀족들은 방 안의 상황을 본 순간 모든 것을 이해하고, 어쩐지 돼지 울음소리와 닮아 있는 괴성을 지르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 중에 석궁이 들어있는 것을 본 나는 순간적으로 탁자를 엎어 그 뒤에 숨었다.
탁자 위에는 끊긴 전기를 대신할 조명이었던 촛불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보온을 위해 짚을 깔아두었던 나무 바닥이.
불은 순식간에 온 창고를 집어삼켰다.
귀족들은 당황한 듯 뒷걸음질쳤다. 난 그 순간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바로 탁자 뒤에서 튀어나와 석궁을 든 녀석의 어깨를 쪼개 버린 후 그대로 창고를 뒤로 하고 줄행랑을 쳤다.
등 뒤에서 귀족들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날 쫓아왔다. 상관없다. 이 지푸라기만도 못한 새끼들이 날 잡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불을 놓아두면 끄지 못한다.
그 간단한 사실을 그들도, 나도 잊고 있었다.
한숨 돌리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창고는 불타고 있었다.
라다와 모두가 함께 먹을 식량을, 그리고 안나의 희망을 내가 불태워 버렸다.
나처럼 때늦은 후회에 시달리고 있을 귀족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안나의 소근거리는 목소리도.
전쟁은 인간을 바꾼다.
인간의 마음 속 가장 어두운 부분을 끄집어 낸다.
"완벽하네."
약속대로 '리유니온'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 완벽해. 어쩌면 이렇게 나랑 완벽하게 똑같이 해낼 수가 있지."
"아가리 싸물어"
퍽
있는 힘을 다해 내지른 주먹이 '리유니온'의 얼굴에 날아가 꽂혔고, 뜯어져 날아간 가면 밑에 숨겨져 있던 얼굴은
내 얼굴이었다.
"역시, 나는 너야."
"지랄하지 마. 내가 엄마랑 아빠를 죽였다고?"
"그거 말고 병신아. 그건 꿈이야. 너도 알 거 아냐."
물론 그딴 건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모두 현실이야."
"나도 알아! 아니까 제발 지랄 좀 하지 마."
"알긴 뭘 알아. 안다면 왜 날 똑바로 보질 못하는데. 왜 우는데?"
"시끄러워..."
"날 봐. 나는 너야. 저 화재는 네가 저지른 일이야."
"이런 니미..."
"아빠가 널 보셨다면 뭐라고 하실까?"
"시끄럽다고!!"
두 번째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리유니온'이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아니다, '리유니온'은 처음부터 거기에 없었다.
'리유니온'은 나이기 때문이다.
불타는 창고도, 비명소리도 모두 사라졌다.
처음부터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긴 어디지?
여기를 전에 와 본 적 있나? 여긴
여기는...
로도스 아일랜드다.
요즘 계속 악몽을 꾼다.
무서운 것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정말 무서운 게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잠깐만 생각해 봐도, 아까 본 것들은 모두 꿈이다. 전부 엉망진창이다.
내 생일은 7월이다. 우리가 학교에 갇혔던 시기는 12월이다. 말이 안 된다.
그리고 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걸 본 적이 없다.
작년 12월 이후로 엄마를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아직도 엄마가 해 주던 그 설탕범벅인 딸기 파이의 냄새가 내 콧등에 남아있다.
그렇게 많은 기억에 남을 것들을 안겨 준 사람을 잊는다는 건 힘든 일이다.
여기는 로도스 아일랜드다.
결국 우리는 그 학교에서 살아남았고, 구출되어 여기로 왔다.
꿈은 결국 꿈이다.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맞았다.
난 결국 날 따르는 친구들을 방주에 태워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재앙을 피하기 위한...
그리고 계절은 다시 돌아 여름이 되었다.
책상 위의 시계가 7월 29일을 가리킨다. 내 생일?
그러고 보니 라다... 굼이 오늘을 위해 특별한 사람과 함께 요리를 준비해 준다고 했다. 그 녀석의 요리는 맛있다.
병신 같은 꿈 따위는 잊게 해 줄 것이다.
대충 방을 정리하고 나가기 위해 어제 펴 놓은 채로 잠들었던 책에 손을 뻗었다.
그 페이지에는
[The past is never dead. It's not even past.]
어디선가 들은 말 같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까 참았던 토악질이 다시 올라올 것만 같다.
책갈피도 하지 않고 책을 덮었다.
두번 다시 펴볼 생각도 없으니까. 곧장 반납하기 위해 책을 가방에 처박았다.
그와 거의 동시에 호출벨 소리가 울린다.
생일날까지 임무인가 생각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다. 날 찾는 인간은 문 밖에 있다. 그리고 그는
"안녕, 지... 소냐."
"나탈리아?"
"생일 축하해. 오늘은 축복받은 날이야."
"시끄러."
적당히 대답하고 현관으로 나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문구멍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조용히 그 문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가면을 쓰고 손도끼를 든 귀족이 서 있었다.
콰직
먼저 무기를 꺼냈다.
그리고 문을 걸레짝으로 만들고 걷어차면서 들어오는 '리유니온'을 기습해 밀쳐 넘어뜨린다. 녀석이 도끼를 떨어뜨린다.
아가리를 두어번 갈겨 준다. 전부 네 탓이라고 말한 것 같은 기억이 난다.
맞아. 전부 이 갈보년이 그 조무래기들에게 약탈 같은 되도 않는 짓거리를 시킨 탓이다.
너만 아니었으면 라다가 그렇게 배고플 일도 없었고 안나가 그렇게 힘들어할 일도 없었다.
준비해 둔 도끼를 꺼낸다. 그대로 대가리를 내려 찍으려는
내 팔을 누군가가 붙잡았다.
내 등을 누군가가 끌어안으면서 울부짖는다.
안나의 목소리다. 제발 그만 하라고 울고 있었다.
로도스의 방문은 철제다. 손도끼 따위로 쪼개질 턱이 없다.
그리고 로도스의 방문에는 외시경 달린 구멍 같은 건 달려있지 않다.
그럼 내가 방금 본 건 뭘까?
난 정말 무서운 게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가장 무서운 건 나 자신이었다.
피범벅이 된 나탈리아가 미안하다면서 떨고 있다.
살려달라면서 울고 있다.
녀석이 떨어뜨린 건 도끼 같은 게 아니다.
딸기 파이다. 내 이름이 쓰여 있는.
소냐.
아빠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약한 사람들을 감쌀 줄 아는 내가.
나는,
난 누구지?
곰순이 좀 애껴 시발..
그만 괴롭혀.,
애낌치료 해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