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보다 강한 적과 싸워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싸우지 않는다, 약한 지점을 찾아내 공략한다… 등등 전부 옳은 말이다.

하지만 비글이 선택한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비글은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어, …잠시만요. 에. 됐다. 좋아요, 이제 기록되고 있어요.]

 

고무 창을 꼬나든 팽이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창을 지르는가 하더니 비글이 방패를 올리는 걸 보자마자 곧장 왼발로 방패를 걷어찼다.

 

균형을 되찾으려고 해보지만 팽의 공격은 신속하게 이어졌다. 그녀의 고무 창이 비글의 어깨와 귀를 스쳤고 대련은 두 번 볼 것도 없이 끝나고 말았다.

 

“손잡아. 안 다쳤어?”

 

팽은 주저앉은 비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응. 고마워요.”

 

“방어가 너무 단단해서 방법이 안 보였는데, 마침 이런 편법이 기억났지 뭐야? 이러지라도 않았으면 못 이겼을 거야.”

 

“…에헤, 그런가요?”

 

마치 접전이었던 것처럼 팽은 말했지만, 사실 비글은 그녀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볼리바르 저항군에 있을 때도 지금도, 여전히 비글은 팽의 변칙적인 공격에 저항하지 못하고 수를 놓치고 만다.

 

팽이 듀나 교관과 먼저 떠나버리고, 남겨진 비글에게 크루스가 다가왔다.

 

“또 졌어?”

 

“응…….”

 

“비글은 너무 정직한 구석이 있어.”

 

“정직하다니?”

 

비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무슨 뜻일까~?”

 

“말해줘!”

 

그렇게 보채도 크루스는 항상 짓고 있는 의미심장한 미소로 일관할 뿐이었다.

 

“배고파 밥이나 먹으러 가자. 얼른 안 먹으면 히비스가 지옥의 요리로 찾아올 거야!”

 

그러면서 크루스는 달아나버렸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따라 식당에 와서도 비글은 계속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공격하는 척하면서 발차기… 발차기 후에 상체로 두 번 지르기…….”

 

비글의 머릿속 혼돈처럼 그녀의 포크도 완두콩 사이를 방황했다.

 

‘……글!’

 

“상체를 굳히면 둔해지고… 하체를 굳히자니 위가 비고… 팽 대장은 어떻게 그렇게 전환이 빠른 거지……?”

 

‘…비글!’

 

누군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발차기가 문젠데… 발차기가아…….”

 

“비글!”

 

“네! 네?”

 

그제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알아차린 비글이 벌떡 일어섰다. 그녀를 부르던 것은 듀나 교관이었다.

왜 그러시냐고 교관에게 물으려던 찰나, 비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심각한 표정을 한 듀나 교관의 등 뒤로 식당의 모든 대원이 한 곳을 바라보며 일어서 있었다.

 

비글은 그들의 눈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가져갔고… 그곳에는 언제나 스포츠웨어 광고를 띄우던 와이드스크린이 낯선 분위기의 뉴스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 순간 고요는 해일처럼 몰려와 그녀와 로도스를 집어삼켰다.

 

[라이타니아 개입으로 볼리바르 내전 발발]

 

‘…네. 그래서 7월부터 계속 전쟁, 전쟁, 전쟁이었어요. 라이타니아 개입으로 일어난 싸움이라고는 하지만… 이번이 4차죠. 4차 이전에도 계속 볼리바르의 내전은 라이타니아와 컬럼비아의 대리전 양상이었어요. 라이타니아는 기존 내각을 지지하고… 컬럼비아는 현 민주 정부인 저항군을 지지하고.’

 

비글은 기록영상을 끄고 막사 바깥으로 나섰다.

막사들 사이 멀리에서 도베르만 대령과 내각 고관으로 보이는 인물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멍하니 그들을 보는데, 누군가 비글의 어깨를 툭 쳤다.

 

“크루스.”

 

전쟁 중인데도 그녀는 여전히 실실 웃는 얼굴이었다.

 

“뭐해?”

 

“그냥 교관… 아니 대령님이 계시길래. 누구랑 이야기하시는 걸까?”

 

“내각 장관. 이번 행군에서 민간인들이랑 같이 볼리바르 밖으로 빠져나갈 생각인가 봐. 그 뒤에 시민들을 자기 손으로 인도했다… 뭐 그런 식으로 포장하려는 거 아니겠어? 그렇게 자기 목숨도 챙기고 정치적 명분도 챙기고. 그럴 생각이겠지.”

 

역시 크루스는 머리가 좋다. 나는 설명해줘도 어려워서 잘 모르겠는데. 비글은 대령과 크루스를 번갈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혹시 이대로 저 사람들이랑 빠져나가면 더 싸우지 않아도 되는 걸까?”

 

“그럴지도.”

 

“헤헤, 그럼 다행이네…….”

 

안심하는 비글에게 크루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글쎄.”

 

“?”

 

“우리가 이 나라를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는걸.”

 

“왜? 멀긴 하지만 우리는 후방 부대고…….”

 

“정보가 새어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아마 내각 장관이 여기 있는 걸 저항군 측도 알고 있겠지. 아마 곧 공격받을 거야 이 캠프는… 아니면 행군을 뒤쫓던가.”

 

그렇게 말하는 크루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져 있었다.

 

3년 전.

볼리바르의 4차 내전에서 로도스는 라이타니아 측인 기존 내각을 지지하기로 했다.

 

도베르만을 비롯한 볼리바르 민주 정부, 즉 저항군 소속이었던 오퍼레이터들은 반발했지만, 결국 수뇌부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정권을 잡은 민주 정부의 부패는 기존 내각 이상이었고, 국내에서는 체계적인 인종청소가 자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선택에 끝까지 반대한 대원들은 로도스를 나갔고 그중에는 팽도 있었다.

 

볼리바르를 위해서 많은 볼리바르 출신 대원들이 로도스의 결정을 받아들였지만, 팽만은 달랐다.

 

팽의 가족은 볼리바르 저항군 소속의 군인이었다. 그녀가 퇴역한 뒤로도 그녀의 가족들은 여전히 군인으로서 복역하고 있었다. 팽에게 내각 소속으로 전쟁에 참여하라는 것은 자신의 가족들을 쏴 죽이라는 말과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결국 팽은 떠났고, 지금은 저항군으로 돌아갔다는 것 이후로 감감무소식이었다.

 

비글은 팽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크루스…….”

 

“응. 비글.”

 

“거기서 쫓기다가, 결국 싸우게 되면… 팽 대장이랑도 만나게 될까?”

 

“그럴지도.”

 

크루스의 건조한 목소리에서 비글은 마른 장작의 냄새를 맡았다. 금방이라도 타오를 듯이 메마른.

 

“그럼 크루스.”

 

“응. 비글.”

 

“그러면 팽 대장이랑 맞서서…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비글은 너무 정직하다니까.”

 

크루스는 떨리는 비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비글을 감싼 크루스의 손은 타는 것처럼 뜨거워서 비글은 벽난로 앞에라도 앉은 것처럼 점점,

 

점점. 눈이 감겨왔다.

 

[그리고 비글은 눈을 떴다.]

 

“집중해! 또 맥없이 져버릴 거냐! 이번엔 목숨이 걸린 싸움이라고!”

 

“헤헤… 적으로 만난 사람한테 할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가까스로 쥐고 있는 방패와 숏소드의 손잡이는 마치 불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이걸 힘으로 잡고 있는 건지 아니면 손에 녹아서 엉겨 붙어 있는 건지 비글은 분간하기 힘들었다.

 

팽과 비글, 두 사람은 적으로서 행군의 최후미에서 만나고야 말았다.

 

“지쳤네요. 팽 대장. 너무 오래 걸었네요, 너무 오래 싸웠고요.”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지나치게 길어진 백병전의 한가운데서 모든 병사는 버려진 검투사들처럼 두려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덕분에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은 잠시 숨을 고르고 대화할 기회를 얻었다.

 

“난 팽 대장이 가족들을 데리고 볼리바르를 탈출할 줄 알았어요. 우리가 지금 하는 것처럼요.”

 

“그러게나 말이야.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왜 그러지 못했죠?”

 

“내가 왔을 땐 이미 전부 죽고 난 뒤였어. 오빠도, 남동생도, 부모님도 전부. 군대에 들어와서… 정말 미친 듯이 찾아다녔는데.”

 

“그럼 왜 지금까지 계속 싸워온 거예요.”

 

“그러게. 왜였을까.”

 

팽은 하늘을 우러렀다.

 

그러나 곧이어 그녀는 창을 고쳐 들었다. 이번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창이었다.

 

“미련 같은 거겠지.”

 

팽은 말을 맺는 것과 동시에 창을 질러왔다.

 

방패가 없는 좌반신을 집요하게 노리는 공격. 체력이 다해가는 상황일 텐데, 여전히 팽의 공격은 대담하고 날카롭게 비글의 방어를 파고들었다.

 

제자리에서 하나, 둘. 오른발 반보와 함께 둘, 셋. 오른 손목을 노린 네 차례의 공격이 한 호흡 안에 쇄도했다. 비글은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점점 팽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다음 공격에 나서려는 팽에게 빈틈이 보였다.

이미 반보 전진한 채로 한발을 더 내딛으려던 그녀가 방패에 너무 가까이 다가온 것이었다.

 

비글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방패를 거칠게 내밀었다.

 

“…윽!”

 

팽이 짧은 신음과 함께 눈밭에 굴러 넘어졌다.

 

창을 짚고 일어난 그녀는 밭은 숨을 토했다.

 

“강해졌구나.”

 

한쪽 이마가 찢어진 그녀의 눈 위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피를 슥 닦았지만, 그 눈을 다시 뜨지는 못했다.

 

“노력이 느껴져.”

 

“팽을 이기고 싶었어요. 어떻게든.”

 

“그럼 왜 찌르지 않았어? 쓰러진 날 죽이러 와도 나는 아무 저항도 못했을 텐데.”

 

“그렇지만 죽이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야.”

 

팽은 다시 비글 쪽으로 창을 세워 돌진했다. 다른 전사였다면 그녀를 마무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정도로 맹렬한 돌격이었다.

 

“팽!”

 

그 돌진에 맞서 비글은 방패를 들어 그 자리에 버티고 섰다.

 

그때 팽의 중심이 하체를 중심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그리고 그녀의 왼발이 비글의 방패를 걷어찼다.

 

비글은 팽이 돌격을 시작할 때부터 그녀의 발차기와 발차기에서 이어지는 두 번의 연속된 공격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것이 팽의 변칙성에 숨겨진 단 하나의 규칙이라는 것도.

 

“비글…….”

 

하지만,

 

“왜…?”

 

비글은 팽의 공격을 방어하지 않았다.

비글의 목덜미에서 피가 쏟아진 피가 새하얀 눈밭을 붉게 물들였다.

 

팽은 고꾸라진 비글에게 달려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왜 그런 거야…!”

 

“…크루스가 그러더라고요. 저는 너무 정직하다고.”

 

“말하지 마! 피가……!”

 

“…그래서 연구를 많이 했어요. 정직함이란 뭘까… 어떻게 해야 좋을까…….”

 

팽의 피 섞인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비글의 뺨에 떨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친구를 죽이는 방법 같은 건 모르겠더라고요.”

 

힘겨운 미소가 비글의 입가에 맺혔다.

 

“그러니까 정직한 건 그만두기로 했어요. 싸움이 이기기 위해서 하는 거라면… 지기 위해서 싸우는 건 정직하지 않은 일 아닐까요?”

 

팽은 말이 없었다.

 

“…어때, 똑똑하죠 저?”

 

그리고 비글도 말이 없어졌다.

 

[…기록 끝. 레코더 껐으니까 이제 마음껏 말씀하셔도 돼요. 저도 내용은 못 들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수고하셨어요. 박사님. 크루스도.”

 

히비스커스는 두 사람과 인사를 주고받은 뒤 먼저 면담실을 떠났다. 박사는 히비스를 따라나서려는 크루스를 조용히 붙잡았다.

 

“…이게 전부 팽한테 들은 이야기라면, 그녀는 어디에 있지?”

 

“그건 나도 알 수 없어. 대장이 이 이야기를 한 건 전부 편지를 통해서였고, 내가 편지를 전해 받은 건 볼리바르 대행군이 끝나고도 몇 달이나 지나서였거든.”

 

“히비스와 라바에게는…….”

 

“당연히 알릴 생각 없어. 만약 그런다 해도 시간이 꽤 지난 뒤라야 좋겠지.”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가봐도 괜찮아. 만약 팽에게 다른 연락이 온다면 알려주길 바라.”

 

“명령이야?”

 

크루스는 물었다.

 

“아니.”

 

“그럼 안 알려줄래.”

 

크루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문 너머로 깡총깡총 뛰며 사라져버렸다.

 

“후우.”

 

그런데 박사가 한숨을 내쉬었을 때, 가버린 줄 알았던 크루스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래도 박사.”

 

“…응?”

 

“너무 걱정하지는 마.”

 

“왜?”

 

“언젠가 팽은 돌아올 거야. 눈이 녹고, 상처도 아물면…….”

 

크루스는 다시 문지방 뒤로 얼굴을 숨긴 채 말했다.

 

“그게 비글이 바라던 결말이었을 테니까.”

 

여전히 박사는 그녀가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fin



-비글의 '친구를 죽이는 방법'

-이 글은 미래에 있을 비글의 죽음에 관여한 게 팽이라는 추측을 기반으로 쓰여졌음. 볼리바르의 정세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명일방주의 설정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사실 이 추측 자체는 틀린 것일 가능성이 높음

-추측의 배경 중 하나인 비글의 스킨에서 비글은 (아마도)자신을 죽이러 온 상대에게 반말을 하거든.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비글이 팽을 부르는 말은 '팽 대장'이고 존댓말을 함

-어쨌든 글 자체는 오랜만에 괜찮게 쓰여진 듯 싶음. 재밌게 읽어줬으면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