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로도스 내에서 가장 고급스런 장소는 어디일까?

질문 자체가 애매하긴 하지만, 로도스의 오퍼레이터들은 이 질문에 대해 각자 다른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곳을 "들어가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장소" 라고 표현한다면, 로도스의 최근 동향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이들은 단 한 곳 밖에 연상해낼 수 없으리라.

3층에 위치한 다용도 창고를 개조한 이 곳은 깔끔한 바닥재와 고풍스런 벽지, 한 눈에 봐도 비싸보이는 가구들이 즐비한 곳이다.

오퍼레이터 스와이어가 기꺼이 사비를 들여 마련한 이 작은 공간의 입구에는 "다과실" 이라 적힌 귀여운 팻말이 걸려있다.

명목상으로는 "오퍼레이터들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한 장소" 였고, 실제로 스와이어도 이 제안을 받아들여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정작 스와이어 본인은 이 "다과실" 에 단 한 번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다.

그녀에게 어째서 다과실을 이용하지 않냐 물으면, 매번 "내 취향 아니야." 라는 냉담한 답변이 돌아오곤 한다.

분명 자신의 사비를 들여 인테리어를 구비했을 터인데, 어째서 취향에 맞지 않는다며 단언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다과실 안에 직접 들어가보면 알 수 있다.

원산지 별로 분류되어 빈틈없이 정리된 홍차.

이름 마저 생소한 고급 과자와 초콜릿.

깨끗하게 정리되어 번뜩이며 빛을 내는 은제 식기와

귀족 가에서 장식용으로나 쓸 법한 화려한 접시.

그리고 차갑게 식혀진 보드카까지.



"누군가" 의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듯한 다과와 식기의 구성은, 이 곳을 방문한 오퍼레이터들을 적잖게 당황시킨다.

물론 그럼에도 이 곳의 간식들은 하나같이 최고급품, 평소에 이런 것들을 접해보지 못한 이들이 한 번이라도 맛을 본다면 순식간에 반해버릴 만한 양질의 물건들이다.

하지만 멋모르고 우르수스산 프리미엄 브랜드 초콜릿에 손을 대려던 오퍼레이터들은, 초콜릿 상자 옆에 놓여진 가격표를 보고는 모두들  황급히 한 발짝 뒤로 내빼기 마련이다.

로도스에서 배식되는 식사를 제외한 간식류는 모두 오퍼레이터 본인의 사비로 구입하도록 되어 있으며, 다과실의 간식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가격표에 고풍스런 글씨체로 휘갈겨진 숫자를 세고 있노라면, 어지간히 벌이가 좋지 않고서야 자신의 형편과 업무에 대해 회의감을 느낄 만한 액수.

테이블 위에 놓인 간식들에는 하나도 빠짐 없이 이런 가격표가 붙어있었기에 아무나 손을 댈 수 없었고,

휴게실의 "서민용" 자판기와 극명히 대비되는 이 곳, 다과실은 서민과 부르주아 계층 간의 넘을 수 없는 선을 구현해낸 듯한 장소였다.


. . . .


오후 5시 경.

다과실의 문이 열리고, 이 곳의 실질적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퍼레이터 로싸, 본명 나탈리야는 다과실에 가장 빈번히 드나드는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녀는 딱히 용무가 없더라도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식기는 잘 정돈되어 있는지, 오염되거나 흐트러진 곳은 없는지, 마치 시찰하듯이 빙 둘러보곤 한다.

그러고는 차오르는 뿌듯함을 차마 감추지 못하고 얼굴에 있는 그대로 드러낸 채, 선반에서 가장 아끼는 찻잔을 꺼내어 늦은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가 이 시간을 "티타임" 이라 지칭하고는 있지만, 찻잔 속의 내용물은 "티" 라고 할 수 없을 뿐더러, 학생 신분에 어울리는 음료조차 아니었다.

왠만한 주당들마저도 몇 잔 만에 고꾸라뜨릴 만한 독주를 입 안에서 몇 번 굴려보며 음미하다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목구멍으로  넘겨버리고는, 그녀는 한가롭게 평화로운 저녁시간의 고요를 만끽하고 있었다.




5시 30분 경.

두 번째 방문자가 나타난다.

오퍼레이터 스카이파이어. "왕의 지팡이" 라는 단체의 일원으로 알려진 이 필라인 족 숙녀는 로싸와 함께 다과실의 개설을 건의한 인물이다.

그녀는 간단한 목례로 테이블 한 구석에 자리잡은 소녀에게 인사를 건넨 뒤, 선반에서 홍차를 꺼내어 끓이기 시작한다.

범인의 경지를 아득히 초월한 주량을 가진 단 한 명을 제외하면, 이 곳에 방문한 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홍차를 우려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카이파이어를 포함한 대부분의 방문자들이 항상 홍차를 즐겨마시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이 곳에서 마실 음료를 선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선택지라고 해봤자 홍차, 아니면 보드카니까.

언제 한 번 로싸가 스카이파이어에게 보드카를 권해본 적이 있었는데, 로싸 본인의 진술을 인용하자면 그것이 로도스에 온 이후로 가장 후회되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스카이파이어의 주사는 (글자 그대로) 열을 내는 것이었고, 한껏 취한 그녀를 진정시키려다 화재 경보가 울려 스프링쿨러가 작동되는 바람에 아끼던 식탁보와 커튼을 전부 버려야 했다 하니, 그 심정을 알 것 같기도 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보드카에는 눈길 조차 주지 않으려 하는 스카이파이어는,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찻주전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로싸와 간간히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5시 40분 경.

세 번째 방문자, 멜란사가 들어왔다.

예비작전팀 A4의 팀장 신분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그녀는, 신예 가드 오퍼레이터로서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지만 정작 그녀는 항상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원인 중 하나를 지적하자면 그녀의 자신감 없는 말투와 목소리일텐데, 말수가 적을 뿐더러 확고한 자기주장도 없으니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힘이 빠지는 것이다.

그녀의 화법은 다과실 안에서도 오롯이 드러난다.

꼭 필요한 일이나 용건이 없으면 말을 붙이지 않으며, 먼저 누군가 말을 걸어오지 않는 한 침묵을 유지한다.

물론 다과실에 드나드는 무리는 침묵과 고요를 사랑해 마지 않는 이들의 모임이지만, 멜란사의 경우는 정도가 심하다 할 수 있다.

그녀는 오늘도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로, 찬장에서 능숙히 홍차의 품종을 가려내며 자신이 마실 것을 고르고 있었다.

멜란사는 어릴 적부터 빅토리아 상류 사회에 대한 교육을 받아온 덕에 홍차에 대한 지식은 해박하지만, 그 지식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 먼저 홍차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 한, 아마도... 영원히.




6시 정각.

네 번째, 다섯 번째 방문자가 거의 동시에 등장했다.

오퍼레이터 실론, 오퍼레이터 슈바르츠.

이 둘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항상 붙어다니는 걸로 유명하다.

물론 슈바르츠 쪽에서 거의 반강제적으로 "신변 경호" 라는 명목 하에 따라다니는 것이지만, 실론도 딱히 이를 제지하거나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오히려 함께 있을 명분이 생겨서 좋다고.

여튼, 실론은 다과실에 드나드는 이들 중 드물게 "평소에도 홍차를 즐겨마시는" 인물이다. 덕분에 여러 품종의 홍차를 자유롭게 골라 시음할 수 있는 이 곳은 그녀에게 있어 굉장히 편안한 공간일 것이다.

팔 사이에 낀 두툼한 연구 자료와 지긋지긋한 노트북만 없다면, 말이다.

그녀는 요즘들어 잠과 끼니를 걸러가면서까지 연구에 몰두해있다.

다과실에 방문한 목적 역시 조용히 서류를 작성할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기에, 그녀에게 한가로이 홍차나 끓이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슈바르츠가 실론 대신 차를 끓여내고, 열심히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그녀 옆에 따뜻하게 데워진 찻잔을 살포시 내려놓는다.

그러고서 슈바르츠는 실론 옆에 자리를 잡고 멀뚱멀뚱 서있을 뿐이었으니, 그 공간에서는 타닥거리는 자판 소리를 제외하면 죽은 듯한 적막만이 맴돌았다.




6시 30분 경.

여섯 번째 방문자는 다름 아닌 케오베였다.

요란스레 인사하며 방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케오베 덕분에, 다과실은 잠깐 동안이나마 활기를 띄었다.

아까 다과실에 방문한 이들을 두고 "침묵과 고요를 사랑해 마지않는 자들의 모임" 이라 서술한 것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침묵이 깨지는 것을 반기는 이들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기 마련.

로싸는 만면에 웃음을 띈 채로 케오베를 반겨주었고,

멜란사는 조용히 있을 뿐이었지만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다만 스카이파이어는 대놓고 한숨을 푹 내쉬며 "올 것이 왔구나." 라고 하는 듯이 체념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한 시가 바쁘게 타이핑을 하던 실론은 때 아닌 소란에 골이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실론의 표정이 안 좋아지니, 슈바르츠 역시 신경을 곤두세우는 듯 했다.

평소 다과실의 정숙한 분위기와 가장 동떨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이 작은 불청객은 이들에게 그다지 환영받지는 못하지만, 그저 과자가 좋아서 이 곳에 왔을 뿐이다.

로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과자 상자를 하나 건네준 뒤,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워 입술 위에 가져다대는 제스쳐를 취한다.

그걸 본 케오베는 건네받은 과자상자를 품 속에 소중히 껴안은 채로, 격하게 고개를 대 여섯번 정도 끄덕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마치 들판 위의 야수와도 같던 이 페로족 소녀는, 그 이후로 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까득거리며 과자를 씹는 소음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 . . .


로싸, 스카이파이어, 멜란사, 실론, 슈바르츠, 케오베.

이것이 매 주마다 다과실에서 모임을 가지는 "로도스 귀족 사교회", 약칭 "귀족회" 의 구성원 목록 되시겠다.

다과실 개설에 큰 기여를 한 스와이어 역시 귀족회에 초청받았으나 본인이 거절했고, 이 중에서 케오베는 귀족이라기 보다는 귀족 가에서 키우는 애완동물 느낌이다. 실제로 취급이 그렇기도 하고.

믿기 어렵겠지만, 귀족회는 로싸를 구심점으로 하여 정식으로 모인 로도스 사내 조직이다.

실제로 박사에게 허가도 받았다고 하며, 정기 회의도 진행한다고 한다.

뭐, 그 정기 회의가 뭘 위한 회의인지는 박사 말고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부터 이 고상한 모임이 어떻게 해체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7시 정각.

오퍼레이터 로싸가 일찍 자리를 떠났다.

원래 귀족회의 모임은 매 주 수요일 6시부터 8시까지로 정해져있는데, 급한 용무가 생긴 회장이 남은 인원들에게 알아서 정기 회의를 진행하도록 지시한 뒤 먼저 다과실을 나선 것이다.



그럼 이제 남은 인원을 잠시 되짚어 보자.

스카이파이어.

멜란사.

실론.

슈바르츠.

케오베.



우선 케오베부터.

로싸가 건네준 과자를 전부 먹어치운 케오베는, "실컷 먹은 뒤에는 잠이 온다" 라는 동물적 본능에 따라 편히 쉴 곳을 찾고 있었다.

그녀는 마침 고급 가죽 커버가 씌워진 푹신한 소파를 찾아내어 즉시 몸을 던졌고,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그대로 골아떨어졌다.



다음으로 실론은, 말할 것도 없이 여전히 탐구 활동에 몰두해 있었다.

말이 좋아 탐구 활동이지 사실상 손가락 노동에 불과했지만.

앞으로도 수십 장의 보고서를 써내야 하는 그녀는, 물론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그 다음은 슈바르츠.

그녀도 다를 건 없었다. 신변 경호라는 것은 잡담할 필요가 조금도 없는 임무였고, 일에 열중하고 있는 아가씨를 방해해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결국 그녀도 내내 입을 다물었다.



멜란사 역시 마찬가지.

안 그래도 성격이 내성적인데,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는 시점에서 혼자 떠들어 댈 이유는 없었다.

마침 케오베도 곤히 잠들었으니, 깨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평소에 하던 것 처럼 조용히 독서를 하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마지막, 스카이파이어.

그녀는 다과실에 남아있는 이들 중 그 누구와도 접점이 없었다.

멜란사와는 서로 통성명도 제대로 못한 사이인데다가, 슈바르츠와 실론은 그 두 명끼리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녀가 끼어들어갈 새는 없었다.

그나마 서슴없이 담화를 나누던게 로싸 회장이었는데, 그마저도 자리에 없으니...

결국 그녀는 끝없는 적막과 고요 속에서 조용히 미쳐가고 있었다.




이 끔찍한 침묵은 놀랍게도 3시간 동안이나 지속된다.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서로의 눈치를 보거나 자기 일에 열중하느라 모임 시간이 끝난 줄도 모르고 망부석처럼 계속 자리에 굳어있던 이들은,

오퍼레이터 벌컨이 케오베를 데리러 올 시간이 되서야 다과실에서 나갈 수 있었다.

그 때, 완전히 미치기 직전이었던 스카이파이어가 문을 열고 나서며 내뱉었던 한 마디가, 귀족회가 해산하게 된 발단이었다.

"우리, 대체 왜 모이는거죠?"



. . . .



"결국 그 날 정기 회의 보고서에 단 한 글자도 적어넣지 못한 귀족회는 로싸의 해산 선언을 통해 정식으로 해체되었고..."

"고급 초콜릿과 보드카로 가득차 있던 다과실은, 시판용 과자와 탄산 음료 자판기가 있는 제 2 휴게실로 다시 한 번 개조되었지."

"...그렇게 된 거였네요. 그래서 로도스에는 휴게실이 두 개나 있는 거구나..."

"뭐, 우리 입장에서는 잘 됐지. 아, 실컷 얘기하고 나니까 또 목마르네. 가서 음료수나 사먹자고."

"엇, 선배님이 사주시는 거에요?"

"...니 돈으로 사먹어, 임마."




. . . .




끄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