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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여기, 대중이 왜 빡쳤는지 잘 모르는 것 같은 사내가 등장한다.

꽁치 하나로 최고의 이슈를 맹글어낸 맹기용. 대세는 그에 대한 비판여론이지만 제작진에게 섭외 받아서 음식 하나 망친 게 뭐 그리 욕 처먹을 일이냐는 여론도 소수 있다. 아마도 맹씨 본인이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비판여론의 핵심은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남들의 무거움에 대한 가벼운 태도에 있다.
약간 생뚱맞지만, 신드롬을 일으킨 웹툰이자 드라마로 제작된 ‘미생'을 잠깐 언급해보자. 미생의 인기비결을 이 글의 맥락에서 요약하자면 ‘먹고사니즘에 대한 무거움의 공감'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의 20대, 30대, 40대는 각각 힘든 사투를 벌이고 있다. 20대들은 학자금 융자와 취업난의 콤비네이션, 30대는 부족한 실질임금과 기형적 부동산시장의 콤비네이션, 40대는 치솟는 양육비와 고용불안정성의 콤비네이션. 이 거대한 세대 전체의 무거움에 대해 장년층은 '열정과 패기가 부족한 세대'라며 가볍게 쳐내버리고, 꿍쳐둔 부동산이 떨어질 새라 새누리당에 표를 던지는 이 상황. 결국 '미생'은 분명 모두가 공감하지만 누구도 공감해주지 않는 이 무거움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거대한 지지를 얻게 된 것이다.
즉, 이 사회를 지탱한다 할 수 있는 20~40대 세대에게 있어 일할 자리를 얻고, 꾸준히 노력해서 역량을 쌓고, 그 역량을 펼쳐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건 한없이 무거운 주제다. 그리고 그 무거움과 사투를 벌이며 하루하루를 산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무거움을 짓밟는 행위가 발견될 때 그에 대한 반발감은 폭발한다. 최근 소위 '갑질'이 한국 대중들이 가장 금기시하는 행위가 된 것 역시 그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으며, 글 앞부분에 언급된 조현아 땅콩회항이나 철없는 정씨의 발언에 대한 분노도 같은 이유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십 수 년 이상 외길을 걸으며 역량을 쌓아 올린 이들이 초대받아 그 역량을 압축적으로 뽐내는 자리에 4년차 청년이 불쑥 나타나 마음껏 서투름을 드러낸 모습은 이 세대의 무거움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버린 셈이다. 시청자들은 그 모습에서 마치 밑바닥부터 시작해 자수성가를 이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철없는 재벌 3세가 앉아있는 걸 보는 듯 한 느낌을 받는다. '수십 년의 노력'이라는 무거움이 '부모가 물려준 은수저'의 가벼움과 만날 때의 느낌이 '셰프'라는 호칭과 맹씨의 서투름과 부딪히는 모습으로 오버랩되며 그 빡침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이 된다. 실제 역량이 있는지 없는지, 예의가 바른지 아닌지와는 무관하게 빡침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풍은 왜 있냐?'는 질문, '홍석천 가게 음식은 맛이 없다'는 반론, '딱히 맹씨가 잘못한 건 없다'는 옹호, '제작진이 섭외한 결과일 뿐'이라는 반박은 이 빡침의 핵심에서 벗어난다. 하물며 요리 천재가 나타나 4년 만에 셰프 호칭을 붙였다 해도 빡칠 수 있는 이 마당에, 서툴러 보이는 한 사람이 셰프라는 이름을 달고, 그 호칭을 인정해주는 듯 한 방송을 하고 있으니 그 방송이 이 시대의 '무거움'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는 근거를 완전히 잃는 건 어쩜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셰프'라는 말이 응당 지녀야할 무거움은 단지 두글자 자막이 되어 가벼이 나풀나풀 날릴 뿐이다.
맹씨, 제작진, 혹은 그의 옹호론자들이 이 구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그 방송은 그렇게 무겁게 볼 게 아니다'라는 주장을 반복한다면, 결국 이 갈등은 또 다른 힘겨루기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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