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그 충격으로 인해 대지가 갈라졌다. 저마다 들리는 비명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도망치려는 사람들,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혼란의 도가니의 연속이었다. 



  상황이 심각했던지라 로도스는 후퇴하기로 했다. 대원들은 박사의 지휘에 따라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고 쏜즈도 후퇴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전장, 도망치는 와중에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기에 주변을 살펴보는 건 중요했다. 



  그러다가 어딘가 굉음이 들렸고 그 소리는 거센 바람소리와 함께 휩쓸렸다. 그 소리를 듣고 바로 시선을 돌리니 위에서 큼지막한 철판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위디가 서있었다.



  “어, 어?”

  “조심해!”

  떨어지는 철판을 본 로도스 대원이 소리쳤다. 



  위디는 무슨 일인가 주위를 살펴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순식간에 사색이 된 그녀는 불운하게도 온몸이 결박이라도 된 듯 마냥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떨어지는 쇳덩이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생각할 겨를이 없이 쏜즈는 위디에게 달려갔다. 달려든 기세로 그녀의 허리를 붙잡아 철판의 낙하지점으로부터 밀어냈다. 하지만 그 밀어낸 곳은 낭떠러지였고 둘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눈을 뜨자 아름다운 석양이 쏜즈를 반겨주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이곳은 잡초와 이끼들이 가득 자라서 알 수 없는 분위기를 뿜어댔다.



  잠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몇 분이 지났을까. 의식이 뚜렷해지면서 등에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쏜즈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일 수는 있네.”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하나. 그러고 보니…….


  

  위디는 어디에 있지? 근처에 보이지 않은 걸로 보아서 다른 곳으로 추락했구나. 다행히도 주위에 리유니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안정을 취하기 위해 잠시 쉬었다. 쏜즈는 재능이 있기에 치료가 없어도 저절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위디는 아니다. 나보단 부상을 덜 입었으면. 멀쩡하면 더 좋겠지만. 



  하체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고 위디를 찾아 나섰다. 낯선 공간이면서 짙게 깔린 어둠이 온몸을 긴장시키게 만들었지만 신기하게도 불안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몇 분 정도 걸었을까. 가까운 곳에서 어렴풋이 사람의 형체가 보였고 가까이 다가가니 의식을 잃은 위디가 있었다. 



  재빨리 뛰어가며 그녀의 맥을 확인했다. 체온은 차가웠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작은 상처는 여럿 보였지만 큰 부상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늘게 떨고 있었다. 



  추운 걸까.



  걸치고 있던 자켓을 벗어 위디의 몸을 덮여주었다. 확실히 벌써 날이 지려고 하니 으스스해지고 있었다. 



  불을 지펴야 하겠지. 쏜즈는 불 피우는데 필요한 땔감과 돌을 찾아 다녔다.



  ◇◇◇◇



  온몸에 한기가 돋아나고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몸에 자신을 덮고 있는 물체가 느껴졌다. 마치 얇은 이불처럼 폭신했다. 



  조심스레 눈을 떠보니 내 몸엔 누군가의, 아니 쏜즈의 자켓이 보였고 눈앞에는 따뜻한 불이 화르륵 타고 있었다. 불꽃에 홀린 마냥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위디, 일어났어?”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자신과 마찬가지로 몸을 녹이는 쏜즈가 보였다.



  “추워?”

  “……응.”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몸은 어때?”

  “……좀 아파.”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고 납덩이처럼 무거웠지만 쏜즈의 자켓에서 그의 냄새가 났다. 그 향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쏜즈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알약이었다.



  “전에 박사한테서 받은 거야. 약인데 먹어 둬.”


  

  위디는 잠시 쳐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너는?”

  “나? 난 괜찮아. 너도 알잖아. 내 재능.”

  “……지금 먹기 힘들어.”

  “그래도 먹어 둬야 해.”



  위디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무언가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평소에는 엘리시움과 함께 수도관을 폭파시키는 등의 몹쓸 짓을 많이 저질러 얘는 망나니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철판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 쏜즈가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끔찍한 상상과 함께 그녀를 위해 구해준 쏜즈를 향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공존하여 결국 눈물이 나고 말았다.



  “왜, 왜 이리 무모하게 행동하는 거야?”

  “으, 응?”

  우는 위디를 보며 쏜즈는 당황이라도 한 듯이 안절부절 거렸다.



  “잘못하면 너까지 죽을 뻔 했잖아!”

  “안 죽었잖아?”

  “너, 너.”

  “화는 나중에 내 줘. 지금은 약 먹을 시간이야.”

  마치 아이는 대하는 듯이, 그러면서도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위디는 숨을 고르곤 한발 짝 물러섰다. 패닉에 빠진 듯 어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쏜즈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알약을 입으로 물곤 위디가 반응도 하기 전에 빠르게 다가가 알약을 그녀의 입에다 넣었다. 



  그녀의 입 안을 비집고 밀어 넣었다. 위디는 갑작스런 행위에 당황하며 그의 혀가 입 안으로 들어가는 걸 거부하듯 밀쳐 내려했지만 결국은 받아들였다. 


  

  그의 입에 혀를 넣고 서로 유린해가며 치료행위를 했다. 위디의 혀에 그의 타액과 만나 실타래를 만들어냈다. 쏜즈의 목에 손을 두르고 살짝 떨리는 몸을 참아갔다.   



  눈앞이 점점 흐릿해졌다. 그는 로도스 내에선 사건사고를 많이 일으키지만 사실 누구보다 배려심이 넘쳤다. 그런 다정함에 취해서 기대어 버릴 것만 같았다.



  서로의 키스가 끝나고 위디는 멍했지만 자신이 무얼 했는지 깨닫고 쏜즈에게 거센 항의를 했다.



  “너 미쳤어?”

  “이렇게 해야지, 약이 잘 들어가거든.”



  확실히 약을 먹고 오싹한 기운은 사라지며 통증도 점점 가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부끄러워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위디는 볼이 붉어지며 쏜즈의 가슴팍을 때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게 세게 때리지 않았는데. 설마. 



  위디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쏜즈의 상의를 들어올렸다. 만류하는 그를 향해 물대포로 위협하니 결국 포기했다.


  

  드러난 몸엔 큰 상처가 보였다. 쏜즈는 과장된 몸짓으로 괜찮다며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곧 나아. 걱정 안 해도 돼.”

  실제로 재능 덕분에 몸에 난 상처는 자힐로 치료되고 있었다. 위디도 그걸 알지만, 왠지 모르게 두 손이 떨리며 조바심이 더욱 심해지고 안절부절 견딜 수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며 뱉는 한 마디.

  “……정말 미안해.”



  쏜즈는 그걸 듣고. 

  “미안해하지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고 네가 살았으면 된 거지.”


  

  그 말이 기폭제가 된 듯 물이 가득 고인 눈에서 걷잡을 수 없이 왈칵 쏟아졌다. 참고 참았던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왔다. 



  “흐윽…….”



  그런 위디를 바라보는 그는 아무 말 없이 다가와 그녀를 끌어안았다. 멍한 채 작게 흐느끼는 위디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전부 괜찮다고. 곁에 있어주겠다는 그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른 다정하면서 부드러웠다.



  “흐흑…… 미안해…….”

  울음기 섞인 목소리 사이로 그녀의 마음이 새어나왔다. 쏜즈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추스르고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괜찮다는 말만 계속 내뱉었다.


  살아가면서 남에게 마음을 준 적이 없었다. 황폐한 세계에서 남을 신뢰한다는 건 그만큼 큰 두려움도 따른다. 등을 맡길수록 배신의 대가는 자신을 무너뜨린다. 



  그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그는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용기를 주고, 마음을 내주고. 어쩌면 그보다 더 큰 것을 줄지도 모른다. 그것을 거부해야 하는데 그가 너무나도 좋았다.



  쏜즈와 위디가 있는 자리엔 그녀의 울음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매웠다. 



  그 후 슬슬 로도스로 합류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위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쏜즈는 잠시 미소를 짓더니 위디에게 다가가 축 쳐져 있는 그녀를 안아 들었다. 


  

  “미, 미쳤어? 갑자기 왜 이래?”

  눈물범벅이 된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진 위디를 향해 쏜즈는 태연하게 말했다.


  “환자를 걷게 할 순 없잖아.”

  “그, 그게 무슨. 당장 내려줘.”

  “그리고 이렇게 가는 것이 더 빨라.”

  


  장난기가 발동한 듯 미소 짓는 쏜즈를 보며 위디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힘을 빼고 그에게 몸을 맡겼다.


  

  하늘엔 아름다운 석양이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