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가 뒤바뀐 건가.



2번 서울인지, 3번 서울인지 뭔지도 참 혼란스러웠지만, 제시받은 상상 이상의 연봉 덕분에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갔다.



"1억 3천이요..."

"저희 회사는 각 서울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강씨가 도와주신다면 2번 서울과 3번 서울의 교류가 더 원활해질 것 같습니다."



도베르만이 제시한 연봉 1억 3천만원.



"4대 보험과 세금을 제하면ㅡ"

"달마다... 실수령 800이네요..."

"계산이 빠르시군요."



실수령 800만원.

하루종일 피시방에서 감자를 튀기고, 편의점에서 꼬장을 부리는 손님 같은걸 4달 동안 상대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그 반의 반 토막을 낸 금액인 200만원.

아무 경력도 없는 내가 최선을 다해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연봉 1억 3천의 고위 외교관 은한강과.

연봉 3천의 히키코모리 은한강.



그 간격이 아득하게 멀었다.

둘 중 누가 더 가치 있냐 물어보면 당연히 외교관이었다.



"아무래도 금액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도베르만은 서류를 찬찬히 다시 읽고 있었다.



"회사 차원에서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농담도 아닌 것 같고, 이상하게 서류는 내 이름으로 되어있고. 도베르만은 아무런 의심 없이 내게 고액의 연봉을 제시한다.

이대로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여기서 전직 외교관으로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되는 걸까?



도베르만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테이블에 기댄 채로 손에 깍지를 끼고 턱을 받혀 하관을 숨기고 숨을 나른하게 뱉어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내 행동 하나하나에 집요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딱 한 번이라도.

정말 딱 한 달 만이라도.

8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면.



개념없는 손님들이 바닥에 뱉어놓은 가래침을 4달 동안 닦아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니면 한도까지 가득 차버린 학자금 대출을 조금이나마 갚아내고 숨 쉴 틈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

학비도 낼 수 있고, 다시 학교도 다닐 수 있고.



딱 1년만 눈감고 다니면.



한번도 가보지 못한 해외여행도 가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음 편히 저녁에 친구들과 안주를 먹고 술을 마시고.

아니면 누군가와 소개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눈 앞의 도베르만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십니까?"



이런 사람도 꼬실 수 있으려나.

적어도 꽤 괜찮은 레스토랑 같은 곳에 초대해 같이 식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로맨스 드라마처럼.



돈이 없으면 엄두도 못 낼 일들.

평범한 은한강이라면 이룰 수 없는 일들.

그래서 더욱 이 오류가 반갑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다.



* * *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정신을 차렸을땐 도베르만과 악수를 하고 있었다.

이미 계약이 끝나있었다.



내가 사인한 계약서에 적힌 내용은 이랬다.



[이름 : 은한강]

[계약 연봉 : 130,000,000]

[직무 : 외교]



"...회사에서도 외교를 하는지는 몰랐는데요."

"저희는 외교를 외주받고 있습니다. 각 서울의 정부로부터요. 아직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사소한 문제들이 있었지만,



[일방적으로 계약을 종료하거나 해지한다면, 갑은 을에게, 을은 갑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생깁니다.]



중요한건 내가 수인들의 세상에서 월 800만원을 받으며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면으로 ...주셨던 자료들, 다시 보내주실 수 있나요. 인수인계 문서 위치하고요..."

"첫날이니 안내해드릴 예정입니다. 하지만 서면은 나름 중요한 자료인데, 혹시 잃어버리셨습니까?"



도베르만의 검붉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입가의 은은한 미소 사이로 개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의도적인 기만, 사기로 브랜드 이미지나 개인의 명예를 영구적으로 실추시키는 등 귀책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상호합의 없이 계약을 종료할 수 있습니다.]



"...제 개인 오피스텔에 두고 와서요."

"그렇습니까. 회사 안내가 끝나면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도베르만이 서류를 정리하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봤자 개의 얼굴이었지만.

섹시하긴 했다.



[이 경우 갑과 을은 예상 손해예상액의 10배를 배상하기로 합의합니다.]



"저희 이제 쭉 같이 가는 겁니다."



도베르만이 악수를 청했다.

여전히 개 발바닥이었다.



"제 이름은 베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계약서에 끄트머리에 적혀있는 문구가 마음에 걸렸지만.



"은한강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나는 도베르만의 손을 잡았다.

맞닿은 육구가 따뜻했다.



아무튼 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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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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