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쓴다랍시고 개그성을 첨가하긴 했지만 내가 봐도 라플란드 편은 망한 것 같아.

 2번째로 좋아하는 애인데...






“젠장! 빌어먹을! 옘병할! (심한 시라쿠사 욕)!”


항의를 시작하고 한 30분이 흘렀을까? 여전히 라플란드는 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맥주캔을 따서 들이킨 덕분에 술기운이 돌다 못해 서 아예 취해버렸다. 눈가에 눈물까지 찔끔 흘리고 있을 정도였다.

의외의 모습이지만, 이전에 용문 근위국 소속의 첸 팀장이 초대를 해서 술자리에(반강제로)참석한 적이 있었다. 호시구마나 스와이어 같은 근위국 멤버들도 같이 와서 한 잔 했을 때, 멤버들이 술 취해서 부렸던 그 추태가 떠올랐다. 박사는 비교적 술을 적게 마셔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충격적인 모습이라 그냥 잊어버리려 했다.

아무튼, 술 취하면 사람마다 다르게 변하는 게 현실이다. 술에 강하고, 약하고의 차이일 뿐, 라플란드라고 예외는 아니다.


문에 박혀 있는 그녀의 검 한 자루를 한 번 돌아보며 라플란드의 비위를 맞춰주기 시작했다. 저 문은 그냥 문도 아닌, 기계로 만든 만큼 두꺼운 철로 만든 문이다. 그런데 금이 간 것도 아니고 칼이 생각보다 깊게 박혔다는 것을 보면 굳이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겠다.


“난 박사를 믿었다고. 그래서 발정기 조사할 때도 너 고른 거라고!”

여전히 박사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기분은 약간 풀린 것 같았다.


“……굳이 안 믿더라도 너 말고는 고를 만한 녀석도 없었지만.”


이걸 기뻐해야하나, 슬퍼해야하나. 박사는 속으로 고민하다가 말았다.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라플란드가 씩씩거리면서 맥주를 한 입 들이켰다. 꿀꺽이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다시 말하는 거지만, 너, 여기 온 거, 나 때문에 온 거 맞지?”

“어, 어, 응.”


고양이 앞에 생쥐처럼 쪼그라 들었다. 그래도 생쥐는 저항이라도 하지, 박사는 저항할 용기도 없었다.

나는 기억을 잃기 전에 대체 어떤 놈이었지? 라고 한탄할 정도로 겁이 많은 인간이다.


“그래, 그래, 그러면 해야지. 나도 이걸로 버티는 거는 이제 질렸거든.”


질리게 마셨으니 질리는 게 당연한 거겠지. 다 마신 것과 마시지 않아서 바닥에 흐른 맥주 캔까지 여러 개의 캔이 바닥에 널부러졌지만 라플란드가 그 소문에 대해서 항의하는 과정에서 세 캔은 더 늘었다. 박사는 라플란드의 다음 행동을 예상하고 슬쩍 옷을 벗기 시작했다. 준비는 미래 해둬야 했다.


“근데, 나 이래봬도 경험은 없단 말이야……그래서…….”


그렇게 난리치고 언성 높이며 항의하던 게 점점 기어가는 목소리를 내니 옷을 벗으려던 손이 멈췄다. 말을 못 들어서 ‘뭐라고?’라고 물어보려고 멈춘 건 아니었다.


“……그래서……무섭거든…….”


이럴 때는 또 쓸데없이 귀엽게 느껴졌다. 술 마셔서가 아닌, 섹스라는 남녀 간의 행위를 앞두고 부끄러워진 한 명의 여성으로서의 얼굴이다.

박사도 비슷한 표정이지만, 앞선 경험이 있기 때문에 라플란드보다는 차분했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파트너를 진정시켜 차분하게 만들 의무가 생겼다.


“내가 도와줄 게.”

“해본 적 있어?”


갑작스럽게 급소를 찌르는 공격에 말문이 막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도 반쯤은 예상하고 있는듯한 표정이었다. 말 대신에 뒷통수를 긁적이며 대답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러고보니, 네가 들어온 이후로 그 빨간 녀석 냄새가 나는데.”


잠시 풀어졌던 박사의 얼굴이 굳었다. 루퍼트족이 냄새를 잘 맡는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의심하는 눈초리로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코를 킁킁거리며 박사에게 점점 다가오자, 움찔거리며 라플란드에게서 조금씩 멀어지려 하지만 의미 없는 짓이었다.


“너……?”

“……미안, 그렇게 됐어…….”


시선을 피하며 사과를 했다. 이번엔 어떤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을지 몰라서 겁이 났다. 냄새를 맡고서 박사가 레드하고 성관계를 하고 왔다는 것 정도는 눈치 채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박사에게서 나는 진한 빨간 녀석의 냄새가 불쾌해 이맛살을 찌푸리자 박사에게도 불쾌함, 공포, 호승심이 섞인 복잡한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다.


싸운다는 것에 대한 광기를 가진 라플란드가 레드를 보면서도 공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지만 동시에 싸워보고 싶다는 전투광스러운 면모를 보이는 것을 보면, 참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공포라는 감정의 비율이 더욱 높지지만 레드하고 먼저 하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며, 레드의 냄새를 맡았을 뿐인데도 어마어마한 불쾌함을 느꼈다.


“환장하겠네.”


흥분했던 것이 모닥불에 물을 부운 것처럼 모두 꺼져버린 것 같았다. 박사가 자기를 방문한 이유를 알고 있었고 피하지 못할 것을 즐길 준비까지 다 해놓은 상태에서 물을 끼얹은 어색함이 돌았다.


다음 대상들을 생각해서 레드는 마지막으로 하는 것이 나았을 것 같지만, 다른 대원들을 먼저 하러가겠다고 했어도 그 상태의 레드였다면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을 거다. 어쩔 수 없었다. 레드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지만, 그 선택을 한 것은 박사였다.


“라플란드.”


그녀를 불렀지만 반응이 없다. 팔짱을 끼고 박사를 등지고 있을 뿐이다.

박사는 그 선택을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원들간의 관계가 복잡하다고 하더라도 박사에게는 모두 같은 대원이었다. 관계가 틀어졌으면 단순히 다른 친한 주변 인물이 아니라 박사가 틀어진 관계를 다시 맞춰 주어야한다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전에 신원미상의 인물에게 한 메세지를 받았다. 그 메세지의 내용은 라플란드와 연관이 되어 있는 듯한 내용이었고 그 안의 문구가 박사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녀의 광기는 영원히 치료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라는 문구였다.


처음 라플란드의 신체 상태를 검사했을 때는 광석병 증상이 꽤 심하게 나왔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로도스 아일랜드에서의 치료로 그나마 완화되어서 이 정도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상태도 아니다. 광석병의 영향은 단순히 신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도 동반해오기 때문에 텍사스에게 광적인 집착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로도스에서도 치료 방법은 없었다. 증상을 완화만 시키고 더 이상의 악화를 막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켈시 선생이나 박사가 더욱 노력을 해야 함에도 박사는 기억을 잃었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박사는 다른 쪽으로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나마 남아있는 지휘능력과 대원들의 케어링이었다.

그 선택은 나쁘지는 않았다. 대원들에게 신뢰를 얻었고, 리유니온과의 전투에서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로도스 아일랜드 밖의 다른 협력 업체들에서도 높은 신뢰를 가져다주었고 나름대로의 입지 상승을 가져왔다.


물론, 완벽하지만은 않았다. 박사를 신뢰하는 대상들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거나 꿍꿍이가 있는 대원들도 더러 있었다.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대원들도 있으니 설명은 다했다. 그래도 박사는 포기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서 대원들의 멘토링, 사적인 교류를 가졌다.


그리고 그렇고 노력한 케어링의 결과가 이 상황이었다.


“어째서일까?”


라플란드와의 어색하다 못해 험악한 공기가 흐르던 중 라플란드가 입을 다시 열었다. 무언가 부정을 하고 싶은 것인지 고개를 젓는다.


“이해를 못 하겠어.”


박사에게 질문하는 투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확신보다는 의심이 더 큰 지금, 섣불리 라플란드에게 말을 걸만한 용기는 나지 않았다. 대놓고 보이는 것보다 숨기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다.


“네가 누구하고 먼저 하고 오던지는 아무래도 좋아. 어차피 한 다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라플란드의 말에 대답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말을 하던 도중 뜬금없이 멱살을 붙잡혀 침대 위로 강제로 눕혀져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기억도 날아가 버린 것 같다.

올려다보는 시야에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입이 귀까지 찢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쳐 생각하는 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려다. 전투만 시작되면 광소와 함께 적들을 무참히 쓸어버리기 직전에 자주 봐서 알 수 있다.


“그런데……어째서 이렇게 흥분 되는 건데!”


발정기 때의 성적인 흥분이 동반된 광기 서린 미소를 보면서 그녀가 레드를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라플란드와 나름 친분이 생겼을 때였다 먼저 소속되어 있던 레드가 지나가고 있었을 뿐인데 그녀를 발견한 라플란드가 내 앞을 막으며 저 녀석은 위험하다며 ‘보호’를 하는 듯 한 태도를 취했었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그녀를 노려보는데, 루퍼트족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여서 라플란드 또한 공포에 질린 상태임에도 박사를 보호하는 행동을 보고 내심 감동을 했었다.


……그런 줄 알았다. 유심히 살펴보니 보호를 위해서가 아닌 레드와 싸워보고 싶다는 광적인 호전성을 보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박사를 장애물로 인식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보호하려 했다가 대상을 보고 호승심이 발동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박사로써는 끔찍한 폭력적인 사태로 번지기 전에 라플란드를 데리고 빠져나와 간신히 진정시키는 것 정도가 최선이었다. 물론, 고맙다는 인사는 들어보지도 못했고.


그녀가 박사에게서 레드의 냄새를 맡고 주춤거렸던 이유가 이거였다.


하지만, 이제 무슨 상관인가. 레드의 냄새를 맡고 반응한 것을 이런 식으로 표출하는 라플란드에게 성적인 의미로 잡아먹히게 생겼는데.

그런 식으로 잔뜩 흥분한 감정을 표출 시키는 것에 따지려하고 싶은 것도 생각해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라플란드에게 붙잡혀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양이 된 꼴로 그녀의 몸을 받아들여야 할 뿐이다.

적어도 죽지는 않으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