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여기는 시간이 아주 아주 오래 지났어.

함께 리유니온을 해치운 것도, 빅토리아의 계승 전쟁에 개입한 것도, 심해의 괴물들과 싸웠던 것도 전부 먼 옛날의 추억이 되어버렸네.


아미야가 왕이 되고 종족들의 폭주를 막으면서 우리의 영원할 것 같던 여행도 끝나고 말았지. 아미야를 원망하지는 않지만, 사실은 언제까지라도 박사와 함께 모험을 계속하고 싶었어.


알아.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끝나야만 한다는 걸. 그리고 이 세상을 어지럽히던 심각한 문제들이 나의 사소한 바람 때문에 이어져서는 안 되는 거겠지. 우리는 어쨌든, 과거보다 나은 세상을 만든 거니까.


그치만 박사. 어젯밤 케오가 하늘나라로 갔어.


곧 죽는 거나 다름없는 상태로 로도스에 왔던 케오가 키도 엄청 커지고 가슴도 왕창 커질 때까지 살 수 있었던 건 기적이나 마찬가지지.


하지만 결국 우리가 광석병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야. 그것 때문에 케오는 결국 어른으로서 얼마 살지 못하고 죽고 말았어.


켈시는 여전히 연구를 계속하며 노력하고 있지만, 이제는 점점 그녀도 버거워하는 모양이야. 애써 절망감을 감추려는 그녀를 볼 때마다 내 마음도 타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아.

그래도 이 세계가 죽어가고 있다는 건 아니야.


테라에는 예전보다 더 많은 아이가 태어나고 우리의 과학은 나날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지. 언젠가 우리는 재앙으로 가득한 이 행성에서 벗어나 다른 안전한 땅을 찾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우리는 광석병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광석병이 없는 세상으로 가는 거야…….


하지만 그거 알아? 우리는 이곳에서도 광석병의 위협 없이 살아갈 수 있었어.


과학이 발전할수록 오리지늄은 자신의 유용성을 끝없이 토해내지. 오리지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고 우리는 진보하는 동시에 오리지늄과의 관계를 좁혀나가.


장난감같이 작은 통신단말부터 거대한 비행선에 이르기까지. 오리지늄은 어디에나 존재하게 됐어. 이제는 시골 마을의 파이프에도 오리지늄 가스가 흐르지.


오리지늄이 없는 다른 땅을 찾는다 해서 우리의 불안이 끝나게 될까?


오리지늄은 우리의 기원이야.


우리의 발전이자 질병이고, 꿈이자 절망이야.

우리는 아무리 멀어지려 해도 광석병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어.


모험이 끝나고 박사는 결말을 맞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은 계속돼. 시작보다 오리지늄에서 가까운 곳에서 말이야. 그리고 내 몸을 좀먹는 이 검은 돌처럼 점점 더 우리의 심장 속으로 파고들겠지.


박사,

그래서 나는 암담해지기만 할 미래를 기다리는 건 그만두기로 했어.


전쟁이 끝나고 나는 잠깐 체르노보그로 돌아갔었어. 박사의 모험이 끝난 것과는 별개로 석관에 대해서 파악해두지 않으면 안 됐거든.


그곳에서 나는 원래 알려진 용도와는 다른 기능을 발견했지. 켈시가 아니라 엔지니어인 나였으니까 알 수 있었어.


석관, 그건 치료나 테라 종족의 원본화를 위한 것 따위가 아니야.


석관은 나도 아직 그 정확한 구조를 해석하지 못한 회로로 구성되어 있어. 나는 이 정체불명의 구조를 음의 시간 지연 회로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지.


내가 처음 다시 석관을 찾아갔을 때 그 안에서 처음 발견한 건 현재 시간에서 약 30분 후로 맞춰진 시계였어. 나는 그걸 본 순간 석관의 정체를 직감했지. 그리고 서둘러 내 캠프로 돌아갔어.


그 후는 알겠지? 나는 캠프에서 석관에 있던 것과 시간 설정만 다른 시계를 발견했고, 그걸 석관으로 도로 가져가 장치에 넣어 작동시켰어.


당연히 다시 연 석관 안에 시계는 없었어. 그 시계는 이미 30분 전부터 내 손에 있었으니까.


석관은 석관 내부의 존재를 제외한 세계를 설정한 시간 만큼의 과거로 돌리는 기능을 가졌어. 바깥에서야 타임머신처럼 석관 안이 과거로 간 듯 보이지만, 안에 있는 존재에게는 세상이 거꾸로 과거로 돌아가버린 거지.


말장난이라고? 맞아. 이건 말장난이야. 둘은 같은 거니까.

그래도 나는 앞으로 훨씬 나쁜 짓을 할 테니까, 실없는 농담 정도는 용서해줘.


나는 지금부터 세상을 과거로 돌릴 거야. 박사와 여행하던 그 시절의 과거로. 거기엔 조금 더 어린 켈시도, 아미야도어제 사라진 케오도 있겠지.


나는 곧 죽을 테니까. 그 세상을 오래는 볼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래도. 나는 모험 후에 남겨져 영원히 병들어갈 세상보다는, 여행의 결말을 위해 뛰어가길 반복하는 세상이 낫다고 생각해.


석관에 타서 장치를 작동시키는 것과 동시에 내 인생은 이 순환 속에 못 박히겠지. 모험의 끝이 아쉬워서 이 석관으로 돌아와 세계를 거꾸로 돌리는 순환.


박사,

난 우리가 시간을 초월해 이어져 있다고 믿어.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반드시.


-클로저



*오마주잇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