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견록 훈도시 팬아트 보고 조금 써 본 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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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폰!"


쿵-! 매트바닥에 메치는 둔탁한 소리가 정적을 깨며 우렁찬 심판의 판정이 잇따랐다. 그 뒤를 이어 감탄소리와 박수갈채가 도장에 울려퍼졌다.


강태건은 자신의 상대인 호랑이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줬다. 곧 각자의 자리에 선 두 선수는 서로에게 목례를 한 뒤 경기를 마무리했다.


"고생했다 태건아."


구대웅은 씨익 웃으며 태건의 어깨를 두들겼다. 태건은 평소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비오듯 오는 땀은 어느새 도복과 털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지도대련을 해 본 게 하루이틀은 아니지만, 세 명과 연달아 시합하는 건 예상보다도 더 힘들었다. 거기에 상대들도 나름대로 국가대표를 목표로 하는 유망주들.


낯선 심판의 판정소리 만큼이나 익숙치 않은 환경도 태건을 긴장하게 만드는 요소였으리라. 그럼에도 태건은 굳건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태건은 두리번거리다가 찾던 사람을 발견했다. 큰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에 비해 몇 뼘이나 작은 고양이였다.


"수고 많았어요 태건 씨."


고영윤은 자신의 옆에 털썩 주저앉은 태건의 머리에 무심코 손을 뻗다가 뚝 멈췄다. 평소처럼 자신의 이마에 기분 좋은 손길이 닿을 걸 기대했던 태건은 영윤을 빤히 쳐다봤다.


"여기는 보는 눈이 많으니까..."


영윤은 멋쩍은 듯 공중에서 뚝 멈췄던 손을 움직여 태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겼다. 아쉬운 듯 끙하는 소리가 덩치 큰 셰퍼드에게서 흘러나왔다.


"저 서운합니다. 형님은 아직도 그런 거나 신경 쓰시고. 게다가 오늘은 파이팅 소리도 작지 않았습니까."


태건은 슬며시 손을 뻗어 영윤의 손을 찾아쥐었다. 영윤이 흠칫 놀라는 움직임이 느껴졌지만, 손을 놓기는 커녕 더욱 꽈악 쥐었다.


"아, 그게... 뭔가 이국 땅이라 낯설어서 그랬나봐요. 게다가 태건 씨가 이런 데서 질 리가 없잖아요."


영윤은 손을 꼼지락대며 변명했다. 숨을 고르는 소리와 잔뜩 흘린 땀과 함께 배어나오는 체취, 무엇보다 방금 경기를 마친 몸에서 발산하는 열기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영윤은 잡힌 손을 살짝 들어 등 지고 있는 벽 쪽으로 뺐다. 자연스레 태건의 손도 딸려 왔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동시에 태건의 손을 놓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합쳐진 결과물이었다.


다른 사람 눈엔 잘 띄지 않는 위치로 손을 감추자, 태건도 영윤의 의도를 알았는지 작게 키득대며 손을 더욱 꽉 잡았다.


"이거 끝나고 나면 온천 가기로 했습니다. 아마 공중 온천 말고도 개인 온천도 있다고 해서 형님이랑 저랑 둘이서만..."


태건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영윤만 들리도록 목소리를 낮췄다. 영윤은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태건의 입을 막듯 가볍게 갖다댔다.


돌발적인 행동이었지만 태건은 익숙한 듯 킬킬대며 혀를 내밀어 영윤의 손바닥을 핥았다.


형님도 좋으면서.


영윤은 혀가 닿자마자 재빨리 손을 거뒀다.


"뭐, 나쁘지 않겠네요."


영윤은 볼이 살짝 발개지며 대꾸했다. 이젠 맞잡은 손뿐만 아니라 태건이 핥았던 오른손에서도 뜨거운 열기가 확확 느껴지는 듯 했다.




태건은 이후로도 지도 대련을 두 번이나 더 했다. 영윤 역시 자신과 비슷한 몸집의 여우와 겨루기 시합을 한 번 했다.


그다지 자신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윤은 안다리후리기로 한판승을 따냈다.


"형님! 잘하셨습니다!"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윤은 괜히 부끄러웠지만 그동안 봐왔던 태건의 뒷모습을 따라 오른팔을 하늘로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 뒤돌아보자 언제나처럼 듬직한 멍멍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영윤은 여우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준 뒤, 목례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비척비척 걸어 태건의 옆에 털썩 주저앉은 영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쁘지 않았죠?"


"당연한 거 아닙니까. 완벽한 안다리후리기였습니다 형님. 누구한테 배우신 겁니까?"


태건은 실실 웃으며 영윤의 어깨를 두들겼다. 승리한 건 영윤인데, 괜시리 자신의 일처럼 더 기뻤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처음으로 알려준 기술로 멋지게 승리를 쟁취한 영윤이 자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있어요. 엄청 멋있고 실력 좋은 유도 선수가."


영윤은 평소답지 않게 태건에게 장단을 맞춰주었다. 태건은 예상치 못한 답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 그 선수가 봤다면 자랑스러워했을 겁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워했을 거고요.


태건은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 대신 미소와 눈빛에 담아 영윤을 바라봤다. 태건의 마음이 전달됐는지, 영윤은 태건의 손을 살짝 쥐었다 놓았다.



"오츠카레사마데시타!"


우렁찬 소리가 도장을 휩쓸었다. 모든 훈련이 종료되고 다 함께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선수들은 앞다투어 탈의실로 밀려들어갔다.


"태건아! 영윤 씨! 잠깐만 이쪽으로!"


이 곳의 관장으로 보이는 소와 대화하던 대웅은 태건과 영윤을 불렀다. 그 옆에는 영윤과 대련했던 여우도 있었다. 태건과 영윤이 다가오자, 여우가 입을 열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태건과 영윤은 당황했다. 외국인의 억양이 있었지만, 그래도 알아 듣기엔 무리 없는 또렷한 한국말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타이치 군. 우리나라 말을 좀 할 줄 아신대. 그리고 관장님인 야마모토 씨."


대웅은 눈 앞의 소와 여우를 소개해줬다. 서로 통성명과 안부 인사를 마치자, 야마모토는 종이 가방을 건넸다. 곧이어 타이치가 야마모토의 말을 통역해줬다.


"이거는 관장님이 준비한 기념선물입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야마모토와 타이치가 꾸벅 인사를 하자, 대웅과 태건, 영윤도 꾸벅 인사를 했다.


"뭐 이런 걸 다..."


대웅은 넉살 좋게 웃어보이며 감사를 표했다. 어느 새 도장 선수들과 학생들은 야마모토 관장에게 인사하고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슬슬 우리도 갈아입고 가자."


대웅은 태건과 영윤에게 손짓했다. 태건은 고개를 끄덕하고는 영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갑시다, 형님."


"영윤 씨, 잠시만요. 잠깐 대화할 수 있을까요?"


타이치가 갑작스레 영윤을 불렀다. 영윤은 예상치 못 한 말에 당황했다.


"네? 아... 네 괜찮습니다. 태건 씨, 대웅 씨, 먼저 탈의실 가셔도 될 것 같아요. 저도 대화 마치고 바로 갈게요."


"그렇습니까? 그럼 저희 먼저 갈아입고 나오겠습니다. 가자 태건아."


태건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영윤을 바라봤지만, 영윤도 영문을 알 수 없단 표정과 함께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탈의실은 혈기왕성한 선수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나간 걸 증명이라도 하듯 아직도 약간의 열기가 남아있었다. 둘은 들어가자마자 자신의 락커 앞에서 탈의하기 시작했다.


"선배, 관장님께서 주신 건 뭡니까?"


"모르겠네. 한 번 슬쩍 볼까?"


탈의하던 대웅이 종이가방을 열고 내용물을 하나씩 꺼냈다. 태건 역시 흥미로운 듯 환복을 멈추고 내용물을 살펴봤다.


이 지역 특산물로 보이는 과자와 간식거리가 나왔고, 밑바닥엔 예상 외의 물건이 있었다.


"이거... 훈도시 아닙니까?"


"기념선물이란 게 이런 의미였나?"


대웅과 태건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을 껌뻑였다. 네모난 박스에 포장이 된 훈도시가, 그것도 세 개나 들어있었다. 아마 대웅과 태건, 영윤 세 사람 모두를 위해 준비한 듯 했다.


"확실히 기억에는 남을 선물인 것 같습니다만..."


"입을 일이 있을까 모르겠네."


대웅과 태건은 포장된 훈도시를 바라봤다. 앞쪽이 투명한 비닐로 되어 있어, 포장을 뜯지 않고도 대략적인 훈도시의 생김새를 알 수 있었다.


전통적인 방식보다는 좀 더 현대적인 속옷 느낌에 가깝게 편히 입고 벗을 수 있는 종류의 쿠로네코 훈도시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지금 살짝 입어볼까?"


대웅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태건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굳이 지금 여기서요?"


"뭐 어때. 마침 장소도 장소고. 잠깐 입어보고 다시 집어 넣으면 되잖아? 궁금하기도 하고. 마침 너나 나나 옷 갈아입다 팬티만 입고 있으니..."


태건은 대웅의 말에 무심코 끄덕였다. 평상시에 딱히 관심도 없었지만, 막상 눈 앞에 두니 궁금증이 솟았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포장을 뜯고는 훈도시를 꺼냈다. 훌렁훌렁 속옷을 벗은 둘은 훈도시를 입어봤다.


"음... 확실히 독특하긴 하네."


"느낌이 특이하긴 합니다. 특히 엉덩이 쪽이..."


삼각팬티처럼 앞쪽을 살짝 가리면서도 엉덩이 골 사이에 자연스레 들어가는 끈이 제법 신경 쓰였다.


태건은 괜시리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자신의 꼬리 쪽을 쳐다봤다.


"뭐, 유도할 땐 의외로 편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 거 같다."


"그렇습니까? 지금은 뭔가 어색한 느낌만 가득합니다."


둘이 훈도시를 이리저리 구경하는 사이, 탈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너무 오래 걸렸나요? 죄송해요. 타이치 씨가 이것저것..."


불쑥 들어온 영윤은 거대한 남성 둘이 훈도시만 입은 채 이리저리 구경하던 모습을 발견했다.


셋의 시선이 서로 교차하고, 어색한 공기가 탈의실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 제가 이상한 타이밍에 온 건 가요?"


영윤은 둘의 모습을 보고는 괜히 볼이 붉어지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그게 아니라!"


태건과 대웅은 괜히 당황해 양손을 마구 흔들며 황급히 변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영윤에게 해명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훈도시만 입은 울퉁불퉁한 남정네 둘이 필사적으로 해명하는 모습은 영윤에게 또다른 기념이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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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타이치 씨랑은 무슨 얘기 하셨습니까, 형님?"


"그냥 별 거 아니었어요. 그냥 유도 관련해서도 이거저거 물어보더라고요. 아무래도 몸집이 비슷하니까 궁금했던 점도 있었나봐요. 저도 뭐 이거저거 질문했고요."


"어떤 질문 말입니까?"


"한국어를 잘하니까 왜 그렇게 잘하냐고 물어봤죠. 한국에 소중한 친구가 있는데 그 덕분에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습니까? 무척 소중한 친구인가 봅니다."


"그리고, 태건 씨랑 저를 응원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들켰을지도요."


"뭐 어떻습니까. 형님도 저한테 얼마나 소중한데."

"태건 씨, 잠깐 귀좀 대봐요."


"뭡니까?"


"... 이따가 훈도시 입은 모습 한 번만 더 보여줘요."


"알겠습니다. 대신 형님도 입으시면 입겠습니다."


"아... 그건..."


"안됩니까?"


"알겠어요. 대신 기대하지 마세요. 저는 보여줄 것도 없는데..."


"왜 없습니까. 제 눈엔 형님이 제일 꼴립니다. 오늘밤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아, 몰라요. 얼른 가요. 대웅 씨가 기다리겠어요."


"형님, 잠깐만... 모처럼 개인 온천인데, 나가기 전에 여기서 한 판 안해도 되겠습니까?"

"... 하아. 못 말려 정말."


"이미 발딱 세워놓고 그런 말 하셔도 설득력 없습니다 형님."


"... 조용히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