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 본함에는 굉장히 많은 인원이 오퍼레이터, 혹은 그 이외의 신분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그 거대한 함선도 하늘에 반짝이는 향신료들이 기웃거리고 음기를 머금은 구체가 그 모습을 은글슬쩍 내보일 무렵에는,
대양 어딘가에서 막대한 힘과 함께 잠든 한 마리의 거대한 현무처럼 빛과 소리를 거두어 잠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그게 정상인데 말이지."
현무에게도 머리를 지탱하는 심장의 위광 아래에서 묵묵히 신수의 명(命)을 유지시키는 데에 기여하는 횡격막이 있다면,
필시 이 남자처럼 온갖 깡치사건에 휩쓸려 휴식과는 거리가 먼 삶을 영위하면서도 불평 하나 하지 못하는 신세이리라.
"도대체···"
박사는 어슴푸레하게 조명의 빛이 새어 나오는 식당의 문고리를 잡아돌렸고, 다행스럽게도 그 조그만 문지기는 문을 지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려다, 식당 내부에서 식기와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들려와 굳이 발소리를 숨기려 노력할 필요가 없어졌다.
"···에휴."
박사는 복잡한 머리를 긁적이는 걸로 대강 얼버무리며 한숨을 내뱉고는, 소리의 근원을 곧장 찾아갔다.
"오, 박사! 밥은 먹었어?"
강렬한 붉은빛을 띄는 용문식 요리를 맛있게도 먹어치우던 니엔은 박사를 보자 반갑게 인사했다.
그녀답게도 당당하게 박사를 맞이하는 모습에 그만 헛웃음이 새어나왔지만, 니엔은 박사의 상태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말해두는데, 로도스의 식당은 식사시간 외엔 출입 금지야."
"에이, 섭섭하게 뭐 그런 얘기를 해? 내가 배고프면 와서 아무거나 집어먹는 사람처럼 보여?"
"지금 딱 누군가가 그 짓을 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와서 말이지."
"뭐?! 박사! 이건 '아무거나'가 아니라고! 이렇게 좋은 향과 적당히 달콤하고 화끈한 어향육사가 어디···"
"그래, 당연히 좋은 음식이겠지. 새벽에 혼자 틀어박혀서 먹을 정도니."
니엔은 국수처럼 가늘게 썰린 돼지고기를 거의 마시다 말고 반박했다.
"야, 내가 그렇게 속이 좁진 않아··· 여기엔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냠냠··· 크, 고기도 무쟈게 좋구만!"
확실히, 다른 모든 문제들을 제쳐두고, 니엔이 한 술 뜰 때마다 식욕을 자극하는 감미롭고 자극적인 향기가 식당에 감돌았다.
아마도 이것들은 니엔이 그리워했던 그 사람의 작품이거나, 그에 준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왜 하필이면 이 시간에 식당까지 들어와서 먹고 있는거야?"
"엉? 그거야···"
"윽, 일단 입에 집어넣은 건 다 먹고 말해."
와구와구 손과 입을 놀리는 니엔이 만족할만큼 식사를 할 동안 기다리기로 했다.
"내가 융통성있는 사람이라 다행인 줄 알아. 켈시가 이걸 알기라도 했다간···"
"하하하, 융통성은 내가 박사를 좋아하는 많고 많은 이유중 하나에 불과하다는걸 아직도 몰라?"
"그렇게 좋아하시는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짓을 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이란게 원래 꼬이기 쉬운 놈이라서 말이지, 본심과는 다른 언행이 막 튀어나가기도 한다고?"
설교와 함께 바지런히 그릇과 입을 오가던 젓가락이 공중에서 휘휘 허우적거렸다.
"그런 인생 다 산 사람같은 말은··· 잠깐, 국물 다 튀잖아!"
"음··· 잠깐만, 이것만 마저 삼키고··· 후, 어여 앉아! 언제까지 거기서 멀뚱히 서 있을 거야? 다 식겄다!"
"나도?"
"당연히 너도지. 그밖에 누가 있다고 그래? 맛있는 녀석은 같이 먹어야 진가가 살아난다고."
평소 같았으면 거절했겠지만··· 하도 맛깔나게 먹는 니엔을 보고있자니 나까지 배고파졌다.
"어차피 밥도 제대로 못 먹었지? 얼굴 보니 쭉쩡이 같은 몸뚱이가 건두부 마냥 꼬들거리는구만! 하하!"
"···말이 심하네."
약간 투덜거리면서도 들고 있던 묵직한 가방을 내려놓고 니엔의 맞은편에 앉았다.
"훠이."
"우왓."
착석하기 무섭게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수저 한 세트가 날아와, 거의 떨어뜨릴 뻔했다.
"자."
그러거나 말거나 니엔은 큼지막한 그릇을 식탁의 한가운데로 쭉 밀어넣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밑접시 하나도 내게 미끄러졌다.
마지막으로, 니엔의 신기루 같은 두 눈이 나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뭐해? 어여 드셔봐."
···일부러 거북하게 하려고 장난치는 건지, 원.
그러나 죽순 한 조각을 집어 들어 입에 넣는 순간, 그런 불평불만은 싹 사라졌다.
"···맛있잖아?"
"킥킥, 그지? 무쟈게 맛있지?"
니엔의 약간 경박한 웃음소리에 공감하는 건 처음이었다. 허기나 시간대 따위의 이유를 압살할 정도로, 이건··· 맛있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찰 무렵에는 이미 손과 입이 꼼짝없이 식욕에 지배당한 뒤였다.
"맛이 어떤데?"
"크으, 그러니까, 산초가 너무 매워지려 하면 시고 달짝지근한···"
"혀가 얼얼하니 단맛이 착 감기고, 그치?"
나는 얼른 고개를 흔들고 식사에 열중했다.
"하하하, 천천히 먹어야 나중에 후회 안 한다?"
확실히 마구잡이로 먹어치우기엔 아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시동이 완전히 걸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 내가 어향육사를 거의 다 먹어치울 때까지도 니엔은 내가 먹는 광경을 즐겁게 바라보기만 하였다는 사실이, 포만감이 밀려온 이후에야 뒤늦게 들었다.
"캬~ 우리 박사, 먹성도 좋아? 상당히 자극적인 맛인데도 술술 넘겨버리네."
"윽···"
"그 기세면 마라롱샤도 껍데기 채로 씹어먹을 수 있겠다, 하하하하!"
화악 붉어지는 얼굴을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화끈거리는 피부가 날 비웃었다.
"그··· 미안. 원래 네가 먹으려고 특별히 준비한 것 같았는데."
니엔의 은은한 미소가 점차 짙어지더니, 이내 자갈같은 웃음소리가 굴러 떨어졌다.
"쿡쿡쿡··· 뭘, 미안해할 것 없어. 이걸로 박사도 공범이다?"
"뭣···"
"하하햐! 할 일이 대원들이랑 친목질하기밖에 없는 박사를 구워삶으면 박사 바라기인 아미야랑 워커롤릭 할머니 눈 피하기는 누워서 오리지늄 들이키기지!"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나? 그렇다면, 이대로 순순히 당해줄 순 없지.
"잠깐,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난 켈시나 아미야한테서 잔소리 듣는 건 아주 익숙하거든."
"뭐야, 그렇게 재미없게 나오기야? 방금 박사가 먹어치운 그게 얼마짜리인지 알면 그런 소리는 쏙 들어갈걸~?"
"으윽, 그 정도는 내 사유재산으로도 처리할 수··· 있을··· 걸?"
"하하하, 그런 비참한 표정은 안 지어도 돼. 난 아주 관대하니까, 박사가 나랑 '내기'해서 이기면 이번엔 넘어가 줄게."
"내기? 내가 너한테 이길 가능성이 있는 종목이 그리 많진 않을 텐데."
"주사위는 어때? 주사위 5개를 굴려서 하는 게임을 최근에 새로 알았거든"
도박꾼처럼 손을 대강 그러모아 흔드는 니엔에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운이 절망적으로 없거든. 켈시가 보증해 줄 수 있어."
"하긴, 박사가 운이 좋았으면 로도스의 자금이 줄줄 새진 않았겠지."
"그걸 어떻게··· 어휴, 아무튼 그런 이유로 마작도 거절이야."
"에이, 나 이기는건 별로 안 어려운데?"
말과는 정 반대로 의기양양한 얼굴에서 나 정도는 가볍게 이겨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애초에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니엔에게 마작으로 덤비는 짓은 안 하겠지만.
"남들 일하는 동안 마작 이겨먹을 궁리나 하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이기겠어?"
"쳇, 같이 어울려주는 사람도 그렇게 없다고."
"로도스에서 너만큼 뒹굴거리는 사람도 드물거든."
"박사도 그렇게 생각해?"
니엔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지만, 나는 능청스레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 니엔이 업무를 방해한다는 건의가 지금까지 쌓인 수를 알면 누구나 그렇게 말할걸."
"박사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야 누가 뭐래도 상관없지롱~"
헤실거리는 니엔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 말은 절대로 안 들어먹는 악질적인 녀석이.
"로도스에 무구 정비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았더라면 나도 진지하게 널 로도스에서 퇴출시켜야한다고 생각했을거야."
"제조소에 날 그렇게나 불러대는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면 못쓰지."
"조금만 일해도 엄살 부리면서 도망다니는 주제에 무슨."
니엔이 집게손가락을 세워들고 고압적인 표정을 지었다. 저 이상한 제스쳐는 또 누구에게서 배운 걸까?
"좋은 기술에는 그만한 집중력과 체력이 소비되는 법!"
"객관적으로 보면 네 종합적인 능율은 오히려 떨어지는 편이야."
"···장인의 걸작을 그렇게 세속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작품의 가치가 떨어져 버린다고?"
"소모품은 불량이 아니기만 하면 족해."
"세세한 물건에도 전력을 다하는-장인정신, 이라는 거지."
"네가 요상한 영상 제작할 때 쏟아붓는 정성을 조금만 다른 쪽으로 쓴다면···"
뭔가 있어보이는 표정과 말이 씨알도 안 먹히자 눈썹이 모이며 불쌍해 보이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박사, 아무리 그래도 방문자 신분의 사람을 너무 부려먹으려는 거 아니야?"
"방문자 신분으로 로도스를 집처럼 드나드는 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시뻘겋게 더럽혀진 식기를 사이에 두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에에이, 내가 졌다! 빙빙 돌리는 말장난은 해먹을 짓이 못된다고. 박사, 원하는 게 뭐야?"
매운 걸 먹어서인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조금 쓸어내었다.
"너도 사실은 알고 있잖아? 벌컨이 의뢰한 일이야."
"켁, 어쩐지 표정이 영 사납더라니."
나는 내려놓았던 가방에 담긴 여러 자루의 무기들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건 케오베의 무기인데, 전장에서 훼손됐었다나 봐."
"케오베? 아아, 그 강아지같은 꼬맹이?"
"···뭐, 비슷하지. 아무튼 벌컨이 이걸 수리하다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내게 맡겼거든. 내가 보기엔 이미 완벽하게 수리된 것 같지만."
"맞아, 완벽하게 수리됐네. 내가 손댈 구석이 없는데?"
비전문가인 내가 극도로 숙련된 니엔의 의견에 감히 토를 달 수는 없겠지만, 이번 건은 니엔의 자업자득이다.
"듣자 하니 네가 벌컨의 자존심을 긁는 소리를 했다던데."
"그냥 가벼운 조언이었다고."
제련에 관련된 일에는 한없이 진지해지는 니엔이 작업중인 벌컨에게 관여했다면 분명 가벼운 대화가 오가진 않았겠지.
다만 니엔에게 악의가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닐 것이고, 벌컨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으니 사실 이번 의뢰는 '한 수 가르쳐달라'는 의미일 가능성이 높았다.
니엔이 벌컨의 생각을 어디까지 파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떠보았는데도 별 반응이 없었던 것을 보아 대강 상황을 파악하고 구태여 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것 같았다.
"그 벌컨이 한번 잡은 무기를 양보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야. 너한텐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니엔의 붉은 손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됐구만, 내가 그런 소리나 들으려고 이것들을 여기까지 가져온 게···"
니엔의 팔이 멈추더니, 새하얀 피부 위에 붉은 소스가 묻은 입이 사악하게 일그러졌다.
"니엔?"
"히히히, 재밌는 생각이 났어. 박사, 그거 들고 따라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식당을 나서는 니엔을 무시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닌 나는 선택권이 달리 없었다.
···너무 복잡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
"짜자아안, 내 작업실이야!"
"정확히는 로도스 소유의 공용 무구 수리실이지."
"하여간··· 무드를 모르는 남자구먼."
조금 투덜거리는 니엔은 케오베의 장비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밍기적거리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뭐, 수리실이라기엔 조금 어색할 정도로 본격적인 대장간의 장비들이 도입된 데에는 니엔을 비롯한 엔지니어들이 한목 했으니, 어느정도는 니엔의 소유권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슬슬 설명해주지 그래?"
"응? 설명? 무슨 설명?"
"왜 내가 영문도 모르고 여기까지 이끌려 왔는지 말이야."
"아아, 그거야 당연히 '내기'지!"
내기? 아까 내 요구사항을 들어주겠다고 했지 않았···
금속제의 무기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오는 소리에 내 반항은 묵살당하고 말았다.
"내가 이 장비들을 여기서 전부 손봐줄 테니까, 박사는 결과물을 보고 소감을 말해주면 돼. 쉽지?"
"그게 어딜 어떻게 봐서 내기가 되는건데?"
"박사의 소감이 내 마음에 들면 박사의 승리야."
"···너무 너한테 유리한 거 아니야?"
"박사, 잘 들어. 내가 쇠를 두드리는 이유는 단순히 일이라서가 아니야."
니엔은 여전히 케오베의 장비들을 살펴보고 있었지만, 나의 손의 떨림, 숨소리마저도 니엔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예술작품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애송이의 그림이라도, 관중들이 인정해준다면 그 애송이에게 있어서 그건 이미 초월적인 가치를 가지지."
"그래서, 내게 관중 역할을 맡기겠다고?"
"그래! 그 편이 좀 더 할 맛도 나고, 박사가 내게 의미를 줄 수 있는, 내 취향에 맞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
요컨대 내 부탁들 들어줄 테니 심심함을 달래줄 말동무 비슷한 역할을 맡아달라는 거군.
"그래,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내가 이기면 박사가 내 요구 사항을 좀 들어줘야겠어."
"잠깐, 그건 좀 곤란한데."
"박사, 내가 '내기'라고 했잖아? 내기에는 패자와 승자, 벌칙과 보상이 있어야 마땅하지."
"그리고 공정함도 있어야 패배자와 승자 모두 승복할 수 있잖아?"
"내가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지 않았던 전례가 있으면 가져와 봐, 박사."
"네가 나한테 뭘 요구할지 상상도 안 가는데."
"하핫, 이기면 그만이지! 내가 지면 나도 박사의 요구사항은 무조건 들어주겠다고 맹세할게."
"판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처져 있잖아. 리스크가 너무 커."
"여의주를 안은 용은 하늘로 올라가고야 마는 것이 이치요, 그 누가 용이 보옥을 떨굴 걱정을 품겠는가?"
"···"
"자, 박사. 너의 몫은 구슬을 잘 빚는 것 뿐이야. 용에게 보주가 쥐어졌다면 내가 아무리 위대하고 대단한 존재라도 너의 승리를 부정하진 못하겠지."
"···에휴."
시간이 너무 늦어서일까, 더 이상 반박하는 것도 피곤해, 그냥 니엔이 빨리 장비들을 손보기만 해준다면 뭐든 상관 없어졌다.
"그럼 오케이지?"
니엔은 장난스런 표정으로 혀를 쑥 내밀었다.
"···?"
그러고는 입에서 형형색색의 기괴한 검을 뽑아들더니, 그대로 케오베의 창을 청명한 소리와 함께 두 동강 내버렸다.
"···!!"
"거기서 자알 보고 있으라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내게 그렇게 일방적으로 선언하고는, 니엔은 작업을 개시했다.
◇
지금이야 이동도시니 뭐니 하면서 무식하게 큰 쇳덩어리 속에서 보금자리를 만들지만,
오리지늄이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적에, 쇠는 대지 속에 잠들고 햇빛 아래엔 푸른 빛이 가득했었다.
본디 인간 역시 그 푸른 빛을 머금은 대지의 일부에 불과했으나, 아른거리는 붉은 빛을 손아귀에 넣은 인간은 순식간에 전혀 다른 존재로 거듭났다.
나의 생업은 그 붉은 빛을 다루는 것이었다.
대지에 차갑게 잠든 금속들에 열기를 불어넣고, 불순물을 제거하여,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것.
나의 천명은 틀림없이 생명을 다루는 것이었다.
그런 나의 손에 피가 묻어나기 시작했던 것 역시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대지의 고혈을 뽑아내어 멋대로 주무르는 것의 대가가 고작 그 정도라면 가볍다고 할 수 있을까?
"시초는 우연이 만들어 놓되 그 시초를 이끌어 가는 것은 필연이 아닌가." <■■■,■■>
무기를 만들면 만들수록 더 많은 피가 그것들의 고향을 적셨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의 사지가 붉게 물들었던 것도 그 무렵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강철마저 녹이는 열기에 영혼이 녹아내려 몸에 묻어나버린 걸지도 모르지.
내 뿔의 색이 바래고, 대지의 색 역시 변했다.
생명에는 광석이 돋아나기 시작했으며, 하늘은 갈라져 운석을 토해내고, 대지는 지열을 머금은 반액체를 분출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내 앞에서 이글거리는 불꽃뿐이다.
이 녀석의 변치 않는 한, 나 역시 이것의 가치를 이해하고 사용하여, 이놈을 살릴 것이다.
내 몸을 태워, 나의 꿈을 무기에 두드려 집어넣을 것이다.
그 무기를 들고 나간 녀석들이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감염자의 권리니 뭐니 재미있는 소리를 가슴에 품은 이 녀석들이 날 지루하게 둘 것 같지는 않다.
마침 지금의 내게는 꽤나 쓸만한 모루가 되어주는 녀석이 있으니, 당분간은 여기서 늘 하던대로 철이나 두들기며 보내는 것도 좋겠구먼···
◇
열기.
고작 그정도 어휘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열기였다.
그리고 그런 살인적인 온도로도, 니엔의 존재감을 억누르진 못했다.
멀찍이 떨어져 있었음에도 등골까지 뜨거워질 정도의 열기를, 열원을 풍선처럼 다루는 그 광경은 현실감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지적 호기심이나 이성적인 판단력이 끼어들 틈도 없이 오직 순수한 감탄만이 시신경의 신호를 번역하고 있었다.
야금술이 시대에 뒤쳐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런 광경은 틀림없이 사막의 하늘에 떠있는 오아시스같은 광경일 것이다.
"박사."
니엔의 목소리라고 인식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그 석암같은 소리는 분명 눈앞의 여자가 만들어내는 육성이었다.
"여기 봐, 창이 한번 부러졌다 붙여지면서 결이 틀어졌어."
눈꺼풀를 타고 내려오려는 땀방울을 열심히 제지하며 주시했지만, "결"이라고 인식할만한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건 원래 잘 안 보여주지만···"
이 방에 버티고 앉아있는것만으로도 벅찬 나를 흘겨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미소지었다.
그것만으로도, 내 안의 무언가가 자극당하여서, 오기로라도 니엔이 무얼 하는지 파악하겠다는 생각이 몰려들었다.
니엔이 본격적으로 조각난 창을 달구기 시작하자 방 자체가 녹아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도가 높아졌다.
은빛으로 번뜩이던 케오베의 창이 순식간에 주홍빛으로 달아올랐고, 니엔은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집어들었다.
부드럽지만 태양같은 깊이로 빛나는 광경에 정신이 아득해져서, 니엔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깡!"
거의 사그라들 뻔했던 의식이 그 격음에 각성했다.
방음처리가 완벽히 되어있는 공간이었지만, 로도스의 여러 공간에서 잠들어 있을 다른 대원들에게 미안해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니엔은 아주 일상적인 움직임으로 단조를 진행하였지만, 극도의 긴장 상태가 자아내는 신묘한 여유가 그 어떤 기계도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고,
어딘가 인간을 벗어난 듯한 니엔 그 자체가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몇 번째의 망치 소리가 지나갔을때, 문득 니엔의 배꼽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보였다.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알아챈 나는 신화의 한 장면처럼 엄숙하게 사명을 다하는 니엔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니엔의 엔지니어 동료들은 그녀가 땀방울을 떨어뜨리며 작업하는 모습을 협업할 때마다 보는 것일까?
그들도 이토록 뜨겁고, 아른거리는 광경 앞에서 인외의 존재가 뿜어내는 사기에 압도당하는 듯한 감각을 느끼는 걸까?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감각에 사로잡힌 내게 수많은 의문이 스쳐지나가는 와중에도, 니엔은 물 흐르듯 작업을 이어갔다.
가늘어 보이는 팔이 한 번 내리쳐지면 니엔의 복근이 도드라지고 기다란 다리와 매끄런 꼬리가 물결치며 몸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았다.
평소의 니엔에게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게가 그녀의 표정에서 드러나, 냉철하게 금속의 형태를 지켜보는 눈매가 예리하기 그지없었다.
그 눈매의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는 붉은 피부가 고혹적이라는 생각이 들 무렵, 첫 번째 담금질이 시작되어 고막을 찢는 굉음이 들려왔다.
줄곧 바라보았던 니엔의 눈이 다시끔 둥그스름하게 풀렸고, 니엔이 꺼낸 창은 어느새 온전한 형태로 돌아와 있었다.
"후― 이걸로 됐구만. 어때, 잘 봤어?"
"어, 벌써 끝이야?"
"응? 여기서 뭘 더 해야 하는데?"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큭큭, 박사, 아직 모든 작업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하고 싶은 말은 조금 더 담아두라고?"
가슴께의 땀을 대충 훑어낸 니엔은 반쯤 넋이 나간 나를 놀리듯 그렇게 속삭이더니 나머지 무기들이 담긴 가방에 다가갔다.
그러나 모든 정비가 종료될 때까지도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 반복되어 니엔이 직접 열간 단조를 수행하는 모습은 두번 다시 볼 수 없었다.
"자, 박사. 드디어 모두 손봐줬다고. 어때?"
"···굉장하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엄청난 기술이라는 걸 뼈에 사무치게 느꼈어."
"에잉, 그게 아니지. 박사가 그렇게까지 나한테 지고 싶다면, 뭐, 나도 별 수 없지만. 하하하!"
"잠깐만, 조금 진정좀 하고."
어째서 진정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런 소리를 내뱉는 날 즐겁게 바라보는 니엔의 앞에서, 나는 되도록 이성을 최대한 일깨우려 노력했다.
후··· 니엔의 손에 들린 창과 무기들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갖추어, 은은하게 울리는 금속음으로 나의 입을 열게 하였다.
"정말로, 정말로 이전과는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어. 원래부터 특별한 부분이 있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단어를 고른다는 핑계로 말을 길게 늘이는 내게 니엔의 주석같은 홍채가 평소의 능글거리는 미소를 끼고 다음을 재촉했다.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줄은."
니엔은 내 말이 끝맺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조금 기다리더니, 깊숙하여 아늑하고 고요한, 그런 표정을 지었다.
"···음,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지만···"
니엔은 정말로 즐겁다는 듯이 내기의 결과를 선언했다.
"역시, 박사의 패배네."
나는 이유모를 거부감을 애써 무시하며 니엔에게 나의 패인을 물었다.
"이유? 하하, 이유라, 그야 당연히 궁금하겠지. 그런데 박사, 정말로 뭔지 모르겠어?"
···모르겠다. 내가 니엔에게 패배한 원인을, 내 머릿속 한켠이 계속해서 술렁거리는 이유를, 니엔이 원하는 답을 모르겠다.
"박사··· 내 생각엔, 넌 처음부터 무기들에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내말이 틀렸나?'라고 표정으로 묻는 니엔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애초에 박사는 이 장비들이 아니라 날 보고 있었잖아?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내 뇌리에 남은 니엔의 세밀한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뭐, 마음에 드는 소감이긴 했다고?"
그녀의 붉은 몸이 내게 한걸음 다가왔지만, 난 이제와서 도망칠 수도, 거부할 수도 없었다.
"뭘, 그렇게까지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설마 내가 박사를 잡아먹기라도 하겠어?"
주먹을 말아쥐어 조금 떨리려는 손가락을 감추고, 니엔에게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니엔, 한가지만 알려줘. 너··· 나랑 같이 먹으려고 일부러 로도스까지 왔던 거지?"
"흠, 재미있는 생각이네. 글쎄, 어떠려나? 나는 잘 모르겠지만 박사는 이미 내가 그랬을 거라고 확신한 것 같은데."
"···엄청 맛있더라, 그거."
"히히, 설마 그걸 먹어놓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패배자인 내가 감히 뭐라 떠들어댈 수 있겠어."
"좋아, 그럼 내가 구상한 스토리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뭔지 알려줄게···"
먹잇감을 노려보는 요사스러운 눈에 정신이 팔려 니엔의 몸에서 후드 재킷이 떨어져나가는 소리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
니엔은 라플이랑 같이 내가 명빵을 시작한 이유다
그리고 명빵을 접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 년이기도 하다
존나 꼴려
할매 너무꼴려 - dc App
오...
미안 마지막이 이해가 안되네 니엔이 박사품평이 마음에 안들어서 뭐 어떻게 된거임? - dc App
폭풍야스
야스각 - dc App
가능 - dc App
개껄린다 진짜 - dc App
오우쉣오우쉣
하면 박사 거기 불타는거 아녀?
개길어 - dc App
근데 개꼴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