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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의 1920년대... 독실한 사회주의자이자 이상적인 평화주의자였던 베니토 무솔리니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뜬금없이 흑화해서 이탈리아 민족주의와 이탈리아의 생활공간 확보라는 기지를 내세우며 정권을 탈취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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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탈리아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이탈리아는 유럽의 열강국가답게 식민지 확보에도 열을 올렸는데, 1894년 일어난 1차 에티오피아 전쟁에서 아프리카 비열강국에게 충격적으로 패배하는가 하면 1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영토와 독일의 아프리카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해 참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반대로 제대로 영토 할당을 못받았으며, 동시에 외국의 압박에 굴복했다며 대중들 사이에 엄청난 정치적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발 대공황이 찾아왔고 경제침체의 영향은 이탈리아마저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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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셔츠단이라는 정치깡패들로 정부를 압박해 정권을 얻은 무솔리니로서는 국민들의 지지와 지속가능한 독재를 위해 위기에 처한 이탈리아 경제를 회복시킬 필요가 있었다.


무솔리니는 일련의 국가운동을 통해 이를 타파하려 했다.


예를 들어, "땅을 위한 전투", 혹은 "토지 전투" 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개간사업을 통해 이탈리아의 습지 지대에 배수시설을 건설하고 습지를 매립해 농지로 바꾸도록 한다거나 (파시스트 정권에 미온적이었던 지주들의 토지 압수, 개간비용을 원주민 지주에게 부과, 토지 경작을 위한 농민층 강제 이주 등으로 득보다 실이 더 컸다)


"곡물을 위한 전투", 혹은 "곡물 전투" 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의 식량 자급자족화를 이루려는 노력 역시 이루어졌다. 당시 이탈리아의 곡물 소비량 750만톤 중 1/3은 외국에서 수입해야했으며 이로 인해 무역적자의 50%를 곡물수입이 차지한다는 점 역시 아프리카 변방국에게 패배할 정도로 열악한 이탈리아에게는 뼈아픈 경제적 약점이었다.




특히 파스타용 밀가루는 대부분 터키에서 수입해와야 했기에 무솔리니는 밀 생산량을 크게 늘리고 그래도 부족한 밀 생산분은 북부에서도 잘 자라는 쌀로 소비를 대체하도록 쌀 소비 운동을 독려했다.


(곡물 전투로 밀 생산량은 크게 늘긴 했지만 원래 과수원이나 목초지였던 땅을 밀 재배지로 전환시켜 이루어진 성과였기에 전통적인 이탈리아 수출품이었던 와인, 치즈, 과일, 육류, 유제품 등의 생산이 크게 줄어 결국 식량부족현상이 발생한건 물론이요, 수출감소와 수입증가 효과를 일으켜서 오히려 운동 전보다 농산품 수입량이 5억톤 증가해 무솔리니가 추구하던 자급자족 폐쇄경제국가와는 전혀 동떨어진 결과를 낳았다. 수입 증가로 인해 시장가격이 상승, 대중들의 연간식비 증가라는 악재는 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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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는 전혀 의외의 영역에도 영향을 끼쳤다.


윗짤의 사람의 이름은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 이탈리아의 예술가이자 미래주의 운동의 창시자이다.


미래주의는 기존의 전통적인 예술을 파괴하고 자동차나 비행기, 공장같은 역동적이고 속도와 기술을 추구하는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그런 예술 분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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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 느낌.


이들, 미래주의자들은 이탈리아가 지나치게 정치적, 예술적으로 과거에 매몰되어있다며 더 나은 이탈리아를 위해 속도, 기술, 폭력, 산업과 기술을 추구해야한다며 주장했다.


그래서 그런가, 미래주의자들은 이탈리아가 1차 대전에 참가해야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대전쟁이 일어나자 실제로 참가하는 등의 군국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전쟁이 끝난 후 미래주의자들은 검은 셔츠단에 1차대전 참전용사들이 대거 포섭된 것처럼 많은 이들이 파시즘을 지지했고, 무솔리니도 이들의 지지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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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12월 28일, 미래주의자들은 "미래주의 요리" 라는 새로운 예술활동을 전개했다.


오존 발생기, 자외선 램프, 전해조 등의 미래주의자들이 환장할만한 주방에 과학 기기를 잔뜩 갖춘 새로운 요리법과 함께, 미래주의자들은 파스타를 없애고 자신들의 새로운 요리를 이탈리아인들이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래주의자들은 "현대 문명의 모든 것이 무게를 없애고 속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미래의 요리는 진화의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며 "파스타는 입맛에 맞기는 하지만, 사람들을 무겁고, 야만스럽게 만들고, 영양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회의적이고, 느리고, 비관적으로 만든다" 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쌀을 섭취하면 "이탈리아 군인과 이탈리아 가족의 건강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며" "이탈리아 쌀은 전쟁에 취약한 아기의 신체를 강화시키고, 전사들을 강인하게 만들며, 이탈리아 쌀을 섭취함으로서 전쟁에서 승리한 뒤 아내에게 돌아가 아내와 함께 미래의 많은 파시스트 세대를 낳을 것" 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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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이들은 진심으로 파스타 대신 이탈리아 쌀을 먹이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별로 놀랍지 않게, 이들의 주장은 아직도 곡물 전투를 벌이며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던 무솔리니와 파시즘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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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주의자들은 "파스타는 뇌를 희생시켜가며 배를 불리는 음식"이라고 일축했지만, 나폴리의 시장이었던 보비노 공작이 대놓고 "천국의 천사들은 베르미첼리 알 포모도로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라고 주장할 정도로 격렬한 반발을 일으켰다.


결국 미래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의 파스타 금지 시도는 처참하게 실패했으며, 동시에 무솔리니의 곡물 전투는 무솔리니가 "연합국은 쇠퇴하는 강대국이며 강력한 독일과 이탈리아가 유럽을 지배할 것" 이라는 가장 처참한 판단으로 인해 영국과 프랑스의 대독일 견제국에서 벗어나 독일과 손을 잡음으로서 파국을 맞이하였다.


영국과 프랑스에 선전포고후, 이탈리아군은 아프리카 전선에서 패배했고, 지중해에서는 영국 해군에게 두들겨맞다가 일찌감치 항복해서 독일군이 이탈리아 해군 함정들이 연합국에 넘어가는걸 막기 위해 이탈리아 전함을 폭격하는 등의 막장을 보였으며 연합국이 대놓고 이탈리아 본토를 폭격함에 따라 이탈리아의 공장들은 자원 부족으로 멈춰섰고 안그래도 곡물전투로 부족해진 식량사정은 더더욱 악화당했으며 식량은 연합국이 진군하기 전까지 암시장에서 비싼가격에 소량 구입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다행히 1943년 시칠리아에, 1944년 이탈리아 남부를, 1945년 이탈리아 북부를 연합군이 재탈환하며 민간인들의 식량부족현상은 끝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