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의 전투 교리는 소수 정예로 요약할 수 있다. 단위 전투력이 높은 소수의 오퍼레이터를 신속하게 투입해 적을 기습하고, 역시 신속하게 후퇴한다. 이로 인해 로도스는 절대적으로 적은 전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숱한 군소, 비정부 무력 집단이 로도스에 도전했음에도 로도스가 아직 버티고 서 있는 것은 이토록 현대적인 전투 교리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로도스에 돌아온 박사는 직감했다. 한계점이 바로 턱밑까지 와 있었다.

 

미안하군. 박사.”

 

대령의 탓을 하는 게 아니야.”

 

박사가 만류함에도 도베르만은 박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틀어쥔 베레모가 그녀의 주먹 안에서 구겨졌다.

 

박사는 말했다.

 

우리의 방침은 환자의 구제와 보호다. 그들이 누구더라도, 어디에 있더라도 우린 그들을 찾아 치료하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야 하지. 그걸 목표로 했을 때부터 이런 상황은 예고되어 있었어.”

 

박사의 말처럼 로도스는 한 국가의 특수부대나 PMC가 아니다. 기습과 파괴공작, 일격 이탈의 전술은 일견 유효한 수단이지만, 언제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로도스는 적들을 파괴하는 것 만이 아니라, 환자를 보호해야 하고 전선을 유지해야 하며, 시설을 방어해야 한다. 무언가를 지키는 행위에는 필연적으로 많은 자원과 인원의 손실이 동반된다. 그렇게 로도스의 소수 정예방침은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다.

 

박사로서도 여태껏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뿐이었다. 전력 부족, 보급선 부재, 만성적인 인원 손실. 결사적으로 지켜왔던 임계점을 로도스는 넘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에.

 

빅토리아 캠프의 침통한 공기 중에 백파이프의 목소리가 울렸다.

 

17분 전 오퍼레이터 레드를 포함한 S.W.E.E.P의 첩보부대가 리유니온의 움직임을 확인, 약 한 시간 내로 이곳으로 공격해 올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바로 5분 전 들어온 보고입니다. 작일 22, 적진에 환자 구출을 위해 돌입했던 VTOL 1기가 격추. 브라운 포인트 인근에 불시착해 탑승했던 대원들이 응전 중…….”

 

작년 11. 리유니온의 이동도시가 빅토리아의 애쉬스톤을 공격했다. 빅토리아 내부의 정쟁으로 인해 정부는 애쉬스톤에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애쉬스톤은 잔존한 경비대와 리유니온 간의 교전으로 인해 생지옥으로 변했다.

 

비감염자나 리유니온에 가담한 자들의 경우에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지만, 문제는 리유니온에 가담하지 않은 감염자였다.

 

경비대 측에도, 리유니온 측에도 보호받지 못한 그들은 올해 2, 현재까지 지속된 교전과 정지된 인프라 상태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한 감염자들은 죽어갔고, 그들의 시신은 더욱 광석병을 창궐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그렇게 애쉬스톤에 지옥의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로도스는 애쉬스톤 출신 오퍼레이터의 개인적인요청에 따라 이 지옥으로 걸어 들어왔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감염자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상황이 심각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박사는 쭈그려 있던 스툴에서 일어났다.

 

적의 규모는?”

 

백파이프가 대답했다.

 

적어도 에세 개 중대. 그것보다 많을 수도 있어.”

 

굳이 표준어로 하지 않아도 괜찮아.”

 

. 맞나.”

 

긴박한 상황에도 박사의 목소리는 지극히 정적이었다.

 

뭐하러 이쪽으로 공격해 오는 거지? 리유니온도 구태여 적을 늘일 필요가 없을 텐데.”

 

박사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도베르만이었다.

 

아군 캠프 인근에 경비대의 보급고가 발견된 모양이다. 리유니온에 잡힌 경비대원이 위치를 발설한 모양이더군. 결국 우리가 보급고와 리유니온 사이를 가로막은 셈이 된 거지. 미안하군. 박사…….”

 

백파이프가 도베르만을 두둔하고 나섰다.

 

맞다 박사. 캠프 설치 때는 전혀 몰랐던 정보였다 안카나?”

 

박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알아. 나도 대령의 탓이나 하려고 물은 게 아니야.”

 

박사의 이마를 일그러뜨리고 있는 것은 백파이프의 사투리도, 도베르만의 실책 때문도 아니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의 야습. 그것은 협상에 일말의 여지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중대 세 개 규모의 부대라면 캠프의 모든 오퍼레이터가 응전해도 부족하다. 최선의 수는 캠프를 포기하고 최대한 신속하게 이탈하는 것이다.

 

하지만 캠프에서 3km 떨어진 브라운 포인트. 그곳에 불시착한 대원들이 남겨져 있었다. 한기뿐인 VTOL은 격추당했다. 브라운 포인트까지의 새로운 경로를 확보하지 않으면 대원들의 구출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캠프를 포기한다는 것은 구출의 여지를 포기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불시착한 대원들은 현재 응전 중이고, 로도스 본함에서의 지원은 분명히 늦을 것이다.

 

진퇴양난.

 

바로 혀끝에 걸린 그 체념의 말을, 박사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다만 표정으로 그는 괴로움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백파이프의 목소리가 박사를 찾았다.

 

박사 어떻게 해야…….”

 

구출대를 편성한다.”

 

박사의 말에 백파이프의 얼굴에 희망이 떠올랐다. 그러나 도베르만이 현황판 앞으로 향하는 박사를 가로막았다.

 

박사. 브라운 포인트는 리유니온의 영역 한복판에 있다. 구출대는 그곳을 통과해야만 해. 캠프 방어에 필요한 인원을 생각하면 구출대를 차출하는 건 불가능해.”

 

지극히 옳은 말이다. 박사 역시 구출대 편성이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다.

 

구출은 절대명제야.”

 

박사.”

 

본함에 지원을 요청하지. 백파이프, 당장 올 수 있는 대원은 얼마나 있지?”

 

백파이프는 얼른 통신단말을 꺼내 이리저리 조작하더니 대답했다.

 

일단 본함에 체제 중인 오퍼레이터들은 대부분! 부두에 있는 프란카 씨와 리스캄 씨는 두 시간 내로 올 수 있다카네.”

 

도베르만은 고개를 저었다.

 

구출에는 너무 늦어.”

 

구출에는 늦겠지.”

 

박사는 그렇게 대답하며 도베르만을 지나쳐 현황판에 다가갔다. 애쉬스톤의 지도와 작전 계획서, 파견 대원들의 자료 등이 어지럽게 겹쳐 있었다.

 

하지만 캠프 방어를 지원하는 데는 충분해. 구출대는 본함이 아니라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래도 문제는 많다. 구출에 수반되는 리스크가 너무 커. 지원이 올 때까지 캠프에서 버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어.”

 

가능하다. 그렇지?”

 

박사는 막사 구석에 기대있는 수르트에게 눈길을 던졌다.

 

안 된다고 해도 시킬 기세면서.”

 

수르트는 무심한 듯 박사의 시선을 피했다.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지? 남아? 아니면 구출?”

 

선택해라. 그리고 명령하라.

끝없이 밀려오는 적들을 맞을 테냐. 아니면 적진 깊숙이 들어갈 테냐.

 

박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순간이 올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선택은 이루어져야만 하고, 명령은 반드시 이행된다. 그리고 박사는 선택이 가져다줄 목숨이라는 대가에 결코 책임질 수 없다. 목숨과 같은 책임감을 가지고 그들을 전장으로 내몰 수 있을 뿐.

 

수르트. 너는 남는다.”

 

.”

 

혀를 차는 수르트에게 박사는 덧붙였다.

굳이 따지자면 너는 방어나 구출 어느 쪽에도 어울리지 않아.”

 

날 믿는 거야 안 믿는 거야?”

 

수르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박사는 대답했다.

 

그러니까 네 임무는 공격이다. 리유니온 부대가 지근거리에 붙으면 선제타격에 나서. 그리고 적을 전부 쓸어버릴 듯이 싸워. 교전 시간은 짧아도 좋아. 최대한 공포심을 불어넣어 줘. 수르트의 보조에는 폴리닉과 듀나가 붙는다. 그녀를 죽지 않게 부탁해.”

 

박사에게 호명된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르트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혼자도 괜찮다는 많은 끝내 하지 않았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백파이프.”

 

방어나 구출, 내는 어느 쪽이든 괜찮다. 맽기도라. 박사!”

 

너는 경비대에 접근해.”

 

?”

 

백파이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쉬스톤 경비대 쪽에는 면식이 있겠지?”

 

하모. 경비대 경력만 1년이라 안 했나.”

 

그럼 지금부터 최대한 빨리 달려가서 전해. 리유니온 2개 대대가 그쪽으로 진공 중이다. 앞으로 30분 내로 우릴 지원하지 않으면 경비대로 향하는 길을 터주고 이탈하겠다고.”

 

“30!? 경비대에서 쌔빠지게 준비해도 그건 무리일끼다! 그리고 2개 대대는 또 뭐꼬?”

 

아무튼 말은 그렇게 해. 그쪽 사정에 맞춰서 이야기해 봐야 우물쭈물할 시간만 주는 꼴이야. 자 출발.”

 

! !”

 

백파이프는 박사의 기세에 못 이겨 부리나케 막사를 빠져나갔다.

 

단 한 명의 전투력이 아쉬운 시점에서 백파이프가 지원 요청을 위해 이탈한 것은 큰 손실이다. 그러나 백파이프 외에 맡길 수 있는 대원은 없다. 리유니온 측이 적으로 돌변한 시점에서 경비대를 아군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전술의 의미가 사라지고 만다.

 

그럼 남은 것은 구출대의 편성이었다. 어차피 무모한 임무를 맡길 거라면 망설여서는 안 된다. 지휘관이 약점을 드러낼 때 경계해야 하는 것은 적보다 아군이다.

 

박사는 입을 뗐다.

 

메테오. 먼저 저격부대를 데리고 초소로. 명심하십시오. 반드시 선제공격입니다. 먼저 발견해서 먼저 공격해야 합니다.”

 

명령대로. 모두를 부탁해. 박사.”

 

막사 밖으로 나선 메테오가 부대를 불러 모으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라면 저격부대에 한해서는 전권을 맡겨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는 모든 부대를 아우르는 지휘관은 존재해야 한다.

 

누가 남아야 하는가. 박사는 자신의 선택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도베르만.”

 

박사.”

 

도베르만의 제자들이 박사와 스승 두 사람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VTOL에 탔던 건 시즈와 인드라였지.”

 

박사의 물음에 도베르만이 대답했다.

 

모두 불시착으로 인한 부상은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승무원까지 총 네 명, 인원이 너무 적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시즈는 검을 들고 갔나?”

 

?”

 

도베르만이 질문의 저의를 판단하지 못하는 동안 팽이 막사의 구석 자리를 가리켰다.

 

시즈 씨는 망치를 두고 가셨어요. 아마검을 들고 가셨을 거예요.”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어. 우리가 갈 때까지는 그녀가 어떻게든 할 거야. 대령. 대령이 팽의 팀을 데리고 브라운 포인트로 가줘.”

 

그는 마지막으로 고했다.

 

편성은 끝났어. 지금까지 호명한 대원 외에는 모두 기지에 남는다. 나와 함께. 다른 명령이 없을 때까지 A형 방어 배치로 이행해. 해산이다. 모두 제자리로.”

 

그의 낮은 목소리에 따라 대원들은 저마다 막사를 빠져나가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이제 막사에 남은 것은 박사와 도베르만의 팀뿐이었다.

 

박사.”

 

대령도 출발해. 시간이 없어.”

 

도베르만은 쥐고 있던 베레모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제자들을 이끌어 막사의 출구로 향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그래. 박사. 시간이 없으니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지. 내일 아침이 밝을 때 살아서 볼 수 있다면 좋겠군.”

 

볼 수 있어.”

 

하지만 박사, 우린 이런 싸움을 언제까지 이어나갈 수 있을까?”

 

마지막 질문을 남기고 도베르만은 캠프를 떠났다.

 

브라운 포인트는 멀다. 애쉬스톤의 마천루 위로 보이는 지평선이 멀고 먼 것처럼. 그들은 저격수들이 매복한 도심을 꿰뚫고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적진의 한가운데로 치달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해낼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이길 것이다. 끝 간 데 없이 불리한 싸움에서 몇 번이고 승리할 것이다.

 

박사의 편성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라도. 그래야만 한다.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어. 우리가 그러고자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