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프 & 스노우상트
분수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로프는 분수를 아는 여자였다. 그녀의 인생은 광석병 환자답게 하루하루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다가. 앓다가 끝내 죽는 하루살이같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받아들였었다.
다른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이 딱히 누군가의 잘못 때문이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자신을 버린 부모도. 감염자들을 학대하는 용문의 사람들도 딱히 특별히 악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받아들였었다.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한다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로프는 자신의 짧을 인생을 마음의 여유나마 가지고 살아가고 싶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재치와 손재주를 타고나서 도둑질로 입에 풀칠할 만큼의 돈과 과분한 악명 혹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빈민가에 널린 다른 빈민보다는 나은 인생을 살았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인생이었다. 적어도 끼니를 얻기 위해 뒷골목의 계집애들처럼 다리를 벌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러다 온몸에 찌르는 듯한 감각이 느껴지고. 온몸이 타들어가는 듯한 격통을 느꼈을 때. 광석병이 몸을 잡아먹어가는 것을 깨달았을 때. 로프는 그녀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만약 병으로 오늘내일하는 신세가 된다면 구차하게 생을 연명하기보다는 준비해둔 약을 먹고 고통 없이 인생을 끝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운수가 대통했다.
용문근위국의 첸의 도움으로 로프는 로도스 아일랜드와 연결되었고. 인생 제 2막을 살기 시작했다.
충분한 급여. 훌륭한 생활여건. 사치스러운 의료 서비스를 받으며 살 수 있게 되었다.
상전벽해나 다름없는 대 출세였지만 로프가 불편함을 느낀 건 당연했다.
분수에 넘치는 삶을 살았다간. 머지않아 크게 아플 일이 다가오는 것은 분명했기에.
‘로프 양. 비번이신데 정말로 죄송하지만 맡길 일이 생겼어요. 1100까지 외출할 준비를 갖추시고 제 집무실로 와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박사의 부름이 있던 그 날에도. 로프는 푹신한 침대에서 충분한 수면을 취했다. 깬 뒤에는 십 분 정도 가만히 누워서 게으름을 피우는 호사를 누린 뒤에 덮으면 땀이 뻘뻘 나올 것 같은 이불을 걷어차고 기지개를 펴고 일어났다.
그 다음엔 가만히 맞고 있으면 몸이 노곤노곤해지는 뜨거운 온수로 샤워를 하고. 체리 향이 나는 샴푸와 바디워시로 깔끔하게 단장했다. 어제 세탁해서 아직 섬유유연제 냄새가 빠지지 않은 옷을 입었다. 용문의 유명 메이커에서 샀다는 신발은 뛸 때든 걸을 때든 정말로 편했다. 구름을 신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오늘의 아침은 컬럼비아 연방식 브런치였다. 베이컨. 소시지. 해쉬 브라운 중 어느 걸 많이 담아서 배부를 때까지 먹을까를 결정하는 건 너무 행복한 고민이었다. 고민 끝에 수북히 쌓은 베이컨과 빵에 스크램블 에그를 얹은 뒤 케찹을 마구 뿌려서 먹었다.
본래 로프는 하늘을 지붕 삼아 신문지를 덮고 자고. 누더기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통조림 깡통에 물을 받아서 세수를 하고. 아침을 굶은 뒤에도 쌩쌩하게 마천루를 기어오르곤 했다. 오늘의 아침은 뒷골목 시절에 비할 바가 아니었고. 따라서 컨디션은 최고였다.
“네에. 박사. 불렀어?”
“좋은 아침이에요! 안색이 좋으시네요.”
“잠을 잘 잤거든. 리볼리 의사선생님도 병세가 안정되고 있다고 했으니까 내 몸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고.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네. 다름이 아니라... 로프 양. 컨디션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고 했죠?”
“두말하면 잔소리지. 급여만 많이 준다면 용문 중앙은행이라도 털어줄 수 있거든?”
로프는 씩 웃으며 박사에게 너스레를 섞어 말했다. 그녀는 못말리겠다는 듯 쿡 웃고서는 말을 잇는다.
“아하하.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단지 전문가의 도움이 좀 필요해요.”
“도움? 누구한테?”
“스노우상트 양이에요.”
“스노우상트? 그 짠돌이 과학자 애? 걔한테 내 도움이 왜 필요해?”
조사. 도둑질. 혹은 그에 준하는 일을 예상했던 로프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짠돌이 과학자와 자신이라니. 상당한 미스매칭이었다.
“다름이 아니고 스노우상트 양이 용문을 상대로 방범장비 납품계약을 하나 따낸 모양이에요. 용문의 몇몇 부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요. 설계를 더 보완할 방법이 없는지 고민을 하고 있더라구요.”
“아. 그 애 용문 사람이었지. 그래서? 나는 뭘 하면 되는 거야?”
“그녀의 방범 장비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전문가의 입장에서 실제로 검증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미비한 점이 있으면 말씀해주시고요.”
“밑천을 전부 드러내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지.”
“부탁드릴게요. 일이 잘 풀리면 로도스의 자금 사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보너스도 챙겨드릴 테니까요.”
돈을 더 받자고 배짱을 피울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로프의 도둑질 기술은 그녀가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생활하고 있는 유일한 이유나 다름없었으니까.
“됐어. 평소라면 보너스를 받아야겠지만. 박사를 봐서 통상요금으로 해줄테니까.”
“늘 고마워요.”
스노우상트라면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노력가로 유명했다. 용문의 하층민 출신으로 절박하게 살다가 등용문을 올랐다는 개인사는 로프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동향 사람이라면 동향 사람인데다가 비록 그 과정이 떳떳하지 않다고 해도. 그녀 역시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의 이 자리에 오른 것이었으니까. 매양 비슷해 보였다.
게다가 노력가를 돕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절박하게 사는 사람은 사소한 도움이라도 감사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가성비가 좋다.
로프는 예상했다. 오늘은 아주 보람찬 하루가 될 것 같다고. 그러나 그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스노우상트와의 일은. 그녀의 기분을 대단히 우울하게 만들고 말았으니까.
ㄷㄱㄷㄱ
스노우상트가 설계한 야스안하면 못나가는방 ㅇㄷ
이번 글은 건전함
담백하게 잘 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