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존나 바빠서 이제올림
한동안 죠낸 바쁠 예정임 에라이 씨발것
이걸로 후편까지 전부 완결났다 ㅇㅇ
첫 콜라보인데 어땠는지 감상평 좀 남겨주시면 향후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이와요 하와와
죤나 힘들었다 쉽헐
전에도 말했지만 후편은 내가 쓴 게 아니라서 내 평소 글이랑 좀 많이 다름
즐감
그 이후 그녀가 들려준 모든 이야기들은, 그 길고도 험한 모든 여정을 간략히 압축한 이야기였다. 간결한 핵심을 짚어 그것만을 간추려 이야기를 들려주넊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만악의 근원이던 기존의 보스는 자신마저 죽이려 하였다. 그렇기에 우린 보스를 배신하고 우리가 천신만고 끝에 쓰러뜨렸다. 새로운 보스인 죠르노 죠바나는 디아볼로에게 억울하게 숙청당하거나 잡힌 사람들을 풀어주라고 했다고. 그러나 당신은 무고한 자신들을 죽이려 했고, 특히 자신을 직접적으로 노렸기에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해 보스는 트리시 자신에게 모든 선택권을 주고싶다 해서 결정권을 자신에게 주었다고.
"원래라면 당신 여기서 아파서 죽던 얼어죽던 신경도 안 쓰고 싶었어요."
그렇게 말을 돌린 트리시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당신 여깄는 건 아무도 몰랐고, 최근에서야 겨우 알게 된 거라고. 우리 입장에선 당신이 여기서 죽어가던 말던 그냥 안 내려가면 그만이었다고.
"...하지만 과거 조직에게 살해당한 당신들의 동료 두 명에 대한 초콜라타의 보고서와, 당신들에게 배정된 예산 중 횡령에 대한 흔적들, 그리고 친위대들이 당신에 대해 올린 보고들을 보고나서, 그렇게 보내는 건 좀 아니란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끝낼 때 끝내더라도 번거로울지라도 제 손으로 직접 끝내러 내려온 거에요.
동정 따윈 안 해요. 당신들은 그럴 자격도 없으니까. 우리도 당신들에게 몇 번이나 죽을 뻔했으니까요. 자기들 살고 싶다고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려 했던게 당신들이니까요. 구역질 나는 사악함은 당신들과 내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만 잃은 게 아니에요. 당신들의 전 보스이자, 저에게 있어 아버지란 이름에 먹칠에 똥칠을 해놓은 그 망할 자식에게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고 그 과정에서 소중한 친구들을 잃었죠. 저도 검은 장례복 드레스를 벗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요. 그러나 죽은 사람의 기억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더 나아가야 한단 걸 죠르노와 제 일행들이 가르쳐줬어요.
죠르노는 보스를 이기기 위해 굳은 각오를 다졌어요. 그 각오로 열어낸 새로운 황금의 길을 보고서 전 기적을 봤죠. 그들을 보고서 이 곳으로 내려올 생각을 하게 된 거에요. 이대로 갇혀서 방치해 죽이고 끝난다면 당신한테도 나한테도 지독하게 허무할 것 같았으니까요. 계단 내려오면서 몇 번이나 다시 올라갈까 싶었지만 결국 내려온 게 그 때문이에요. 죽 되던 밥 되던 직접 끝을 보러 온 거에요.
이건 단순한 우월감과 비열한 오만함에서 나온 판단이 아니에요. 새로운 보스가 보여준 기적을 더더욱 유의미하게 쓰고 싶었을 뿐이에요. 내 자신의 각오로 다진 결정이자 내 선택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을 끝마치곤 잠시 입을 다물다 리조토를 노려본다. 허무감과 자괴감, 그리고 허탈함이 언뜻 보이는 것만 같은 그의 모습에 그녀의 눈살이 조금 찌푸려진다.
곧이어 분홍빛의 안개를 머금고서 나타난 스파이스 걸이 고대의 전사와 같은 공격 태세를 갖추며 나타난다. 단단하고 심지가 굳은 모습으로 발현한 스파이스 걸의 손이 총알처럼 날아가 리조토의 목을 세게 붙잡는다. 그러고선 그대로 거세게 그를 붙잡아 벽면에 내던진다. 쾅 소리가 나며 리조토의 몸이 거칠게 내던져져 벽에 한 번 쳐박혔다 그대로 바닥에 풀썩 스러진다. 심한 통증에 충격을 받은 리조토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두 팔로 겨우나마 자신의 몸을 받친다.
트리시는 차갑게 말을 이어나갔다.
"착각하지 마요. 난 당신 도우려고 내려온 게 아니에요. 지금의 저는 당신 따윈 충분히 제압하고도 남아요. 당신의 그 같잖은 팀원들에게 쫓기던 무력한 모습으로 기억하고 덤볐다간 이 자리에서 갈아버릴 수 있다고요. 전 벨도 없고 자존심도 없어서 화를 안 내는 게 아니에요. 지금 당장에라도 당신을 쳐죽이고 싶은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세지도 못해요.
하지만 여기 들어섰을 때 당신이 그 지경이 되어 있는 걸 보고 차마 다 죽어가는 인간을 두들겨패 죽이고 싶진 않았죠. 최소한의 존엄성이라도 지켜주고 그 다음에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걸 알게 하고 나서 내 손으로 알아서 죽이길 바랬을 뿐이에요. 내가 당신한테 치유 물약을 먹인 건 당신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때문이에요. 이제껏 당신이 쌓아온 업보의 무게를 깨닫고 짓눌려 죽길 바랬을 뿐이라고요. 적어도 뭘 잘못했는지는 알고 죽어야죠. 내가 각오한 건 그거에요. 난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한 트리시는 더 이상의 말은 필요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선 자신의 스탠드 스파이스 걸과 천천히 기품있게 걸어왔다. 또각또각 소리가 고문실에 울리며 중압감을 더하고 있었다. 리조토는 아픔을 삼켜내고선 아까의 벽에 쳐박힌 충격이 조금이나마 가신 몸을 조금이나마 팔로 일으키며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트리시의 당당한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트리시는 그의 앞에 서서 꼿꼿이 선 자세로 리조토를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그녀의 스탠드 스파이스 걸은 단단한 주먹을 쥐고선 공격태세를 갖추어 금방이라도 펀치를 날릴 기세로 리조토의 옆쪽에 선다. 둘은 또렷한 적개심과 살의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녀는 리조토를 노려보며 가라앉은 침착함과 냉정함을 담아 말했다.
"각오는 되어 있겠죠?"
명백하게 눈 앞의 상대의 머리통을 부숴버리겠단 살의를 품고 나타난 스파이스 걸은 살벌한 독기를 품고서 리조토의 옆에 나타나 자세를 잡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은 저 펀치는 비행기조차도 러쉬로 베어부순다. 인간이 대응할 수 있는 스피드와 파워를 아득히 넘어선 경지였기에, 사람 머리통 따윈 일도 아닐 것이다. 스파이스 걸은 마치 형을 집행할 준비를 마친 사형집행인 같았다. 그것이 주먹을 쥔 것만으로도 장난 아닌 위협과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옆에만 있어도 숨이 막힐 압박감이기에.
리조토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아까 스파이스 걸이 단 한 번 펀치를 갈긴 돌바닥에 사정없이 금이 가고, 박살이 나 있었다. 자신에게 이토록 가까이 다가온 것과, 2미터 이내로 다가온 것, 그리고 무시무시한 괴력과 스피드. 자신이 사력을 다해 싸웠고, 지금의 자신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든 보스의 것과 꼭 같은 근거리 파워형 스탠드 타입이다. 얼핏 그의 입가에 쓴웃음이 엷게 나타났다.
리조토는 후들거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었다. 몸 하나 가누는 것도 힘겨웠다. 겨우겨우 균형을 잡은 그는 바닥에 손을 짚고서 말없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바닥에 무릎을 꿇어 앉았다. 무릎에 팔을 얹어 겨우겨우 자세를 지탱해 유지한다. 그리고는 천천히, 떨어지지 않는 입을 떼어 겨우 입을 열었다.
"...당신의 분노는 정당합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트리시의 앞에 꿇어앉은 그는 머릴 숙였다. 그리곤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스스로 시각을 포기했다.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변명할 여지도 없었고 자신이 한 행동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자신이었다. 자신의 눈 앞에 서 있는 성장한 소녀에게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트리시가 자신을 죽여주는 게 도피오에게 고문당해 죽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그렇기에 그는 조용히 처분을 기다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라고 말하듯 그는 조용히 고갤 수그린 채 처분을 기다렸다.
그런 리조토의 태도를 내려다보던 트리시의 눈에는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분노의 감정이 들끓어오르며 그녀의 마음 속 용광로에 불을 지피고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모든 것을 선명하게 눈에 담고 짜 담으며 기억하는 그녀는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날들의 기억을 되담아 퍼올린다.
이 자식과 그 부하놈들 때문에 우리가 어떤 일을 겪었는데,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데, 얼마나 떨면서 떨면서 길을 나아가야 했는가. 나란챠에게 시비를 걸어온 일부터 시작해 죠르노와 푸고, 아바키오를 거울 속에서 위협해온 일, 피렌체행 특급 열차에서 갑자기 모두가 다 늙어버려 이대로 자신과 함께하던 사람들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리며 거북이 안에서 떨면서 지내야 했던 일, 자신과 동행하던 사람들을 죽이려한 펫시가 자신을 거북이 밖으로 끄집어내고 나머지 사람들을 다 죽이려 하다 갈갈이 찢겨 호수의 물 속으로 던져지는 걸 눈앞에서 지켜봐야했던 일, 자신의 몸을 마구잡이로 잘라내고 기워내어 가구로 만들어버려 몸이 구겨진 채 꼼짝없이 인질로 잡히는 굴욕을 준 일, 죠르노와 미스타를 냉기 속에서 위협해온 일, 그 외 팀원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로 그동안 자신들을 끊임없이 위협해온 이들이 누구였던가. 그 모든 걸 지켜보고 지휘하며 명령을 내렸을 게 이 사람이었다. 이 자식이었다. 저 개자식이 모든 걸 지휘한 거다. 저 새낀 제 애비자식과 다를 게 없는 후레자식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 트리시의 꽉 다물어진 주먹이 바들바들 떨린다. 왜 그랬냐고 추궁할 이유도 심문할 필요도 없다. 부차라티의 말대로, 이들은 지들만 생각해서 남들한테 민폐 끼치고 다니며 합리화하는, 구역질나는 최악의 족속들이다. 그것만 생각해도 당장 뼈랑 살을 도려내서 갈아버려도 시원찮을 정도로 증오스럽고 밉고 저주스러운 존재가 이 자였다.
당장에라도 스파이스 걸의 주먹으로 와나비 러쉬를 갈겨 몸 구석구석 빠짐없이 박살을 내버리고 싶은 충동이 불같이 일어올랐다. 아니면 적당히 두들겨패고, 죠르노가 건네준 폭탄 목걸이를 이 자식에게 걸어 그대로 개처럼 질질 끌고 간 다음 내일 콜로세움에서 파시오네 공개처형식으로 만인이 보는 앞에서 폭사시켜버릴 수도 있었다. 굴욕감과 모멸감, 공포감과 두려움에 떨며 하룻밤을 지새우다 만인의 앞에서 온갖 욕을 들으며 굴욕감과 타오르는 폭사의 고통 속에서 죽는다.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얼마나 쾌감을 돋구는 말인가. 살면서 누군가를 이토록 죽이고 싶단 간절한 살의가 들끓어오른 적은 아무 이유없이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디아볼로 외엔 없었다.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오래된 말뚝을 뽑아내고 새로운 씨를 뿌리는 일이다. 드디어 질긴 악연을 끊고서 새롭게 나아갈 때다. 트리시의 스탠드 스파이스 걸의 주먹이 대기조차 뚫고서 힘차게 리조토의 머리를 향해 정확히 날아간다. 내리꽂아진다. 힘껏 움켜쥔 주먹으로 그녀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
정말 아주 짧은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스파이스 걸이 내지른 주먹을 피하지 않고 눈을 감고 처분을 기다리는 리조토 네로의 정수리 바로 부근에서 스파이스 걸의 펀치가 일순간 정지한 것은, 정밀 초고속 카메라로도 못 잡을만큼 정말 극한의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타이밍이었다. 피가 끓어오르고 있던 트리시는 분노로 눈이 뒤집히는 그 순간, 고삐가 풀린 말의 고삐를 기적적으로 다시 채워난 조련사의 기적처럼 일순간의 감정을 제어해내고 깊은 심호흡을 하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차게 식은 머리를 위해 꽉 쥐어진 트리시의 두 주먹이 새하얗게 될 정도로 그녀는 질끈 자신의 정신을 동여매었다. 그리곤 두 눈 똑바로 뜨고 자신 앞에 무릎꿇은 초라한 자를 내려다보았다.
그 짧은 순간 망각의 샘의 밑바닥에 애써 묻혀있던 기억 몇 조각을 끄집어내 생생이 퍼올렸다. 트리시는 죠르노 일행과 함께 그들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지금껏 지나온 여행길을 되돌아갔던 그 때를 기억한다. 그 때 그녀는 그녀와 자신의 일행을 습격하고 위협한 히트맨 팀의 아지트와, 그들이 2년 전 보스의 직속팀에게 대량으로 착불로 받은 택배들의 내용물을 마주한 그 때를 기억한다. 그 안에 있던 수없이 많은 액자틀과, 그들이 받은 액자의 내용물들. 그 외에도 갑자기 행적을 모조리 감추었다며 밀린 월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낡고 더러운 아지트의 집주인 할머니의 이야기들과, 그 외엔 어느 곳 하나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그들의 흔적은 그들이 세상에서, 조직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살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간 끝에 그 수없이 많은 액자틀에 담겨 있던 내용물에 대한 충격적인 내용과, 그들의 과거 행적을 캐낸 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역시 트리시에겐 숨김없는 진실이었다. 단순히 돈과 조직의 전복만을 위해 위협해왔다면 이들의 행동에도 그렇게 드러나야만 했다. 순수한 물욕만이 드러나왔어야 했고, 마리오 주케로와 살레처럼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물욕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처절함이 그들의 행동에서 묻어나왔고, 이를 의심한 죠르노와 트리시 일행이 이들을 조사한 결과 그 끔찍한 액자 속 내용물들의 진실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트리시의 머리는 이미 결론을 도출해낸 채 왔다. 이들은 동료를 잃고 복수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이용하고 죽이려 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비록 이들이 잘한 건 없지만, 결국 모든 게 디아볼로로 인해 일어난 일이며 이 사람 역시 가해자이며 피해자였단 것을 트리시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부차라티 팀과 애꿎은 민간인들의 희생을 서슴없이 강요했다. 비록 수단과 방식이 잘못되었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자신을 죽이려 한 건 아니었다는 것과, 근본적인 원인제공자가 망할 제 아비라는 것을 트리시는 다시금 되뇌이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결론을 도출해도 마음이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하면 사고과정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시각으로 모든 걸 바라봐야만 한다. 정치든 세력의 관리에서든, 엄격한 자기통제의 싸움이 바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자, 살아남는 방식이다. 그러는 동안 무서울 정도로 머릿속이 냉정해지고 차분해져가고 있었다. 그러자 생각이 명확하고 뚜렷해지며 시야가 밝아지고 선명해졌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천하의 둘도 없는 개자식이었던 디아볼로만 봐도 알 수 있다. 누군가를 죽여서, 누군가가 죽어서 죽음으로서 속죄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제와서 이 자식의 머리통을 날려봤자, 고문을 해봤자 자신의 곁을 떠나간 소중한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복수를 이뤄봤자 그 끝엔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트리시는 아직까지도 사르데냐 섬과 콜로세움에서 겪은 동료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절망감을 기억하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지독한 허무와 슬픔을 깊이 이해하고 슬퍼하고 있었다.
만약 부챠라티가 살아 있었다면, 만약 나란챠와 아바키오가 살아 있었다면, 만약 엄마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어른으로 성장한 그녀가 그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면....
그리운 이들을 마음 속으로 그릴 수는 있어도, 이 자식을 죽여서 다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차별한 복수와 몰살, 제 아비가 걸었던 과오의 전철을 자신이 밟는 것만큼은 죽기보다 싫었다.
무엇보다 죠르노가 자신의 몸에 화살을 찔러 기적같은 형태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남겨진 자는 허무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분명 이 자를 여기서 죽이고나면 당장은 말로 표현 못할 쾌감과 희열감이 모조리 몰아치며 기쁨의 춤을 추겠지. 하지만 그 뒤에 남는건? 어둠 속에 귀신을 가두듯 숨겨진 지독한 허무감이 고개를 들 뿐일 것이다. 이제와서 죽여봤자 대체 무슨 소용인가. 허무감에 몸부림칠 날만 더더욱 늘어날 뿐이다.
트리시는 잠시 자신과 함께했던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지금 살아서 함께하는 이들과, 한 발 먼저 자신을 떠나 편안한 안식에 잠든 이들... 그들과 함께한 기억들은 지금의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었고, 모진 마음고생은 그녀를 더욱 단단한 영혼으로 제련시켜 성장시켰다. 이제서야 겨우 얻은 평화였다. 제 아비와 같은 길을 걸음으로서 그걸 스스로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흘긋 곁눈질로 리조토가 묶여있었던 자리를 보았다. 무슨 일을 얼마나 당했기에 그 지경이 되었고 그 정도로 정신을 놓고서 자신을 끌어안은 건진 알 수 없었지만, 여기서 이 자가 고통받은 게 면죄부가 되는 것고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를 죽인다고 해서 면죄부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시 한 번 끓어오르려는 머리를 차분히 식히며 트리시는 또렷이 모든 것을 올곧게 바라보았다.
확실한 건, 이 자를 어떻게 할 건지를 정해야한단 건 오롯이 그녀 자신의 선택이었다.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온전한 트리시의 몫이다. 그녀와 그녀의 일행들이 걸어온 여정의 단초는 죠르노와 자신이었고,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자들이 눈이 뒤집혀서 행동을 개시했으며, 그들이 속한 부차라티 팀의 배신으로 조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 혁명을 일으켰고, 죠르노는 스스로의 각오로 기적을 일으켜 혁명을 달성했다고. 그런 죠르노가 트리시 자신을 믿고 기꺼이 저에게 이 선택의 결정권과 무게를 맡겼다. 오늘의 선택으로 인한 모든 책임은 그녀가 진다. 지금 트리시가 택해야하는 건 얼마나 될지 모르는 사람의 생사가 걸렸으며, 이제까지의 여행의 여정을 통해 배운 가치를 사용할 기회였다.
그렇게 상기한 트리시는 찬찬히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이텨보며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모든 생각을 잇고, 가다듬었다. 약 5분의 시간 동안 무서울 정도로 무거운 침묵 속에서, 트리시는 이제까지의 역사와 기억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내린 자신의 결론과 선택을 확고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음 속에 휘몰아치던 감정과 격노는 가라앉고 객관적인 시야가 합리성을 더해 그려진다. 풍랑처럼 복잡란 심정과 생각들이 모두 가라앉고 선명하게 떠올랐다.
같은 5분의 시간동안, 리조토는 정말 죽는 것보다도 더욱 지독한 내면의 고통과 마주해야만 했다. 차라리 에어로스미스의 총탄이 몸이 꿰뚫리거나, 여기서 고문당하는 게 심적으로 더 편할 지경이었다. 지금 자신은 스탠드를 쓸 수 없고, 쓸 수 있다고 해도 트리시를 해치울 정신력도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사는 것 자체가 너무나 괴로울 만큼 지쳤다. 이제 지쳤다. 다 끝내고 싶다. 지금은 그저 죽은 자신의 팀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신으로 인해 억울한 괴로움을 겪어온 피해자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보스에게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보단 훨씬 더 나은 죽음이었다. 과분할 정도로 자비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가 마지막에 자조섞인,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잠깐 동안 띄었던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
마침내 하나의 수렴된 결정을 내린 트리시는, 리조토가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천천히 스파이스 걸의 전투 태세를 해제한다. 만약을 대비해 단번에 제압하기 위해 스탠드를 아예 해제한 건 아니고 주먹만 풀고 자세만 조금 편하게 풀었을 뿐이다. 언제든 스파이스 걸은 제 앞의 피조물의 머리를 날려버리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
트리시는 스파이스 걸의 전투 태세를 풀어낸 후, 최대한 소리없이 몸을 숙여 천천히 리조토의 눈높이에 맞춰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의 두 손은 무릎을 꿇지 않고 꼿꼿이 종아리를 세운 다리 위에 살포시 얹혀져 있었다. 우아하고 기품있게 내려앉은 그녀는 주의깊게 살펴보며, 노려보는 눈으로 제 눈 앞의 리조토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리조토는 무릎꿇고 앉았고 트리시도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는 형태가 되었다. 리조토의 키가 좀 더 큰 탓에 트리시는 고개를 조금 들어 리조토를 올려다보았다.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인 그는 조용히,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자신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직의 방식대로 이루어질 처분을.
트리시는 그런 리조토를 차갑게 올려다본다. 그러다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내쉰다. 그 다음 순간, 그녀의 품 안에서 무언가가 그녀의 손가락 끝에 걸려 딸려나온다. 그 다음, 트리시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리조토의 뒷목으로 향해 무언가의 단단한 족쇄를 채운다. 죠르노에게서 가져온 폭탄 목걸이를, 트리시는 직접 리조토의 목에 채운 것이었다. 달칵, 소리가 나면서 폭탄의 폭열과 폭발을 소리없이 간직한 폭탄이 초크 목걸이의 형태로 채워진다. 누가 알려주지 않어도 리조토는 이게 어떤 목걸이인지 바로 짐작할 수 맀었다. 2년 전부터 자신이 차 왔던 공포라는 목줄과 별 다를바 없는, 목숨이 걸린 목걸이다. 그나마 눈에 보이는 형태라는 게 좀 더 나은 게 차이점이었다.
트리시는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로 그를 똑바로 마주앉아 올려보며 그를 노려보았다. 마침내 침묵을 깨고선 그녀는 그의 면전에 씹어뱉듯이 말한다.
"당신이 좋아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이거 하난 똑똑히 알아둬요. 난 당신을 증오해요."
그 말을 듣자 감겨 있던 리조토의 눈이 천천히 뜨인다. 트리시가 리조토보다 훨씬 작아서인지 리조토가 트리시를 내려다보는 구도가 되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아래로 향한 채로 소리 없이 눈만 떴을 뿐이다. 트리시는 처음으로 온전한 그의 두 눈을 마주본다. 이제껏 못 본 자괴감과 후회, 죄책감과 자살충동, 제발 여기서 죽여달라는 애원 등등 온갖 감정이 뒤섞이고 혼탁되어 진득한 검은 심연 속에 서려있다. 지근거리에서 거의 이마를 맞댈 수준으로 가까이 마주한 두 사람 사이엔 무거운 기류가 누르고 있었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보고 있었고, 증오감과 분노가 무력감과 죄책감을 노려보며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트리시의 눈빛에서 점차 분노가 가라앉고, 냉정함과 차분함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은 마음의 거울처럼 내면을 비춰보여주고 있었다. 매서운 서릿바람이 불던 내적 갈등을 이겨내고서 한 그루의 나목처럼 굳건히 견디며 서려온 눈이었다. 확고한 각오가 담긴 눈이자, 오롯함을 간직한 눈이다.
그런 그녀가 내린 결정은, 매서운 칼바람에 시달린 소녀가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복수가 아닌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보고 내린 판단이다.
그녀는 깊게 숨을 몇 번 내쉰 후, 아까보단 좀 더 확신이 담긴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죠르노가. 틀리지 않았단 걸 살아서 증명해줘요."
이제껏 신뢰에 대한 보답을 받지 못해 반기를 들어올렸다면, 이것은 그에 상응하는 신뢰와 보답을 자신의 이름으로 약속하는 언약이었다. 스러진 각오를 다시 붙잡아 일으키는 약속이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동등한 위치에서 마주보고 이루는 약속이었다.
그 말을 듣고 리조토가 고갤 들어 트리시를 마주보았다. 그녀가 건넨 말은 달콤한 악마의 유혹이 아닌 사람의 약속이었다. 십여년 전 조직에 들어올 때 자신을 속였던 이들의 말과는 다른 말이었다. 그녀 역시 자신을 신뢰하고 같은 입장에서 건네는 약속을 그에게 걸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꺼트리는 것 대신 생명을 걸 정도의 깊은 신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무기력함과 의욕이 사라진 리조토의 눈에 일순간 놀라움이 나타났다. 그러다 다시 한 번 확고한 각오가 자리잡혔다. 이제껏 자신이 조직에 바친 신뢰가 단 한 번도 대답받지 못했다. 이번엔 자신을 믿어주겠다는 트리시의 신뢰에 그가 행동으로 대답할 차례가 왔다. 십여 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트리시를 바라보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고 확신을 담은 목소리로 말한다.
"당신과 새로운 보스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선 트리시는 말없이 리조토를 직시했다. 리조토 역시 이번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롯이 마주하였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상실감을 딛고 일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가, 자신을 죽이려한 자를 용서하고 같이 가자고 보이지 않는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모든 걸 잃고 놓아준 자가 다시 한 번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내밀어진 그 손을 잡고서 진심으로 목숨을 걸고 맹세하는 순간임을, 두 사람은 파악할 수 있었다. 같은 순간, 같은 공간에서 시야를 마주하며 둘은 서로의 진의를 남김없이 파악할 수 있었다. 전율 같은 것이 둘을 관통하듯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다.
트리시는 곧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어서는 트리시의 앞에 무릎꿇고 앉은 리조토는 말로 표현 못할 의지가 깃든 눈으로 트리시를 올려다보았다. 더 이상 자살에 대한 갈망은 말라붙어 없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신뢰와 살고자 하는 각오다.
트리시의 입이 열린다.
"제 신뢰에 대답해줘요."
그 말에 리조토 역시 트리시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제 모든 걸 드리겠습니다."
트리시는 그런 리조토를 천천히 뜯어보듯 읽어보았다. 문득 그녀를 남겨두고 죽어간 사람들의 얼굴이 다시금 떠오른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깨물던 입술을 힘겹게 풀어주고선, 무겁게 입을 열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죽지 마세요."
이제껏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조직의 사람들부터 시작해 자신의 근처에 있던 사람들, 억울하게 휘말려 목숨을 잃은 일반인들. 스탠드라는 재앙에 휘말려 죽은 일반인들과 자신의 영혼을 무기삼아 스스럼없이 싸우다 사라져간 이들. 잠자는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슬을 끊기 위해 제 생명이란 꽃을 던지며 투쟁한 사람들. 그리고 한 발 먼저 안식에 잠든 자들과, 그들의 뜻을 기리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살아남은 사람들. 그 중의 두 명이 자신들이었다. 여러 가지의 의미를 눌러접으며 트리시는 겨우 그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을 듣고선 리조토 역시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제껏 걸어온 길과 시간들과 기억들이 한꺼번에 플래시백처럼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그는 망설임을 떨쳐내고 대답했다.
"당신이 살려준 생명은 소중히 대하겠습니다."
그거면 됐다.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살아야 뭘 할 수 있다. 살아감으로서 각오를 하고, 각오가 찬란한 길을 연다.
각오가 길을 연다. 죠르노의 말이 문득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그가 그녀에게, 모두에게 되뇌이며 모두를 하나로 묶어준 말이다. 이번에는 그녀가 그 말을 이어나갈 차례였다.
"지켜볼게요. 각오가, 길을 열어요."
.
"그 목걸이, 폭탄이에요. 깊이 있는 신뢰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원래라면 내일 처형식 때 터뜨릴 생각이었지만, 좀 더 두고볼게요.
저희에게 칼을 들어올리지만 않으면 적어도 머리가 날아갈 일은 없을 거에요.
저는 당신을 용서했다지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건 당신의 몫이에요. 여기서부턴 당신이 당신의 각오로 나아갈 길이에요."
자신이 들어온 지하 고문실의 출입구를 향해 눈을 돌리며 트리시는 운을 뗐다. 사실 아까부터 벌거벗고 있는 사람을 대하느라 도저히 눈을 둘 데가 없었다. 게다가 아깐 다짜고짜 끌어안아서 본의아니게 몸까지 맞대버린 상황이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어떻게든 입술을 깨물고선 눈을 돌려 식혀보려는 트리시는 결국 못 참겠다는 듯이 스파이스 걸이 저 쪽 벽에서 가져온 여분의 죄수복 같은 여벌옷을 자신의 앞에 선 리조토에게 불쑥 내밀었다. 여유있는 사이즈의 오렌지색 민무늬 긴 소매옷이었다. 별다른 무늬는 없지만 일단 안 입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눈 둘 데가 없으니까 제발 이거라도 좀 입어요."
끝내 부끄러움을 못 참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옆으로 돌리며 트리시가 내민 옷을 군말없이 받아들어 걸친다. 단순한 구조라서 입는데 그닥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며 소매에 팔을 끼워넣는 소리가 들린다. 그제서야 트리시의 마음 한구석이 겨우나마 놓인다 사실 아까부터 얼굴 화끈거려서 눈 둘 곳이 없던 판에 괴로웠다. 왜 아까부터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나만 느껴야하는 건데. 불공평해. 최악이야. 난 알몸 같은 건 보고 싶지도 않았다구.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멎자 잠시 심호흡을 하고선 트리시가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빠르게 환복하고선 어느틈에 바닥에 날아간 담요까지 다시 주워 두른 리조토가 자신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옷 사이즈가 자신의 키에 비해 좀 작은 편인지 손목과 팔의 일부가 튀어나와 있지만 아예 못 봐줄 수준까진 아니었다. 그런 리조토를 트리시는 한껏 올려다보았다. 머리 하나 이상은 차이가 나는 탓에 올려다봐도 한참을 올려다보아야만 했다.
"내 몸에 또 한 번 함부로 손 대면 그 땐 팔부터 날릴 거에요."
"명심하겠습니다."
리조토의 대답이 들리자마자 트리시는 얼른 나가자는 듯이 한 번 그를 째려본다. 그러다 휙 몸을 돌려 도도하게 출구 쪽으로 걸음을 또각또각 옮겼다. 어서 이 답답하고 습기차고 기분 나쁜 곳을 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네아폴리스의 바람이 이토록 그리운 건 오래간만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막 고문실을 나가려는 찰나, 뒤쪽에서 잠시 리조토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또 뭔데? 라고 말하는 듯이 트리시의 눈이 뒤쪽으로 돌아갔다 곧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선 다시 차분히 가라앉는다. 리조토는 자신이 앉아있던 고문의자 쪽으로 걸어가더니 바닥에 널부러져있던 뭔가를 두 손으로 주워들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아무렇게나 떨어져있던 피 묻은 금속 방울 모자가 여전히 검은색을 띈 채 방치되어있었다. 그것을 주워든 리조토는 모자를 조심히 주워들어 바라보다 모자의 금속 방울에 묻은 핏자국들을 전부 옷으로 깨끗이 문질러 닦아냈다. 방울에 묻은 모든 핏자국들을 정성껏 문질러 닦아낸 그는 손으로 하나하나 모자의 끝에 달린 방울 하나하나를 소중히 더듬어 매만졌다. 정확히 일곱 개의 방울이 달린 모자. 그는 그것을 한참 소중히 어루만지다, 두 손으로 조심히 그것을 입가에 들어올렸다. 이후 눈을 감고 그 모자에 깊게 입을 맞추었다. 작별의 의미였다. 눈을 감고서 깊게 입을 맞춘 그는, 곧 그것을 조심스럽게 고문의자의 위에 올려놓고 다시 트리시에게 걸어왔다.
"안 챙겨가요?"
트리시가 그렇게 말하자 리조토는 담백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러고선 트리시의 뒤를 조용히 뒤따랐다. 트리시는 어쩐지 자신에게 대답하는 리조토의 표정엔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대답하는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진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고산의 등정가처럼 보였다. 그녀는 '좋을 대로 해요.'라고 말한 후 앞장서서 걸어나갔다.
곧 그 뒤에 따라 모자를 뒤로 하고서 그는 트리시와 함께 고문실 밖으로 나섰다.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두 발로 나갔다. 새롭게 신뢰를 주고받을 사람과 같이.
.
고문실을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의 앞엔 길고 긴 나선형의 돌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트리시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선 30미터의 계단을 다시 올려다본다. 진짜 엘리베이터 하나 놔뒀으면 다리라도 부러지는 걸까. 망할 디아볼로 자식, 죽어서도 가지가지 사람을 엿먹이네.
"나가려면 좀 많이 걸어야해요. 30미터는 내려왔으니까요. 거기까지 걸을 수 있겠어요?"
리조토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되게 적은 사람이었네. 트리시는 그렇게 생각하고선 다시 막막하단 눈으로 위를 올려다본다. 이걸 언제 다시 올라가냐.
문득 푸고에게 빌려온 손목시계를 다시 들여다본다. 내려온 지가 새벽 1시였는데, 벌써 새벽 3시였다. 오늘 밤은 잠 다 잤네, 제기랄. 트리시는 그렇게 생각하고선 걸음을 옮기려다, 문득 무엇인가가 떠오른 듯이 고갤 살짝 들어올린다. 그러다 딱딱하게 말을 꺼낸다.
"지상에 도착하면 뭐 좀 먹으러 가요.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 내려왔더니 배고프네요."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짜증이 돋친 목소리였다. 리조토는 군소리없이 트리시의 뒤를 따라 올라가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여기서 괜히 뭔 말 꺼냈다간 불판에 기름 엎지르는 꼴이 될 것 같았다.
그러다 트리시는 갑자기 걸음을 뚝 하고 멈춰서더니 잠시 리조토를 향해 고갤 돌렸다. 걸음을 멈춰선 트리시에 맞춰 리조토 역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트리시는 눈길을 위아래로 굴려 리조토를 스캔하듯이 주욱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퉁명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전에 그 꼬라지로 돌아다녔다간 네아폴리스 사람들이 기절할 테니까, 부차라티와 현 보스께서 제게 넘겨주신 저택에서 씻고 갈아입고 가요.
지상에 올라가면 미스타랑 같이 갈 거에요. 헛짓거리하면 벌집으로 만들테니 그렇게 알아둬요."
"감사합니다."
살벌한 말이 섞여있음에도 불구하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이 따라왔다. 사실, 리조토 자신도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아침 거리를 나다니면 무슨 취급을 받을지 잘 알고 있었다. 거울 한 번 들여다보지 않았지만 아마 지금 여기저기가 난리났을 테니까. 좀 전에 자신이 맨가슴으로 끌어안은 트리시의 몸에 피가 묻었다고 했으니 실제 모습은 더더욱 못 볼 꼴일 것이다.
곧이어 그들은 계단을 올라가며 저 멀리 보이는 지상의 빛이 들어오는 계단의 끝부분, 그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목적지를 올려다보았다. 트리시는 아득히 멀어보이는 저 곳을 보며 생각했다.
아마 다들 날 기다리고 있겠지. 올라가면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려나. 일단 죠르노와 미스타와 푸고에겐 뭐라고 말을 시작해볼까. 미스타는 틀림없이 '내려갈 땐 한 명이었는데 왜 올라올 땐 둘이냐' 식으로 핀잔부터 주려나. 푸고는 날 물러터졌다고 생각하려나. 일단 콜로세움에서 공개처형할 계획은 없다고 말해야겠네. 스위치도 넘겨받아야하고. 예정대로 콜로세움에선 죠르노의 보스 취임연설만 하면 될 거야. 죠르노는 틀림없이 잘 해내겠지. 아,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네.
조직에 필요한 것은 신뢰다. 때로는 신뢰의 무게는 목숨보다 무겁다. 그 신뢰를 얻는 건 앞으로 이 자가 스스로 노력해야할 부분이다. 새로운 파시오네는 능력을 최우선시로 여긴다. 능력만 있다면 신뢰를 받는 것은 곧 정도이자 지름길이 될 것이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야.
그녀는 그렇게 생각을 하다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품 안에서 내려오면서 몇 개 까먹었던 초콜릿 상자를 꺼내더니 리조토를 향해 몸을 돌려 그에게 내밀었다. 나란챠가 얼마 전까지 무척 좋아하며 먹었던 초콜릿이었다. 우유와 소금이 들어있어 달콤한 맛이 배가된 솔티드 초콜렛이었다.
"먹어요. 저도 먹으면서 내려왔어요."
리본이 달린 붉고 알록달록한 초콜렛 상자를 받아든 리조토는 잠시 그것을 내려다본다. 그러다 은은하게 엷은 미소를 띄었다. 그가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리조토가 웃는 걸 보고선 트리시는 잠시 당황한 듯이 표정이 굳는다. 뭔데, 갑자기 왜 웃고 난리야. 저거 그냥 초콜렛이야 공산품이라고 이 아저씨야. 아니 수제 초콜렛이라고 말하긴 하던데 아무튼간. 복잡한 생각을 다 제쳐버리고선 트리시는 빠르게 얼굴을 앞으로 돌라고선 퉁명스럽게 말하며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됐으니까 빨리 먹어요. 먹다 질려서 주는 거니까요. 기운 없다고 또 쓰러지면 버리고 갈 거야."
이윽고 트리시는 먼저 앞장서서 구둣소리를 또각또각 내며 걸어나갔다. 빨리 나가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인지 조금 구둣소리가 경쾌해졌다. 산뜻하게 울리는 힐 소리를 따라, 맨발의 리조토가 뒤따라 걸어나간다. 돌바닥에 부딪치는 구두 소리 사이로, "근데 이름이 뭐에요?"라는 말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인영이 지상을 향해 올라갔다.
새벽달이 기울어졌다. 깊은 새벽이 지나가면, 아침 해가 떠오를 것이다.
- dc official App
이번엔 안 잘리고 다 올라옴 이걸로 이번 콜라보소설 완결 - dc App
기다렸다 일단 선추
약탄 커피로 시작한 고문이었지만 끝은 신뢰의 초콜릿이었네 다행이야 리더... 쓴맛과 단맛의 조화가 좋았다. 그 전 고문씬 때의 무게감때문에 후편을 더 재미있게 읽었음. 묘사가 오져서 내 멘탈도 같이 깨져버린 고문씬이었지만 이렇게 이상성욕에 눈을 뜨는구나 했음ㅇㅇ 리더라서 가능. 언젠가 트리시에 깔린 리더도 써주세요 센세
어쩌다보니 쓴맛과 단맛의 콜라보가 됨 솔까말 내가 후편 컨셉 받아쓰는 입장이었으면 좆같다고 백퍼 빠꾸먹였을텐데 써주셔서 감사할뿐 트리시에 깔린 리더는 함 생각해보마 - dc App
왜안섹...하지만 좋은 글이엇다 - I don't know how but they found me
후편 내가 안썼다 쓰시는 분 하기 나름이지 - dc App
왜안섹 - DUWANG
리조토가 트리쉬의 새 호위팀이 돼는건가
달달 터진다 후편 쓴 사람은 섬세한 걸 잘 쓰고 전편 쓴 사람은 큼직한 SM플레이를 잘 쓰는 거 같음
단짠조합 미춌따리 미쵸따
단짠조합 미쳤다리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