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중대에서 집까지 15km가 넘는다.


자전거나 도보로는 어림도 없는 거리.


업무일지를 다 쓰고 대장님계 경례 박은 다음


5시 30분 버스로 내가 사는 마을까지 달린다.


일찍 가는 이유는 시골의 열악한 버스 배차 시간때문이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풍경은 논밭-소마구-논밭-소마구-산-소마구-산 이런 식으로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시골풍경들 뿐





마을 정류소에 내리니 5시 45분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없어 마을 정류장까지 프리패스 아주 그냥 개꿀이다


버스에서 내린 후 마을 경로당에 세워둔 자전거를 꺼내러 간다


자전거 거치대에 자물쇠를 안 채우고 다닌지 어느덧 반년 째


오늘도 자전거는 아침에 세워둔 그대로다.


애초에 인적이 심하게 없는 동네라 엄복동 당할 걱정은 없다.




한창 모내기 중인 밭을 감상하며 오늘도 시골 상붕이는 집을 향해 열심히 달린다





낡아빠진 오래된 철길건널목을 지나



2003년 5월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중단한 오락실을 거치고



아직도 현역으로 열심히 영업 중인 맥시카나 치킨집의 튀김내음을 음미하며 입맛 좀 다시다가




동네 어르신이랑 노가리도 까주고



지금은 폐허가 된 어릴 적 다니던 피아노 학원 앞에서 추억도 회상해보며



열심히 달리다 보면


25년 전에 운행이 중단된 오래된 간이역의 굴다리가 나를 맞이한다.


이렇게 벌써 5분을 소비한다.






60년대부터 열심히 석탄과 사람을 실어나르다 90년대 중반 폐선된 이후로


25년 동안 화물도, 사람도 다니지 않던 내 마을의 오래된 간이역은


이렇게 열차를 만드는 공장으로 다시 부활하여 세계 각지로 열심히 열차들을 수출하는 중이다.







굴다리를 지나 2차 관문으로 진입


얼마 되지도 않는 전교생이 다니는 중학교를 지나면 어느덧 10분이 지나간다.


겉모습만 보면 일제시대 때부터 존재했던 분교같지만 이래 봐도


30살 밖에 안먹은 젊은 학교다.





사진 속 200m가 내 출퇴근길에서 가장 지옥(조옷)같은 구간이다


소와 돼지 막사의 똥냄새가 화생방을 방불케 한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한동안 진지하게 방독면을 살까 고민하기도 했었다.


20년째 이렇게 마을에 생화학무기를 뿌려대고 있지만 민원이 없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




옷에 똥 냄새를 남기기 싫어 열심히 페달을 밟다 보면


어느 새 내가 사는 마을 입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300살 이상 먹은 마을의 장수 나무에 도착하면 5시 55분


여름이라 그렇지 겨울에는 정말 칠흑 같은 어둠 뿐이다.


라이트가 없으면 집에 갈 생각은 꿈에도 못한다


가끔 불빛 보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 고라니를 주의할 것.


역으로 사람이 고라니에게 로드킬을 당하는 곳이다.




마을에 도착하면 이렇게 개새끼가 왕왕 짖으며 반겨준다.


이 마을에 있는 개들 중에 유일하게 아직도 나만 보면 짖어 대는 놈이다.


멍청한 건지 아니면 내가 좋은 건지 1년 넘게 보는 데도 아직도 저 모양이다.


목줄이 단단해 풀릴 걱정은 없으니 앞에서 탭 댄스라도 추면서 잠시 도발하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우리 마을의 유일한 헬스장





언제 도착하냐고? 아직 멀었다.


우리 집은 마을의 가장 끝에 있다.


하필 언덕이 제일 심한 구간이라 이렇게 자전거의 멱살을 끌고 가야 한다.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했다.


시간은 정확히 6:00


이제는 익숙해져 30분이면 충분히 도착하고도 남는다.





오늘도 나를 위해 열심히 달려준 자전거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오늘 상붕이의 하루를 마무리


이렇게 집에 도착하면 할머니가 구워준 노릇노릇한 고등어가 식탁에서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우리집 천장에서 열심히 단잠을 즐기고 있는 냥이들



이렇게 시골 상붕이의 흔한 퇴근길은 끝이 난다.



출처: 상근예비역 갤러리 [원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