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박사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로도스 아일랜드에 입사 비스무리한 것을 당한 로 바쁘지 않았던 날이 있었을까.

 

며칠 작전 중 오퍼레이터 한 명이 주택가를 파손시킨 것에 대한 배상도, 어제 막 입사한 신입 오퍼레이터를 로도스에 적응할 수 있게 돕는 일도, 제조소가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일도 모두 박사의 업무

 

똑똑똑. 끼익

 

노크인지 뭔지 빠르게 세 번 소리가 나 누군가 제 멋대로  . 이런 방식으로 박사의 집무실 문을 여는 오퍼레이터는 단 하나밖에 없.

 

박사? 있어? 들어간다.”

수르트. 그녀 뿐이다.

 

“…또 늦었구나.”

왔으면 된 거잖아.”

어시스턴스로 임명 된 이후로 오 분 십 분 늦는 건 이젠 일상이, 요즘따라 한두 시간씩을 상습적으로 지각하는 날이 많아지는 그녀였다.

 

오늘은 뭐 때문이니. 늦잠?”

너 따위가 알 필요 없어. 빨리 내 할 일이나 말해.”

 

그녀는 종종 부릅뜬 눈과 고압적인 말투로 역으로 성을 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느 오퍼레이터들은 겁이 나 도망가거나, 원래 이따구로 돼 먹은 인간이였지 하며 한숨을 푹 쉬곤 그냥 넘어가는 주의였다.

 

수르트. 뭐 때문에 늦었니.”

네가 알 필요 없대도! 귀찮게 굴지 마!”

물론 동료 오퍼레이터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박사라고 성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박사는 로도스의 모든 오퍼레이터들에게 상냥하게 -특히 수르트에겐 조금 더- 대해 주기 때문에, 아마 박사에게도 바락바락 대들 인물은 그녀밖에 없을 것이다.

 

가령 그랬구나, 알겠단다, 앞으론 늦지 마렴 이런 식이였다. 이 때문에 로도스의 덕망있는 인재로 평가받고 있는 게 아닐까.

 

그녀는 이런 박사의 마음을 잘 이용해먹고 있었다. 항상 반성이나 미안함이 드러나는 태도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건성으로 대충 넘어갔었다.

 

수르트.”

! 알았어 알았다고! 앞으론 안 늦을거야. 이제 됐지?”

이날 또한 손을 뒤로 한 채로 몸을 비비 꼬기나 하며 귀찮다는 양 말대꾸를 또박또박 했었다.

 

내가. 왜 늦었냐고 물었다.”

하지만 이날 박사는 평소와는 다른, 무겁고도 진지한 목소리였다. 작전 중 자신의 머리를 노렸던 리유니온 병사를 심문했었을 때도 이런 태도는 아니었다.

 

이 탓에 그녀는

“…왜 그래?”

라며 당황한 기색을 보이고

 

아니, 평소엔 잘 넘어가 줬으면서 오늘은 무슨 날이길래 이런 행패인가. 아니. 겁주는 척 하면서 곧바로 풀어지겠지.

-라며 찰나의 순간동안 적당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리곤 천연덕스럽게 집무실 소파 위로 퍼질러지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은 듯 보였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맛 아이스크림. 제가 먹을땐 마치 훔쳐는 사람이 있는 것마냥 숨고 숨어서 안전한 곳에서만 뚜껑을 여는 바로 그 아이스크림이었다.

 

수르트!! 내 말이 안 들려!”

돌연 박사의 고함 소리가 집무실 내부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이윽고 어색한 기류와 함께 정적이 흘렀다.

 

“…박사?”

다행인 점은 그녀도 눈치 정도는 있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 상황에서도 뻔뻔할 수 있을 인물이 드물지 않을까. 는 한 번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윽박질러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자가 아무리 바보라도 이 상황에서만큼은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

 

박사? 왜 그래…? 오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수르트.”

박사는 짧은 대답 한 마디를 할 뿐이었다. 좀처럼 화가 누그러뜨려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어쩌면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며칠전 작전도중 쓸데없이 흥분해 주변 건물들을 다 부숴먹었던 일? 업무 수행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오퍼레이터에게 막말을 내뱉어 로도스를 떠나게 한 일? 제조소에서 근무하던 한 오퍼레이터와 시비가 붙어 몇주간 의료실 신세를 지게 한 일?

 

원래 업무 시간이 몇 시야.”

일곱 시…”

내가 저번에 한시간 반 늦춰줬지 않았나?”

“…”

대답해!”

박사가 책상을 쾅 내려쳤다. 애꿏은 문서 뭉치만 나풀거렸다. 수르트도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그랬…”
그런데 왜 늦었나. 분명히 내가 여덟 시 삼십 분까지 오라고 말 었는데.”

“…”

그녀는 말이 없었다. 당연하지만 할 말이 없어야 정상이다. 여태까지 순순히 넘어가 준 것은 그저 친절한 박사가 눈감아 줘서였기 때문이고, 그 때마다 수르트는 변변찮은 사과 한 마디도 없었.

 

그녀의 머리가 지끈거렸고 입에선 반 숟가락 먹은 아이스크림 탓인지 씁쓸한 단맛이 느껴졌다.

 

“…또 대답 안하네. 수르…!”

사실 박사의 의도는 이랬다. 너무 오냐오냐 대해주는게 아니냐는 켈시의 의견을 수용해 오늘은  다소 엄하게 나가 아주 조금이라도 버릇을 고쳐주자는 셈이였다. 내키진 않았지만 그녀를 둘러싼 악평가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박사아내가잘못한 거 때문에 그래…? …진짜로 미안해애다시는*히끅*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

?

예상했던 것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그 천하의 수르트가 한 방울 두 방울씩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아이스크림 컵에다가 숟가락도 빠트렸고 말이다.

 

우으으박사아…”

 

이미 로도스 내부에선 싸가지 찍혀 같이 밥 먹어주는 사람이나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다만 박사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녀 멋대로 박사와 충분히 친해졌다고 생각했었기에, 이 또한 그녀 나름의 애정 표현이었기 문에, 박사는 이런 본인이라도 굉장히 아껴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러한 박사의 태도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런수르트? 수르트 고개 들어봐 수르트?”

박사아미워하지 말*히끅*아줘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는 켈시와 한 약속 따위 이제 어찌 되든 알 바가 아니었다. 애초부터 울릴 생각까지는 없었다.

 

박사는 이미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문지르며 더 엉망으로 만드는 수르트의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수르트. 얼굴 좀 봐. 뚝그쳐 뚝! 울긴 왜 울어 애도 아니고…”

흐윽히이익…”

그녀는 서럽게도 울었다. 어쩌면 박사와 영영 멀어질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꾸만 겁이 났었다.

 

그렇게 박사는 30분동안이나 그녀를 달랬다. 그녀가 꼭 안고 있었던 L사이즈 컵 속 아이스크림은 이제 다 녹아 물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박사 왜 그랬어.”
수르트 네가 잘못한건 맞잖니요즘따라 너무 늦는 것도 그렇고, 다른 오퍼레이터들에게도 상냥하게 대해 줄 순 없겠어?”

“…”

그녀는 괜히 멋쩍어 퉁퉁 부어버린 눈가를 긁적였다. 박사도 등을 토닥거려주던 손으로 그녀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잘못한 쪽은 분명 수르트였지만 왠지 미안한 마음도 들어서였을까.

 

. 약속하자. 앞으론 그러지 말기로.”
박사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걸었다. 지금 당장 부끄러운 것보다 박사의 신뢰를 잃는 것이 더 두려웠었다.

 

이제 이거면 된 거야? 화 안 내는거야?”
그건 하기에 달렸지.”
난 그런거 싫으니까. 확실하게 대답해.”

, 았어. 앞으로 나도 큰소리 안하기.”

“….”
그녀는 자신 아이스크림 컵을 내려다. 다 녹았을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웬걸 조그마한 덩어리가 아직 녹지않고 남아 있었다.

 

- 해봐.”

?”

과의 의미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너한테만주는 거니까…”

그녀는 조심스레 그 작은 아이스크림 덩어리를 뜨기 시작했다.

 

새거 사 줄게. 다 녹았잖…”

안 돼.”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것을 박사의 입으로 가져다댔다. 떠먹여주는 방식이 서툴러 입가에 조금 묻거나 플라스틱 숟가락이 잇몸을 찌르곤 해도 상관 . 이 또한 그녀의 애정 표현중 하나이기에. 박사는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