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거들아~


커피차 써포트 날이라 갤이 시끌벅적해서 덩달아 기분이 좋다. 

잊에 영화는 다들 잘 보고 있니?

잊에 영화 보고 나서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써 봤어. 

글이 좀 딱딱할 텐데 미리 양해 바랄게. 



<잊에 영화 단상>

 

1. 첫 번째 관람 후+전체적인 감상

 

잊에 작품을 볼 때마다 하는 생각인데, 이번 영화도 보면서 참 잊에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소재나 주제, 캐릭터가 왜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 알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또한 늘 느끼는 거지만, 항상 작품에 잘 녹아든다. 작품 속 현실을 사는 생생한 캐릭터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배경 및 상황과도 조화를 이룬다. 관계성이 변할 때마다 대사 톤, 목소리, 표정 등이 섬세하게 달라지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그런 면을 여지없이 볼 수 있었다. 작년 수사반장 1958이나 최근 협상의 기술에서도 잘생긴 외모가 돋보였지만, 아무래도 큰 스크린에서 보니까 그 어떤 작품들보다 잘 생긴 외모가 더 많이 부각된 것 같다. 내내 감탄하면서 봤다. 영화의 전체적인 만듦새도 꽤 괜찮다고 느꼈다. 배우분들의 연기는 당연히 훌륭할 것이라 짐작했었는데, 역시나 연기들을 너무 잘하시고, 케미와 앙상블이 좋았다. 후반부 반전이 꽤 흥미로웠고, 결말도 괜찮게 느꼈다.

사실, 처음 볼 때는 줄거리를 쫓아가기 바쁘고, 경제금융 용어가 살짝 어렵기도 해서 서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다. 큰 틀에서 약간 헐렁하게 이해했고, 세세하게까지 이해된 것은 아니었다. 전작인 협상의 기술 시청 경험이 있어서 영화 속 상황들이 조금이나마 익숙하게 느껴지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 후 몇 차례 더 관람을 하다 보니, 서사가 탄탄하고 치밀하게 잘 짜여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금융법정 스릴러물(?)이다 보니 대사에 나오는 경제금융 용어들이 어렵기도 하고, 그 대사들 하나하나가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재료가 되기 때문에 장면 별로 대사의 밀도가 높은 편인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던 것 같다.

보면 볼수록 매우 리얼리즘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들과 스토리가 당시 실화를 극화하거나 상징적으로 표현했지만, 지금 시대상을 반영했다고 해도 무방한 것 같다(국보가 새롭게 바뀌었읍니다, 라는 슬로건의 맞춤법이 그 시대를 직접 보여주는 장치라는 것을 빼면). 실화를 잘 재현해서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을 다소 건조하고 냉철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매우 사실적인 영화인 것 같다.

 

2. 이 영화의 매력 혹은 장점?: 캐릭터와 서사 간의 긴밀한 연결+돋보이는 캐릭터 성향

 

1> 국보소주 부도와 매각이라는 사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네 명의 캐릭터성이 주축을 이루고 그 캐릭터들 간의 관계의 얽힘과 변화가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자 독특성인 것 같다. 물론, 영화는 그걸 훌륭하게 해 내고 있다.

주요 캐릭터가 각자의 성격이 뚜렷함은 물론이고, 캐릭터의 성격이 사건의 서사를 이끌어 가는 중심축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해낸다. 잊에훈이 말한 대로 캐릭터들의 연기 향연이 스크린에 펼쳐졌다고 할 수 있겠다. 누구 하나 연기력이 튀거나 쳐지지도 않으면서 각각의 캐릭터에 충실하게 하는데도 조화를 잘 이룬다. 그런데 캐릭터의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것이 그렇게 쉽거나 당연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점이 이 영화의 매우 높이 살 만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편집이나 리듬에서 튀거나 삐걱거리는 지점이 없이 매끄러웠던 것 같다. 반전이 드러날 때도, 갑작스럽거나 작위적이지 않고 꽤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몇 번 보다 보니 인물들의 캐릭터와 그걸 표현하는 대사들에서 반전의 단서들이 보였다. 짧고 굵고 강력하게 이루어진 반전들이 충분히 납득되었다.

 

2> 각양각색의 욕설 : 44색 혹은 그 이상


; 비교적 서사가 드라이하고, 비즈니스를 위한 대사들이 주로 나오기 때문에 감정 표현이 매우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석회장을 제외하고는 캐릭터의 감정 표현이 두드러지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욕설이 이런 감정들들 직접적이고 선명하게 드러낼 줄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성향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등장인물들이 그래도 제법 점잖고 지적인 인물들인데 평소에 점잖다가 조용하고 무섭게, 혹은 감정을 숨기거나 담아서 하는 욕설들이 차지면서도 맛깔나면서 좋았다. 조폭들이 주로 하는 원시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걸쭉한 욕설이 아님에도 가슴에 박히는 것 같았다. 욕설의 폭발력 혹은 욕설에 담긴 감정 표현 방식이 인물들이 처하거나 맞게 되는 상황과 맞물린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석회장은 다소 원시적이며 야성적이고 거칠다. 표이사에게 대놓고 경멸하면서 직설적으로 욕을 하는가 하면 약점을 잡아 조롱하거나 약올리기도 한다. 구변호사의 욕설은 그 섬뜩함 때문에 나까지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인범에게 욕을 할 때 나직하고도 섬뜩한 말투로 자존심을 팍 긁으면서 어마어마한 쌍욕으로 찍어 누른다. 선하고 우직한 표이사의 마지막 욕설은 매우 통괘했던 것 같다. 비교적 온순했던 이 분이 아크릴판 사이로 욕설을 날릴 때 나까지 같이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한, 분노와 경멸과 자기 다짐을 담은 욕설이라고나 할까. 그런 까닭에 영화 내내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석회장이 되갚음을 당하는 모습이 아주 희미한 권선징악을 보여주는 효과를 낳기도 하는 것 같다. 최인범의 욕은 (배우 개인을 생각하면 멋있지만) 사실 측은함을 자아내게 하는 측면들이 있다. 시원하게 내지르지도 못하는 것 같고, 타인을 빈정대거나 자기 자신을 빈정대는 욕인 것 같기도 하다. 가치관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는 상태라서 인지 자기도 자기를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욕조차도 시원하게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범의 상사인 고든은 영어만을 구사하는데, 이 배우분의 연기나 대사 자체가 헐리우드 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욕도 엄청나게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다. 우리말 번역으로는 약간 순화되어 나온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이 분의 인터뷰를 보니, 전형적인 금융맨들은 욕설이 더 심한데, 본인은 조금 순화해서 표현했다고 한다.

구변호사 뿐만 아니라 판사의 섬뜩함도 빼 놓을 수 없다. 이 영화에서는 법조인들이 제일 무섭고 섬뜩하다. 판사가 화장실에서 하는 말은 실제로 욕도 아닌데도 제일 무서웠다. 이 법조인들은 수싸움의 실질적 승자가 된다. 구변호사는 솔퀸의 승리의 주역이 되고 판사는 인범을 감옥으로 보냄으로써 자신이 받은 모욕에 복수한다. 국보의 파산처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이 두 법조인이다.

 

3. 서사의 또 다른 축 : 브로맨스와 성장

 

1>부드럽고 프레시하게 : 성장의 시작(+이 영화에 거의 없는 아주 소소한 유머를 담당하기도)


부드럽고 프레시하게이 슬로건은 표이사와 최인범의 브로맨스 혹은 우정의 매개이자 두 사람의 성장과 변화의 매개이기도 한 것 같다. 특히 최인범. 인범은 결국 배신 당하고 희생 당해서 감옥을 가게 된다. 인생의 쓴 맛, 소주의 쓴 맛을 어쩌면 제일 강하게 맛본 인물인 셈이다. 그런 그가 부드럽고 프레시하게, 라는 말로 영화의 끝을 맺는 것은 인생의 쓴 맛을 겪은 이후의 변화를 표현한 게 아닐까(물론, 종록의 제안으로 하게 된 말이지만).

처음에 표이사가 소주 공장을 보여주면서 새로 출시된 탑소주의 맛을 평가해주길 인범에게 권한다. 인범을 대신해 표이사와 연구원이 부드럽고 프레시하게, 라고 말하고 인범이 그 말을 따라한다. 표이사에게 야심을 숨기고 접근했던 그는 부드럽고 프레시하게, 라는 광고를 보면서 빈정대는 표정을 짓는다. 한 번은 사무실의 모니터를 보면서 또 한 번은 거리의 입간판을 보면서. 그랬던 그가, 영화의 마지막에서 부드럽고 프레시하게, 라는 말을 자기 입으로 웃으면서 내뱉는다. 사실 이 영화가 기업금융법정 스릴러물에 걸맞는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고 할 때, 인범과 종록의 브로맨스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 같은데, 그걸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부드럽고 프레시하게라는 슬로건이 아닐까 싶다. 인범은 이 영화에서 가치관의 갈등이 가장 심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탐욕적이고 그래서 완전 망하거나(석진우), 성공하거나(구영모) 하는 인물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서 결과를 얻어내지는 못했으나, 결국은 자기 소신대로 삶을 사는 표종록. 법조인들처럼 하나만하지 못해서, 어쩌면 석회장처럼 가지가지 하는 바람에 자신이 놓은 꾀에 자기가 당한다. 혹독한 시련을 겪고 서로의 변화에 각자의 지분이 있음을 표이사와 함께 인정한 후에 내뱉는 말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비록 복수를 꿈꾸고는 있지만, ‘부드럽고 프레시한삶이라는 가치를 생각해 보게 되지 않을까.

    

2> 최인범의 캐릭터

 

누구보다 야심과 욕망이 크지만, 이 영화에서 그 욕망과 야심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내적 갈등이 가장 큰 인물이자 가장 많이 흔들리는 인물이 최인범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사실상 표정에서는 그게 잘 잡히지 않는 것 같았다. 특히, 표이사의 투신 사건 이후 표이사의 집에서 표이사의 삶에 대한 회한에 공감하며 눈물을 글썽이다가 국보에 도움이 될 법한 사진 자료를 건네줄 때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결국에는 표이사의 뒤통수를 치게 되는데, 처음 볼 때는 뭐지, 악어의 눈물인가, 자기도 자기 마음을 모르나 싶기도 했다. 몇 차례 보고 나니, 표이사에 대한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인범으로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버지를 투영하는 마음과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다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과 인생을 분리하는 자신의 삶의 원칙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잊에의 인터뷰에서 인범의 아버지와 얽힌 전사가 편집 과정에서 생략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표이사를 향한 인범의 애증과 죄책감 등 이중적인 감정선이 직접적으로는 잘 안 느껴졌던 게 아닌가 싶다. 홍콩 솔퀸 직원과 대화할 때 자기가 나쁜 놈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밉다고 하는 장면, 법원 복도에서 종로과 마주치는 두 번의 장면에서의 표정이나 대사들에서 그런 이중성이 미묘하게 감지되는 것 같기는 하다).

 

) 여기서 배우잊에훈의 성장담으로 넘어가 보자면, 그는 수사반장 1958의 박영한이 되어서 휴머니즘을 품은 열혈 형사가 되었다가, 뜨거운 기운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고 냉철하며 감정을 절제하는, 하지만 인간미를 놓치지 않는 능력 있는 협상전문가 윤주노가 되었다. 그에 비해 이 영화 속 최인범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과연 예측할 수 있을까?

 

4. 내가 좋아하는 장면


1> 종록이 파산 신청 후 1차 재판에서 회장에게 모욕적인 언사도 듣고 상황이 회사에 안 좋아지자 절망하고 사무실에서 사직서를 쓰기까지 고민하는 장면. 고뇌하는 종록의 모습과 클로즈업 되는 손에 이상하게 눈이 갔다. 그 손이 되게 여리고 부드럽고 유약하게 보였다. 그러고 나서 투신을 하니까 다시 영화를 볼 때도 그 손이 등장할 때부터 이미 마음이 슬퍼지기 시작했다.

 

2> 종록이 퇴원하고 집에 올 때 집 앞에서 기다리던 인범과 그를 외면하던 종록이 집안에서 소주 한잔 같이 하는 장면. 여기서 종록이 투신한 이유에 대해 말하다가 자신의 인생에는 회사 밖에 남는 게 없다고 말할 때 또르륵 흐르는 눈물과 이어지는 인범의 글썽이는 눈을 좋아한다. 처음 볼 때부터 맞아, 잊에야, 니 맘이 내 맘이다, 그 눈물이 내 눈물이다, 하면서 울컥했는데, 결국에는 배신을 때려버렸던 잊에훈.

 

3> 화장실부터 체포영장 받기까지 모습. 이 장면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질감과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뒤통수를 맞고 거울을 보면서 내뱉는 인범의 대사, 그 후에 등장하는 판사의 협박, 그리고 계단 아래로 내려올 때부터 체포영장을 받기까지의 장면 모두 좋아한다. 처음 볼 때는 계단 아래서 보이는 양복 입은 남자들이 판사가 보낸 깡패인 줄 알았다. 붉은 빛인지 핑크빛인지 모를 배경색과 검정색 양복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주는 색감 대비가 느와르 같고 멋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영화는 '총성 없는 전쟁'의 세계이기도 해서 피 튀기는 장면 하나 없는 그런 전쟁의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 장면이 주는 묘한 이질감과 긴장감이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5. 반한 모습들 : 공항씬 뒷모습은 수트핏이 매우 좋고 날씬하고 길쭉해 보여서 멋졌다. 쌍화주를 먹는 손대리의 모습을 보고 짓는 표정이 매우 실감나 보여서 좋았다. 농구장에서 전화 통화를 할 때 흰 티셔츠를 입고 블루 셔츠를 걷어 올린 모습이 멋있었다. 국보병원에서 종록에게 전화할 때 뒷모습이 협상의 기술 포스터 생각도 나면서 좋았다. 감옥에서 면회 온 고든과 독대할 때 왠지 처연하고 가엾지만 늘 보면서도 실감하지 못했던 속눈썹의 존재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