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소리마저 집어삼키는 밀도로 우거진 검은 삼림, 원정대를 향한 끝모를 적의가 숨막히는 농도로 응축된듯한 흩어지지도 않는 숲안개

땔감에서 악기까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어주던 품 넓은 어머니숲, 침략자들로부터 엘라피아 동포들을 숨겨주던 솔향내음 배인 숲의 베일


시도 때도 없이 어딘지도 모를 방향에서 소리도 없이 날아들어 좋은 병사들의 목숨을 거둬가던 쇠뇌 볼트의 세례, 야전병원 오두막 안에서 난도질당한 간호사와 부상병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솟아올라 사람의 뼈를 부수고 살갗을 찢는 사악한 함정들

말벌떼처럼 날아들어 삶의 터전을 갈아엎고 지형을 바꾸던 직승기 편대, 동포들이 숨은 수풀을 향해 구불대며 날아들던 화염의 강, 포화에 두동강나 이동도시들보다도 기나긴 나이테의 내력이 아로새겨진 속살을 드러낸 다시 자라지도 못할 아름드리 나무들


본보기로 고문당한 후 효시되어 텅 빈 마을어귀에 내걸린 포로가 되었던 동지들, 다리가 동강나고 팔이 잘려 피어보지도 못하고 짖밟힌채로 군문에서 내쫓긴 청춘들, 밤마다 귓가를 맴도는 끝모를 정적

불타는 집안에서 아이들을 감싸안았던 아비와 어미, 산처럼 쌓아놓은 엘라피아인들의 새하얀 뿔 더미, 밤마다 귓가를 맴도는 총소리와 폭음과 비명



같은 땅에서 다른 시대에 다른 사람들이 겪었던 같은 일을 두 목소리로 읊어내는 노병과 소년병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