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캄 문학
이제 막 4시를 넘긴 새벽이었다.
침대에 누워 한참동안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다가 가슴팍 위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무게감에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옆에 반쯤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리스캄의 왼손이 슬쩍 올라와 있었다. 은색 머리칼과 약지가 커튼에 비친 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였다. 그녀의 손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마주 보게 누웠다. 빛이 들어오는 방향 덕분에 어두운 새벽 시간임에도 그녀의 얼굴은 굉장히 잘 보였다. 상처는 커녕 잔주름 하나 없는 하얀 피부와 꼭 다문 입술이 아름다웠다. 도무지 몇 년 전까지 권총과 방패를 들고서 피와 오리지늄이 낭자한 땅을 달리던 사람의 얼굴 같지는 않았다. 물론 자기 자신이 그만큼 철저하게 관리를 해왔다는 증거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얼굴에 쳐진 머리카락들을 슬쩍 정리해주었다. 기다리던 잠은 올 것 같지 않았다. 한참을 시간 가는 줄 모른채 그저 리스캄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결국 알람이 울렸다.
'박사님, 업무 시간...' 깜짝 놀라서 알람을 끄고 급하게 몸을 돌려 그녀를 확인했다. 조금 뒤척거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깨우진 않은 듯 했다.
충분히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한나절 동안 상당히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그녀를 깨우면 안된다는 것을 이미 수백 번의 경험이 알려주었다.
평소처럼 내가 늦게나마 잠에 들었다면 알람이 설정된 시간보다 일찍 습관적으로 눈이 뜨여서 조용히 출근 준비를 했겠지만 오늘은 깨어있는 상태로 시간을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 불찰이었다. 놀라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앉아서 조금 진정시키고는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커다란 전창으로 배경이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몇 주째 누런 먼지가 날리고 드문드문 언덕이 몇 군데 보이는 풍경이 이어졌다. 아미야가 이번에는 어디로 갔다가 어딘가로 이동한다고 말해준 기억은 있지만 어디였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어 밤새 바짝 마른 목을 축이며 이제부터 해야 할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켈시가 부탁한 결제 서류들과 아미야의 논문을 읽어보는 일 이외에 자잘한 공문서 작업이 떠올랐다. 물병에서 입을 때고 잠시 창문을 보며 서있었다. 하늘이 조금씩 남색빛으로 변하는게 느껴졌다. 물을 마저 마시며 팔을 긁었다.
"당신, 내가 분명 물병에 입대고 마시지 말라고 했죠. 리즈가 보고 배운단 말이에요. 몇번을 말해야 고치겠어요?" 그 순간 등 뒤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그만 물을 뿜을 뻔 했다. 리스캄이 이제 막 깨서 눈도 다 뜨지 못한 채로 눈살을 찌푸리고는 안방 문틀에 기대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굳은 자세로 천천히 물병을 식탁에 올려놓고 컵을 집었다. 몇 초간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휙하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일어나 있었네, 망했다. 라는 생각이 슥 스쳐 지나갔다.
"좋은 아침..." 살금살금 따라 들어가서 말했다. 그녀는 씻고 나서 갈아입을 옷을 꺼내 침대 모퉁이에 올려 두고 있었다.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역시 잠이 모자란 채로 일어난거에 더해 물병 때문에 짜증이 난 듯 했다.
"내가 미안해, 고치려고 노력할게 예전에 담배도 당신 말대로 끊었잖아?" 뒤에서 아내의 허리에 슬쩍 팔을 두르며 말했다. 그 위에 손을 얹는 촉감이 느껴졌다.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지 않는걸 보니 의외로 생각보다 짜증이 나진 않은 것 같았다. 눈 앞의 두 뿔 사이로 턱을 살포시 올렸다. 그러고는 몸을 살짝 흔들며 그녀를 달랬다. 그러자 어깨에 힘이 풀리고 꼬리도 조금씩 움직였다. 옛날에 일이 많고 힘들 때는 이상한 음식도 먹고 담배도 굉장히 많이 피웠지만 아내가 연애 조건으로 금연을 넣었기에 정말 악착같이 노력해서 끊었다. 이제는 오히려 내가 고마워 해야할 조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도 여러 가지 의미로.
"그래요. 이번 주에 당신이 일찍 들어와서 리즈랑 놀아준 것 때문에 봐 줄게요. 그리고 그때 담배 끊은 건 정말 잘했어요. 아직도 기쁜 걸요." 리스캄이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아주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의 따뜻한 손이 부드럽게 뺨을 어루만졌다.
"응, 당신이 원했던 거니까." 내가 말했다. 그러자 리스캄이 활짝 웃더니 폴짝 뛰면서 기습적으로 입을 맞췄다. 까치발을 들고 맞닿은 입술을 때지 않으려 하고 있는 그녀를 살짝 안아 올렸다. 몇 번 더 입을 맞추고는 내려 주었다.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표정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기분이 바로 풀려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은 했지만 동시에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 기분이 풀린 느낌도 들었다. 평소였다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적어도 오후까지는 토라져 있었을 텐데.
"나도 뽀뽀해조!" 갑자기 안방으로 리즈가 뛰어 들어오며 말했다. 눈동자와 머리 뿔 색 모두 리스캄을 똑같이 닮은 딸이었다. 이제 겨우 5살이었지만 여러모로 아내를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이 저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종종 마음이 붕 뜰 때가 있었다.
"어! 마따! 이거 봐 봐, 나도 이제 힘주면 엄마처럼 찌릿찌릿 할 수 이따!" 그러고는 달려오다 말고 자리에 탁 서면서 주먹을 쥐고서 온몸의 힘을 끌서 모았다. 후아압 하는 숨소리와 함께 조그마한 뿔 사이로 푸른 전기가 순간 파바밧 하고 튀었다. 그러고는 이 엄청난 성공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가슴을 쭉 펴고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조금 놀랐지만 옆에서 내 팔을 안고서 같이 보고있던 리스캄은 뿌듯하다는 듯이 있었다. 역시 우리 딸이야. 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나보다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을테니까.
"오오, 멋진데 우리 딸! 나중에 프란카 이모한테도 한 번 보여줘. 엄청 좋아할걸?" 리즈를 안아 올리면서 말했다. 그러자 신난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프랑카 이모 조아! 언제 와? 오늘 와? 빨리 보여주고 시푼데"
"오늘 오실거야. 엄마랑 아빠가 오늘은 둘 다 나가야 되니까 이모랑 놀고 있어 알았지?" 리스캄이 리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녀도 오늘은 작업장에서 회의가 있다고 했다. 신형 발전기가 영 못 미덥다던가 그런 얘기였다.
"조아!" 리즈가 두 팔을 위로 뻗으며 소리쳤다. 내 허리쪽으로 삐져나온 그녀의 조그만 꼬리가 빠르게 흔들렸다. 리스캄은 리즈에게 뽀뽀를 해주고는 꺼내놓은 옷과 수건을 챙겨서 씻으러 들어갔다. 나도 리즈를 안고서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그 사이에 해가 올라와서 밖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안방의 샤워실에서 나는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빠 오늘도 입 대고 물 마셔써?" 잠시 동안의 침묵을 버티지 못한 듯이 리즈가 고개를 젖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면서 순두부처럼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손으로 내 얼굴을 더듬었다 아까 본 뺨을 쓰다듬는 걸 따라 하고싶은 건가 생각이 들었다.
"으응... 그래도 엄마가 용서해 줬어" 리즈의 손을 잡고는 식탁 위에 꺼내 놓기만 한 컵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 소리를 듣고 깬 건가? 라고 생각했다.
리즈는 내 품에서 나와서 식탁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반쯤 차있는 내가 마시다 만 물병을 들어서 입을 대더니 꿀꺽거리며 마셨다.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것이 나보다 잘 마시는것 같았다. 리즈는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내가 저 모습을 봤다면 분명 나를 혼냈겠지.
오전 7시, 이제는 햇빛이 집 안 전체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집이라고 해도 로도스 본 함 내에 있는 넓은 다인용 숙소에 속하지먀, 둘 다 직장을 로도스에 두고 있는 관계로 편의를 봐주어서 사용하고 있었다. 처음에 입주를 했을 때는 다른 직원들도 신혼 부부 구경을 한다며 꺅꺅 거리며 놀러왔었다. 지금 와서는 조금 뜸하지만 가끔씩 파티도 열고 하는 등 교류는 여전히 많이 하고있었다.
나와 리스캄은 서로 출근 준비를 마치고 프란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편하고 헐렁한 복장이었지만 아내는 언제나 격식 있고 멋있게 옷을 입었다. 머리도 항상 뒤로 모아서 단정하게 묶었다. 리즈는 프란카 이모가 올 것이라는 것에 들떠 있었다. 둘은 정말 친하고 잘 맞았다. 성격으로 그 둘보다 서로 어울리는 합은 찾기 힘들 것 같았다. 복도에서 저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전력을 다해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셋 중에 가장 먼저 그것을 감지한 것은 리즈였다. 소파에 누워서 싱글벙글 하고있던 리즈가 고개를 들어서 현관문을 빤히 쳐다보았다. 달리던 발걸음이 급격하게 멈추고는 보안키를 인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프랑카 이모다!" 리즈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러고는 곧장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문이 벌컥 열리고는 예상대로 프란카가 활짝 웃는 얼굴로 달려온 리즈를 안아 올렸다. 리즈는 온몸으로 그녀에게 달라 붙었다. 리스캄은 내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었다.
"아이 귀여워! 오늘도 가볍고 말랑말랑하네!"프란카가 얼굴을 부비면서 말했다. 그러더니 한손으로 안고서 신발을 벗고는 집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자주 와주었기에 스스럼없이 자기 집 처럼 행동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척이 놀러온 기분이었다.
"어서와. 오늘 저녁까지 놀아줄 수 있겠어?" 리스캄이 물었다.
"물론이야. 내일까지도 네가 부탁만 하면 있어줄 수도 읺는데 말이지, 아 박사도 안녕~" 프란카는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아내와는 다르게 그녀는 성격이 바뀐게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리즈와도 잘 맞는 것이겠지만. 그녀는 항상 장난스럽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지냈다. 지금도 딸과 함께 즐거운 듯이 얘기하고 있었다. 리즈가 뿔에서 전기가 나오는걸 보여주자 그녀는 쓰러지면서 좋아 죽으려 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리즈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리스캄! 얘가 진짜 너처럼 되려고 하나 봐! 어린 나이에 벌써 짜릿한걸!" 프란카는 리즈를 안고서는 마구 쓰다듬었다. 그녀들의 머리카락이 정전기 때문에 조금씩 붕 떴다. 리즈도 좋아하는 듯 했다.
"우리는 나갔다가 올 테니까 잘 대리고 놀아줘." 리스캄은 리즈에게 다녀오겠다고 말하면서 구두를 신고서 현관문을 열었다. 나도 재빠르게 그녀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럼 오늘도 잘 부탁해" 내가 말했다. 프란카가 리즈의 손을 잡고서 흔들며 인사했다. 문이 닫히는 바람에 리즈의 다녀오세요. 라는 말이 중간에 끊어져 버렸다. 아내는 손을 흔들며 반대쪽 복도로 걸어갔다. 푸른색 코트 아래로 나온 꼬리가 좌우로 부드럽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확실히 오늘은 뭔지는 몰라도 좋은 일이 있는 듯 했다. 코너를 돌아 더이상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리즈를 낳고 엄마가 된 후에 블랙 스틸에서의 용병 일을 그만두고 로도스의 기반시설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와 켈시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낙하산 배치에 가까웠지만 성격상 적응을 못하지도 않았고 그녀가 일하는 작업장의 생산량이 무려 20%나 상승한 덕분에 안 좋은 소리도 없었다. 동료들의 추천으로 승진도 빠르게 했다. 덤으로 그녀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출근도 자유로워서 딸과의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다는 점에 본인도 만족하고 있었다.
몇 분 전에 켈시가 서류들을 챙겨서 돌아갔고 아미야의 논문도 합격점으로 심사가 끝났다. 하지만 아미야는 기쁘다는 반응은커녕 옛날의 결의에 찬 또렷한 눈빛도 없었다. 피곤함과 억울함에 찌든 얼굴은 마치 그 시절의 나를 보는 듯 했다. 켈시가 그녀를 얼마나 혹사시키는지 전임자로써 이해가 되었다. 아미야가 힘없이 비틀거리며 사무실을 나감으로써 하루 일과가 거의 끝났다. 컴퓨터로 남은 잔업을 후다닥 마무리하고 시계를 보자 6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었다. 등 뒤의 블라인드를 살짝 젖혀서 밖을 보니 이미 어두웠다. 가방에 짐을 챙기고 점심시간에 제시카의 연줄을 통해 점심시간에 어렵게 구해놓은 '우르수스 와인'을 챙겨서 집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오늘은 확실히 아내에게 뭔가 좋은 일이 있어 보였기에 뭔지는 몰라도 남편으로써 분위기를 맞추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구해둔 것이었다. 급한 마음에 겉옷도 입지않고 팔에 걸치고서 달려나왔다. 대부분 다른 인원들의 퇴근 시간은 7시였기에 복도는 한산했다. 장애물이 없는 널찍한 복도를 빠르게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에서 프란카의 무릎 위에 앉아서 같이 그림책을 읽던 리즈가 먼저 달려왔다.
"아빠! 다녀오셔써요!" 리즈가 내 두 다리를 감싸 안았다. 프란카도 일어나 인사했다. 손에 든 와인병을 보고는 씨익 웃고서는 옆으로 비켜서면서 부엌 쪽을 가리켰다. 신발을 벗으면서 다시 보니 리스캄은 먼저 돌아와 있었다. 왼손에 짐을 들고 오른팔에 리즈를 안고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부엌에는 아일랜드에 두팔을 얹고서 기대어서 내가 들어오는 것을 지긋이 보고있는 아내가 보였다. 두 팔 사이로 가슴이 몰려서 입체감이 두드러졌다. 헐렁한 회색 티를 입고서는 내가 급하게 돌아온 것을 아는지 미소를 띤 채로 있는 그녀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 탁자 위에 짐을 내려놓고 아내 곁으로 다가가 다녀왔다고 속삭이면서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그 자세로 잠시동안 아내의 온기를 느꼈다. 그녀도 싫지는 않은 듯이 내 외투 안쪽으로 꼬리를 넣어 슬쩍 감쌌다.
"어우, 눈꼴 시려워라. 그러면 둘이 좋은 저녁 보내~" 그 광경을 팔짱 끼고서 지켜보던 프란카는 질색을 하며 서둘러 돌아갈 채비를 했다.
리스캄이 입술을 때면서 '후아' 하며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저녁 먹고 가도 되는데, 그냥 가려고?" 내 팔에 안겨있던 리즈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족 3명이 나란히 프란카를 보고있는 조금 웃긴 모양새였다.
"미안, 오늘은 누가 봐도 내가 먼저 빠져야 될 것 같은 분위기라서 말이야. 고맙지만 먼저 돌아갈게. 내년에 올때는 리즈랑 나 둘만 있지는 않겠네. 히히히" 프란카는 그런 말을 하면서 리즈에게 윙크를 하고서는 휘리릭 떠나버렸다.
리스캄은 얼굴이 조금 빨게 졌다. 발소리가 멀어지자 이번에는 리즈가 내려달라고 발버둥 쳤다. 조심히 내려주자 꺄르륵 웃으면서 곧장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더니 문을 닫고서 나는 다른거 할테니 신경쓰지 말라는 듯이 소리를 내어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프란카가 분위기 읽는 법도 가르쳐 준건가 싶었다. 아무튼 더 이상 신경 쓸게 없어졌기에 본격적으로 분위기를 내기위해 찬장에서 뒤집힌 채로 진열된 와인잔을 두 개 꺼내어 똑바로 세우고는 코르크를 열었다. 손목으로 병을 살짝 흔들자 향긋한 향이 화악 하고 주변에 퍼졌다.
잔에 따르려는 순간 리스캄이 갑작스럽게 안겨들었다. 하마터면 병을 떨어뜨릴 뻔 했다. 그녀는 얼굴을 내 가슴팍에 파묻고는 잠시 동안 그대로 있었다. 심장이 아주 빨리 뛰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가슴이 맞닿은 부분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적극성에 조금 놀랐지만 그런 아내가 귀엽고 좋았기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허리에 감겨있던 꼬리도 스르륵 소리를 내면서 더 강하게 조여 왔다. 조금씩 느껴지는 압박감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체온도 높아지는 듯 했다.
"역시 오늘 무슨 일 있는거야? 평소보다 귀여운 걸." 눈을 감고서 아내를 꼬옥 안으며 말했다.
"조금... 위로가 필요해서요... 저는 열심히 살고 있는 지금이 소중해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녀가 고개를 들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평소에는 숨겨두던 여성으로서의 분위기를 잔뜩 풍기고 있었다. 덩달아 내 심장도 그녀와 같은 박자로 뛰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이지. 당신과 리즈가 나와 함께해준 모든 날들과 시간들이 즐겁고 소중해." 지긋이 아내의 눈을 바라보며 웃어주었다. 결혼하던 때부터 있었던 일들이 주욱 생각나는 것 같았다. 천천히 손을 들어 눈 위로 살짝 내려 온 머리카락들을 옆으로 슥 넘겨주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역시 조금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혔다. 그러더니 오늘 아침에 처럼 기습적으로 키스를 했다. 조금 다른 점은 고개를 약간 틀면서 적극적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는 점과 첫 키스를 했을 때처럼 입술에서 살짝 찌릿하는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었다. 호흡도 아까보다 거칠어졌다. 아내의 감정이 굉장히 크게 요동치는 상태라는 걸 짐작하게 했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허리를 잡아 끌어안으며 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오늘은 그녀가 하고싶은 대로 전부 하도록 놔두자고 생각했다. 아내는 단지 어렸을 때부터 쫒아오던 편안과 안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의 보답이 가끔씩이나마 이런 형태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몇 년간 참아오던 그런 마음이 한꺼번에 튀어나온 것이리라. 점점 더 아내가 적극성을 더해갈수록 생각이 조금씩 녹아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이성치가 0으로 빠르게 근접해가는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는 몇 시간 동안 서로의 한껏 고양된 감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그리고 프란카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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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아, 모자란 글 읽어줘서 고맙다. 이런 대회에 나가는건 처음이라 작성 방식도 퀄리티도 죄다 엉망이다. 제목도 따로 없다.
사실 처음에 리스캄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2B 성우이어서 였는데 언제부턴가는 그냥 리스캄이라는 캐릭터 자체에 호감이 가는 듯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글도 쓸 수 있었다고 본다.
글에 대해 조금 설명을 하자면 시작부분 처럼 정말 자려고 누워 있다가 빡하고 든 생각들을 내 맘대로 1인칭으로 주루룩 서술한 느낌이다. 나름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고 즐거웠다.
배경은 적당히 6, 7년 정도 지난 시점이라고 보면된다.
리즈라는 이름은 Liskarm에서 Lis를 때서 발음 편하게 z로 바꾼거다.
그리고 와이번이나 용들이 도마뱀을 별명으로 가지고 있길래 Lizard의
Liz와도 맞기도 해서 나름 좋다고 생각한다.
아미야는 켈시 밑에서 석사 과정을 하는 중이라고 대충 설정을 잡았다.
중간에 나오는 '우르수스 와인'은 조지아가 와인으로 유명하기도 하고 그냥 생각난 곳 대충 대입한 거니까 따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중요한 키워드도 아니고.
다시 한번 길고 허접한 글 읽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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