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곁에서는 항상 머스크 향이 났다.
몽실한 솜사탕과 폭신한 침대를 빼 닮은 박사의 살결 냄새는 희귀한 것이 아니었다. 조향사 라나가 배합한 베이스 노트로 만든, 회사 로고가 새겨진 비누를 쓰는 사람은 로도스 곳곳에 있다. 하지만 그의 체취는 조금 특별했다. 비가 내리는 거무죽죽한 날에도 이 사람의 곁에 서면, 햇살에 말린 수건이 된 착각에 빠진다. 적어도 아미야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처음부터 박사의 체취를 사랑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비누의 향만 맡으면 질색하는 편이었다. 한참 업무에 치이고 개인실에 돌아와서, 욕조에 몸을 맡길 때까지 회사 상표를 봐야 하다니. 참을성 많은 아미야도 그런 부조리는 감당할 수 없었다. 차라리 웃돈을 주고 밖에서 구해온 제품을 쓰고 말지.
그러던 그녀가 다른 대원들의 비누까지 가져갈 만큼 그 향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개인실의 침대 밑에 쌓인 먼지만큼 시시콜콜한 계기였다. 박사의 집무실에서 당직을 섰던, 뜨거운 밤공기가 가득하던 새벽 2시. 더위에 지쳐 쓰러진 박사를 깨우기 위해 그에게 다가간 순간, 느긋한 향기가 그녀의 코 끝을 짜르르 파고들었다. 화창한 햇볕이 내려쬐는 창가에 개어둔 마른 이불 냄새. 정말 좋은 향기였다.
향이 흘러나오는 근원지는 땀이 맺혀 번들거리는 그의 목덜미였다. 후끈한 집무실의 온도가 박사의 체취를 그러모아 진하게 우려내고 있었다. 실로 먹음직스런 향이었다. 아미야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집무실의 바깥은 조용했다. 그는 잠이 든 상태였고, 마음을 끄는 꼬임을 떨쳐내기에 그녀는 너무 어리숙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진짜 마지막으로 맡고 박사님을 깨워야지.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만족하고 정신을 차리자, 자신은 이미 박사의 등에 달라붙은 채 허벅지를 모아 비비적대고 있었다. 허벅지 안쪽의 뜨뜻한 열기와 젖은 속살의 떨림에 아랫배가 근질거렸다. 여린 심장이 정신없이 뛰고, 머리는 온통 박사의 냄새로 가득했다.
처음 느끼는 끈적한 감각이었다. 그녀의 이성이 필터링하기엔 거칠었고, 감성이 수용하기엔 너무 자극이 컸다. 머릿속에 설치된 퓨즈를 끊어버릴 정도의 짜릿한 전류에 아미야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가쁜 숨을 색색 내쉬는 도중에도, 그녀의 시선은 박사에게 고정된 채 움직이지를 않았다.
아직 부족해.
좀 더 들이마시고 싶어.
한 번만 더, 아니 계속.
아미야가 당직에 자주 들어가고, 성욕에 눈을 뜬 시기도 그때부터였다. 날이 밝을 때는 보는 눈이 많았기에, 친분을 핑계 삼은 스킨십으로 조금씩 향을 들이켰다. 처음에는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있었지만, 박사의 체취는 마약보다 달큰했고 자극이 컸다. 냄새에 빠져들수록 욕구도 커져갔다. 머지않아 그녀는 야간 당직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업무를 보던 박사가 잠들면 그의 체취를 맡으며 자위했다. 처음은 허벅지 안 쪽을 비비적대는 정도였지만, 보름 후에는 속옷 위를 손 끝으로 움질거리며 박사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 달이 끝나기 직전에는 손가락으로 속살을 휘저으며, 그의 귀두 끝을 혀로 할짝였다. 박사가 잠들지 않으면 앉은 책상을 가림막 삼아, 민감한 부위를 살살 쓰다듬으며 발 끝을 꼼지락거렸다. 정 힘들 때는 준비한 수면제를 음료에 타고 그에게 권했다. 처음이 어려웠을 뿐, 자신의 욕구를 인정한 이후로 학습은 빨랐다.
당직이 아닌 날이면 박사의 개인실에 들어가 침대 위에서 한참을 뒹굴다가, 테이블 모서리로 허벅지 안을 문지르며 잘게 신음을 흘렸다. 고맙게도, 방의 비밀번호는 1223에서 바뀐 적이 없었다.
마약에 찌든 환자 마냥 하늘을 떠다니는 나날의 연속.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늘 하던 대로 집무실의 테이블에서 엎질러 자는 박사의 품에 뛰어들던 순간, 낯선 냄새에 아미야는 놀라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의 목덜미에 옅은 입술 자국과 샌달우드 향이 묻어있었다.
박사님, 이거 누구 냄새예요?
향의 주인을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항상 자신을 "에없찐"이라고 자조하던 그가 어깨를 펴기 시작하고, 우스꽝스런 발성 연습을 집무실에서 하고, 쓰지도 않는 머리 빗을 책상에 고이 모셔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상대는 얼마 전 로도스 제약회사에 채용된 화산학자, 에이야퍄들라였다. 확신하게 된 계기는 며칠 후의 비번이던 날, 박사의 개인실에 들어가기 위해 비밀번호를 누르던 순간이었다.
1223. 삐비빅.
1223. 삐비빅.
1223. 삐비빅.
1018. 철컥.
문이 열렸지만, 아미야는 안에 발을 들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 따듯한 분 내음이 가득했던 박사의 방은 없었다. 그의 손이 닿은 곳곳에 배어 있던 머스크 향은, 예전 문의 비밀번호와 함께 증발한 지 오래였다. 이 곳은 더 이상 박사와 자신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아미야는 속에서 부글거리는 역한 실망감을 게워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다른 사람이 복도에 나타나기 전에, 그녀는 재빨리 문을 닫고 자리를 떴다. 그 냄새가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는, 화장실에 도착할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한동안 그녀는 몸살을 핑계 삼아,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아미야를 걱정한 대원들이 이따금 찾아와서 말동무를 자처했지만, 그 중에 후드를 눌러쓴 사람의 얼굴은 없었다.
그 날 밤산책을 할 생각은 없었다.
늦여름치고는 무더운, 8월 달력의 마지막 종이가 뜯어지던 날의 밤이었다.
어둑한 스탠딩 등의 불빛이 남은 방에서, 아미야는 랩탑의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복귀할 컨디션은 찾았지만, 몸 상태를 염려한 켈시가 그녀에게 개인실에서 업무를 보도록 권유한 것이다. 박사에게 묻은 그 향기가 거슬렸던 아미야는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가끔씩 숨결이 거칠어지곤 했지만, 가지고 있던 그의 겉옷을 껴안으면 진정제를 주사한 마냥 맥박이 가라앉았다. 그의 체취로 발생한 불치병을 완화하는 치료제가 그 사람에게 묻은 머스크 향이라니. 커다란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어뜯고 놓지 않는 꼴이었다.
오늘은 모든 게 순조로운, 그야말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박사에게 버림받는 악몽도 꾸지 않았고, 점심쯤에는 자기와 가장 친한 새비지 언니가 맛있는 버섯 파이를 가져왔다. 커피는 완벽하게 내려져서 씁쓸한 향이 완벽한 조화를 이뤘고, 굼이 구워준 쿠키의 식감도 최고였다.
그녀가 실수로 박사의 후드를 세탁했다는 점만 무시한다면.
아미야는 이상한 신음소리를 흘리면서, 깍지를 끼고 천장을 향해 기지개를 켰다. 흘깃 쳐다본 시계의 두 바늘은 거의 겹친 채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었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자판을 두들긴 지 서너 시간은 지난 상태였지만, 모니터의 검은 선은 깜박거릴 뿐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관자놀이의 피로감이 혈관을 타고 온 몸에 퍼진다. 옆에 둔 머그잔을 집어 들었지만, 바닥이 드러난 모습을 보고 다시 내려놨다. 커피 포트는 당연하지만, 비어있었다.
재해가 닥친 이동도시처럼, 또다시 호흡이 마구잡이로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책상에 이마를 맞대고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가슴을 천천히 물들이는, 기분 나쁜 먹먹함을 뱉어냈다. 잠 기운이 발목을 붙들고 질질 매달리는 게 아니었다. 컨디션 난조의 원인은 충족되지 않는 후각이었다. 아미야는 자신을 달래기 위해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켈시 선생님이 일할 때는 집중하라고 하셨어요.
박사님 저 숨을 못 쉬겠어요.
응 집중해야지, 집중.
저 하나도 안 괜찮아요 박사님.
……그래도 잠깐 박사님 보러 가는 건 괜찮겠죠?
업무를 끝낸 것은 아니었으나, 아미야는 켜둔 랩탑을 덮고는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났다. 어차피 지금 작업하던 문건은 나중에 박사에게 들어가는 서류다. 중간 점검도 받을 겸, 얼굴이나 보자는 심정이었다. 약간 뻑뻑한 숙소의 문을 열자, 밖에는 시꺼먼 어둠이 듬성듬성 깔려있다. 그녀는 야간등의 불빛을 이정표 삼아, 칙칙한 복도를 나아가기 시작했다.
예정에 없던 밤산책이었다.
처음에는 느긋한 보폭, 그 다음은 빠른 걸음, 그리고 조심스런 달음박질. 심장 박동의 속도와 같이, 그녀의 보폭도 커져만 갔다. 집무실이 가까워질수록, 아미야는 부정맥이라도 있는 환자처럼 숨을 고를 수가 없었다. 겨우 몇 미터만 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되는데, 눈에 비친 그 거리가 무한정 늘어지며 발을 붙든다. 목에 밧줄이라도 매인 것처럼, 숨구멍이 점점 조여왔다.
간신히 복도의 끝에 도착한 아미야는 집무실 팻말을 발견했다. 집무실 안을 비추는 통유리를 블라인드가 가로막았지만, 그 사이로 희미하게 빛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새벽 당직이 누구인지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온종일 흐리멍덩한 상태로 있었으니, 생각날 리가 없다. 되도록이면 새비지 언니나 니어 씨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블라인드 틈에 얼굴을 바싹 대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장면에 그녀는 감히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박사님?
박사는 의자에 앉은 채, 누군가와 정신없이 입을 맞추는 중이었다. 물론 백 보 정도 양보하면,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녀가 열심히 찾아본 영상에서도 남녀가 밀실에 있으면, 반드시 무슨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으니, 마음이 느슨해질 수 있다는 점도 참작할 요량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허벅지에 올라탄 채로 달라붙은 사람은 용서가 되지 않았다.
에이야퍄들라. 박사를 이상하게 만든, 샌달우드 향의 주인.
이미 박사의 두 팔은 그녀의 허리춤과, 움찔거리며 곧게 펴진 허벅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상태였다. 문이 닫혔기에, 두 사람이 입술을 뗄 때마다 무슨 말을 나누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청각의 부재는 그녀에게 더 무시무시한 망상을 안겨줄 뿐이었다.
가열된 강철만큼 뜨거운 남녀의 시선과 이따금 움찔거리는 입술, 그리고 서로에게 푹 빠져 정도를 모르는 애무. 자신의 머리가 야릇한 단어들을 조합해 문장을 만들고, 그것들이 다시 엮이며 두 사람의 대화를 구성한다. 흐릿한 눈을 가진 여자가 혀끝으로 제 입술을 느리게 핥더니, 실실 웃으면서 무언가를 말한다. 박사는 그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상대의 목덜미에 입술을 여러 번 맞춘다. 머지않아 에이야퍄들라의 허리가 활처럼 휘면서 한참을 잘게 경련했다.
머리를 식히려 안간힘을 써봤지만, 역부족이다. 다리를 지탱하는 근육이 절단이라도 된 마냥, 아미야는 통유리에 기대어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들릴 리 없는 여자의 나른한 교성이 등골을 찌르자, 그녀는 쫑긋 솟은 귀를 구겨버리며 틀어막았다. 버석 마른 입술을 씹은 탓에 입가가 화끈했지만, 그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녀의 가슴이 경종을 울리듯 매섭게 두근거렸다.
언제 저런 사이가 된 거야.
오늘?
처음 입사한 날?
숙소의 비밀번호가 바뀐 날?
저 반병신 카프리니 년이 언제부터 박사님을 꼬드긴 거지?
아미야는 긴장을 풀기 위해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깎은 손톱이 더욱 짧아져 핏물이 배어났다. 로도스 안에서 온전한 머스크 향을 간직하던 곳은 이제 없었다. 박사의 곁, 그의 개인실, 이제는 집무실에도 그 냄새가 만연했다. 로도스의 모든 장소가 그녀의 갈 곳이었으나, 한 군데라도 그녀가 갈 곳은 없었다. 안식처를 잃어버린 종속적인 애정이, 음습한 감정과 몸을 섞은 끝에 애증으로 뒤틀려간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그녀는 자신이 본 장면이 꿈이길 빌었다. 필름이 잘못 감긴 영사기를 손보는 일처럼, 기억을 도려낸 후에 시계 태엽을 되감고 싶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뒤섞이며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이, 시신경에 인쇄된 채 떨어지지를 않았다. 아우성 없는 외침이 쌓이고 쌓여, 마음을 수장한다. 그리고 차게 식은 감정이 가슴의 가장 밑바닥까지 가라앉을 즈음, 아미야는 자리를 털고 자신의 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개인실의 물건들을 가져올 필요가 있었다.
로도스 전체가 깊게 잠들어있는 새벽, 집무실의 문이 슬쩍 열렸다가 다시금 닫힌다. 야간등이 모두 꺼져 있어, 음침한 침묵이 깔린 복도에 더듬거리는 걸음이 울려 퍼진다. 그 뒤를 새로운 발자국이 따라간다. 처음의 발소리가 멎고, 무언가 넘어지는 소음이 그 자리를 메운다. 잠시 후 복도 중앙에 선홍색 선이 그어진다. 멈춘 곳은 소각장이었다.
똑똑똑. 똑똑똑.
문을 대여섯 번, 2회로 나눠서 가볍게 두드린다. 이윽고 집무실 안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발갛게 상기된 얼굴의 박사가 눈에 들어왔다. 뜨거운 열기가 훅하고 얼굴을 덮쳤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야심한 시간에 온 아미야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다, 피 묻은 그녀의 맨발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의무실에 안 가고 여기는 왜 온 거야, 어쩌다가 이랬어?"
"그…… 보고서 쓰다가 막혀서, 오다가 다쳤어요."
"일단 안에 들어와. 소독하고 의무실에 가자."
박사의 손에 붙들려 집무실에 들어오자, 질척거리는 공기가 온 몸에 들러붙는다. 그는 아미야에게 소파에 앉으라고 말한 후에, 서랍에서 의료 키트를 꺼내왔다. 그녀는 박사가 치료를 준비하는 동안, 집무실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환기를 한답시고 제습기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정사의 열기는 집무실 내부에 그득했다.
앉아있는 소파의 가죽이 번들거리는 꼴을 보니, 둘은 여기에 드러누워 어지간히 즐긴 모양이었다. 그 여자가 그의 성기를 음부로 집어삼키고는 질척거리는 교성을 흘렸다고 생각하니, 어금니가 뿌득거리며 갈린다. 이젠 정말 한계였다. 자신의 생각을 알 턱이 없는 박사가 핀셋으로 알코올 솜을 집으며 말했다.
"피 닦아낼 거야. 아파도 좀 참아."
"박사님, 좋았어요?"
"……무슨 소리야. 아미야, 어디 안 좋아?"
왜 이렇게 눈치가 없으실까, 그렇게 잘나신 분이.
그녀는 축 늘어진 미소를 지으면서 박사를 지그시 올려보았다.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소파를 푹 누르고는, 가죽의 능선을 따라 천천히 상아 빛깔의 선을 그었다. 그도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핀셋을 가만히 쥔 채 숨죽였다. 집무실의 온도가 내려가며 서늘한 고요가 깔린다. 먼저 침묵을 깬 쪽은 아미야였다. 그녀는 말의 여러 곳을 딱딱 잘라가며 포문을 열었다.
"에이야 씨랑 섹스하니까, 기분 좋았냐고 묻는 거예요, 박사님."
집무실에 깔린 카페트 위로 핀셋이 툭 하니 떨어진다. 그의 요동치는 눈동자를 타고 흐르는 당혹감이, 아미야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무슨 말을 꺼낼지 한참 고민하고 있을 박사를 보고 있자니, 싱거운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이윽고 박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미야, 그 얘기는…… 나중에 하면, 안될까."
"왜 말을 못 해요, 박사님. 말해봐요, 네?"
"일단은 치료부터……"
"좋았냐고 묻고 있잖아요!"
기어이 쓰라린 속내를 그에게 토한다. 속을 털어놓으면 후련할 줄 알았건만, 배탈이 나서 빈 위장을 연거푸 게워낸 날보다 메스꺼웠다. 이제는 예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 기껏 무슨 말을 꺼낼지 정했는데, 잠깐을 참지 못한 결과가 이렇다. 잘 모아둔 단어들이 전부 쓸모 없게 되었다. 하지만 언어의 온도를 조절하기엔, 그녀의 머리가 너무 뜨거웠다. 아니 무더운 여름 때문에, 말을 억누르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시선을 돌리기 싫었다. 두 눈이 희뿌연 안개에 잡아 먹혀, 그에게 일그러진 마음을 들켜버린다고 해도 상관없다. 솜이 뜯긴 인형처럼 망가진 내 모습을 보고, 이 사람도 내 통증의 한 줌이나마 느끼며 죄책감을 가지길 원했다. 그리하여 쇳덩이 같은 감정의 무게에 짓눌린 박사가,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두 손 모아 빌었다.
애써 막아둔 감정의 차단기가 덜컥 내려가자, 슬픔의 홍수가 눈시울을 범람한다.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둔 아미야의 손등 위로, 투명한 녹물이 한 움큼 떨어진다. 목울대에서 빠져나온 숨소리는 점점 가시가 돋쳤고, 입고 있던 박스티가 야트막하게 들썩였다.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낱말들을 박사의 가슴팍에 집어던진다.
"버리지 마요, 박사님. 저 힘들어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박사의 손이 귀 사이를 쓰적거린다.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손가락이 파고드는 촉감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가 눈에 맺힌 이슬을 손으로 닦아준다. 탁 트이게 된 시야에 들어온 박사의 얼굴은, 어쩐지 착잡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뒤엉킨 실타래처럼 맞닿은 서로의 시선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는 전할 수 있었다. 명확하게 꾸민 언어 대신 불확실한 행동을 통해 감정을 내비쳤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더욱 진실되었다.
박사의 포근한 향이, 코 끝을 가볍게 건드리고 지나간다. 그의 체취 조각이라도 맡지 않은 지 고작 하루였는데, 향수병에 걸린 사람이 귀향한 꼴이라니. 향기라는 연료를 삼킨 심장이, 마른 장작을 살라먹은 불길처럼 거침없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간만에 맡은 머스크 향 덕분에, 그녀의 서늘한 아랫배가 조금씩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남아있던 애정과, 박사에 대한 배신감이 진하게 달인 애증이 한데 섞이며 애욕으로 승화한다. 아미야는 바싹 마른 입술을 혀 끝으로 핥으며 고개를 추켜올리고는, 박사에게 말을 걸었다.
몇 십 번이고 뜯어고쳤고 마름질했으며,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한 고백이었다. 혓바닥 위에서 매우 세련된 문장들이 오와 열을 맞춰 기다렸으나, 정작 튀어나간 것은 짤막한 한 마디였다.
"좋아해요."
철부지 아이가 며칠 밤을 뒤척이다 용기를 내어 전달하는, 풋내 나는 애정 표현. 하지만 그렇기에, 세상의 어떠한 러브레터보다 견고한 강도를 가진 단어를.
그에게 다시금 자신의 마음을 공기 중에 실어 보낸다.
"좋아해요, 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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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감시의 눈빛에서 벗어났으니 다시 올린다는 소리
그것 때문에 동생한테 오지게 삥뜯겼다는 소리
글백업 스상갤에 해두는거어떰
안 짤리지 않을까
꼬드긴게아니고 성능에반한거다 당나귀년아
에이야에 아미야에 페도새끼였노
돌아왔구나!! - dc App
재업이노
본 브레이커가 돌아왔다!!
이거 예전에 올라오지 않았나 - dc App
동생한테 걸려서 독후감으로 멘탈러시당하고 삭제했었음ㅋㅋㅋㅋㅋㅋㅋㅋ
독후감시작글 올라왔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쓰으읍하
선홍색? 소각장? 게이야..
씨이발! 재업이다!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