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에는 분명히 들렸다.
주변 애들은 이를 듣는둥 마는둥, 두 덩치를 떼어놓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느라 신경쓸 여력이 없어보였다.
조금 머쓱한 기분이었다.
태범이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친구들이 당할때는 적당히 감정을 자제하던 녀석이 내가 튕겨나가니까 갑작스레 돌변해서 저리 화를 내고 있는게 한켠으로는 고마우면서도 당황스럽기는 했다.
그저 친한 과 선배일 뿐인데 저런 반응까지 보이는 것은 의외인 터라, 뭐라 표현해야할지 감이 안오는건 당연한 일일까.
워낙 힘이 좋은 녀석들이라 학생들이 여럿 달라붙고 나서야 간신히 떼어놓을 수 있었다.
웅철이의 험악한 얼굴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입술이 터지고 한쪽 눈이 티는 나지 않지만 멍이들어 눈동자가 충혈된 상태였다.
태범이의 코에서도 코피가 조금 흘러내리고 있었으니, 맹수들의 싸움에서 이정도면 평범한 정도다.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태범이가 친구들에게 뒤로 밀리면서도 한마디 덧붙였다.
"한번만 더 깝쳤다간, 그땐 정말로 눈탱이로 안끝난다. 분명 경고했다 고웅철!"
"쳇, 퉤. XX놈이 개지랄을 떠네"
웅철이도 확실히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살기어린 태범이의 경고에도 주눅따위는 들지 않고, 보란듯이 피가 섞인 침을 앞에 뱉어버린다.
"이 미친XX가 진짜 뒤질라고!"
"태범아 그만해"
"!"
다시한번 격분하려는 태범이를 더는 내버려둘수가 없어, 내가 나섰다.
내 목소리에 태범이는 귀를 뒤로 돌리면서 곧바로 반응했다. 격노하고 있던 눈동자가 차즘 초점이 잡히면서 치켜들었던 주먹도 내려놓았다.
"형 몸은 괜찮습니까?"
"괜찮아. 네 말대로 그저 단순한 친선 시합일 뿐이잖아. 흥분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뭐 형 말씀이 그렇다면..."
말은 수긍하고 있었지만, 괜찮다는 내 말에도 위아래로 날 훑어보고 있었다.
"일단 짐 챙기자. 더 할 생각은 없잖아?"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고, 상대팀도 마찬가지였다.
툴툴거리면서 걸어가는 웅철이를 선두로 B대학교 학생들도 짐을 챙기고 주변 정리중이었다.
B대학교는 우리 대학교와 라이벌 구도를 가진 마찬가지로 쟁쟁한 실력의 명문대다.
그런 까닭에 학생들이 자연스레 단순한 친선경기 이상으로 투지를 불태웠을 가능성이 있었고, 그 끝은 썩 좋지 못한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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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회관을 빌려 묵기로 한 우리들은 저녁이 되니, 남학생들이 사왔던 준비해온 고기팩을 쫘악 늘어놓았다.
"뭐 이리 많이 샀어?"
"어제 마트갔더니 고기 특별 세일하더라! 그래서 사왔지!"
"오 그런 센스도 있고 너 뭘 좀 아네?"
"하하핳 야 내가 이래봬도 준비성 하나는 끝내준다고!"
남학생 한명이 여학생들 앞에서 우쭐거리고 있으니, 얌전히 옆에서 불판에 열을 올리던 태범이가 한마디 했다.
"뭐래, 조교형이 가자고 할때는 안간다고 하던게, 고기 사준다니까 왔던놈이"
"아니, 아무튼! 내가 그 마트로 가자고 했잖아! 나 아니었으면 이렇게 많이 못샀다고"
"퍽이나..."
태범이는 심드렁하게 불판에 고기를 올렸고, 그런 태범이를 시작으로 다들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고기가 익는 냄새가 풍기기 시작할 무렵, 한두명의 여학생들이 태범이 옆에 자리를 잡고 이것저것 잡다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과 생활이라던가 교수님별 특징이라던가, 후배인 경우는 이따금씩 전해져 내려오는 족보를 물어보기도 했다.
태범이는 그런 관심이 싫지는 않았던지, 무시를 하거나 입을 다무는 경우는 없었는데 옆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눈길을 많이 주지는 않았다.
앉아서 열심히 고기를 구워서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주거나, 때로 여유가 생기면 저도 입안으로 훔치면서 고기먹는데 여념이 없었다고나 할까.
그런 듬직한 태범이의 관심을 끌어보려는건 한창 멋진 남자를 좋아할 나이인 여학생들 쪽이었다.
이런 광경을 난 뒤에서 다 지켜보고 있었는데 내심 웃겨서 웃음을 참느라 고생할 뻔했다.
눈치가 없는건지 아니면 정말로 관심을 안주는건지 당최 알 수가 없으니 저때라면 한창 연애하고 즐길 나이 아니던가.
난 적당히 뒤쪽에서 홀짝이며,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술게임을 하는걸 구경도하고 한잔씩 따라주러 오는 애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와하하하 태범이 또걸렸대요!"
"뭐야 왜이리 게임을 못해!"
"마셔라 마셔라!!"
술게임장에서는 태범이가 주 타겟인가 보다. 특히나 짓궂게도 여학생들이 태범이를 주 타겟으로 삼아서 녀석에게 마구 먹이고 있었다.
태범이는 그런 여자들의 관심도 싫지는 않았던지 평소 유지하던 무표정을 풀고 살짝 미소짓고 있었다.
아니, 저녀석 분명 정신 말짱한데 일부러 먹어주는것 같은데...
소위말하는 말술저리가라 할정도로 몸이 술통인지라 문제 없이 거뜬히 버티고 있는게 내눈에는 보인다.
점차 시간이 무르익자 다들 막걸리며 소주며 술을 진탕 마시기 시작해 하나둘씩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많이 마셔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녀석들은 잠방으로 질질끌어서 옮기기도 했고, 여학생들은 행여나 제자리에서 잠들지 않도록 신경썼다.
"와우이씨... 하아.. 남태범은 진짜 못이겨어..."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서 버텨보던 늑대녀석을 끝으로 태범이가 모두를 다운시키는 상황이 예견했던대로 도래했다.
태범이도 취기가 많이 올랐는지, 두꺼운 호랑이 얼굴가죽 밑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후, 겨우 조용해졌네"
나도 술기운이 돌고 있던 지라 늑대까지 옮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고 코를 골면서 머리를 처박고 있는 녀석은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어디 그럼 화장실좀... 어어.."
자리에서 일어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 마셔서 많이 취했나보다.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이는 순간 뒤에서 잡아주는건 커다란 호랑이 손이었다.
"어? 그래 고맙다 태범아"
부축해주니 고마움에 무의식적으로 털로 덮힌 태범이 손을 두어번 두들겼다.
순간 움찔거린 태범이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후우... 저도 많이마셔서 시골 공기 좋은데 바람이나 좀 쐬실...랍니까아"
녀석도 이제는 취기가 많이 올라오는지 말이 다소 어눌해졌고, 호흡이 거칠어진 상황이었다.
"그럴까? 아직은 산책하기 좋은 날씨지"
밖으로 나오니 상쾌한 밤바람이 코끝을 간질였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별들과 둥글게 떠있는 달과 풀벌레 소리들.
우리는 회관 인근 언덕길로 천천히 걸었다.
태범이는 마치 날 호위하듯이 곁에서 뒤떨어지지 않고 잘 따라왔고, 간혹 그릉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저녁공기를 쐬며 산책하니 기분이 좋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어? 반딧불이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반딧불이가 우리 주변에서 날개짓하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 반딧불이는 처음...봅니다."
태범이는 정말로 신기해하며 취기가 오른 중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아다니는 불빛을 쫒고 있었다.
원래도 동그란 호랑이의 눈동자가 한층 더 커짐과 동시에 호기심이 한가득하니, 덩치는 산만한 녀석답지 않게 귀여움을 한껏 어필하고 있었다.
"그래? 한번 가까이서 볼래?"
난 그저 아끼는 후배에게 보여주고픈 마음에 경사진 곳에 있는 풀 위로 착지한 반딧불이를 잡기 위해 발을 내딛었고 그 순간, 지면이 젖어있었는지 순간적으로 발을 헛딛고 말았다.
"어엇!"
이어 몸의 균형을 잃은 그대로 난 경사를 따라 미끄러지고 말았다.
'제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주변의 지푸라기라도 잡아 큰 부상을 막는 것 밖에 없어 이리저리 팔을 허우적거렸고, 운좋게 근처에 있던 통나무를 잡을 수 있었다.
[쿵!]
다행히도 산비탈길로 정신없이 굴러내려가야 하건만 커다란 소리와 함께 어딘가에 걸려 심각한 부상은 당하지 않았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질끈 감았던 눈을 게슴츠레뜨니 눈앞에 펼쳐진 건 수북한 털가슴과 정수리를 훑고 지나가는 거친 숨결이었다.
"?"
"형님. 괜찮으십니까?"
"아..."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제 손발톱을 지면에 박아넣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버티고 있는 태범이가 보였다.
내가 통나무라 생각하고 잡았던 것은 가끔 보았던 태범이의 단단한 팔뚝이었고, 녀석이 힘들여 버티고 있는 것도 모른채 매달려 버티고 있던 것이었다.
어찌나 단단하게 버티고 있던지, 그 묵직함이 나무와 비견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고, 고마워. 네 덕에 다치지 않은 것 같아."
아래에서 올려보니 시선을 마주치기 보다는 각도상 태범이의 분홍 콧구멍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아서 민망했지만 잘 안보이는걸 어쩌겠는가.
태범이가 지금 나를 감싸안듯이 위에서 버텨주고 있는 이 상황은 묘한 자세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치 않았다.
나도 모르게, 녀석의 넓은 가슴팍에 기대고 있는건 어쩌면 든든하게 날 지켜주는 친구가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몰랐다.
"일단 올라가시죠"
태범이는 내가 잡고 있는 팔을 올려 날 먼저 언덕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주었고, 이를 지렛대삼아 겨우 위로 올라 설 수 있었다.
내가 안전하게 올라간 것을 확인한 태범이는 크게 숨을 한번 들이내쉬더니, 풀쩍 뛰어올라 금세 내 옆으로 왔다.
운동신경 하나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다.
이런 인재가 체육계로 가지 않은 것을 안다면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릴지도 몰라.
"미안... 나 때문에 고생했네. 괜찮아?"
"저는 이정도 가지고는 끄덕 없습니다. 제가 괜히 반딧불이를 보고싶다는 소리를 해서..."
태범이는 저때문에 내가 미끄러졌다 생각하고 있던건지, 정말 미안한 기색으로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아, 아냐! 내가 앞을 잘 보지 않은 것이 문제지 네가 잘못한건 하나도 없어"
"하지만..."
"진짜라니까! 봐 나 다친곳도 하나 없는..."
"?"
다친곳 하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나보다.
괜찮다며 손사레치며 보여주던 팔뚝에 난 상처는 숨길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눈에도 보이는데 밤눈이 더 좋은 태범이가 이를 놓칠리는 없었다.
"형 다치셨잖습니까!"
"어어.. 그러네?"
정말이다 몰랐었다고. 하지만 통증도 없어서 잘 몰랏는데 알고나니 쓰라린 느낌이 밀려오는건 역시나 당연한 일일터다.
당황하는 것도 잠시, 상처를 살피던 태범이가 갑자기 내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왜, 왜?"
[핥짝 핥짝]
그리고는 주둥이를 들이대더니 제 분홍생 혓바닥으로 내 상처부위를 계속해서 핥기 시작했다.
고양잇과의 까끌거리는 돌기를 피부로 직접 느끼는 것은 처음인지라 생소한 감정에 순간 넋을 놓고 있었다.
상처 주위에 들러붙어있던 풀잎이나 이물질등을 다 제거해버리고, 녀석은 위아래로 상처를 훑어보더니 갑자기 내 팔에 침을 뱉었다.
"에에?!"
소스라치게 놀란 내가 팔을 빼려했지만 태범이의 완력을 어찌 이길 수 있을까.
미동조차 하지 않고 버티는 태범이의 팔뚝에 그저 할말을 잃었다.
태범이는 제가 뱉은 타액을 다시 한 번 혀로 쓰윽 핥아주었다.
호랑이 혓바닥으로 핥아지는 경험을 누가 얼마나 해보겠는가...
상처에 돌기가 닿아 더 쓰릴 것 같았지만 예상외로 통증은 강해지지 않았다.
"저같은 맹수과 수인들은 하도 투박하게 사는터라, 툭하면 다치기 일수여서 이런쪽으로 진화했나 봅니다. 타액에 나름 살균작용 효소가 있다고... 저도 생채기가 생기면 가끔 침바르고 핥고 그럽니다."
"아..."
달빛을 받아 그 커다란 덩치의 그림자를 내게 드리우고 있는 태범이는 사뭇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설령 그게 미신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정성스레 신경을 써주는데 차마 싫다고 거절하기는 또 어렵달까.
역시 수인들은...
나도 태범이 완력체험 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