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살인적일 정도로 업무가 점철된 당신의 일과표에서, 잠깐의 휴식 시간을 찾을 수 있다면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퍼퓨머의 정원을 추천하겠다.
타박- 타박- 타박- 타박-
그녀의 정원에 좋은 향기나 맑은 공기로 가득하다는 사실은 두말하면 입아플 뿐이다. 포덴코의 말을 빌리자면, 정원으로 가는 길 자체가 두근거림과 기대로 가득차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게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도 있는 것 같다.
“…후우…”
쌓이고 쌓인 일을 드디어 끝나며 기진맥진한 상태의 박사가 정원 문고리를 잡는다. 이 방문이 그의 처음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많이 와본 것도 아니라 네 다섯 번 째인게 -포덴코의 말을 또 빌리자면- 소위 말하는 새내기 정원쟁이다.
박사는 문고리를 잡아 돌리며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러자 향긋한 내음이 사방팔방에서 코를 마구 찔러댄다. 장담컨대 테라에 존재하는 그 어떤 언어를 쓰더라도 이 향기를 쉽사리 정의내릴 순 없을 것이다. 상쾌하고도 부드럽고, 어딘가 따뜻하면서 달큰하며 정원을 나가면 곧바로 그 감각이 잊혀지는 게 이 세상 어디를 다녀와도 이만한 공간은 없으리라-
-고 생각하며 박사는 들뜬 마음으로 정원 내부로 걸음을 이어간다. 빅토리아의 외딴 시골서 매우 어렵사리 구한, 오리지늄 축적률이 극히 낮은 그 토양을 꾹 꾹 눌러밟으며 말이다.
“어서와, 박사 군. 늦었네?”
퍼퓨머다. 단아한 자세로 인자한 미소를 띄며 의자에 고이 앉아있는 바로 그녀다. 타이밍도 참 좋은 것이 방금 막 주전자의 물이 끓었다.
“밀린 업무가 있어서요.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퍼퓨머씨. 사흘? 나흘?”
“이틀째란다. 앉으렴. …그리고 여기선 편히 불러도 된단다? 누가 보는 사람이 없으니.”
그녀는 의자를 쭉 끌어 준다. 동시에 미리 티백이 담긴 찻잔에 뜨거운 물을 쪼르르 붓기 시작한다.
“차 고마워요 레나.”
그는 찻잔을 받아들곤 그 위로 코를 가져다댄다. 새빨간 색깔과 시큼한 향이 이게 뭔가 하는 생각도 들게 했지만 아무렴 그녀의 차 선택에서 호불호가 갈렸던 적은 없었으니 마시기 적당한 온도가 될 때까지를 기약하며 찻잔을 다시 내려놓는다.
“레… 나?”
“예. 역시 퍼퓨머가 더 익숙하나요?”
“흐음… 언젠가 박사 군에게 ‘누나‘라고 불려 보고 싶은걸?”
“…예?”
“후후… 장난이야. 박사 군은 역시 반응이 귀엽다니까.”
“…놀리진 말아 주세요… 깜짝 놀랐잖습니까. 요즘엔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흠칫흠칫 하는 일이 많아요.”
그도 그럴 것이 다크서클로 줄넘기를 할 거라는둥, 피부가 퍼석퍼석한 게 백파이프가 갈아서 감자를 심어도 되겠다는 둥 자조섞인 농담을 던질 힘도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휴식을 만끽하고 싶었던 그는 입술에 찻잔을 가져다댄다.
“그래? 오늘은 또 뭐가 우리 박사 군을 못살게 굴었을까?”
“맨날 같은 놈들이죠. 문서 작업, 현장 검사, 모의 작전 총감독…”
“그래도 박사 군 덕에 로도스가 잘 돌아가는 거잖니.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라?”
“그으럼. 자부심을 가지렴.”
“자부심을 가질 게 뭐 있을까요… 하는게 당연한 것이요 못하면 욕 먹는게 이 자리 아니겠습니까?”
두 모금 째를 홀짝거린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겠니, 사람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닌걸. 일하면 일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하는 법이야. 이참에 켈시 선생님께 박사군의 스케쥴을 조정해 달라고 해야겠어.”
“바로 기각당할 걸요. 그 괴팍한 할망구 성격 아시잖아요?”
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녀와 이렇게 대화할 때면 쌓였던 피로가 녹아내려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불쌍한 우리 박사… 힘들땐 항상 터놓고 말하렴. 내가 최대한 도울 테니까.”
“하아. 그 말이 듣고 싶었어요. 눈물이 다 나도록 고맙네요 진짜.”
“하하. 박사군의 도움이 된다니 기쁜걸?”
세 모금 째를 홀짝거린다.
그러고보니 박사는 정원으로 쓸 장소로 제법 큼지막한 창고를 그냥 통째로 줬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한 8할 가량이 텃밭으로 차 있다.
“저 묘목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아… 저거? 사르곤에서 구한 건데…”
“전에 멜란사가 저 묘목을 다듬길래 물어봤죠. 그… 접목? 접목 맞나요? 나무를 붙이고 있던데…”
“응? 아. 접목. 응 그래 맞단다.”
“실제로 보니 더 신기하더라고요. 저녀석 이파리가 뾰족뾰족한게 영 약재론 못 써먹을 것 같단 말이에요.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으응… 그…게! 테트라하이드로… 아유. 너무 길어서 나도 까먹어 버렸네. 하하… 저 아이는… 그냥 실험용으로 키우고 있는 중이야. 응.”
“허허.”
네 모금 째를 홀짝거린다. 환풍기 팬이 윙윙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환기 말이에요. 저게 어디로 이어져 있었죠?”
“저 환풍구 말이니?”
그녀는 정원 한쪽 벽 구석의 커다란 환풍구 구멍을 가리킨다.
“네.”
“로도스 전체. 이를 테면 복도라던지, 구내 식당이라던지, 휴게실이나 다른 분들의 숙소라던지 말이야. 질 나쁜 공기들은 여기로 오고, 이 아이들이 내뿜는 산소들은 그런 곳으로 가지.”
“그렇담 여기가 로도스의 허파 같은 곳이겠네요.”
다섯 모금 째를 홀짝거린다. 아직 잔에 차가 반이나 남아 뜨거운 연기를 내뿜고 있다.
“박사 군은 요즘 어떠니?”
“항상 피곤하고 항상 컨디션 난조죠. 휴가란게 있을까 모르겠네요.”
“그런 것들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이랑 어떻게 잘 지내냐는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요?”
박사는 곰곰이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냐니? 만나는 이들이란 로도스의 오퍼레이터들 뿐인데? 생각해 보니 좀처럼 사적인 얘기를 꺼내본 기억이 없다.
“글쎄요. 친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네요. 레나 씨 빼곤 말이에요.”
“흠… 그럼 박사 군에겐 나밖에 없는 건가?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니?”
“또 놀리는…!”
“으으응! 아니야. 솔직히 그러고 싶은걸. 박사 군이라면 뭐든 다 괜찮으니까. 가령 응석을 부린다던가…”
“…전 애가 아닙니다. 그리고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박사는 갑자기 목이 타 남은 차를 한입에 털어 넣는다. 아니나 다를까 충분히 뜨거운 찻물은 그의 입천장을 익혀 버리기에 충분했다.
“카학! 컥!”
“박사 군? 괜찮아?”
주르륵 다 뱉어냈지만 아직도 입안은 타는 듯 얼얼하다. 그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한다.
“개… 개차… 후악 흐… 쓰읍…”
“박사군 여기 좀 봐. 아- 해보렴 아-”
그녀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이파리를 몇 장 꺼내 짓이긴다. 여기서 괜찮다 거절하면 한사코 잔소리를 얻어들을 게 분명했기에 하는 수 없이 입을 벌린다.
퍼퓨머는 박사의 입 안 구석구석에 진액이 터져나온 이파리들을 문지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고통이 조금씩 사라진다.
“조심 좀 못 하겠니? 이런걸 보면 박사도 아직 애라니까…”
“하하 참… 부끄럽네요.”
그녀는 다정하게 박사의 뺨을 쓰다듬는다. 온화한 미소와 함께 말이다. 그걸 본 박사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붉힌다.
“레… 레나?”
“가만히 좀 있어보렴. 박사 군은 동생같아서 자꾸만 가까이 있고 싶어져.”
그는 항상 그녀와 마주할 때마다 어딘가 편안함을 느꼈다. 그것이 왜인지는 여태 정원의 산뜻함 때문인 줄 알아왔거니와 지금 와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중이였다.
“흠… 박사 군과 같이 있을 시간이 좀 늘었으면 좋으련만… 우리 박사…”
그는 침을 꼴딱 삼키고 어렵사리 입을 떼기 시작한다.
“레… 나…?”
띠리리리리리리리-
일순간 박사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려퍼진다. 발신자는 클로저.
“박사? 어디야? 지금 괜찮아?”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클로저?”
“어… 별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 별거 맞나? B-402 알지? 제3제조소 말이야. 여기 원래 빈 공간이 있었나?”
“예? 그게 무슨 말이죠?”
“크루스가 벽에서 바람 소리가 난대서 내가 가서 퉁 퉁 쳐보니 정말로 빈소리가 나는 거 있잖아? 아니 이게 설계도 도면을 봐도 원래는 그냥 벽이여야 하는데… 해서. 박사, 진짜 미안한데 여기로 와줄 수 있겠어?”
“네. 지금 가겠습니다.”
“오케이-”
전화를 뚝 끊고 의자에 걸어 두었던 외투를 다시 입는다.
“어… 박사? 어디 가?”
“클로저씨가 일이 좀 생긴 것 같아서요.”
“그건… 다른 오퍼레이터들이 해도 되는 게 아닐까…?”
“걱정 마요. 곧 돌아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요.”
“자…잠깐 박사! 제조소엔 아무 것도 없으니까…”
“네? 아무 것도 없어요?”
퍼퓨머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니까… 어어… 그럼 박사. 빨리 돌아와야 한다? 응?”
“차 맛있더라고요. 한 잔만 더 타줘요. 바로 돌아올게요 레나.”
일에는 항상 충실한 박사라도 그녀와의 행복한 시간을 빼앗긴 것에 대한 섭섭함은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농땡이를 피운다 치면 레나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후다닥 해치워 버리고 그녀 얼굴을 다시 보고 싶었다.
“박사 군?”
“예?”
떠나가는 박사를 그녀의 목소리가 붙잡는다. 그가 뒤를 돌아보니 조그마한 사탕을 앞니로 물고 있는 퍼퓨머가 보인다.
돌연, 그녀가 박사의 목덜미를 감싸안고 입을 마주친다.
“…?!”
이거보니까 예전에 올라온 퍼퓨머 야설 생각나네 - dc App
링크 "줘"
로도스 마약왕
들여온 묘목이 대충 최음향이 나는 식물이고 숨겨둔건 마약이노
빨리 뒷편 "써줘"
THC ㅋㅋㅋㅋㅋㅋ
코코다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