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헤친 하복 단추, 검은색 반팔 티셔츠.


쫑긋 세운 귀, 쭈뼛 선 꼬리.


늘 그러하듯, 내게 고정한 한 쌍의 시선.


“얘기 흠, 끝났냐?”


최호범이었다.


“어디 아파?”


그런 녀석은, 불쑥 이런 것을 물어 보았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설마 지금 녀석을 이렇게 맞닥뜨리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까닭이다. 하교 직전에 다른 반 친구끼리 당구장 간답시고 우르르 몰려나가지 않았었나. 나한테도 권했던 것 같은데. 나는 단칼에 거절했고.


당혹감 섞인 시선으로 녀석을 훑었다. 내 앞에 우뚝 멈춰 선 최호범은 나를 빤히 내려다보는 와중이었다. 창밖에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음에도 짐승의 동공은 동그랗게 부풀어 있었다. 걱정과 어색함이 얼기설기 엮인 눈빛이었다.


그렇게 심각한 몰골인가 싶었지만, 그뿐이었다. 상황 파악을 마친 나는 끝끝내 부스스 웃었다. 그러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방을 고쳐 멘 뒤 볼을 매만졌다. 서너 번 정도 문지르니 얼음장 같은 차가움도 차츰 가시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이제 보니 목소리마저 갈라져 있었다. 목을 가다듬은 내가 말을 이었다.


“교무실 안에, 되게 춥더라고.”


정말 춥다는 양 으슬으슬 떠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농담에 가까운 몸짓에 녀석의 걱정도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싶었다. 세상 빤한 시선만은 전혀 거두지를 않았지만 말이다. 마주하기만 해도 모공이 절로 송연해지는 맹수의 두 눈.


“호범이 너는?”


그것이 껄끄럽기 그지없었다. 눈을 슬쩍 피한 나는 교무실 쪽을 턱짓했다.


“교무실에 볼 일 있어?”

“어? 아니. 그…….”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녀석이 고개를 도리질했다.


“같이 가려고.”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상당히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입술을 헤벌린 채로 녀석을 바라보기나 했다. 다소 빈약한 서술이었음을 인지한 듯, 헛기침을 내뱉은 녀석이 구구절절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상당히 허둥거리는 모양새였다.


“엄마가 심부름 시켰는데……. 음. 그래서 같이, 가게 가려고.”


덧붙인 설명조차 두서가 없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럼에도 그럭저럭 이해할 수는 있었다. 아주머니께서 녀석에게 무슨 심부름이라도 시켰나 보다. 돌아오는 길에 반찬을 좀 사 오라고 말이다. 혼자 가도 될 것을 굳이 나와 가려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마는.


“그래?”


굳이 물어볼 생각까진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내가 널찍한 어깨 너머를 눈짓했다.


“가자, 그럼.”


녀석은 쭈뼛쭈뼛, 고개를 끄덕였다.


하교 시간을 한참이나 넘긴 교정은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한밤중까지 학교에 남아 자습해야 하는 고학년들만이 급식실 부근에 조금 몰려 있을 따름이었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부턴 달짝지근한 탕수육 냄새, 그리고 짜장면 냄새가 풍겨 왔다.


군침을 돋우기보단 더부룩함이 앞섰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나는 최대한 멀쩡한 척, 빠르게 바깥으로 나갔다. 8월을 앞두고 한결 더 후텁지근하고 눅눅해진 공기. 거센 발길질에 축구공이 튀어 오르는 소리가 운동장으로부터 들려왔다.


“당구장 간다고 하지 않았어?”


학생이 옹기종기 모인 운동장을 멀거니 바라보던 내가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다. 한쪽 무릎을 꿇고 신발을 갈아 신는 최호범이 보였다. 덩치가 어찌나 커다랬는지, 일어서 있는 나와 높이 차이가 그렇게 크게 벌어지지도 않았다.


“그냥 안 갔어. 심부름 때문에.”

“아쉽겠네.”

“아, 아니. 별로.”


세상 칼같이 돌아온 부정이었다. 의아했던 내가 최호범을 멀뚱멀뚱 보았다. 시선이 맞닿자 주둥이를 느릿하게 뻐끔거리는 호랑이 한 마리.


“……재미없거든.”


방금과는 달리, 한참을 뜸들인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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