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붕이들이 길을 가고 있다고 해 보자. 착한 백수 죠붕이는 엄마가 운동이라고 하라고 닦달해서 길을 가다가 칼빵을 맞아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바닥을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쳐 보자. 눈에도 칼이 하나 꽂혀 있고 여기저기 만신창이에 온몸에는 칼빵 자국이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바닥에서 일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이 제 피 속에서 수영하는 것처럼 보일 만큼. 어딜 봐도 전혀 괜찮지 않고 간당간당한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죠붕이들은 이런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할까? 안방 구석에서 디씨질 하면서야 여포니까 부순다 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만나면 도와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만일 이 상황에서 칼빵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사람이 괜찮다고 웃으면 어떻게 할까?


죠붕이들은 대개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정신이 이상해졌겠거니 생각하며 119 버튼을 누르고 있겠지. 직접 상처를 때워 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멀찍이 떨어져서 119를 불러 줄 생각이라도 할 것이다. 아마 여기서 이 사람이 웃는다고 해서 "별거 아니네? 얼른 일어나서 걸으세요"라고 할 새끼는 없을 거란 말이지.

그런데 정신과 질환에 관해서는 적어도 사회가 현대까지 이런 "직접 일어나서 걸으라"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얘기를 왜 하냐고? 바로 오늘 설명해 줄 주제가 정신의학이라서임






다들 알다시피 소르베가 36갈죽 되고 나서 포르마조가 나란챠에게 이런 발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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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이라면 "아니, 동료가 죽었는데 저런 농담을 던져? 완전 싸이코패스 아니냐?" 라고 생각할 것이다.

회상장면에서 나온 포르마조의 유쾌한 성격하고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거임.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다. 내 생각으로는 포르마조는 사실 위에서 말했던 너덜너덜한 사람과 비슷한 상태일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아래 이유들이 있다.






1.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본인의 경험을 말하며 웃는 경우가 종종 관찰된다.





심리 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겪는 생소한 일들 중 하나로 PTSD상담을 온 사람들이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말하면서 웃는 경우를 든다.

상담사들에 의하면, 미소를 짓는 경우부터 소리내어 웃는 경우까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의 웃음이 관찰되며 농담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괴롭고 끔찍한 경험을 도로 떠올리는데 왜 농담을 하고 소리내어 웃고 미소를 짓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꼽는데 

1.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지" 라고 나쁜 기억을 덮어쓰기 위하여

2.분노, 슬픔 등 부정적인 감정과 연관짓지 않기 위해 웃음으로 덮기

3.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억압받아 분노나 슬픔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경우

4.상담사에게 공감을 구하거나 상담사를 안심시키기 위해

5. 트라우마에 집중하지 않기 위해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상담사와 얘기하는 게 아니니까, 그쪽 선택지를 빼고 나면 전부 트라우마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덮어쓰거나, 집중하지 않는 등 회피하기 위하여 웃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자기의 트라우마 상황 자체를 농담삼아 시시덕거리는 것 자체가 사실은 일종의 회피 반응이었던 것이다.





2.블랙 유머 자체가 방어기제로 작용한다.





심리학 공부 안 한 나같은 좆밥 죠붕이도 아는 프로이트가 1927년 저서 Der Humor(농담과 그것의 무의식과의 관계)에서 이런 말을 했다. 





"The ego refuses to be distressed by the provocations of reality, to let itself be compelled to suffer. It insists that it cannot be affected by the traumas of the external world; it shows, in fact, that such traumas are no more than occasions for it to gain pleasure."

자아는 현실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고통받기를 강요당하는 걸 거부한다. 자아는 외부 세계의 트라우마들에 의해 영향받지 않으려 한다; 


 

물론 이 양반이 모든 걸 꼬추로 연결시키는 양반이라 학계에서도 그럴듯한 말만 걸러 들은지 오래 되긴 했는데 

어려워보이게 늘여 쓴 문장이지만 요약해 보면 유머라는 건 고통을 강요하는 세상에 던지는 현실부정의 메카니즘이라 이거다.

아까 말한 칼 맞은 사람으로 비유를 해 보자면, 칼을 쳐맞고도 일어서서 "하하! 하나도 안 아픈데? 이게 칼빵임? ㅋㅋㅋ" 이러는 거랑 똑같다는 거다.

근데 그런다고 상처가 크D맞은것처럼 뿅 사라지나? 아니란 건 오쿠야스도 알 거임

왜 그렇게 쎈 척을 하느냐? 일단 암살팀의 조직 상황상 다같이 겪고 있는데 말하기 힘든 것도 있었을 거고

남성 집단에서는 서로 약한 부분을 보이기 싫어하는 경우가 있고,그래서 심리적인 상처가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폭력을 다루는 직종들인 군인, 소방관, 히어로 등에서 더 그렇다. 그 중에서도 갱단은 조금이라도 약해 보이면 제거되는 게 일상인 동네다. 일례로 카우보이 코스프레를 하고 다니던 갱 단원이 가오 안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거당한 전례가 있다....

전쟁 베테랑들이나, 소방관, 경찰관, 조직폭력배나 히어로 등등이 매체나 실전에서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 그럼 포르마조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여기서 포르마조는 상처를 전부 극복해서 이런 말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상처를 극복했다고 과시하고 있지만, 그럼으로서 본인이 트라우마에 취약해진 상태라는 걸 가리려고 애쓰는 연막에 불과하다. 

이 쪽 가설이 신빙성있는 이유는, 뒤에 포르마조가 하는 발언과 행동의 일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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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마조는 나란챠가 동료 이야기를 꺼내자 이렇게 반응한다.

물론 작중에서 암살팀이 마약 루트를 손에 넣겠다는 이야기를 계속 하지만, 바로 다음 대사에서 "우리들"이라고 말해 버리면서 동료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 말을 스스로 반박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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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명이 죽어나가도 이상할 게 없는 금액이라며 스스로에게 계속 둘의 죽음을 합리화시키고 납득하려고 애쓰는 건 덤이다.


진짜 돈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주케로와 살레처럼 적당히 처맞고 뻗었으면 돈까지는 얻지 못하더라도 목숨을 건져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 것이다. 전신화상을 입은 상태에서 이미 돈이 얼마가 있든 몸을 건사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맞는 거니까.

하지만 포르마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못한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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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말마따나 이미 돌아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돈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중에서 언급된 그 중요한 동기라고 할 만한 건 동료의 죽음뿐이다.



3. 기타


그 밖에도 포르마조는 여러 가지 PTSD의심증세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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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급한 상황에서 트라우마가 된 상황을 다시 생생히 경험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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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이나 술 의존성을 보인다던가(고양이가 들어있는 샷에서 볼 때 와인으로 보이는데, 혼자 두 병이나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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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존재들에게 파괴적인 행동을 보인다던가






물론 우리가 2년동안 그를 옆에서 붙어서 지켜본 것이 아니므로, PTSD인지 아닌지 이런 단편적인 정보만 보고는 판단할 수 없다.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정신과 진단 기준으로 삼는 DSM-5 기준에 의하면, PTSD가 성립하려면 아래 8개 조건들을 모두!만족해야 된다.




1.트라우마(죽음이나 죽음에 준하는 상황, 부상, 성적인 폭력을 당하거나 위협에 노출됨)에 노출(직접 목격/친지가 상황에 노출되는 것을 알게 됨/수습하는 데 연루): 소르베와 젤라토의 죽음을 목격, 충족 


2.트라우마 상황을 다시 생생하게 겪음(악몽,생생한 플래시백, 회상 전후의 신체적/정신적 반응):9분짜리 회상신, 충족


3.회피반응(상황에 대해 언급하거나 상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상황을 피함): 작중 소르베의 죽음에 대해 간접적으로 언급함으로서 회피반응이 아닌 것 같지만, 위에서도 봤듯이 오히려 비슷한 상황에 본인을 노출시키는 방향으로도 회피반응이 나타난다고 함. 성폭행 피해자의 경우 섹스에 본인을 더 노출시킨다던가, 사고 환자의 경우 익스트림 스포츠에 빠지기도 한다고. 보통은 회피반응이라고 생각하지 못하지만 본인이 트라우마를 당할 때 비슷한 상황에서 통제권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에 본인을 노출시켜서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재확인한다고. 고로 블랙유머를 던진다던가 하는 것도 약한 회피 반응에 포함될 수도 있겠다. 고로 충족..?


4.인지와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트라우마 상황의 중요한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세상을 나쁘게만 본다던가, 자신이나 타인에게 과장된 방식으로 비난을 돌리려 한다던가, 외로워한다던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힘들어짐) 괄호 안의 2가지를 만족하면 되는데, 작중에는 해당되는 부분이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고로 미충족.


5.흥분하거나 반응할 때의 변화(공격성, 위험하거나 파괴적인 행동, 과잉각성, 집중이나 수면에 어려움을 겪음): 작중 키우던 고양이를 술병 안으로 집어넣는 등 가까운 존재에게 파괴적으로 구는 행동, 혼자 트리시를 찾으러가는 행동이나 나란챠에게 도발을 거는 등 도박/위험성을 띤 행동이 포착, 충족.


6.증상이 1달 이상 지속: 작중 소르베 36갈죽 사건이 2년이 지났으니까, 충족.


7.괴로움이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나타남: 이것도 역시 나란챠와 싸우는 부분 말고는 보여지지 않았고, 특유의 느긋한 성격 때문인지 괴로워하는 모습도 볼 수 없어 미충족.


8.위의 7가지 상황들이 약물이나 다른 질환에 의해 나타나지 않음: 충족.


조건을 다 만족하지는 못했지만, 그건 우리가 트라우마 이후의 삶은 나란챠와의 전투밖에 보지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물론 이제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PTSD까지는 아니더라도 트라우마 이후에 꽤나 깊은 심리적인 상처로 고생하고 있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4. 진짜 뻘소리



몇몇 죠붕이들은 이럴거임 아마

"아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 둘을 뚝딱 해치우는 양반이 고작 친구 둘 죽었다고 PTSD에 걸린다고?"

하지만 이건 의외로 간단하게 반박 가능하다.


사회 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내 편과 적 편을 구분하는데,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고 늑대들이 무리 싸움을 하는 장면에서 이런 니편내편을 구분하는 걸 잘 느낄 수 있다. 아마 사회학? 심리학? 이런거 하는 애들은 용어를 알텐데 나는 용어를 몰라서 니편/내편으로 씀 


니편/내편은 이렇게 야생에서조차 구분이 되면서 해도 되는 행동과 하면 안 되는 행동의 범주를 정해 주는데, 보통은 고기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잘 작동하지만 가끔 그게 꼬여서 초식동물을 내편으로 인식해 아이처럼 돌보는 육식동물 등등을 만들기도 하지. 죽여도 되고 안 죽여도 되고를 구분하는 니편/내편구분이 이렇게 꼬이기가 쉽다는 거다.

그런 꼬이기 쉬운 니편내편을 인간은 기막히게 이용하는데, 바로 전쟁에서 적의 타자화이다.


사상이 다른 사람들을 학살하거나, 전쟁에서 적 편을 묘사할 때 비인간화라는 전략을 사용한다.

 인간의 뇌가 니편/내편을 구분해서 죽이면 안되는 존재/조금 죽여도 되는 존재로 구분하는데, 일단 팔다리가 달린 인간으로 인식하는 이상 같은 인간, 즉"내편" 이라는 감정이 들어 죽이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이럴 때 끼어드는게 비인간화로, 적의 모습을 표적지로 쓴다던가, 사상이 다르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라거나, 열등한 인간이라는 것을 중점적으로 묘사한다던가 하면서 "쟤들은 인간과는 달라, 그러니까 우리 편이 아니야" 라고 조금씩조금씩 세뇌를 하는 거다.

결론적으로 내 편이 아닌 인간은 인간이라는 감각이 희미해지면서 "조금 죽여도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무섭지?


작중 포르마조가 사는 네아폴리스는 연간 갱단 싸움으로만 300명씩 죽어나가는 도시이므로 아마 그도 나폴리에서 나고 자라 갱단에서 구르면서 "내 편이 아니면 조금 죽여도 된다"라는 인식을 학습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로 "내 편"의 테두리 안에 없는 정치인은 편하게 죽였지만, "내 편"인 소르베와 젤라토의 죽음에는 그렇게 격렬하게 반응할 수 있었던 거지.

물론 니 편을 죽인다고 해서 PTSD가 아예 따라오지 않는 건 또 아니지만.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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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트리시를 잡으러 갈 게 아니라 손잡고 심리치료를 받으러 갔어야 했다. 

하긴 문제를 인식하더라도 돈이 없지.....






한줄요약: 포르마조는 PTSD까지는 아니더라도 깊은 심리적인 상처를 안고 있으며, 농담을 던지며 시시덕거리던 모습은 사실은 끔찍한 경험을 회피하고 덮으려는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