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 개폐.
불쾌함의 표현.
짜증나는 사람.
귀찮은 간섭.
박사와 더스크의 관계에 대해선 이 4문단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로도스에 들어온지도 벌써 1달이 넘어갔음에도 더스크는 자신의 언니를 제외하곤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언니와도 대부분은 싸우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것은 박사도 마찬가지여서 더스크와의 대화는 그다지 길게 이어지질 못했다. 로도스의 오퍼레이터로서 더스크는 박사의 요청을 무시하진 않았다. 더스크는 작전 참가 요청에 응했고, 그것이 전부였다. 더스크는 작전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적들을 향해 그 근원모를 붓질을 해낼 뿐이었다.
그런 더스크가 참으로 오랜만에 박사에게 말을 걸었다.
"박사는 그림을 좋아해?"
그림을 좋아하냐는 단순한 질문. 하지만 박사는 그런 물음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로도스에 들어오고 나서 더스크가 거의 처음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로도스의 수장이자 그녀를 파악해야할 박사로선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어떠신거 같나요? 제가 그림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썻지만 떨리는 손을 어쩔 순 없었다. 더스크가 눈치채기 전에 떨리는 손을 서둘러 책상 밑으로 숨기고 박사는 애매모호한 답을 던졌다. 더스크는 이에 대답할 수 밖에 없으리라.
"그러게. 난 박사가 그림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몰라. 박사, 내 그림이 가지고 싶지 않아?"
더스크와의 대화는 어렵다. 대화가 제대로 이어지질 않는 기분이 든다. 박사의 신경은 이미 더스크에게로 옮겨가 자신이 쓰고 있던 보고서의 글씨가 날리다 못해 이미 지렁이로 변해버렸단 사실을 박사가 알기까진 한참 남았으리라.
"더스크씨 같은 거장의 그림이라면 환영이죠. 사실 전 그림 볼 줄은 모릅니다만... 예전에 한번 보여주셨던 그림은 굉장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뭘 봐도 그때의 그림이 떠오를 정도로요."
입에 발린 칭찬이다. 더스크가 그림을 잘그리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박사는 더스크의 그림에서 큰 감명을 얻진 못했다. 박사 자신이 예술에 관심이 없음은 물론이요, 더스크의 태도에서 박사는 그녀에 대한 평가를 후하게 내려줄 순 없었다.
"흐응......재미없네, 박사. 박사라면 조금 더 재밌는 대화상대가 될 수 도 있겠다 싶었는데, 결국 당신도 나를 대상으로서 바라보는구나. 거짓말쟁이인 '로도스의 박사'?"
박사가 자신이 거짓말쟁이인던 당연하다고 생각할 무렵, 더스크는 자신의 붓(으로 쓰는건 맞는데 아무리봐도 칼이다)을 꺼내들었다. 그것을 잠시 바라보던 그녀는 칼을 박사를 향했다.
"그래도 난 당신이 싫진 않아. 나한텐 조금 더 솔직해져도 되는데 말이야. 박사, 당신도 그렇지 않나? 짜증도 내고 싶고, 울고도 싶고, 맘껏 웃어도 보고 싶고...응?"
"그건 '로도스의 박사'로서 가질만한 감정이 아니니까요."
"...합격이야. 당신이라면 내가 재미있겠어."
무슨 소리인가. 자기가 재미있자고 나를 놀려먹었단 말인가? 박사는 속으로 당황스러움과 분노가 조금씩 올라옴을 느꼈다. 어쩐지 그녀 앞에선 평소보다 더 평정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아미야의 잔소리도, 히비스커스의 요리(...)도, 켈시의 그 화법 조차도 자신을 이토록 감정적이게 만들진 못했다. 박사는 잠시 그녀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저랑 내기 하나 하시죠."
"?"
더스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수한 의문의 표현인가. 아니면 그저 흥미의 표현인가. 박사는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앞으로 한달 안에 저를 화나게하든, 울게하든, 웃게하든 제가 감정을 못이기게 만들어주신다면 앞으로 더스크 씨 앞에서는 솔직하게 감정표현 해드리죠. 대신에 제가 이기면 더스크 씨 능력이 뭔지 알려주셔야겠습니다."
"..."
더스크는 대답을 하질 않았다. 박사를 빤히 쳐다보는 그 눈빛에선 감정을 읽어낼 수 없었다. 매번 그랬지만, 니엔과 더스크에게선 눈에서 감정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박사는 눈치가 빠르진 않았지만 그 순간 상대의 눈을 읽고 상황을 판단하는 편이었다. 심지어 W나 켈시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눈에서 감정을 읽어낼 수는 있었다. 그런데, 니엔 자매는 전혀 감정을 읽어낼 수가 없었기에 박사는 그녀들을 대하기 어려워했다.
"좋아."
더스크는 여전히 감정없는 눈으로 그에게 대답했다. 아니 어쩌면 재미있어보이는지도... 박사는 처음으로 그녀의 눈에서 감정 비슷한 무언가를 본 것 같았다.
"내일부터 시작할게. 박사, 너무 일찍 화내면 재미없으니까 잘 참아봐?"
"조건 하나만 걸죠. 뭘 해도 좋지만 제 업무에는 지장이 없을 것, 아시겠나요?"
"그래. 박사 내일 봐."
더스크는 그 말을 끝으로 문을 열고 사무실을 나갔다. 그보다 문 열때 뒷배경이 산이었던거 같다. 더스크의 능력은 언제나 박사의 큰 관심사지만, 지금은 그다지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더스크와의 대화를 위해 날려먹은 보고서를 다시 쓰고 아직 해야할 일이 남아있었다. 박사는 한숨 한번 쉬고는 다시 일에 열중했다. 오늘도 12시 전에 자긴 그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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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박사는 마침내 일을 다 끝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를 넘어 1시에 다가가는 시각이었다. 박사는 오늘도 잠 제대로 자긴 글렀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산천초목.
산이 배경에 펼쳐져있고, 냇물이 흐르며 풀과 나무가 우거진 로도스라는 움직이는 성에는 절대 어울리지 않을 풍경이 펼쳐져있었다. 박사는 자신이 드디어 피곤에 쩔어서 미쳤나 의심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자연이었다. 대체 이 곳은 무엇인가. 그러다 박사는 좀 전의 더스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일 봐.'
그게 그런 뜻이었나 생각하며 박사는 다시 집무실로 돌아가려했다. 오늘은 그냥 집무실에서 자면 되리라. 박사는 집무실로 다시 돌아가려 뒤를 돌았다. ...문이 없었다.
"무슨...?"
박사가 당황해 두리번거리자 저 멀리 더스크가 보였다. 여전히 무감정한 눈으로 박사를 바라보는 더스크. 박사는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더스크씨 이건 장난이 심한거 아닙니까!"
꽤 먼 거리에 더스크가 서있었기에 박사는 달려서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아니 다가가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가까워지지도 않았고, 주변 풍경도 달라질 생각을 안했다. 박사는 무언가 이상함을 깨닫고 멈춰섰다. 가까워지지 않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세상이 무너져내렸다. 박사가 다시 정신이 들었을때에는 그는 자신의 집무실 손잡이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 놀란 박사가 시간을 확인해봤지만, 단 1분밖에 지나있질 않았다. 박사는 기묘하게 생각했다. 자신이 순간 잠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더스크의 장난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박사가 더스크와의 내기에 너무 신경쓰고 있는 탓일까.
"피곤한가보군요...어서 들어가야겠습니다."
박사가 혼잣말하며 다시 문을 열고 집무실을 나가고 난 뒤, 집무실의 어둠에서 더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박사, 생각보다 깨는 속도가 빠른데...재미있네."
더스크는 흥미롭다는듯이 다시 어둠 속으로 녹아들듯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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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크씨?"
"왜 박사."
"이게 대체 뭔가요?"
"일에는 방해 안되니까 괜찮은거 아니야?"
"저는 오히려 일이 잘되는거 같아요. 헤헤...."
"아미야씨, 이건 그런 문제가....."
오늘 아침. 피곤에 쩐 박사가 아미야와 함께 집무실 문을 열자 나타난 풍경은 드넓은 들판이었다. 사무용구는 그대로 있었지만 펼쳐진 배경은 초원이 있었다. 여전히 원리는 모르지만 바람도 불어오고 곤충이 날아다니고 동물들이 뛰노는 말그대로의 자연이었다. 아미야는 좋아했지만, 박사는 불안했다. 자신이 더스크의 저런 환각에 당했다는 사실보다 더스크의 이런 능력 자체가 불안요소였다. 로도스의 수장인 박사로서는 더스크의 그런 능력을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박사 자신마저 손쉽게 속일 수 있는 환각은 박사에겐 가장 두려운 일 중 하나였다.
"어때 박사? 굉장하지? 순수하게 놀라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구? 이 내가 그린 그림이니ㄲ...박사?"
더스크가 자신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은 박사를 쳐다봤다. 더스크가 본 박사의 표정은 전투에서 지휘를 할 때의 표정 같아보였다. 언제나 무감정해보이는 박사가 표정을 짓는 경우는 단 둘, 오퍼레이터들과의 일반적인 대화 상황과 전투 지휘를 할 때 그 진지한 표정 뿐이었다. 전자는 오퍼레이터들의 말에 맞장구쳐주는 것이니 사실상 진지한 표정이 박사의 유일한 감정표현인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에 두뇌가 지배당하는걸 감정이라 본다면 말이다.
"박사는..."
더스크가 말을 이으려다 박사가 순간적으로 노려본 표정에 얼어붙었다. 명백한 공포, 경악, 경계의 표시로서의 날 선 눈빛이 더스크를 꿰뚫었다. 더스크는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길 잠시, 박사는 잠깐 눈을 감더니 이내 주저앉았다. 더스크가 그에게 다가가려했으나,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곤 입을 열었다
"정말 굉장하신 능력입니다. 더스크씨. 하마터면 더스크씨에게 화를 낼뻔했지 뭡니까. 전 아무래도 제 일하는 공간이 바뀌는걸 싫어하는 사람인지라.... 이런 장난도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저를 잘 꿰뚫어보셨군요."
더스크는 전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박사는 자신에 대한 경계도를 높혔으리라. 박사 자신마저 속일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경계. 박사 자신이 속임당했다는 공포가 박사를 휘감고 있으리라. 그러나, 더스크는 물러서지 않는다. 더스크는 박사같은 사람은 수백명도 더 보았으나, 그럼에도 박사같은 반응은 처음이었다.
박사는 그저 자신에게 해를 가한다는 생각으로 그녀를 경계하는 것이 아니었다. 박사는 그녀의 능력이 로도스에 영향을 끼칠 것을 두려워하고, 자신이 당하면 로도스가 어찌 돌아갈지 알기에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일 것이라 더스크는 추측했다. 더스크는 자신이 잠시 그에게 압도당했다는 사실을 인식했음에도 그에게 더 관심이 갔다. 그녀가 세상을 바라본 천년이 넘어가는 긴 세월에서도 박사같은 인물이 드물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마저 압도하는 그 살기는 그녀가 인생을 살면서 몇번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재밌는 유흥거리라도 찾았다는듯이 더스크는 박사를 바라보았다. 잠시의 침묵을 뒤로 하고 초원에 차려진 집무실에서는 바람 소리, 보고서 넘기는 소리만을 남기며 시간이 흘러갈 뿐이었다. 더스크도 또한 그 옆에서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일도 기대하겠습니다. 더스크씨. 그럼 아미야씨 내일 뵙도록 하죠."
"네 박사님! ...더스크씨, 내일은 또 어떤 광경을 보여주실건가요? 전 오랜만에 바다를 가보고 싶은데...들어주실 수 있나요?"
"...생각해보고."
"감사해요. 더스크씨."
더스크는 그런 아미야를 보며 고개를 돌렸다. 박사와의 내기였건만 어쩌다보니 자신이 부탁받는 입장이 되었다. 거절을 못한 자신의 문제도 있었으나, 박사나 아미야의 반응이 더스크가 그들에게 호의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더스크는 수십년 만에 다른 이에게 관심이 간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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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말했던대로 바다야. 나도 바다는 가본지 좀 되서 똑같은지는 모르겠지만..."
"시에스타에 가서 느꼈던 바다랑은 또 다른 느낌이네요! 그곳이 열정적인 축제의 현장이었다면, 여기는 시원하고 나른한 바다에요."
"더스크씨...또 한건 저지르셨군요... 바다는 저도 시에스타 이후로 오랜만입니다. 신기하네요. 더스크 씨의 아츠는 이렇게 실감나는지..."
박사가 더스크를 향해 웃어보였다. 더스크는 그런 박사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으나, 그는 표정을 풀지 않고 웃더니 잠시 바닷가의 물을 향해 걸어갔다. 저 멀리서 오랜만에 물을 즐기는 아미야를 뒤로 하고 더스크도 박사를 따라
"물의 촉감도 똑같고....정말 신기하네요. 이런 아츠도 있다는게 역시 더스크씨 답군요."
"내 능력은 아츠가 아니야. 박사 당신도 그건 내 기록을 봐서 알텐데?"
"..."
박사가 일어나 더스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표정하게 보이기 위해 애쓰고 있는듯 싶었지만 더스크에게 일개 사람의 감정 파악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이 남성은 여전히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더스크는 박사가 입을 열려는걸 무시하고 뒤로 돌아선 멀리 걸어갔다. 박사도 몇마디를 하는듯하더니 침묵했다. 잠깐 모래를 차는듯하더니 그는 다시 집무실 가구 쪽으로 돌아갔다. 더스크는 그런 박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렇게 조용한 풍경이라면 며칠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박사의 모습을 보며 묘한 웃김을 느낌도 잠시 갑자기 집무실 문이 활짝 열렸다.
"박사! 바다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블레이즈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더니 바다를 보곤 눈을 빛냈다. 블레이즈를 필두로 몇몇 오퍼레이터가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당황한 더스크가 박사를 쳐다보자 박사는 그녀를 바라보며 이겼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더스크를 향해 입을 움직였다.
'개인적인 화풀이'
라고 읽히는 말에 묘하게 웃고 있는 박사의 얼굴을 보고 잠시 더스크는 그의 얼굴에 먹이나 칠해주고 싶다는 기분이 되었다. 그렇게 더스크는 내일 박사에게 해볼 짓에 대해 하루종일 깊이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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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는 오늘 집무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제대로 문을 열었는데 문이 다시 닫혀있는 일이 있었다. 화장실 문을 열고 옷을 들고 씻으러 들어가려는데 문이 닫혀서 머리를 박질 않나.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는데 잠깐 사이에 다시 닫혀있고 그런 식이었다. 그리고 집무실에 들어와서 박사는 그 원흉을 마주했다.
"어서 와 박사."
문을 연 시간도 아니었는데 이미 집무실에 들어와서 차를 마시고 있는 더스크였다. 박사는 더스크가 얼굴에 승리감을 띄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게 미묘한 눈빛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보며 아미야가 입을 열었다.
"두 분 요새 들어 사이가 좋아지신거 같아서 다행이에요!"
"네?"
박사는 어이없다는듯이 아미야를 돌아봤고, 더스크도 저게 뭔 소린가 싶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아미야는 순간 당황해 "아, 아니 전까진 말도 안하시던 분들이 최근엔 알아서 찾아도 오시고...장난도 치시길래 그런줄 알았죠..." 라면서 귀를 숙이고 뒷걸음질쳤다. 그런 아미야를 보며 박사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래요. 저도 최근에 더스크씨랑 많이 친해진 느낌이긴 합니다. 예전엔 그냥 무뚝뚝하신줄 알았는데 말이죠."
박사가 그 말을 하고 커피를 한모금 마시려다 손을 심하게 떨더니 다시 커피를 내려놨다. 멋쩍게 웃고는 어제 늦게까지 TV를 봤다고 말했다. 더스크는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더스크씨도 즐기고 계신거 아닌가요?"
"그야 그건 박사ㄱ....나도 그런걸로 하지."
더스크가 뭐라 더 말을 이으려다 얼버무렸다. 그녀는 이런 내기에 다른 사람이 끼면 너무 귀찮아지겠다는 생각으로 박사와의 은밀한 내기를 계속했다. 박사는 그런 더스크를 보며 즐겁다는듯이 웃어댔지만 그녀는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째 갈수록 더스크 본인만 진지해지는 느낌이었지만 그녀가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오랜만의 유희인데 즐겨야하지 않겠는가.
여전히 유쾌하진 않은 업무 시간에 더스크는 종종 차를 바꿔가며 마셔댔다. 무표정한 얼굴은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심오한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것 같겠지만 그녀의 머릿속엔 오늘은 밤에 장난을 쳐봐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차있었다. 덮치는듯하게 그를 골려볼까했다.
그렇게 오늘도 밤 늦게가 되어서야 일이 끝나고 서로 헤어져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더스크는 그대로 빠져나와 박사의 뒤를 밟았다. 박사는 서둘러서 방으로 돌아가는듯했다. 그런데 어째 상태가 이상해보였다. 더스크는 박사가 무언가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듣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
"오늘도 당했어. 대체 왜? 대체 왜? 대체 왜?"
더스크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박사가 어두운 복도의 뒷편으로 사라지는것을 그대로 쳐다보면서 그녀는 그 복도의 중앙에 서있었다.
'뭐지? 유쾌하게 넘기는것 아니었나?'
더스크는 속으로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봤던 박사의 편집증적인 표정이 그때만 보여준게 아니었단 말인가. 더스크는 다시 표정을 가다듬고 박사의 숙소로 향했다. 그녀는 여기서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야하나 잠시 고민했으나, 괜히 경계하지 않게 하는게 낫겠다싶어 계속 몸을 숨기기로 결정했다.
"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내일은꼭"
박사는 미쳐있는듯이 보였다. 약에 중독된 환자처럼 그의 손에는 약이 한움큼씩 쥐어져있었고, 박사의 개인 방에 있는 화이트 보드에는 더스크의 능력에 대한 빼곡한 글씨와 여러가지 약들이 적혀있었다. 더스크 자신은 약에 대한 지식이 없었으나, 딱 보기에도 여러 종류의 약이었고, 하나같이 평소엔 보지 못한 종류였다. 더스크는 제대로 그것을 보지 않고도 박사가 개인적으로 그녀의 능력에 대해 파훼법을 연구하고 있었음을 짐작했다. 그 방법이 너무나 자신을 혹사해가는 방법이었지만 말이다.
'박사...그렇게나 진지하게 따지고 있던거였나...'
더스크는 손까지 심하게 떨어가며 약을 섞어대는 박사를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더 이상 박사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보다 그녀 자신도 더 이상 관여하는게 맞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의 몸이 망가지는것도 사실이었으나, 그녀가 이렇게 다 바라볼 수 있단걸 알게 된다면 박사는 더 약에 의존하려들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더스크는 그렇게 그 날에 박사가 새벽까지 연구하다가 침대에 기절하듯이 눕는걸 보고서야 박사의 화이트보드를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더스크의 능력에 대한 여러가지 추론과 그 영향에 대한 여러 가설들이 세워져있었다. 대부분은 검은 글씨였으나, 맨 밑에 붉은 글씨로 써진 "그녀들이 로도스와의 계약을 파기했을 경우"가 더스크의 마음에 걸렸다. 분명 박사는 로도스의 오퍼레이터들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 동시에 박사는 로도스의 수장이었다. 그 이후에도 오퍼레이터들 중 누군가가 변절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몇몇 인물은 변절할 경우 로도스에 심대한 위협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 점에서 박사는 더스크의 능력을 경계하는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더스크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더스크는 로도스에 들어와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연구하려는 메딕 오퍼레이터들을 가만히 놔두었다. 그 점에서 이미 더스크는 로도스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고 있건만 그 수장이 내기라는 형식으로 자신에 대해 그런 연구를 하려드는 것이 그녀에게 불쾌감을 심어줬다. 그리고 앞서 더스크는 박사를 처음 봤을 때부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박사에게 끌렸다. 그 점에서 그녀는 박사에게 거리를 뒀다. 박사는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출신도 과거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박사 그 자신마저도. 그런 이에게 다가가길 거부하면서도 그녀는 로도스에 머물렀다. 더스크는 내일부턴 어떻게 해야하나 같은 생각을 곱씹으며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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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밝았다. 박사는 평소보다 몸이 어쩐지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시간을 맞춰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어젯밤에 만들어두었던 약을 입에 가져다댔다. 첫 날부터 줄곧 먹어왔던 약이건만 슬슬 효용이 의심이 되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더스크의 능력은 박사의 예상 외였다. 무슨 약을 먹던 박사는 더스크의 능력에 일말의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녀의 능력에 말려들었다.
박사는 두렵고 걱정되는걸 넘어 경외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스크의 능력이 아츠와 다른 부류라는건 알았지만, 전혀 대응이 불가능한 종류일줄은 박사는 몰랐다. 그녀의 능력에 대한 경외감이 들기 시작하자 박사는 그녀에 대해 더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박사는 입에 물고 있어 쓴맛이 나기 시작한 약들을 뱉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더스크씨."
"좋은 아침이야, 박사."
"오늘은 무슨 장난을 칠 예정이신가요? 나름 기대되는데 말입니다."
"글쎄. 오늘은 쉴까?"
"하하 그러지 마시고 좀 알려주십시오. 더스크씨."
묘하게 대화가 엇나감을 느끼며 박사는 호기심 가득어린 눈빛으로 더스크에게 말을 걸었다. 어제 좀 건드렸다고 그러는지 더스크는 스케일 큰 장난을 치진 않았다. 사실 장난을 쳤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걸까. 박사는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그녀의 능력에 대해 얼른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스크는 박사에게 져주자고 생각하고는 능력 발휘를 하질 않고 있었다. 최소한 끝날때까지 박사가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했다. 왜 그녀가 박사를 걱정해주는진 알 길이 없었으나, 무언가 그녀의 내면에서 죄책감을 끌어올렸다. 평생 몇번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오늘은 쉬어 박사. 너무 많이 내 능력을 접하는것도 몸에 안좋으니까."
거짓말이다.
"안타깝네요...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보셔도 좋습니다. 여기 있는것도 그러실테니."
"응? 난 여기가 불편하단 말은 한 적이 없는데? 나름 괜찮아서 앉아있는거야."
"?"
"?"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갸웃대다 더스크가 먼저 웃음을 터트렸다. 더스크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킥킥대자 박사도 어느새 쿡쿡대고 있었다. 그저 옆에서 아미야가 귀를 쫑긋대며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별다른 일 없이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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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더스크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더 이상 박사한테 능력을 안쓰게 둘러댈 변명이 생각나질 않았다. 벌써 나흘째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다. 더 이상 늘이면 박사도 눈치챌 것이었다. 어찌해야할지 고민하던 그녀는 한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박사 앞에서 박사에게 능력이 통하지 않는 척 연기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박사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을것이었다. 박사에게는 결론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는 꼴이겠지만 그녀에게 그는 짧게 스쳐가는 인연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저 좀 신경쓰일뿐이라고 자기자신을 합리화하면서 더스크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좋은 아침입니다. 더스크씨. 오늘도 장난은 없나요?"
"...어라? 박사 지금 아무것도 안보여?"
박사가 더스크는 연기를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능력이 먹히지 않은 양, 박사의 반응에 당황한 양 그를 속이기 시작했다.
"네? 지금 뭐 하시고 계십니까?"
"어...그런데?"
서로 눈을 쳐다보며 한쪽은 연기하고 한쪽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었다. 더스크는 그런 박사의 표정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있었다. 박사가 더스크의 능력을 극복했다는걸 알게 되면 그는 얼마나 놀랄까. 더스크는 박사의 반응을 기대하며 그의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정작 박사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 많은 약을 쓸 때에는 전혀 저항도 못했는데 이제와서 먹히질 않는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박사는 더스크의 눈을 바라보았다. 미묘한 즐거움이 섞인듯한 눈. 그날따라 박사는 그녀의 표정이 읽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짜증으로 이어졌다.
"박사...어떻게 이게 안통하는거지?"
더스크는 명백히 지금 박사를 놀리고 있었다. 차라리 능력으로 놀리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 박사는 능력에 대해 궁금해하는 참이었다. 그런데 능력을 안쓰고 자신이 그것을 극복한 양 하는 그런 행동은 그에게 짜증을 안겨줬다. 박사는 상황과 맞물려 자신의 짜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젠 내기고 뭐고 좋았다. 그냥 그녀에게 짜증이 났을 뿐이었다.
"지금 뭐하시는겁니까?"
정색. 정적. 두 단어가 현재 집무실의 분위기를 표현해주고 있었다. 박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더스크에게 묻자 그녀는 순간 경직됐다. 박사는 가끔 그런 표정을 지었지만, 그건 남에게 짓는 표정이 아니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였는가 생각하던 찰나에 박사가 말을 이었다.
"며칠째 능력도 안쓰시고 뭐 능력에 계속 당하는건 몸에 안좋네 하시더니 이젠 뭐 이걸 극복했다? 정말 어이가 없으려니까 끝까지 없으시군요."
날 선 박사의 말이 계속되자 옆에 있던 아미야는 귀를 가리고 책상에 엎드려있었고, 더스크는 멍하게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반응은 예상 못했다. 약을 계속 먹고 있는것이 아니었던가. 이겨냈단걸 알면 좋아해야하는것 아니었나? 그녀는 그의 반응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설마 거짓말 친걸 들킨 것인가? 더스크는 그의 갑작스런 변화가 당황스러웠다. 능력 쓴다고 짜증내던 사람이 왜 이제와서 능력을 안쓴다고 짜증인가. 그녀도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자신도 그를 배려해준게 왜 이렇게 돌아오는 것인가.
"박사는 사람이 말을 하면 듣지를 않는구나? 몸에 안좋다고 했잖아. 그게 내가 진심으로 내 능력이 몸에 안좋다고 생각해서인거 같아? 박사 요 며칠 새 얼마나 피폐해져있었는지 알기나 해? 매일 약을 10개도 넘게 먹으면서 그런걸 보고도 가만히 있으라고? 내가 무슨 박사를 죽이려는 스파이야?"
더스크도 지지않고 박사에게 받아쳤다. 자신은 그를 걱정해서 이래줬더니 오히려 자신한테 역정을 내는가. 그녀는 이젠 엿본거고 뭐고 아무래도 상관 없이 내뱉었다. 박사가 그녀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내뱉을 뿐이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 그냥 내기 하나에 약을 그만큼이나 쳐먹어?! 박사, 그만큼 쳐먹다간 박사가 먼저 죽어! 매일 그 모양이니까 손도 떨고 작업 효율도 떨어지는거 아니야. 내 능력이 아츠가 아니란걸 들었으면서 그걸 대체 뭐 어떻게 이용하려고? 어차피 나랑 내 남매들 빼면 아무도 못쓰는걸. 이해가 안되는것도 정도가 있지!"
더스크가 감정을 폭발시키자 그녀의 주위에 검은 먹같은 살기가 흘러넘쳤다. 분위기가 그랬다는것이 아니라 실제로 검은 먹이 그녀의 주위로 넘실대고 있었다. 그녀가 능력을 주체하지 못하진 않았던 것인지 더스크는 금방 그 살기를 거둬들였다.
"내기는 박사 니가 이긴걸로 하겠다. 언제든지 내 능력에 대해 물어보러 와도 괜찮아. 죽을 각오나 하고 오길 바래. 니가 감당할 그릇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하겠어. 그릇이 아니면 뭐....산산히 부숴지겠지."
차갑게 내뱉은 더스크의 말이 집무실을 맴돌았다. 더스크가 문을 박차고 나간지 10분이 넘어갔으나, 집무실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말도 없었다. 기나긴 정적이 지금 사태의 경중을 말해주고 있었다. 박사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죄책감까지 들고 있었다. 더스크가 박사의 사생활을 훔쳐본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에 제대로 응하지도 않고 순간적으로 짜증을 냈다는 사실이 그의 정신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녀와 만나야했다. 박사는 더스크가 죽을 각오니 뭐니 한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박사는 조용히 일어나 아미야에게 말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오늘만 잠시...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박사님! 얼른 다녀오세요!"
당황한 아미야도 박사를 말리지 않고 보내주었다. 다음엔 아미야에게 휴가나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박사는 집무실 바깥으로 나섰다.
"더스크가 어디에 있을까..."
혼잣말을 하면서 로도스 전체를 뒤지면서 대원들에게 더스크를 보았냐 물었지만, 대원들은 오히려 최근 박사가 계속 같이 있지 않았느냐며 되물어왔다. 그러고보니 내기한 이후로 더스크는 하루종일 박사의 집무실에 있었기에 다른 대원들과 만날 짬도 없었으리라. 박사가 그렇게 하루종일 로도스를 뒤지던 무렵, 니엔이 집무실에 찾아와 박사에게 할 말이 있다는 아미야의 연락을 받았다.
박사는 허둥지둥 달려 집무실로 들어왔다. 아니, 들어왔다가 다시 날아갔다. 다행스럽게도 벽에 부딪히기 전에 누군가가 그를 받아줬지만 박사가 위를 올려다본 곳엔 보기 드물게 생긋 웃는 니엔이 있었다. 그리고 세상이 뒤집혔다.
"윽!"
박사가 신음을 내지르며 바닥에 추하게 꼬꾸라졌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니엔은 싱긋 웃고 있었으나, 누가 보기에도 화났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래서 박사가 우리 귀여운 동생을 울린거니?"
간신히 니엔을 진정시키고 서로 집무실에 앉아 대담(을 가장한 협박)을 나누려던 시작이 니엔이 그런 말을 던졌다.
"내가 아무리 우리 동생을 놀려도 한번도 안울던 애인데...대단하네 박사."
말 한마디 한마디에 뼈가 있었다. 니엔은 명백히 박사에게 화를 내고 있었고, 그런 것을 박사 또한 모르는 것 또한 아니었다. 박사는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없었다. 가만히 듣고만 있는 박사를 쳐다보던 니엔은 말을 하다가 말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일어서더니 박사를 향해 다가갔다. 박사는 또 그러려나 싶어서 가만히 니엔을 올려다보았고, 그녀는 씨익 웃더니 박사 머리에 주먹을 쥐어박았다. 박사가 어리둥절하던 틈에 니엔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풀이 죽어있냐. 빨리 더스크 찾아가봐. 너 기다리면서 그림 속에서 한없이 앉아만 있더라."
"감사합니다 니엔씨..."
"빨리 가 빨리. 고마우면 나중에 음식 대접 한번 해주던가. 로도스말고 용문식으로."
니엔의 말을 뒤로 하고 박사는 집무실 문을 잡았다. 그런 말마저 듣고 다시 생각하니 이젠 이 문 뒤에 더스크가 기다릴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박사는 숨 한번 내쉬고는 문을 열었다.
"...왔어?"
정갈한 도서관. 박사가 더스크를 맨 처음 만났을때도 이러한 분위기의 건물에서 그녀가 앉아있었다. 지금도 그녀는 비슷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때는 박사가 오든말든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에 심취해있었고, 지금은 가만히 앉아 차를 마시면서 박사가 들어오는 방향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박사는 그녀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고풍스럽고 거대한 탁자가 박사를 압도하듯이 펼쳐져있었고 더스크는 역시 아무 말 없이 박사의 눈을 들여다보듯이 그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해봐."
"죄송합니다. 더스크씨가 절 걱정해주신걸 모르ㄱ...."
더스크는 그런 박사를 보고는 한숨을 한번을 푹 쉬었다. 그런 그녀를 본 박사는 말을 멈추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박사 자신도 더스크가 뭐라고 말을 하든 그냥 가만히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 진짜 전부터 그놈의 존댓말 좀 그만하면 안돼?"
"예?"
뜬금없는 말에 박사가 고개를 들자 더스크가 어느새 일어나 박사와 눈높이를 맞추고 있었다. 정확히는 머리에 손을 짚으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제발 제발 그 놈의 존댓말 좀. 싸울때까지도 존댓말을 쓰니까 그냥 내가 나쁜놈같잖아... 자꾸 되도않게 하지말고 그냥 말 편한대로 하자고."
"하지만 그건 제 위치에서 할 말은 아닌거 같은ㄷ...."
"아 그러니까! 그냥 이런 대화할때는 반말로 하라고! 숙소에서 할때는 반말 잘만 쓰더만!"
"그건 그냥 혼잣말이ㄴ....그걸 더스크씨가 어떻게...아."
"아"
더스크도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방금까지의 따지는 말투가 거짓이었다는 듯이 그녀는 귀를 붉히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도 그러셨죠. 제가 약을 10개도 넘게 먹는다고. 그걸 어떻게 아신거죠. 설마 제 숙소까지 들여다보면서 저를 놀리려고 하신거였어요?"
"아 아니 그게... 박사가 밤에는 뭐하나 싶어서 따라가니까! 또 당했다면서 약 보고 손 부들대는 꼴을 보이니까!"
"더스크씨, 그렇게 안봤는데 변태적인 취미를 가지고 계시네요."
"아니 박사 그게 아니라니까! 자꾸 그럴래? 지금 누가 잘못했는지를 몰라!"
"아 그건 제가 죄송하다니까요...그래서 저 밤에는 어떠셨습니까?"
"야!"
더스크가 소리까지 지르며 방방 날뛰자 박사는 작게 큭큭대며 웃다가 그녀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칼까지 빼들면서 박사를 노려보자 그도 순간 놀라서 뒤로 내빼면서 입을 열었다.
"아아아아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박사가 소리까지 지르면서 말을 하자 더스크도 순간 멈칫하더니, 그의 발언을 보며 기뻐했다.
"그래! 하면 할 수 있네! 이렇게 하라고."
"아니 그게 더스크ㅆ....알았어 알았어 말 편하게 할테니까!!!"
"흐흫 당연히 그래야지."
그렇게 몇가지 합의점을 도출했다. 첫째, 자신과 대화할땐 누가 있든 자신에게 편한 말투로 말할것. 둘째, 자신과 단둘이 있거나 할땐 감정을 숨기고 행동하지 말 것. 셋째, 자신과 남매들을 신뢰할 것. 남매 중 일부가 용문에 넘어가있는건 둘째치고 아무튼 계약 관계기도 하고 자신들은 박사를 따를것이라는 것이었다. 박사도 그러한 조건에 수긍했다. 더스크가 강제로 약속을 체결시켰다는 루머가 떠돌지만, 그건 둘 말고는 모르리라.
.
.
.
"더스크, 나 심심해."
"혼자서 놀아. 나 바빠."
"심심하다고 존나 심심해!!!"
"나이도 먹을대로 먹은 양반이 왜 저래?"
"할매에 비하면 아직 어리죠? 갓난 애기 수준 아님? ㅋㅋㅋ"
"시발새끼가"
원래건데 지우고 보니까 주최자가 올려달래서 일단 올려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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