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

"어, 어?"

"이럴땐 어떻게 할까요."

"이런건 계획에 없었는데."
이스티나는 침착하게 눈앞의 인물이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오퍼레이터 로사. 오퍼레이터가 된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그녀는 각지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정예 대원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가 무기로 사용하는 작살은 적들에게 그 위력을 아낌없이 발휘하며 아군에게 든든함마저 선사해 주었다. 하지만 바로 지금, 그 작살이 박사를 향하려 하고있었다.

"박사님? 어디계세요~?"

"이스티나, 니가 가서 뭐라고 좀 해봐! 왜 저러는거야! 이유라도 알자!"

"사실 짐작은 가는데요."

오퍼레이터 로사, 나탈리야는 말그대로 지마를 엄청나게 아낀다. 그것이 죄책감때문인지, 다른 무언가를 지마에게서 보았는지 지마에 관한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달려드는것이다. 이런 로사에게 박사와 지마의 관계는 그리 바람직한 일이 되지 못했다. 그런 도중에 아마 그녀는 '지마가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졸도할뻔했다.' 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것이 아닐까 하고 이스티나는 턱을 짚으며 생각했다.

"다 업보라고 생각하세요. 지마를 속이는걸 속죄하는 느낌으로 가죠."

"아니, 저거에 맞으면 속죄고 뭐고 천당행인데."

"천당보다는 지옥이 어울려요 박사님."

이스티나는 굼의 잠옷을 골라주는 듯한 기분으로 말했다.

"음, 어디 계시려나? 박사님~?"

로사가 통로 저편으로 작살을 철컥거리며 사라졌다. 박사는 그걸보고 한숨을 내쉬더니 이스티나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이스티나. 로사에게는 니가 얘기 해줘. 난 지마에게 가볼게."

"하.... 시간은 끌어볼게요. 어찌됐건 환자에게 무기를 휘두르는건 좋지 못하니까요."

박사는 이스티나가 로사가 사라졌던 통로로 걸어가는걸 보고 지마의 개인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스티나에게 들은 위치대로라면 앞으로 3분정도면 도착할것이다. 원래대로라면 근처로 빠르게 갈수있는 수직이동기가 있지만 로사를 피하다 보니 우회하게 된것이다.

"어머, 여기 계셨네요."
그때 박사는 깨어난후 처음으로 '도망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다.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잠깐이면 되니까."

"어? 어, 그래. 근데 그 작살은 내려놓고 할수없을까?"

박사는 로사의 작살이 여전히 자신을 겨누고 있는것을 보고 말했다.

"신경쓰지 마세요. 박사님이 일전에 말씀하셨던대로 무기는 항상 준비 되어있어야죠."

"그, 그렇구나."

박사는 저 작살이 자신에게 사용되지 않기를 바라며 침을 삼켰다.

"그럼 어디 앉아서 할까?"

"아니요, 정말 금방이면 되니까 가면서 하도록 해요."

로사는 박사에게 목짓하며 말했다. 먼저 걸어가라는 뜻인듯 했다. 박사는 흡사 사형장에 끌려가는 죄수처럼 터덜터덜 걸어갔다. 로사가 그뒤를 따라갔다. 철컥거리는 작살이 자신을 위협하는것 같아 박사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래서 할말이란게 뭔데?"

"지마에 관해서요. 조금 들을 이야기가 있을것 같아서요. 몇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올것이 왔구나, 박사는 애써 태연한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지마가 박사님을 원인으로 졸도할뻔했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아, 그게, 그건 조금 오해가 있는것 같은데...."

"아, 뒤는 보지 말아주세요. 멈췄다가 작살에 찔리실수도 있으니까요."

박사가 뒤를 돌아보려 고개를 돌리려하자 로사가 작살을 박사의 등에 들이대며 말했다. 두꺼운 붕대를 뚫고 전해지는 냉기에 박사는 아무말도 못하고 다시 앞을 향해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건 오해야. 이번 작전에서 조그만 부상을 입었거든. 그것 때문인것 같아.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박사는 뒤통수를 긁으며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거짓말."

로사의 차가운 한마디가 박사의 웃음을 멈췄다. 동시에 둘의 걸음이 멈췄다.

"지마는 속여도 저는 못속여요. 애초부터 저도 그 작전에 참여했잖아요."

로사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는것 겉아 박사는 뒤돌아 섰다.

"뒤돌아보지 말라구요!"

"로사."

로사의 몸은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박사는 그런 로사를 위로하지 못했다. 그 떨림은 자신이 원인이 된 것이었기 때문에.

"왜 이런짓을 하시는 거죠? 그 몸으로 지마에게 가봤자 지마가 슬퍼하기만 할뿐이란걸 모르시겠나요?"

"로사."

"박사님은! 지마를 좋아하는거 아니었나요? 그럼 지마를 상처입힐 만한 행동은,"

"로사. 난 지마를 상처입힐 생각은..."

"아니요, 지금 박사님의 행동은 지마를 위하는 행동이 아니에요. 그저 이기심일 뿐이지."

그렇게 말하며 로사는 작살을 박사에게 겨눴다. 장전된것은 아마도 그물망인듯했다. 제압해서 끌고갈 모양이었다.

"그만해. 나탈리야."

"이스티나? 로사를 따라 갔던게 아니었어?"

"여기있네요. 로사."

이스티나가 어딘가 슬퍼보이는 눈을 하고는 로사를 막았다.

"당신...!"

"난 지마가 다시한번 그 미소를 보여줬으면 좋겠어. 미안."

"지금 당신은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지마를 이용하고 있는거에요. 알고있나요?

"그럴지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지마가 행복하길 원해."

"그게 무슨....!"

"지마는 박사를 자신의 방에 초대할거라고 했어. 난 그저 그 말을 들어주고 있는것 뿐이야."

"그러다 박사의 상태가 지마에게 들키면? 그땐 어떻게 할거죠? 박사님을 탓할건가요? 아니요. 탓할건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은 또 자신의 친구를 버리려고 하고있어요."

"나는,"

"변명하지마. 너의 행동은 지마에게 해를 끼칠뿐이라고. 그때도...!"

"그만."

박사가 로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로사를 바라보며 박사는 말을 이었다.

"내 행동이 지마에게 피해를 줄것이다, 그런거네."

"네. 당연하죠."

"로사, 우선 악역을 자처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나는, 가야만해."

"어째서! 박사님은! 알고계시면서!"

"그걸 지마가 원하기 때문이야."

로사 반박할 말을 찾아 생각하는 동안 박사는 말을 이었다.

"로사, 우리가 하는 행동이 결과적으로 지마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무도 몰라.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잖아. 지마를 위한다면, 지마의 바람을 이루어줘야해."

박사는 그렇게 말하며 지마의 개인실쪽으로 몸을 돌렸다.

"책임은, 내가 질게."

"그런말은 쉽게 하는 말이 아닐텐데요."

"쉽게 하는것 같아?"

고개를 돌린 박사와 눈을 마주친 로사는 박사가 긴 고민끝에, 깊은 고뇌 끝에 이런 결정을 했는지 알것 같았다. 박사는 조금, 슬퍼하고 있었다.

"너희가 각자의 방법으로 지마를 지키고 싶어하는건 알아. 그럼 나에게도 기회를 줘. 난 로도스의 박사잖아. 오퍼레이터를 지키는게 내 일이라고."

난 의사니까, 그런 말을 하며 박사는 지마의 개인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나, 괜찮을까요? 저 사람에게 지마를 맡겨도."

"이스티나라고 불러. 그리고 나도 몰라. 그냥 믿어보려고."

"그러네. 언제까지고 우리가 지마를 돌봐줄순 없으니까. 그렇지?"

"응."

이스티나와 로사는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짐을 덜었다는 표정으로.


"아오, 죽는줄 알았네."

박사는 어깨를 움츠리며 팔을 문질렀다.

"저 기계의 출력이면 그물이고 뭐고 죽을거야. 배드민턴채에 걸린 잠자리마냥... 으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신의 설득이 실패했을 때를 상상하던 박사는 이윽고 자신이 지마의 개인실에 도착했음을 눈치챘다. 문에는 투박한 철제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바로 아래있는 출입엄금 표시는 덤이었다.

'오퍼레이터 지마.'

박사는 그 글자가 너무나도 크게보였다. 박사는 심호흡을 하며 문을 두드렸다.

"왔어? 이스티나..... 박사?"

"아, 안녕?"

쾅!

박사가 인사하기 무섭게 문이 우서운 기세로 닫혔다. 잠시후 방안에서 엄청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나 싶더니 굼이 문밖으로 뛰쳐나왔다.

"어? 박사!"

"굼, 지마 지금 안에서뭐하는거야?"

"청소하는것 같던데? 불러줄까?"

"아니야. 기다리지 뭐."

굼은 흐뭇한 표정으로 문을 바라보는 박사를 이상하다는듯이 쳐다보고 자신의 개인실로 향했다. 박사가 웃음을 겨우 갈무리할 무렵, 문이 열렸다.

"드러와."

이상하게 배배꼬인 말소리가 문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럼 들어갈게."

문을 열자마자 느낀 건 방안에서 미미하게 나는 벌꿀냄새였다. 박사는 급히 지마의 얼굴을 봤다. 아니나 다를까 지마의 얼굴에는 약간의 취기가 드러났다. 청소를 마치고 꺼내마신 건지 빈병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박사아....히히."

"지마, 혹시 취했어?"

"으으응."

흰색바탕에 곰돌이가 잔뜩 그려진 잠옷을 입고 고개만 끄덕거리는 지마의 모습에 박사는 카메라를 가져오고 싶어졌다.

"그, 그렇구나. 그럼 우선 좀 앉을래? 서서 그러지말고."

"박사먼저 앉아."

지마가 TV앞의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박사는 엉거주춤 소파에 몸을 기댔다. 지마는 박사를 따라 소파에, 정확히 말하면 박사위에 앉았다.

"지마?"

"왜." "옆에 앉는건 어떨까?"

"난 박사랑 앉고싶은데."

"옆에 앉아도 나랑 앉는건데?"

박사는 타이르듯 지마에게 말했다.

"박사는 나랑 앉기 싫어...?"

지마는 박사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이성이 급속도로 사라지는걸 느끼며 박사는 미리 준비해둔 비상용 간식을 꺼내 씹었다.

"박사ㅡ 뭐먹어? 치사해. 나두줘."

지마는 입을 삐쭉내밀며 박사의 얼굴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니, 박사의 얼굴을 손으로 밀어냈다.

"이건, 음. 안되는데. 대신 다른거 꺼내줄게. 잠깐만 기다려봐."

"응."

박사는 지마를 옆에 앉혀두고 부엌으로 보이는곳에 가 냉장고를 열었다. 인에서 쏟아져나오는 냉기에 조금은 정신이 개운해졌다.

"음. 남의 집에서 냉장고를 열어서 방주인에게 대접하다니. 그리 일반적인 상황은 아닌걸."

박사는 상황의 아이러니함에 피식거리며 냉장고를 둘러봤다.

"음, 이것도 아니고. 저건.....시간이 좀 걸리고. .......숟가락은 왜 여깄는거야."

그렇게 탐험아닌 탐험을 하던 박사는 등에 실리는 무게에 뒤돌아봤다.

"박사 등 넓네에."

지마가 박사의 허리를 감싸고 등에 얼굴을 문지르고 있었다.

"헤헤. 졸리다아."

지마는 그렇게 박사의 등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잠들었다.

"음, 지마? 설마 자니?"

외간남자를 자기 방에 들여놓고 취했다고는 해도 잠에 들다니. 박사는 지마가 깨어나면 주의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지마를 안아들었다.

"공주님 안기라. 이거 생각보다 힝들구만."

박사는 지마를 눕혀주기 위해 침대로 걸어갔다.



"박사. 지금 뭐하는 거야?"

"어?" 침대에 거의 다와갈 무렵, 지마가 깨어났다.

"나 침대로 데려가서 뭐 하려고? 박사, 완전 나쁘네에."

그 말과 동시에 지마가 박사의 목덜미에 팔을 걸고 당기기 시작했다. 지마의 괴력은 부상중인 박사의 무게중심을 무너뜨리기에는 차고 넘쳤기에, 박사는 넘어지고 말았다. 침대에.

"박사는 범죄자야. 완전 나빠."

침대에 넘어져 혼란스러워 하는 박사에게 지마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박사가 그 웃음에 한눈 팔린사이 지마는 박사의 목에 다시 팔걸이를 하는데 성공했다.

"음, 그, 난 그럼, 나가볼게?"

박사는 지마의 시선을 피하며 그녀의 팔걸이를 빠져나가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박사."

"어,엉?"

지마가 갑자기 진지한 분위기가 되어 박사는 바보스러운 소리를 내고 말았다.

"나랑 같이 있어. 내가 지켜줄게. 나 더이상....."

지마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잠에 들어버렸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박사는 목에 걸려있는 손을 풀고 잠들어버린 지마에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옆에 앉아 지마를 바라보았다.

"당연하지. 내가 니 옆에 있을게."

그말을 하고 박사는 지마의 옆에 누웠다. 박사는 지마의 손을 잡고 잠에 들었다. 잠든사이 붕대에서 나온 피가 침대에 닿지 않기를 빌며.






2편끝. 솔삐 슬슬 뇌절인데? 아마도 더 쓰게되면 2펀안에 야스하고 끝날듯? 이번건 좀 긴가


클리셰덩어리 성능 확실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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