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을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정작 곤충이 어떻게 채집되고 어디서 왔는지에는 유난히 둔감한 사람들이 이 판을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생태를 위하는 척, 윤리를 말하는 척, 합법을 걱정하는 척은 늘 앞에 붙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건 되팔기와 불법채집, 밀수에 대한 기묘한 관용과 침묵입니다. 사랑을 말하는 입과 거래를 세는 손이 이렇게까지 따로 노는 판도 드뭅니다.

이 판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위선이 너무 바빠서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없다는 점입니다. 불법으로 들어온 개체가 돌고 돌아 자기 손에 들어오면 갑자기 “출처는 중요하지 않다”는 철학이 생기고, 남이 문제를 제기하면 그제야 “분위기 흐리지 말라”는 질서가 등장합니다. 규칙은 늘 상대에 따라 바뀌고, 정의는 목소리 큰 쪽에서 그때그때 재정의됩니다.

서열이라는 것도 참 편리한 장치입니다. 오래 있었고, 아는 사람이 많고, 말이 거칠수록 발언권이 자동으로 생깁니다. 그 아래에서는 질문이 죄가 되고, 의심은 무례가 되며, 비판은 곧 시비로 둔갑합니다. 곤충을 논하는 자리가 어느새 사람을 재단하는 자리로 바뀌어도, 누구 하나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니, 말하지 못합니다.

괴롭힘은 늘 사소한 농담의 얼굴을 하고 나타납니다. 공개적인 조롱, 은근한 비아냥, 단체로 던지는 눈치 주기. 그러다 누군가 조용히 사라지면 “원래 판에 안 맞던 사람”이라며 정리됩니다. 그렇게 남은 사람들끼리 다시 한 번 생태와 윤리를 걱정하는 척 글을 씁니다. 참으로 효율적인 구조입니다.

이쯤 되면 이 판에서 곤충은 더 이상 생명도, 연구 대상도 아닙니다. 서열을 증명하는 소품이고, 거래력을 과시하는 도구이며, 도덕적 우월감을 연출하기 위한 배경 소품일 뿐입니다. 곤충을 위한다고 말할수록, 곤충은 더 조용히 소모됩니다.

앞으로도 이 판은 아마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불법은 계속 합법의 탈을 쓰고, 되팔기는 정보 공유라는 말로 포장되며, 침묵은 성숙함으로 불릴 테니까요. 그리고 누군가는 또 “왜 요즘은 사람들 수준이 떨어졌냐”고 한탄하겠지요. 문제를 만든 사람들이 문제를 분석하는, 참으로 안정적인 순환입니다.

결국 이 판이 지키고 있는 건 곤충이 아니라 자기들끼리의 편안함입니다. 곤충을 사랑한다는 말이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곳에서, 곤충은 가장 쉽게 희생됩니다. 이 아이러니가 계속되는 한, 이 판은 끝까지 스스로를 고급 취미라 부르며 가장 싸구려 방식으로 유지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