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 ‘인천대학교’, 인천의 이름으로 세계를 품다
1979년은 유난히도 길고 험난한 시간이었다. 민주화를 향한 열망과 산업화에 대한 갈망이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혼돈하던 그 해 3월, 인천의 이름을 단 첫 상아탑이 개항의 중심지 제물포에 들어선다.
‘인천공과대학’.
5개 학과 320명의 학생을 선발하며 첫 발을 내딛은 ‘인천공과대학’은 이듬해 ‘인천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고 1988년 10월 29일에 종합대학교료 승격했으며 개교 10주년이 되던 1989년 3월, 마침내 교명을 지금의 ‘인천대학교’로 변경한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994년 3월, 사립이었던 인천대학교는 인천시민들이 주인인 ‘시립(市立)’으로 새롭게 도약한다. 그리고 다시 19년이 흘러 인천대학교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주인인 ‘국립대학교(國立大學敎)’로 완성된다.
‘인천공과대학’으로 출발한지 34년 만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2년이 흘렀고 ‘인천대학교’는 올해로 36살이 됐다.
인천은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인구 300만의 광역시가 된 시간이었으며 대한민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G20의 국가로 성장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인천대학교’는 장성한 청년이 되었다.
지난 시간 ‘인천대학교’는 인천시민들의 자랑이었고 긍지였다. 변화의 시기 마다 갈등과 굴곡이 있었지만 인천대학교는 단 한 순간도 ‘인천’의 것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처음 私立으로 출발할 때에도 산업발전을 통한 인천의 발전과 인천시민의 삶의 질 향상이 목적이었고 市立이 되었을 때 인천대학교는 오롯이 인천의 품에서 성장했으며 國立이 된 지금 역시 인천대학교는 여전히 ‘인천’의 자랑이다.
市立이었던 인천대학교가 國立이 될 때 서운해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인천의 아이들과 인천시가 보다 발전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임을 알았기에 인천은 인천대학교를 대한민국의 품으로 떠나보냈다. 하지만 인천과 인천시민들은 결코 ‘인천대학교’를 버리지 않았다. 여전히 ‘인천대학교’는 인천시민의 것이며 인천의 자랑이고 긍지이다.
그래서 ‘국립 인천대학교’는 여전히 ‘인천(仁川)’이다. 인천대학교에서 수학한 4만 4000여 명의 졸업생이 모두 인천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는 졸업 후 인천과는 어떠한 인연도 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 있던 그들은 ‘인천대학교’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아간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인천(Incheon)’을 알리는, ‘인천인(仁川人)’이다.
인천이 있어 인천대학교가 있었고, 인천대학교가 있어 그들이 있었으며, 그들이 있어 또한 오늘의 인천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천은, 인천대학교는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부모와 자식이며, 사랑하는 연인이며, 영원한 동반자이다.
그러므로 인천대학교가 인천의 이름을 버리지 않는 한 인천은, 인친시민은 인천대학교를 부모의 마음으로 돌보아야 한다. 그리고 인천대학교는 보다 나은 인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름다운 청년 ‘인천대학교’가 인천을 품고, 인천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갈 내일을 위해 함께 노력할 때인 것이다.
| ||||

1970~1980년대는 정규 4년제 대학들도 지금과는 달리 엄격한 규정에 의해 단과대학과 종합대학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종합대학 타이틀이 주어진 대학은 규모가 큰 대학들였으며, 인천대처럼 규모가 작은 대학들은 종합대의 타이틀이 아닌 단과대학의 타이틀을 갖고 있었습니다.
획일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1970~1980년대 4년제 대학들은 지금처럼 아무나 '대학교'라는 타이틀을 사용할 수 없었으며, 소규모 대학은 'OO대학'으로 대규모 대학들은 'OO대학교'라는 타이틀을 각각 사용하였으며, 'OO대학'들은 보통 5~6개 미만의 단과대학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 같고, 'OO대학교'는 6~7개 이상 단과대학들로 구성되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아주대는 1973년 아주공과대학으로 출범을 하였고, 1980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였습니다. ● 광운대는 1963년 광운전자공과대학으로 출범하였고, 1983년에 광운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으며, 1987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였습니다. ● 국민대는 1981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였고, ● 세종대는 1954년 수도여자사범대학으로 출범하였으며, 1979년 세종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으며, 1987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였습니다. ● 상명대는 1965년 상명여자사범대학으로 출범하였고, 1983년 상명여자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1996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였습니다.
그랬었지..그땐 4년제도 단과4년제와 종합4년제로 규모에의한 구분이 분명했고 전문대와도 구분이 뚜렷하여 oo전문대학 이라 구분했지..근데 2000년도로 넘어오면서 4년제나 2년제 전문대나 모두가 oo대학교 라고 칭하게 되었고 전문대와의 구분은 2,3년제 4년제로만 구분됨..예전엔 전문대교장들은 학장이라했고 4년제교장들은 총장이라했는데 요샌 전문대도 총장이라하드만..애매하게 헷갈리게하는거보단 예전처럼 대학수도 줄이고 엄격한 잣대로 구분이 명확했음 하는 바램임.
● 성신여대는 1965년 성신여자사범대학으로 출범하였고, 1979년 성신여자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1982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였습니다. ● 서울여자대학은 1962년 출범하였고, 1988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였습니다. ● 덕성여대는 1952년 덕성뎌자대학으로 출범하였고, 1987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였습니다.
위에 올린 댓글들 중에는 검색과정에서 이해의 오류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오류가 있다면 지적해 주세요
한편, 2010년 인천대학교의 입학정원 늘리는 용도로 통합 폐교된 인천전문대는 인천대학교와는 처음부터 별개로 출범한 전문대로써 인천대보다 10여년 앞선 1971년 인천공업전문대학과 인천체육전문대학으로 각각 출범하였고, 1981년에 인천전문대학으로 공업전문대와 체육전문대가 통합하였으며, 2010년 인천대학교에 모집정원을 양도하는 조건으로 인천대학교에 흡수 폐교 조치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인천대학교 졸업생은 약 4만4천명, 인천전문대 졸업생은 약 6만 2천명으로 아직은 인천대학교의 졸업생 규모가 5만명에도 한참 모자란 상황으로 2017년 정도는 되어야 인천대학교 졸업생 동문이 5만명을 넘어서지 않을까 싶습니다.
엊그제 졸업식 기사보니 지금까지 졸업동문수가 54,000명이라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