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교 임관한 뒤 한참 체력에 자신 있어하는 날 보고
중위 한분이 하프 마라톤에 같이 나가자 했었다.
흔쾌히 수락했지만 대회날이 다가올 수록 겁이 났다.‘10키로만 뛰어도 이렇게 힘든데 20키로라고…?’

결국 대회 전날 일부러 술을 진탕 마셨다.

아침엔 ‘아 제가 어제 과음을 해서..’라고 둘러댔다.

도전하기도 전에 도망쳤었다.
10년이 훌쩍 지나고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방송이나 대화에서
‘마라톤’ 이라는 단어가 귀에 걸리기라도 하는 날엔
찜찜함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러던 중 유튜버 ‘긴벌레’의 3점슛 영상을 봤다.
도전하기도 전에 도망쳤던 내 모습을 끄집어내
발가벗겨 손가락질 하는 듯한 영상이었다.

귀에 거슬리는 단어 마라톤을 지워내기 위해,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억지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첫 하프를 뛰었다.
누군가에겐 조깅 페이스도 안되는 기록이지만,
그래도 좋다.

과거의 나에게 빚은 갚았다.
이제 10년간 쌓인 이자만 남았다.
내년 풀코스를 목표로 달릴거다.
이제 도망치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