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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티마는 늘 내보고 휴식을 취하라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해가 뜨기도 전에 침대에 일어나 몸을 가지런히 정리한 다음 집무실에 간다. 평소와 다름없이 책상 위에 서류들이 한가득 쌓여있다. 숨 가쁘게 처리하다보면 가끔 밥을 거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럴 땐 이성회복제로 배를 채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뭉친 어깨를 뒤로 하고 숙소로 걸어간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불을 들추고 딸과 모스티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은 하루의 고생이 다 씻기는 보상이었다. 그러면서 내일 할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박사.”
귓속으로 진득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린 난 고개를 돌렸다. 모스티마와 눈을 마주쳤다.


“이제 돌아온 거야?”
딸이 깨지 않도록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모스티마는 눈을 가늘게 뜬다. 생각하는 듯 보였지만 그의 눈동자는 이미 차가웠다.


대략 10초 정도 무거운 정적만이 흘렀다. 하지만 나에겐 이 십 초가 십 분 걸리는 듯이 가슴이 갑갑했다.


“지금이 몇 시야?”
먼저 침묵을 깬 건 그녀 쪽이었다.


“얼마 안 됐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곗바늘은 벌써 3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일하다간, 과로로 죽고 말걸?”

“내가 얼마나 체력이 좋은데.”


“칫, 말은 잘해.”


“그래도 그 정도까지 안 가도록 할게······.”


침대에 누운 때문일까.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옹알거리듯 말하며 모스티마를 마주보려 애썼다. 하지만 방금 내리감은 눈꺼풀이 어찌나 무겁던지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몽롱한 정신 속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본 모스티마는 무척이나 슬퍼보였다.



◇◇◇◇


눈을 감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아침을 맞이했다. 잠을 취했지만 몸 안에 남아있는 찌뿌둥한 피곤은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도 가야 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몸을 가지런히 정리한 다음 집무실로 나서려는데. 등 뒤로 푹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모스티마가 나를 뒤에서 안은 채 말했다.


“피곤하면 오늘은 쉬지.”


“······그럴 수는 없어.”


“그럼 잠이라도 조금 더 취하는 게 어때?”
모스티마의 제안은 너무나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다시 침대로 가고 싶었으나 남은 이성이 어서 집무실로 향해야 한다고 재촉했다.


나는 모스티마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며 말했다.


“오늘은 일찍 올게.”


“······나중에 봐.”


“응?”


모스티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꿍꿍이가 있는 짓궂은 미소.


그렇지만 평소답지 않게 말투가 낮게 깔려있었다. 그녀는 내가 무리하는 걸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이 쌓인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에게도 사명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오늘도 숙소를 나서, 복도를 지나, 방문을 열고, 집무실로 들어갔다.



◇◇◇◇


집무실에서 저녁식사를 대충 먹고 곧바로 의자에 풀썩 앉아 서류를 빠르게 읽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크 소리가 들리면 히비스커스가 와서 “박사님! 이걸 드셔보시지 않을래요?” 라고 말하며 신작 영양드링크를 건네주었다. 걸쭉한 농도가 마치 이성 회복제를 연상케 했다. 몇 모금도 마시지도 않은 음료수가 식어갈 때쯤 또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간식 사온 두르나르나 케이크를 만들어온 블루포이즌 등의 대원이 찾아온 줄 알았다. 방문이 열리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모스티마였다.


“모스티마······?”
나는 작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밖에 대원들이 들리지 않게, 그러면 모스티마가 집무실 안에 들어왔다는 걸 모른다.


“후후, 열심히 일하네.”
그녀는 앉아 있는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무슨 일이야?”


“박사, 부탁이 있어.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
말은 부탁이지만 그녀는 당장이라도 나를 끌고 가려는 듯이 내 팔을 붙잡았다. 내겐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은 것 마냥.


“아직 다 못 끝냈어.”


“잠시 자리 비운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잠시 바람만 쐬는 거야.”


“하지만······.”


“가끔은 애랑 같이 시간도 보내야지. 요새 시간을 내지 않았잖아.”


모스티마의 설득에 고개를 저으려다가 문뜩 생각해보았다.


우리 딸이 예쁘게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들은 게 언제였지. 아이는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종종 내가 딸의 삶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은 게 마음 한 구석엔 큰 응어리로 남았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시간이었다. 훗날 아이들은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질 게 될 것이다. 나는 기억상실이라 과거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 즐거운 기억은 대부분 부모와 함께 지내던 시간이 아닐까. 그땐 깨끗한 동심만이 있을 때이니깐.


가끔은 이런 희생도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켈시나 아미야에게 잔소리는 좀 들을지 몰라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선택이었다.


“뭐, 잠깐 동안은 괜찮······.”
내가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모스티마는 나의 허리를 껴안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고마워.”
짧은 음성이었지만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졌다. 내가 거절할까봐 긴장했는지도.


딸은 숙소에서 기다린다고 말했다. 나는 서둘러 집무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서려는데, 밖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와 모스티마는 흠칫거리며 잠시 동안은 온 몸이 굳었다. 잠깐의 일탈을 누군가 훼방을 놓으려 했다. 상대는 본의가 아니겠지만. 모스티마는 잠시 몸을 숨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엑시아였다.


“야~호! 리더, 오랜만이야!”
밝고 낭랑한 음성이 내 귓가에 박혔다.


“어, 어어. 엑시아. 무슨 일이야.”


“모스티마가 보이지 않아서 말이야! 여기 있나 싶어서 와봤지.”
엑시아는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뭐 묻었나 싶어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표정을 보니, 모스티마가 방금 다녀왔나 보네.”


응?


“리더는 자각 못하겠지만, 그 표정은 모스티마가 곁에 있어야지 짓는 표정인 걸?”


그 말을 듣고 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스티마가 곁에 있으면 짓는 표정?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니,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내 반응에, 엑시아는 들떴는지 한층 더 목소리 톤을 높였다.


“아니면 말이야. 모스티마가 이 방에 있을지도 모르지?”

엑시아는 단순히 넘겨짚은 것이지만 그 말을 듣고 맞은 듯이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천사의 감은 무시할 수가 없구나.


나는 모스티마가 몸을 숨긴 곳으로 눈을 흘깃 보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지팡이에서 몽환적인 빛이 새어나오더니 아츠를 발동했다. 대상은 엑시아였다.


“엣?”
단말마와 함께 엑시아는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박사, 가자.”
갑작스러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으나 모스티마의 외침에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


오랜만에 모스티마와 XXX과 함께 외출에 나섰다. 외출이라고 해봤자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은 산길이었지만. 해가 다 져서 그런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모스티마와 나 사이에 딸이 우리의 손을 맞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처음에 얼마나 힘을 주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내 손보다 훨씬 딸의 손은 깨지기 쉬운 귀중품 같았기에, 탐색하듯이 쥐었던 손의 힘을 서서히 빼다가 결국 달걀이 깨지지 않을 정도의 힘만큼 쥐었다.


지금 어딜 향해 가는지 모스티마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웃으면서 가보면 알거라고 말했다. 나는 궁금한 것이 있어서 다시 물어보았다.


“근데 아까 엑시아한테 왜 아츠를 발동한 거야?”


“모처럼 외출하는 건데, 만약을 대비해서 손 좀 썼지. 뭐, 나중에 제대로 사과할 거야. 후후.”


“그, 그래도 엑시아한테도······.”


“괜찮아. 괜찮아. 엑시아도 다 이해해줄 거야.”


“정말이야?”


“응, 정말이고말고.”


모스티마는 나랑 만나기 전에 여행을 자주 떠났고 다양한 것들을 자주 접했다. 그녀는 한 번 떠나면 오랫동안 떠돌았기에 엑시아는 그런 모스티마를 붙잡아 두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런 방식으로 자주 벗어났나 싶었다.


잡목림이 있던 외편이 트이고 산 위로 이어지는 넓은 길이 보였다. 그 길을 타고 올라가니, 하늘을 볼 수 있는 언덕이 보였다.


“그리고 이 광경을 네게 보여주고 싶었거든.”


“우와.”
딸은 눈앞에 펼쳐진 별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높이 점프했다. 그녀는 키득 웃었다.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밤을 밝혀주는 존재들이 우리들을 비추었다. 힘들었던 순간들이 높이 날아오르는 순간이었다.


모스티마가 내게 보여준 광경은 선물 같았다. 그녀만이 해줄 수 있는 선물. 그렇기에 더 의미가 있었다.


이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평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