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출근해주세요.]
품에 안은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그런 문자가 떠올라있었다. 기업 구조상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큰 규모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글로벌 대기업에 나는 어제 합격했고, 바로 오늘 출근길에 오른 것이다.
주변인들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사에 대해 걱정하고 나를 만류했지만, 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사람들은 경험해보지 않은 것은 잘 모른다고 말하니까.
예를 들면, 인터넷 기사에 나와 있는 대기업 CEO들의 불안하게 출발했던 스타트업이나, 불행하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겪었던 어떤 천재들이 좋은 기회를 얻어 세상을 혁신했다던가. 20대 시절 내내 방 안에 틀어박혀서 만화만 그렸던 사회성 없는 무명 작가가 운 좋게 PD의 눈에 띄어 성공을 하게 되었다던가. 그러니까 이번 기회로...
"내 인생에도 봄이 오려나 보지."
5시 30분, 배정된 셔틀버스가 집 근처 지정된 장소에서 나를 픽업하러 왔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버스 안은 사람들이 꽤 빼곡하게 앉아있었고 몇 번 헤맨 후에야 적당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나이대가 다양하네.
그런 쓸데없는 상념을 머릿속에 품고 버스에 몸을 싣는다. 해도 완전히 고개를 내밀지 않은 새벽. 아직 덥혀지지 않은 축축한 공기가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하릴없이 맴돈다.
비슷한 정류장에서 몇 번인가 멈췄다 출발하길 반복한 버스는 이제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
셔틀 안에서 사람들은 말이 없다. 머리가 벗겨진 버스 기사 아저씨도, 앞에 앉은 멋들어진 정장을 입은 중년의 아저씨도. 아니면 모여앉아 서로에게 기댄 채로 잠이 든 아주머니 넷도. 모두 적당한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오늘도 다짐하듯 일터로 향한다.
셔틀버스라기엔 평범한 광역버스를 탄 것 같은 정경이었다.
이 회사 인재 채용에 굉장히 차별이 없구나.
그렇게 생각할 때쯤 옆자리에서 피곤에 쩔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오셨나 봐요."
"네? 네..."
"엄청 두리번거리시길래."
무심한 표정으로 화면에 떠오르는 영어 비슷한 외국어를 툭툭 날려버리는 묘한 게임을 하는 여자가 시선도 주지 않고 말을 걸어왔다.
정장 차림에 번듯한 넥타이을 찬 여자. 츄리닝 차림으로 버스에 오른 자신과는 차림새가 영 달랐다. 괜히 옷매무새를 다듬은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다 그냥 포기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를 꼬시려는 건가.
갑자기 말을 걸다니.
역시 2년간의 히키코모리 생활은 좋지 않았다. 일말의 사회성마저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사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었다는 것에 심장이 뛰었다.
"왜 오셨어요?"
왜 왔냐니. 돈벌려고 왔죠. 첫 출근하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마치 '너 따위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왜 왔냐'라고 말하는 것 같이 들리잖아. 이럴 때는 화를 내야 하는 건가, 웃으면서 무마해야 하는 건가. 고민하다 입을 열길 포기했다.
그냥 걱정 없다는 듯이 적당히 바보같이 미소 지어 보였다. 난 사회생활을 할 줄 모르니까.
여자는 날 보더니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 좋은 회사 아니에요. 나갈 수 있을 때 나가세요."
탈색한 은색의 단발에 단단한 눈빛, 번듯한 차림으로 금시계까지 팔목에 건 멀끔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해봤자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나 같은 건 자기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가. 하지만 나도 엄연히 회사에 채용된 입장인데.
"친구 같아서 하는 말이니까..."
"싫어요."
나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열고 할 게 없었음에도 괜히 화면을 뒤적거렸다. 귀찮게 말 걸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챈 건지 담담한 숨을 짧게 흐음, 하고 뱉어낸 은발 여자는 그 뒤로 더 말을 걸지 않았다.
누가 우리를 이 버스에 타게 만들었을까.
자본주의라던가, 가족애라던가,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엔 생존을 위한 거다.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여기 있는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해 아득한 새벽 5시에 버스를 탔다.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게으른 내가 5시에 일어나는 건 몸에 무리를 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당장 가질 수 있는 직업이 이것밖에 없었다.
돈이 없었다.
"에휴..."
누군가는 내가 한심하다고들 말하겠지만, 사소한 불행이나 가난이 계속 삶을 파고들어 오면 무언가를 새로 도전해볼 기운이 나지 않는다. 배움에 도전하는 시간도 돈이고, 그걸 위해 필요한 돈을 버는데는 또 시간이 든다. 돈, 시간, 돈, 시간.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습관이 된다.
그래도 삶에 위안이 되는 게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그림은 마음껏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수상할정도로 돈이 없는 내가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취미는 인외 탐닉하기.
퍼리들의 수상한 그림들을 감상하는 일이었다.
아무도 몰라주지만 이것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인생이 이대로여도 괜찮을 것만 같은 그런 비정상적인 안정감이 든다.
사람들은 나 같은 것들을 털박이라며 놀리지만 그건 아직 그들이 수인의 매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수인이란.
나의 사랑, 나의 빛, 나의 어둠.
나의 죄, 나의 슬픔, 내 허리의 불꽃.
혀를 굴리면 튀어 오르는 두 음절의 뜨겁고도 달콤하고 쌉싸름한 그 이름.
퍼-리,
퍼-리.
나의 영혼, 나의 안식.
퍼-리.
...
스크롤을 내리면 썩 괜찮게 생긴 수컷 퍼리 늑대, 용, 호랑이가 자신의 몸을 뽐내고 독자를 유혹한다.
이런 늠름한 놈들이 현실에 정말 있었으면 어땠을까.
,,,
사랑받고 싶다.
대학을 더 다녀봤어야 했나.
스크롤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페이지의 끝에 다다른다.
SNS에 올라온 마지막 퍼리 그림에서는 호랑이가 한쪽 팔을 들고 요염한 자세로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다.
개꼴리네.
저장해야지.
누가 보지는 않을까, 옆자리를 곁눈질로 슬쩍 봤다.
은발 여자는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독일어 비슷한 언어를 중얼거리며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 쪽 구석에서 퍼리 야짤이나 몰래 들여다보고 있었던 나와는 다르게.
이 사람은 공부를 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스크롤을 더 내리고 싶었는데, 내려가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 더는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 내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 세상에 퍼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한 그런 세상이 있었다면.
...
언제나 변해야 하는 건 나였다.
그래, 이번 회사 생활이라도 잘해봐야겠지.
"저기..."
"네."
"아깐 죄송했어요."
"네."
"제가 겁이 많아서..."
"관심 없어요. 여기 그런 사람들 많으니까. 근데 여기 다니려면 사회성은 좀 키워두셔야 할 거예요."
아까의 대화로 기분이 상한 건지, 원래 성격이 쌀쌀맞은 건지 여자는 창밖에 시선을 둔 채로 무미건조하고 나른하게 답했다.
"네? 전 내근직이라고 들었는데요..."
"여기에 그런 구분은 의미가 없어요. 어차피 '반대편'에 가서 일하게 될 텐데."
"반대편이요?"
"이제 설명도 안 해주는 건가. 참 이 회사도 악질이지..."
무슨 소리야...
그렇게 생각할 때 즈음 창밖으로 '외교부'라고 쓰여있는 머릿돌과 큰 건물이 보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점차 달라지고 있었다.
버스는 깊은 숲속의 어두운 터널 안을 거침없이 달렸다.
나뭇잎이 버스를 스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쪽도 이제 퇴사하긴 글렀네요."
은발이 한숨을 쉬고 스마트폰의 화면을 껐다.
그 순간 엄청 덜덜거리고, 중심을 잡기 힘들고.
무언가 게이트를 통과하는 것 같이 빛이 초마다 번쩍거리며 다양한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갔다.
조선시대 궁궐 같은 게 보이기도 했고, 무언가 유적 같은 것들이 무너진 채로 방치된 모습도 보였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중요한건 그 이미지들 사이사이로 무언가, 현실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보였다는 것이다.
이윽고 버스가 멈추고 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착했습니다. 2번 서울 외교부입니다. 버스에서 내리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늘 조심하세요. 최근에 실종된 사람이 있어서..."
은발이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며 인사했다.
"또 봐요."
그 다음은 내 차례였다.
버스에서 내리면 여태까지 내가 경험했던 서울과는 어딘가 다른 형식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펼쳐져 있다.
가게가 내놓은 간판들의 글씨는 전부 궁서체로 쓰여있었고, 모두 독특한 양식의 지붕을 건물에 얹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옥 같은... 지붕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달까, 그런.
서울이라면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신입?"
아무 곳에서도 본 적 없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풍경이...
꿈에서나 봤던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저기, 은한강씨 맞으십니까?"
내 앞에 도베르만이 서 있었다.
그게, 마치 사람처럼.
그러니까, 도베르만 수인이.
지금 여기에.
수인들이 살고 있는 도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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