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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언젠가" 라는 건, 언제를 말하는거야?

한달 후? 1년 후? 10년 후? 그런 애매모호한 말인데, 

하야카와 세이라가 말하면,

확실성이 더해지는 것 같아. 

분명, 만날 수 있겠지.



⸻ 아키모토 야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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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은 사진집에 대해서 여쭤보겠습니다.

( 사진집의 레이아웃을 보면서 ) 사진을 보고 있으니까 무척 그리운 기분이 드네요. 사진집은 가입 당시부터의 꿈이었고, 졸업을 앞두고 팬 여러분에게 기념이 되는 것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가입 당시에는, 사진집을 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는 인상이 있었고요. 선배님도 많이 내셨고, 「사진집을 찍을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라고 잡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적도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스탭분에게 「결정되었어」 라고 듣고, 너무 기뻤습니다. 





⸻ 선배의 사진집을 보고, 동경도 많이 했다고요.

네. 오빠가 노기자카46의 팬이었기 때문에, 본가에 니시노 나나세 상과 호시노 미나미 상이라던가, 다양한 분들의 사진집이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니시노 나나세 상의 『바람을 갈아입고』가 정말 귀여워서요. 노기자카46에 가입했을 때 저도 언젠가 이런 멋진 사진집을 찍게 해주시면 기쁠거 같다고 생각해왔습니다. 





⸻ 촬영 때, 참고하기도 했나요?

아뇨, 이번에는 「자신 그 자체」를 담아주셨으면 했기 때문에 누군가를 닮고 싶다거나 이런 느낌의 분위기가 좋다던가는 별로 원하지 않았거든요. 현지에 가서, 제가 내고 있는 그대로의 분위기를 찍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구요. 





⸻ 싱가포르는 처음이었죠. 

네, 처음이었어요. 도시와 자연과 문화가 뒤섞여 있다는 이미지였는데, 설마 그대로였어요. 장소에 따라 분위기도 많이 달라져서 그것도 즐거웠습니다. 해외로 나가는 것 자체가 2019년 이래로 처음이라 개방적인 기분이 들었어요.





⸻ 의상을 많이 입었는데, 가장 좋아했던 건 무엇인가요?

어느 것도 좋아하는데요... 역시 붉은 원피스일까나. 일본에서는 꽤 입지 않는 디자인이고, 이렇게 빨간 옷, 눈에 띄기 때문에 사복으로는 갖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얼굴도 잘 나오고, 사복으로도 도전해볼까나. 





⸻ 특히 인상적이었던 상황은 있었어요?

석양의 촬영을 한 마리나 버라지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원래 첫날에 촬영 예정이었는데 구름으로 석양이 가려졌어서요. 마지막 날에 리벤지를 갔거든요. 무사히 석양의 컷을 예쁘게 촬영할 수 있었을 때의 감동이 커다랐어요. 예쁜 석양과 함께 촬영을 마친 것에 대해서 신기한 마음이랄지, 울컥하는 게 있었어요.





⸻ 졸업 발표 전의 촬영이었는데, 촬영 중에 뭔가 생각하고 있던 거 있을까요?

「싱가포르, 전력으로 즐겨보자」 라는 마음이었어요. 가보니까 정말 즐거웠어요. 일을 하고 있으면 아무래도 긴장하거나, 생각해야할 것도 많은데, 이번에는 즐겁게 여행하는 모습을 찍어주셨다는 느낌이어서요. 계속 즐거웠습니다.





⸻ 촬영 후, 레이아웃 등도 상의하면서 진행하였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물건을 만드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이번에 여러가지 생각하는게 너무 즐거웠어요! 게다가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봐주실거라 생각하니까, 더욱 신났죠. 평소에 잡지 일은 스스로 사진을 선택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디자이너 분께서 생각해주신 흐름 같은 것도 신경쓰면서, 이쪽의 얼굴이 더 좋다던가, 생각하는 것도 즐거웠어요. 





⸻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컷은?

으ㅡ음, 전부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하니까, 고르기 어렵네요. 실은 제 안에서 여러 선발이 있거든요. 우선 「즐거운 얼굴 선발」은 차이나타운의 호커에서 칠리 크랩을 먹고 있는 컷. 역시 먹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 하고, 무척 좋아해요. 이어서 「쿨 선발」은 리조트 호텔에서의 양치 씬. 내추럴하고 멋진 건 아니지만 우연한 순간의 표정이에요. 그리고 「장난끼 선발」은 침대에서 웃고 있는 이 컷. 머리가 헝클어지고 흐트러진 것도 신기하다고 생각해요. 종합 우승도 고르고 싶네요. 하지만 전부 멋진데 아, 못 고르겠어요. 그렇게 밝은 석양은 그닥 보지 못하니까, 석양은 넣어버리고 싶어. 그리고 비치도 너무 시끄러울 정도로 즐거웠고. 마지막 페이지 등에서 사용했던, 잔디에서 뒹굴고 있는 컷도 좋아하구요. 고를 수 없어~ 으ㅡ음, 그치만 이, 석양에 비춰지면서 뒹굴고 있는 컷으로! 촬영할 때의 에피소드도 포함해서, 석양의 컷을 우승으로 할게요.





⸻ 타이틀은 『또, 언젠가』 입니다. 

졸업 기념 사진집이기 때문에 졸업스러운 타이틀이 좋겠다고 생각해 고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진집, 개인적으로는 제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손주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요. 「할머니, 이렇게 예뻤어」 라고 보여주는게 목표거든요. 그때, 「또, 싱가포르에 가고 싶네」 라고 생각하면 좋겠네요. 촬영한 이후에 또, 언젠가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고 있어요. 2023년 여름의 하야카와 세이라를 오려낸 한권으로 되어 있으니까 몇번이고 다시 읽어봐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세이라 상에게 있어서 이 사진집은 어떤 것인가요?

노기자카46로서 저의, 한 단락이에요. 노기자카46인 나를 기억하고 싶을 때가, 앞으로의 인생에 절대 있을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때 이걸 읽고 기억하고 싶어요. 사진집을 보면, 촬영하고 있을 때의 기분이라던가 이 경치를 봤을 때 이런 기분이 들었다거나 이런 일로 고민하고 있었다거나, 생각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인생의 절목에서 읽고 싶습니다.





⸻ 지금부터는 세이라 상의 노기자카46에서의 활동을 되돌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오빠가 노기자카46의 팬이었다고요.

네.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오빠에게 권유받았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고교 3학년으로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도 하고 있었고, 저 자신은 그렇게까지 연예계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거든요. 오디션 서류를 보내기만 하면 되니까 좋다고 생각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했죠. 2차 심사는 오사카였기 때문에, 학교에 가기 전에 교복을 입고 응시하러 갔던 기억이 나요. 그것도,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세계에 대한 순수한 흥미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어쩌면 멤버가 올지도 모르고, 아키모토 야스시 상을 볼 수도 있고, 재밌을 것 같아! 라는 마음으로 응모하러 갔어요. 그런데 막상 회장에 가보니까 주위의 아이들이 너무 긴장해서 저도 그 긴장에 빠져버렸어요. 큰일 일어나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심사 자체는 즐거웠거든요. 특기의 피로와 좋아하는 곡을 한곡 불러주세요, 라는 심사였는데, 옆의 아이가 「골프 스윙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스윙하거나, 여러 아이들이 다양한 걸 하는게 즐거웠죠. 저는 어릴 때부터 했던 발레를 가볍게 춘 것과 aiko 상의 「장수풍뎅이」를 불렀는데, 역시 긴장하고 있었던건지 높은 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멋대로 몇번이나 다시 불렀던 게 기억나요. 무조건 떨어졌다고 생각했고 연락도 없었기 때문에 수험생으로서 공부를 제개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통과와 3차 심사 소식이 우편으로 와서 어머니와 함께 도쿄에 갔습니다. 3차 심사의 대기실에서는, 자신이 붙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누가 붙을지 상상했던 걸 기억하고 있어요(웃음). 그때, 분위기가 사카미치 같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히나타자카46의 모리모토 마리이 쨩. 무척 멋진 원피스로 정말 인형 같은 분위기를 보이고 있어서 멀리서도 귀여워 붙을 것 같아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어요. 3차 심사도 통과하고, 다음인 SHOWROOM 심사에서는 얼굴을 내보이지 않고 목소리로만 말씀드렸습니다. 학원에 갔다오고, 돌아오는 시간에 팬분들과 이야기했죠. 공부해야한다는 마음과 이런 경험 할 수 없어 라는 마음으로 흔들리고 있었던 자신이 생각나요. 





⸻ 가족들은 응원해주셨나요?

어머니는 「이런 기회 없으니까 힘내!」 라고 응원해주셨고, 아버지도 예전부터 발레의 발표회를 보고는 「장래는 아나운서일까?」 라고 말해주시는 아버지였고, 원래 오빠의 권유로 오디션을 응모했고 가족 쪽이 더 마음에 들어아할 정도(웃음). 저 뿐이었다면 도쿄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최종 심사도 어머니와 둘이서 신칸센을 타고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거기서 츠츠이 아야메 쨩과 엔도 사쿠라 쨩과 같은 그룹이었고, 둘다 무척 아우라가 있다고 생각했고, 쿠로미 하루카 쨩과도 이야기한 기억이 있어요. 합격 후에 집에서 어머니와 「어쩌지?」 라고. 원래 오사카의 대학을 응시할 생각으로 수험 공부를 했기 때문에, 지금부터 도쿄의 대학을 찾아야하나 싶고. 하지만 당시 사카미치 그룹은 기세가 무척 굉장한 시기로, 양립은 어려울지도 몰라 라고 스탭분으로부터 조언이 있었고요. 아이돌 혹은 대학,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의 2택. 어머니에게는, 학비도 아까우니까 아이돌 할거면 그거 하나 열심히 해줘 라고 듣거나, 하지만 저로서는 그 앞으로의 인생도 길고 대학에는 가두는 쪽이 좋지 않기도 하고 대학 갈 새가 없어서 학점 떨어지거나 유급하는 것도 싫고... 라고, 그래서 학교 선생님에게도 상담했습니다. 선생님께 오디션에 합격한 이야기를 했더니 「보통 할 수 없는 일이고, 대학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까 해보는 편이 좋지 않아?」 라고 말씀해주셔서, 결심할 수 있었고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상경하고 한동안은 대학 진학에 미련이 있긴 했죠. 도쿄에도 단어장이라던가 글 투성이인 교과서라던가 잔뜩 갖고 왔어요. 꽤 많이 고민했구나 라고 생각돼요.





⸻ 10월부터 레슨이 시작하고, 11월에 노기자카46으로의 소속이 결정됩니다. 

노기자카46로 결정되었을 때는 기쁜건가 였어요. 오디션에 합격하고 고민하고 고민해서 대학이 아닌 아이돌의 길을 선택했는데, 어쩌면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어 라고 들었을 때는 「어떡하지」 라고 생각했어요. 3번 정도 소속 그룹의 희망을 여쭤보셨는데 저는 매번 「세 그룹 어디든 좋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그룹이 좋아」 라고 뜻이 분명한 아이돌이 많았는데, 저는 세 그룹 모두 좋아하고 각자 장점이 있고, 자신의 희망이 아니라 자신이 향하고 있는 곳을 고르게 해주셨거든요. 그런 와중에 「당신은 노기자카46입니다」 라고 선택 받은게 너무 기뻐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오디션에서 사람의 모습이 많았습니다. 3차 심사에서 본 아이와 최종 심사의 대기실에서 사이가 좋아져 함께 그룹이 되거나, 동기가 다른 그룹에서 열심히 하고 있거나 사카미치 그룹의 연결 계기가 되었다고도 생각합니다. 3차 심사에서 사이가 가까워진 친구가 있었고 그녀는 연구생 활동을 그만두고 지금은 평범하게 일하고 있는데, 계속 사이가 좋아서 지난 5년간 끊김 없이 연락을 주고 받고 있어요. 게다가 무척 응원해주고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고, 서로 근황을 보고하는 시간도, 만약 5년전 여름에 오디션을 응모하지 않았다면 없었을거라 생각하니 무척 특별한 마음이 되거든요. 매년 여름이면 오디션이 생각나더라구요. 





⸻ 이미 드라마로 풍성하네요. 처음 4기생이 모였을 때의 인상은?

모두 노기자카 같아! 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디션이나 레슨 때부터 「이 아이는 노기자카46 스럽네~」 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모두 있었어요. 예를 들면, 모두의 앞에서 자기소개를 했을 때 (세이미야) 레이 쨩은 무척 밝게 빛나고 있었고 「발랄하고 좋네!」 라고 칭찬 받거나, 아야메 쨩은 레슨 중에 이야기를 들을 때의 자세가 너무 좋아서,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돋보이거나, 그 자세조차 노기자카 같아! 라고 생각했습니다. 





⸻ 선배님과의 첫 대면의 추억도 알려주세요.

아우라가 너무 대단했어요. TV 속의 사람이다, 어떡해! 라고 당황했어요. 예쁘고, 가늘고, 얼굴 엄청 작고. 





⸻ 그로부터 거리가 좁혀진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갑자기 거리가 좁혀지는 건 어려워서, 하나씩 헤쳐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 5년간 생각한 것은 동료란 「동료입니다」 라고 들어서도 아니고, 하나하나 함께 극복하고, 함께 성취감을 맛보고, 함께 공유하고, 조금씩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여기라는 타이밍이 있냐라고 한다면 어려워요. 처음에는 4기생만으로 활동하는 시기가 길었기 때문에, 나도 노기자카46의 멤버라고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선발에 들어갔을 때려나요. 음악 방송이라던가 선배님과 함께 하며, 그제서야 깨달았다고 생각해요. 





⸻ 첫 선발은 가입하고 2년반 정도가 지난 「미안해 Fingers crossed」였습니다. 

실제로 선발에 들어갔을 때는 가입하고 나서 계속 목표였기 때문에 너무 기뻤습니다.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긍정할 수 없는 시기가 길어서요. 딱히 나 한명 없어도 되는거 아냐 라던가, 생각하기도 했어요. 팬분들의 응원에 보답하지 못하는 답답함도 있었고, 팬분들과 이야기하는 건 즐겁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라고 마음속으로 말하지 않으면 안됐죠. 팬분들은 「힘내」 라고 말해주셨지만, 그게 괴로운 때도 있었습니다. 포지션 발표는 항상 힘들었어요. 4기생 곡인 「4번째의 빛」에서 가장 맨뒷줄이었거든요. 이 이상 내려갈 곳은 없다고 스스로를 타이르고,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다음 곡도 같은 포지션이었을 때는 너무 괴로웠어요. 그런 경험을 2년 정도 하고 선발에 들어가기 직전에 처음으로 4기생 곡인 「Out of the blue」에서 센터를 받고 그 시점에 「맨 뒷줄이었는데 열심히 했구나, 훌륭해」 라고 스스로를 칭찬했어요. 센터가 되면 행복하겠지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그건 그거대로 고민이 있더라고요. 이끌지 않으면 안된다는 중압감이라던가 4기생 라이브 때 얼마나 집중시킬 수 있는지 라던가 무척 고민해왔습니다. 그 다음 싱글에서 선발에 들어갔는데 그때는 선발에 들어가 물론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안심도 됐고엄청 울었어요. 





⸻ 「Out of the blue」 때는 신 4기생도 가입한 타이밍이었습니다.

4기생은 모두 손을 잡고 사이 좋게 열심히 하자는 분위기라, 뭔가를 결정하고 이럴 때 정리하는 역할이 없었거든요. 「다같이 결정하자」 라고 줄곧 해왔고, 저도 리더 타입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신 4기생 5인이 들어왔을 때, 리허설의 분위기가 살벌해졌어요. 모두 여유가 없는 시기였어요. 이 묘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한명씩 말을 걸고, 하나씩 맞부딪혀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야기했어요. 5명에게는 「우선은 (그때 앞두고 있던) 4기생 라이브를 성공시키자. 그러면 분명, 자연스럽게 멤버로서 유대감이 생길거라 생각하니까, 서두르지 말고 힘내자」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라이브는 무척 평판이 좋았고, 스탭분들에게도 칭찬 받고 그렇게 4기생 16인이라는 체제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 





⸻ 그후 5기생도 가입했습니다.

5기생이 가입했을 때, 저도 자신의 일만으로 벅차서 좀처럼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휴양하고 휴양 후에 조금 안정된 타이밍에 이야기하게 되었고 라디오의 게스트로 와주거나, 분장실에서도 수다를 떨 수 있게끔 되었어요. 모두 무척 열심히 하고, 저의 초기 때와 겹치는 부분도 있고, 제가 선배님에게 들어서 기뻤던 말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해주곤 해요. 





⸻ 졸업에 대해서 여쭤보겠습니다. 졸업 발표의 블로그는 시간을 들여서 쓴건가요?

시간을 들여서라기보다는, 활동하는 도중에 제 안에 싹텄던 말을 그대로의 문장으로 구상했습니다. 





⸻ 그랬군요. 7월 13일에 행해졌던 「한여름의 전국 투어 2023」 오사카 공연으로 졸업 세리머니를 했습니다. 선곡한 6곡에 대해 하나씩 알려주세요.

세트리스트는 전부 제가 하고 싶은 곡을 제출해서, 순서를 짜주셨습니다. 1번째 곡인 「나에 대해, 알아?」는 2019년에 처음 참가한 전국 투어에서, 선배님과 함께 부른게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아직 가입한지 1년도 되지 않아서, 스스로가 노기자카46의 멤버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에, 센터 스테이지에서 원을 만든 선배님에게 손짓하여 함께 노래하는 연출이 있었는데요, 무척 멋진 공간에서. 제가 처음으로 「노기자카라는거 좋구나」 라고 생각했던 순간이었어요. 가사도 정말 좋아하고, 스스로에 대해 부르는걸까 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고 공감도 되고, 가장 힘들어서 더는 무리라고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서 흘러 나온게 「나에 대해, 알아?」였거든요. 그런 추억도 있는 곡이었습니다. 「Out of the blue」는 센터곡이기 때문에, 팬 여러분도 기다려주시려나 생각했고, 멤버에게도 꼭 부르면 좋겠다고 들어서요. 즐겁게 불렀습니다. 다른 한 곡은 4기생으로 부르고 싶다고 생각해서 고른 「4번째의 빛」은, 4기생 곡 중 가장 좋아하고, 원점 같은 곡이기에 골랐어요. 남아있는 4기생에게, 무리하지 말고 열심히 해줘 라는 마음도 있었고, 절목에서 부르고 싶었거든요. 





⸻ 졸업 세리머니에서는 센터에서 노래하는 분도 많은 가운데, 오리지널 포지션에서 불렀던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센터에서 할래? 라고 물어봐주셨지만 역시 오리지널 포지션이 좋다고 부탁드렸어요. 저기서 봤던 경치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고 싶었거든요. 





⸻ 4번째는 카키 하루카 씨와 타무라 마유 씨와의 "3색 젤라또"로 「Threefold choice」.

언젠가 3명으로 「Threefold choice」를 하고 싶네 라는 이야기를 실은 2년차 쯤부터 하곤 했어요. 활동하면서, 언젠가는 3명으로 유닛곡을 받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마지막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사이좋게 지낸 두사람과 선보이게 해주셨어요. 두사람도 하고 싶다고 말해줘서 정해졌을 때는 「그것만을 위해 열심히 할게!」 라고 기뻐해줬고요. 본방 전의 시기에, 저희 집에 두사람이 놀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셋이서 계속 연습했어요(웃음). 5번째인 「고독한 푸른 하늘」은 애틋함과 동시에 밝고 계속 숙연한 것도 싫다고 생각해서요.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졸업 타이밍에 부르시는 선배도 많았던 곡이기 때문에, 자신의 졸업 타이밍에 졸업생 분들을 생각하고 싶어서 골랐습니다. 





⸻ 그후의 MC에서는 5기생인 스가와라 사츠키 상, 3기생인 쿠보 시오리 상, 그리고 4기생인 타무라 마유 상으로부터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모두 엄청 울어버려서요. 나도 무척 울어버렸다(웃음). 5기생인 스가와라 사츠키 쨩은 5기생에서 유일하게 식사하러 간 적이 있고, 심지어 두번이나, 무척 섬세하고 굉장한 노력가여서, 5기생의 밸런스 같은 느낌. 그런데 그런 포지션은 역시 힘들 것 같아서, 밥을 먹으러 가거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되었어요. 손재주가 좋아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거나,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고, 게다가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까 전부 열심히 해버리면, 몸도 마음도 다칠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이 돼서요. 스피치에서 이야기한대로, 휴양이 끝난 후부터 가까워져서, 아직 반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바꿔준 한 사람이에요. 제 이상은, 친구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선배가 되는 거였는데, 그렇게 하게 해준 후배님입니다. 그런 관계의 후배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쿠보 상과도 친하죠.

시오리 쨩과는 정말로 사이가 좋고, 원래는 가입하자마자 무대를 함께 했던 게 계기에요. 시오리 쨩은 완벽주의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정말로 멋지고 사람으로서도 존경하고 있어요. 시오리 쨩과 저의 닮은 부분을 알아차려주고 사이 좋게 대해주고, 서로 격려하는 관계가 되어갔어요. 그때까지도 사이가 좋았는데, 특히 가까워진 건 저의 휴양중이에요. 집까지 놀러와준다거나, 부지런하게 연락도 해주고, 시오리 쨩의 집에도 가고. 무척 많이 도움 받은 존재였습니다. 





⸻ 그리고 타무라 상. 펑펑 우셨죠.

마유탄은 그닥 울지 않거든요. 기본적으로 계속 밝고, 가끔 찡할 때도 그걸 티내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제 앞에서는 힘들다고 말해줬고, 우는 것도 보여줬고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저는 평소에도 계속 구원받고 있어서. 마유탄은 끝도 없이 계속 웃게 해주니까, 정말로 힘들 때, 웃게 해주고 밝게 해줘서, 힘든 것도 잊게 해줬어요. 하지만 아마 그거는 의외로 피차일반이었나 라고 세리머니  때 생각했지만요. 선발에 들어와서는 계속 신메인 포지션이 많았고, 좀처럼 선발의 3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고민도 같았고, 둘이서 힘내자고 서로 격려했고, 언젠가 둘이서 2열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죠. 그 꿈에서 저는 먼저 떠나버리는 게 미안하지만, 그렇게 계속 격려해주고, 어떤 포지션에서든 신메였기에 함께 열심히 할 수 있는 관계성이었고, 분장실에서도 항상 옆에 앉아 있었고. 저, 휴양하고 있을 때 제가 없어도 나아가는 노기자카46를 보는게 힘들 때가 있었어요. 그런 때, 역시 멤버로부터의 목소리가 복귀에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뭔가 특별한 걸 해주기보다, 계속 곁에 있으면서 받쳐준 게 마유탄이었어요. 복귀하고 나서부터는 저희 집에 놀러오는 게 무척 늘었어요. 그녀 나름대로 나에 대해 걱정하고 있구나 라고 느낍니다. 





⸻ 마지막인 「한여름의 길이보다...」에서는 4기생의 메시지도 있었습니다.

완전히 울어버렸다(웃음). (유미키) 나오 쨩과 재밌었네요, 「본가에 틀어 박힌다」라고(웃음). 나오 쨩, 항상 뚱딴지 같은 말을 해서 자리를 밝게 해주거든요. 최근 4기생의 형태가 점점 바뀌고 있고, 그럼에도 4기생 멤버가 그대로 있을 수 있는 건 모두가 상냥하고 좋은 아이이기 때문이에요. 모두가 계속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 인사에서 말씀하셨던 「노기자카46가 사랑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기를 기도한다」 라는 생각을 발견한 건, 어쩌면 휴양 기간이 컸던걸까 싶었습니다. 

그렇죠, 멤버와의 관계성도 달라졌고, 팬분들도 변한 것 같다고 느끼고 있었고, 예전부터 저의 팬분들은 무척 상냥한 분들이 많아서, 제가 있는 힘껏 열심히 하면 그 이상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 뿐이었는데, 복귀하고 나서부터는 지켜봐주시고 챙겨주시게 되었죠. 생각했던 것보다도 쉬어본 경험이 있는 분이 많은 것 같아서, 자신도 이런 힘든 경험을 해봤으니까, 전부는 알아달라 할 수 없지만 돌아와줘서 고마워 라던가, 열심히 지금까지 이상으로 응원할게 라고 말해주시는 분도 있었어요. 「노기자카46시간TV」 때에 팬분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원으로 내보인 적이 있었고, 그때 저는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 라고 적어드렸습니다만, 팬분들에게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 라고 듣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열심히 하는거 알아 라고 다정히 얘기해주시는 경우도 늘었고요. 응원에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고, 열량을 전하는 것도 사랑이고, 한발짝 물러서서 응원하는 것도 사랑이고, 직접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도 사랑이고, 닿지 않는 곳에서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것도 사랑이고, 다양한 응원을 받았기에 배운 부분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 이 사진집이, 팬분들이 받는 마지막 세이라 상의 목소리입니다. 무언가 전하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노기자카46의 멤버를 잘 부탁드립니다, 일까요. 저의 근저로서. 주변 사람이 행복해 하는게 저의 가장 큰 행복이거든요. 그러니까, 모두가 웃는 얼굴로 있어주면 좋겠어. 모두가 웃고 있을 수 있도록, 팬분들은 앞으로도 노기자카46의 응원을 잘 부탁드립니다.





⸻ 졸업 후의 일은 정해져 있을까요?

지금까지 5년간, 쉽지 않았던 일이라던가 하고 싶은 것도 많이 있어요. 잠시 본가에서 느긋히 돌아가거나, 여행 가는 것도 좋고요. 일하든 아니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의 주체로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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