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당대표의 단식 투쟁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만류로 막을 내렸다. 형식상으로는 '아름다운 마무리'였을지 모르나, 이를 지켜본 감정은 복잡미묘하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하나의 해프닝으로 넘기기엔, 그 안에 담긴 보수정당의 전략부재와 처절한 생존본능이 너무나 적나라하다.

이를 지켜보는 마음 한구석이 편치만은 않았다. 특히 우리 당의 미래인 청년 당원들에게 이번 단식은 어떻게 비쳤을까. 아마도 "도대체 밥은 왜 굶는가?"라는 의문이 들지 않았을까.

이 사건을 복기하며, 단순한 비판을 넘어 보수정당이 처한 현실과 앞으로의 과제를 냉정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1. 대중에게 '단식'이 유효한가

먼저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삭발과 단식은 2026년 현재, 대중, 특히 청년층에게 크게 먹히지 않는 올드한 투쟁 방식이다.

과거에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유교적 윤리가 지배했고, 배고픔이 일상이었던 시절에는 곡기를 끊는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비장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먹을 것이 넘쳐나는 풍요의 시대다. 사나흘 굶어본 적 없는 세대에게 "나 밥 안 먹어"라는 외침은 그 고통이 와닿지도 않을뿐더러,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냉소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단식은 건강을 담보로 하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대중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정교한 빌드업이 필수적이다. 아쉬운 점은 우리 당이 이러한 대중 설득 과정, 즉 프로파간다에서 세련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때까지만 해도 보수 진영 나름의 여론 조성 메커니즘이 작동했으나, 윤석열 정부 이후로는 좋게 말하면 직진 스타일, 사실상 막무가내 독불장군 스타일이 고착화된 느낌이다. 한덕수 총리 후보 교체 이슈 때도 그랬듯, "필요하니 한다"는 식의 접근은 대중에게 피로감을 넘어 '명분이 없다'는 감상만 남긴다.

2. 고관여층의 시선: 단식의 진실성은 합격, 명분은 글쎄

정치 고관여층의 시각에서 단식 투쟁을 분석해보자. '단식투쟁'은 '단식(진실성)'과 '투쟁(명분)'의 결합이다.

우선 단식의 진실성 측면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 장 대표는 보는 눈이 많은 국회 로텐더홀에 자리를 잡았다. 과거 본인 방탄을 위해 단식을 악용했던 이재명 대통령이나, 과학에 대한 무지로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 저지를 위한 정의당 이정미 전 대표의 사례와 비교하면, 적어도 '구라 단식'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진정성은 보였다.

문제는 투쟁의 명분이다. 장 대표는 '통일교 게이트 특검'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국민의힘 내부에서 터져 나온 '신천지 당원 대거 입당 의혹'이 사실상 팩트로 굳어지면서 명분이 퇴색됐다. 국회 로텐더홀에 자리를 잡으며 과거 야당 대표들의 '방탄 단식'이나 '출퇴근 단식'과는 다른 진정성을 보였음에도, 일반 국민의 눈에는 그저 서로의 치부를 들춰내는 '이단 논쟁'으로 비쳤을 뿐이다.

진실하게 굶긴 했는데, 왜 굶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져 버린 셈이다. 지지율이 답보 상태인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3. '관리형 대표' 장동혁은 왜 총대를 멨나

그렇다면 대중적 소구력이 약함을 알면서도 장 대표는 왜 단식을 감행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당내 역학 구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냉정히 말해 재선 의원인 장동혁이 거대 여당의 당권을 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여기에는 당시 당대표 경쟁자이자 대선 후보였던 김문수의 존재가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젊은 당원들에게 김문수는 강성 이미지의 노장일지 모르나, 그는 2004년 탄핵 역풍 당시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당내 기득권을 추풍낙엽처럼 날려버린 전설적인 승부사이자 저승사자였다.

당시의 '공천 혁명'을 기억하는 영남권 중진들에게 김문수의 귀환은 공포 그 자체였을지 모른다. 그 불벼락을 피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다루기 쉽고 안정적인 관리형 리더로 장동혁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소위 '타협의 산물'로서 당대표가 된 셈이다.

최근 영남을 기반으로 한 모 유력 정치인이 "사과는 선거 떨어지는 놈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난 선거 져본 적 없다"고 일갈한 것은 이러한 영남 기득권의 생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험지인 수도권에서 피 흘리며 싸우는 동료들의 절박함과는 괴리된, 안방의 안락함에 취해 있는 당의 현주소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장 대표 체제는 어쩌면 당이 쪼그라들더라도 본인들만 살아 남으면 된다는 기류 위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4. 승부수로서의 단식과 한동훈 제명

하지만 누군가의 대리인으로만 남고 싶은 정치인은 없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의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선거 결과의 책임을 독박 쓰지 않으려면 장 대표로서도 독자적인 승부수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가 택한 단식 역시 이러한 절박함 끝에 나온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원외의 한동훈 전 대표는 좋든 싫든 계속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최근 당 지도부가 법적 공방을 감수하면서까지 단행한 '한동훈 전 대표 제명'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고 본다. 지선 패배 후 한동훈이 구원투수로 복귀하는 시나리오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미래의 경쟁자를 미리 제거하는 '정치적 확인사살'을 감행한 게 아닐까. 즉, 지선에서 지더라도 당권만은 뺏기지 않겠다는 처절한 포석이라고 본다.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미래의 잠재적 경쟁자를 원천 배제함으로써, 당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치열한 '알박기'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 단식은 그 과정에서 발생할 내부 소음을 외부 투쟁으로 돌리기 위한 고도의 결기였을 수 있다.

5. 박근혜의 귀환

단식의 마무리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장식했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많은 이들, 특히 청년층은 박 전 대통령을 '탄핵당한 대통령'으로 기억하지만, 이러한 세간의 평가와는 별개로 그는 '선거의 여왕'이었고 패배에 멋지게 승복할 줄 알았던 인물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권위를 창출할 줄 알고 당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었다. MB가 유능한 행정가였을지언정 당의 구심점이 되지 못한 것과 달리, 박근혜라는 이름은 여전히 보수 당원들의 정서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

장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의 손을 잡은 것은, 흔들리는 리더십에 '보수 적통'의 권위를 수혈받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이는 묘하게도 YS(상도동계)와 박정희(공화계)의 보수 본류 경쟁에서, 결국 우리 당의 정서적 뿌리는 박정희로 귀결됨을 보여주는 듯하다.

6. 낡은 방식을 넘어 선명한 가치로

안타까운 것은 젊은 세대의 눈에 이번 단식과 박근혜의 등장은 다소 촌스럽고 낡은 '쇼'로 비치는 것 같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득권의 공포, 현 지도부의 생존 본능, 그리고 무너진 권위를 다시 세우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얽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반복될수록 세대 간 괴리는 깊어진다는 점이다. 허리가 끊긴 정당 구조 속에서 자꾸 과거의 방식과 인물을 소환하는 것은 미봉책일 뿐이다.

이제 국민의힘은 투쟁을 넘어 실력으로 증명해야 한다.

어설픈 쇼 대신, 공동체적 가치와 책임에 기반한, 선명한 보수주의 이념 노선을 재정립하고, 이를 현대적인 언어로 청년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밥을 굶는 결기가 아니라, 밥값을 하는 유능함만이 떠나간 민심을 되돌리고 당의 미래를 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