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제작진, 뭘 믿고 시청자와 각을 세우나
'냉장고' 요리 대결의 진정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예능 전성시대를 연 JTBC의 간판 프로그램들이 하나둘 위기에 직면한 이때, <냉장고를 부탁해>가 새로운 간판 프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선배들처럼 처음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실시간 검색어 지분과 이슈를 독차지하는 대형쇼가 되었고, 나아가 방송가에 스타셰프 전성시대를 연 산파 역할을 하며 영향력을 끼쳤다. 그런데 이런 영광을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기로에 놓였다. 드높아지는 시청률과 관심은 어쩌면 포말로 흩어지기 전의 마지막 파도인지도 모르겠다.

칼럼을 통해 여러 번 언급했듯이 <냉장고를 부탁해>는 신선하고 세련되었으며, 정보와 재미와 일상이 결합된 오늘날 예능의 이정표와 같은 프로그램이다. 요리 방송은 스포츠중계화해야 살아남는다는 방향과 해외 사례는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국내에선 서바이벌쇼와 레시피 프로그램 이상으로 풀어내지 못했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현역 올스타 셰프를 모아 <나는 가수다> 주방장 버전으로 그 벽을 넘어섰다. 그것도 어깨를 탁 털고, 집에 있는 냉장고로 15분이라는 제약을 뒀다. 이를 통해 <나는 가수다>가 무대 연출과 감성이 과해지면서 피로감과 불감증을 느끼게 만들었던 것을 미리 잡아냈다. 요리의 간이 생명이듯 요즘 예능에서 가장 중요한 일상성을 최상의 상태로 담아낸 것이다.

최고의 셰프가 펼치는 요리 대결은 그 과정 하나하나 눈에 담아둘 경연이었다. 승부를 놓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쇼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자 제작진은 선제적 변화를 모색하다가 돌부리에 걸렸다. 맹기용에 대한 시청자들의 집단반발은 의미가 있는 게 이슈를 타고 들어와 돌 하나 던지고 가는 식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다. 맹기용 이전, 그러니까 시청률 3%대를 지지한 열혈 시청자들이 먼저 당혹스러움과 배신감을 느꼈다. 자신들이 푹 빠졌던 요리 대결의 진정성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혼란스러워졌다. 일종의 불쾌감을 느꼈다. 이 프로그램은 <한식대첩>이나 <마쉐코>처럼 성장스토리를 즐기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쉽게 볼 수 없는 무림 초고수의 내공 충만한 무공 대결을 보듯 최고의 셰프들의 숨막히는 조리과정을 탄성을 지르며 보는 쇼였다. 시청자들은 이 재미가 제작진의 미스캐스팅으로 무너졌다는 데 항의했다.

그런데 제작진은 그 대답으로 사족에 가까운, 그래서 안 했으면 더 좋았을 비호와 해명 방송으로 맞불을 놓았다. 대결양상은 이제 셰프간의 대결에서 방송(제작진)과 시청자간으로 옮겨왔다. 맹기용이 유명해진 건 맞붙는 링의 이름이 맹기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3주간 셰프들의 요리는 이슈가 되지 않았다. 실시간 이슈 검색어가 '냉장고를 부탁해'가 아니고 '냉장고를 부탁해 맹기용'이 된 것이다. 판이 커지자 구경꾼들이 몰리면서 자연히 시청률은 상승했다. 기존 시청자들은 예전처럼 즐긴다기보다 지켜보는 입장이 됐다. 애정을 쏟은 쇼에 대해 심판하겠다는 거다.

사실은, 이연복 셰프의 튀김요리가, 샘킴의 파스타나 미카엘의 크레페가 최현석의 김말이가 창의적이거나 처음 보는 레시피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가 되지 않는 건 이 쇼가 창의 퓨전 요리 대결이 아니고 한정된 재료로 얼마나 더 맛있고 품위 있는 셰프다운 음식을 만들어내는지를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상 우리나라 전통 길거리 음식인 핫바를 만든 맹기용의 요리를 두고 표절논란이 붙은 건 제작진과 시청자가 대립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런데도 이렇게 할래?'라는 공격이자 반문이다.

문제는 표절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요리 대결의 근간에 의혹을 품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셀럽의 능력에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데, 수긍할 만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데, 짧은 시간 해당 셀럽은 2승을 하며 승승장구했다. 해산물을 못 먹는다는 게스트 써니는 맹기용의 음식이 오징어 맛이 안 나서 좋다고 하고, 박준우의 요리는 주재료인 대구 맛이 안 나서 싫다고 한다. 그간 대진 상대 또한 공교롭게도 기라성 같은 셰프가 아닌 김풍과 박준우였다. 시트가 깨진 롤케익,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플레이팅의 핫바가 승리를 차지한다. 결과에 승복하기 힘든 걸 넘어서 대진부터 요리재료 공개와 레시피 준비까지 대결 방식, 즉 방송 자체에 배신감을 느끼는 거다.

음식을 즐기는 데 굳이 도축 등 험한 조리과정을 꼭 알 필요는 없다. 방송도 그렇다. <정글의 법칙>의 박보영 논란 때 봤듯이 시청자들이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제작환경이 있다. 그런데 맹기용을 놓고 제작진이 시청자와 기세를 겨루는 사이 시청자들은 프로레슬링처럼 대진과 승패를 미리 각본을 갖고 짜놓는 것은 아닌지 의혹을 갖게 됐다. 방송의 진위를 따지다보니 방송 제작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번 표절 논란만 하더라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장성을 중시한 콘셉트와 달리 레시피를 미리 준비해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재료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 아니냐는, 즉 방송 자체의 콘셉트를 흔드는 '게이트'다.

가장 세련된 쇼가 이해 불가한 대응, 혹은 오만한 태도로 시청자들과 각을 세웠다. 그 결과는 시청률 수직상승으로 나왔다. 셀럽 한 명과 프로그램의 체면을 구기는 대신 프로그램의 사활을 걸었고, 지표상으론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모든 걸 잃고 얻은 재와 같다. 의도여부와 상관없이 노이즈 마케팅은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지만 구하고자 했던 셀럽은 점점 더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있고 쇼에 애정을 바쳤던 시청자들은 그들의 요리와 대결에 관심을 잃었다.

시청률 상승이 마냥 좋은 추세일까? JTBC 예능은 <비정상회담> 기미가요 사건 정도를 제외하고(이건 실수의 영역이다), 정서적 역풍을 맞아본 적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할 변화의 전기가 필요한 프로그램은 어쩌면 <썰전>도 <비정상회담>도 아닌 <냉장고를 부탁해>다. 자존심을 부탁하다가 어느새 원치 않는 부탁을 하게 생겼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