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의 앞으로 살인예고가 도착했다.

 

 낡은 편지봉투에 새빨간 장미 무늬 인장. 당신을 죽이겠다는 간결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발신인은 당연히 모르고 기존에도 몇 명의 희생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괴담처럼 들려왔다.

 

 박사는 이 질나쁜 장난의 주인을 찾기 위해 켈시에게 자문을 구했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걸까?”

 “알 수 없지. 의도를 읽으려고 하는 것도 소용 없어.”

 

 박사는 탁상에 걸터앉은 켈시를 올려다본다.

 

 “?”

 “먼저 생각을 한 뒤에 질문했으면 좋겠는데 박사. 장난은 원래 그런 거야. 남의 불행으로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저열한 욕망. 달리 뭐가 더 있겠어?”

 “하필 그게 나였어야 할 이유가 있나?”

 “그것도 마찬가지야. 원래 불행이 대상을 고르는 데는 이유가 없어. 결과만이 있을 뿐이지. 굳이 이 장난꾼을 찾고 싶다면 로고스나 모스티마를 귀찮게 하도록 해. 이런 종이 쪼가리에서 단서를 찾는 데는 능통할 테니까.”

 

 켈시는 탁상에서 일어났다.

 

 “가려고?”

 “너와는 달리 할 일이 많거든.”

 

 켈시는 박사의 이마에 키스한 뒤 결제된 서류를 쥐고 사라졌다.

 

 박사는 켈시의 말 대로 대원들에게 도움을 구해보기로 했다.

 

 “로고스 어딨어?”

 “임무 나갔어. 늘 그렇듯이.”

 “모스티마는?”

 “석 달 전부터 안 나타나. 늘 그렇듯이.”

 

 이때 박사는 깨달았다.

 

 켈시는 그들이 없는 것을 알면서 박사에게 추천한 것이었다. 박사가 시답잖은 장난 때문에 바쁜 대원들을 귀찮게 하는 일이 없도록.

 

 “이런.”

 

 그때 누군가 박사의 등에 부딪혀왔다.

 

 신임 대원 팔라스였다.

 

 “. 박사. 미안합니다. 너무 휘청대며 걷고 계시기에 그만.”

 

 팔라스는 그렇게 말했지만 척 보기에도 휘청대는 건 그녀 자신이었다. 과음을 한 모양이었다.

 

 박사는 거의 인사불성처럼 보이는 그녀를 방에 데려다주었다.

 

 “이런 이런. 박사. 수고를 끼쳐드려 더할 나위 없는 사죄의 마음을, 그리고 영광스러운 미노스 제사장의 이름아니, 보잘것없는 일개 대원의 이름으로 무궁한 감사를 전합니다. 부디 이 미천한 필부의 사과를 받아들이시어 날밤이 새도록 우조라도 한 잔 걸치시는 건 어떠한지, 우조란 미노스 전통 주류의 하나로서…….”

 

 끝간데 없이 길어지는 팔라스의 횡설수설을 뒤로하고 방을 나서려던 차 박사는 방 안의 갖가지 물건들이 눈에 밟혀 멈춰 섰다.

 

 그녀의 방에는 과거의 서사시를 적은 두루말이, 너무 오래되어 얼개를 알 수 없는 오리지늄 아츠의 비전서, 그리고 무시무시한 외견의 주술 도구들이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었다.

 

 박사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그녀의 책상에 메모를 하나 남겼다.

 

 ‘술 깨면 내 사무실로 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한밤이 다 되어서야 팔라스는 박사의 방문을 두드렸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박사. 술의 유혹이란 술에 대한 인류의 지고지순한 사랑만큼 역사가 깊은 것으로 단 한나절이란 짧은 시간을 두고 그것을 벗어나기란 쉽지만은 않은…….”

 

 박사는 그녀의 장광설을 무시하고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다.

 

 “내가 얼마 전에 받은 장난 편지야. 이 편지의 주인을 찾고 싶어.”

 “편지의 주인이라면 그것을 받은 박사님 본인이 아니신지.”

 “장난은 질렸어. 찾을 수 있어? 없어?”

 

 팔라스는 박사가 건넨 편지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봉투 표면의 낡은 질감을 느끼듯 그것을 어루만졌다.

 

 “마냥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에. 이 건에 대해서는 박사를 도울 수밖에 없겠군요.”

 “좋아.”

 “다만 박사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제가 가진 갖가지 도구의 힘을 빌려야 하니, 부디 이 필부의 방으로 몸소 찾아오시는 수고를 무릅쓰지 않고서야 아니 될 것 같습니다.”

 

 하는 수 없이 박사는 팔라스를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다시 찾은 팔라스의 방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박사가 저를 찾은 것은 필시 제가 미노스의 제사장으로서 기른 주술의 힘을 빌리기 위한 것이겠지요. 이 보잘것없는 단서에서 과거의 단서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의지하는 신의 힘뿐일 테니.”

 “그 신의 힘이라는 걸로 편지를 보낸 사람을 추적할 수 있는 건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희는 다만 덫을 놓고 그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

 “그렇습니다. 저주의 덫을 만드는 것입니다.”

 “저주?”

 

 팔라스는 말없이 몇 개의 바늘과 붉은 잉크, 그리고 쇠뿔로 만든 도구를 이용해 주술적인 의식을 행했다. 그리고 의식을 마친 편지를 박사의 품에 도로 넣어주었다.

 

 “끝난 건가? 나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그저 기다리면 됩니다. 편지의 주인은 박사의 용태를 살피기 위해 다시 편지의 곁으로 돌아오겠지요. 그때 덫은 자신의 위력을 발휘하여 범인을 감싸고, 놓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의식이 엄청 간단해보였는데. 대단하군.”

 “의식 자체는 간단하지요. 제가 하는 역할은 단지 덫의 입을 벌리는 것일 뿐이니.”

 

 박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필부의 빈약한 설명이 성에 차지 않으시겠지요.”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저주란 본디 그런 것입니다. 저주는 우리와는 관계없이 자연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기 있는 이유 같은 건 없습니다. 의미 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단지 우리는 그 저주라는 이름의 덫을 벌리는 것으로 그곳을 지나갈 희생자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지요.”

 “심오하군.”

 

 팔라스는 미소를 지었다.

 

 “심오한 것은 덫을 벌린 뒤부터입니다. 덫은 스스로 움직이거나 사냥감을 쫓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냥감을 덫까지 데려와야만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하지요. 문지방을 세 번 밟거나, 서쪽으로 딱 30보를 걷거나, 책상에 발을 올리고 C장조로 허밍을 하거나…….”

 “하지만 넌 나한테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했잖아. 이런다고 범인이 그런 복잡한 조건을 충족하게 만들 수 있는 거야?”

 “아아. 박사시여. 걱정할 것 없습니다. 저는 아주 간단한 조건을 가진 덫을 놓았으니까요. 그저 편지를 가진 채로 사나흘, 혹은 이레나 열흘. 기다리시다 보면 범인은 제 발로 나타날 것입니다.”

 

 박사는 팔라스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한 채 그녀의 방을 빠져나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박사는 팔라스의 설명에 실망했다. 그녀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허구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이용한 장난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박사는 팔라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편지를 탁상 서랍에 넣어놓고 잊어버렸다. 이레나 열흘, 한 달이 훨씬 지나서도 편지는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사는 우연히 식당에서 미노스 대원들과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팔라스를 보았다.

 

 박사의 시선을 느낀 팔라스는 똑같이 박사를 건너다보며 반갑게 인사했고, 박사는 그때서야 오래전에 받은 장난 편지에 관해서 떠올렸다.

 

 박사는 그날 밤 팔라스의 문을 두드렸다.

 

 팔라스는 문을 열고 반갑게 박사를 자신의 방으로 맞이했다. 그녀의 방은 마치 처음 방문한 그녀의 방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처럼 어수선했다.

 

 “더러운 방이지만 부디 편하게 계시길. 오늘은 필부와 이 밤을 벗 삼아 안주 삼아 우조 한 잔을 기울이기 위해 찾으셨는지요?”

 “아니. 편지에 관해 물어보려고.”

 “편지라 하심은?”

 “예전에 나한테 왔던 장난 편지. 너한테 그 편지를 보낸 범인을 찾아달라고 했었잖아.”


 그녀는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는 듯 손뼉을 모아 가슴 앞으로 가져갔다.

 

 “아아. 부디 필부를 용서하시길. 본신이 아직 건강하니 알콜성 치매와는 아직 연이 없다는 진단을 켈시 선생에게서 들은바.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 사실 그때, 네 이야기를 믿지 못해서. 편지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어.”

 “괜찮습니다. 하지만 필시 사냥감은 덫에 잡혔을 터. 편지의 지참 여부와 관계없이. 범인은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이야?”

 

 팔라스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누군데?”

 “그것은 제가 아니라. 가여운 박사.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난 범인을 찾지 못했는걸?”

 

 그 말을 맺는 것과 동시에 타는 쇠말뚝에 꿰뚫린 듯한 격통이 박사의 심장과 폐혈관을 타고 온몸을 찢으며 스며들었다.


 박사는 엄청난 통증으로 인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입에 거품을 물고 고꾸라졌다. 붉은 장미가 수 놓인 러그 위에 그가 쓰러지면서 넘어뜨린 우조가 흘러 스며들었다.

 

 팔라스는 말했다.

 

 “사냥감은 덫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덫을 벌린 사냥꾼을 보게 되는 법이지요. 보세요. 자 이렇게 잘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당신에게 편지를 보낸 필부를 말입니다.”

 

 그녀의 머리 위에 장식처럼 놓인 붉은 장미.

 

 “내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저주에는 이유가 없다는 것. 아아. 바로 그렇습니다. 저주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당신이 저주받은 것에도 이유가 없지요. 단지 나는 당신이 내 문지방을 세 번 밟을 운명을 보았고. 당신의 세 번째 방문에 저주를 완성시킨 것입니다.”

 

 그녀는 박사의 죽어가는 얼굴을 쓰다듬었다. 박사가 토한 피와 거기 섞인 우조의 향기를 음미하면서.

 

 “. 가여운 박사. 아픔이 이 손을 타고 나에게도 전해지는군요. 하지만 억울해할 것 없습니다. 박사, 나는 박사에게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까요. 단지 이유 없이 태어난 저주의 손에 당신은 이유 없는 삶을 마치고 이유 없이 죽음의 도저한 어둠 속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늘 그렇듯이 말입니다.”

 

 박사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호흡하는 마지막 숨이 자신을 저주의 무저갱 속으로 데려가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죽음이 그를 데려가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삶이, 죽음이, 이토록 허무하고도 무의미한 것이란 말인가?

 

 장난 만도 못 한 저주의 손에

이지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