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운동장을 멀거니 바라보던 내가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다. 한쪽 무릎을 꿇고 신발을 갈아 신는 최호범이 보였다. 덩치가 어찌나 커다랬는지, 일어서 있는 나와 높이 차이가 그렇게 크게 벌어지지도 않았다.


“그냥 안 갔어. 심부름 해야지.”

“아쉽겠네.”

“어, 아니. 별로.”


세상 칼같이 돌아온 부정이었다. 의아했던 나는 최호범을 멀뚱멀뚱 보았다. 시선이 맞닿자 주둥이를 느릿하게 뻐끔거리는 호랑이 한 마리.


“……재미없거든.”


방금과는 달리, 한참을 뜸들인 대답.


“그냥 남들 가니까 따라가는 거지.”

“그래?”


이건 또 의외였다. 저렇게 재미없다고 치부하기엔 곧잘 들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야 물론 따라가 본 적은 없고, 건너서 들었다고 해야 할까. 주로 녀석과 친하게 지내는 다른 반 늑대, 그리고 다른 학교 친구들과 같이 놀러 간다고들 했다.


“막대기로 공 때리는 게 뭐가 재밌어.”

“야구도 비슷한 거 아냐?”


허를 찔린 듯, 최호범이 침묵했다.


“그건…… 음. 그렇긴 한데.”


그러곤 이렇게 읊조렸다.


녀석 나름의 배려인 듯싶었다. 면전에서 고까운 티를 내기엔 아무래도 조금 그랬을 터이니 말이다. 체육마다 종목 불문 날아다니는 녀석이 당구 같은 걸 재미없다고 싫어할 리가 없긴 하지. 나 같아도 냄새나는 시장 골목보단 당구장이 더 나을 것 같은데.


결론지은 나는 머쓱하게 웃기나 했다. 운동화를 갈아 신은 녀석은 자리에서 어영부영 일어서는 와중이었다. 뒤통수를 벅벅 긁어대는 꼴은 언뜻 흐리멍덩했지만, 어쩐지 이쪽을 향한 두 눈동자만은 묘하게 또렷했다. 뜻 모를 기대감을 머금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 시선까지도 배려일까?


“가자.”


부질없는 의문이었다. 가방을 고쳐 멘 내가 교문을 눈짓했다.


바깥은 무척이나 더웠다. 이제 완연한 여름임을 알리려는 듯 매미 소리가 귓전을 우렁차게 때려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오후 다섯 시가 가까워졌음에도 전혀 누그러질 생각이 없는 햇볕. 한참이나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에선 아지랑이가 부옇게 일어났다.


에어컨 바람으로 빵빵했던 교무실, 하다못해 선풍기라도 튼 교실에 비한다면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럼에도 실내보단 훨씬 나았지만 말이다. 탁 트인 공간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담임과 독대했던 아까와 달리 숨쉬기가 묘하게 편했다.


“…….”


그러니까, 내 옆에 있는 누구만 아니었다면.


터벅터벅 걷다 말고 옆을 흘끔 보았다. 키 차이가 제법 났던 탓에 보이는 것이라곤 두툼한 가슴팍과 팔뚝 정도가 전부였다. 주머니에 양손을 꽂아 넣고 보폭을 바싹 맞춰 걷는 호랑이 하나. 등줄기 아래쪽에 달린 꼬리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구렁이처럼 꼬부라졌다.


한 학기 동안 녀석에게 나름 익숙해지기야 했다마는, 이렇게 단둘이서 있는 상황엔 또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부담스럽다고 해야 할까. 어릴 때나 지금이나 녀석에겐 친구가 굉장히 많았고, 말주변도 재미도 없는 나는 항상 주변에 묻혀가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대화를 주도할 능력도, 그러할 의지도 내겐 없었다. 나는 다소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앞을 보았다. 왜 굳이 같이 돌아가야만 했던 걸까. 혼자서 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럼 서로 편했을 텐데. 녀석은 지금 당구장에 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을까.


너는…….


“그게, 흠. 음. 그런데.”


속으로 읊조리던 내가 어깨를 움찔했다.


“교무실은 왜 갔어?”


그러다 헛기침까지 내뱉었다.


반쯤 잊고 있었던 불쾌한 경험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싱글벙글 웃던 대머리 담임. 말끝마다 붙는 차상위계층. 42만 4천 원. 제주도. 부모님 사인을 받았다니 어쩌니, 가고 싶으면 선생님이 추가로 지원을 해 줄 수 있니 어쩌니, 어쩌고저쩌고.


곧이곧대로 대답할 생각은 없었다. 특히나 녀석 앞에서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최호범네 아주머니가 우리 가게에 곧잘 온다는 사실이 떠오르기도 했다. 내가 숨기든 말든, 2학기가 되면 어머니가 필연적으로 수학여행의 존재를 알게 되리라는 사실까지도.


“아무것도?”


일단은 넘어가고 생각하자.


“별거 아냐.”


빠르게 내뱉고 나니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말투가 너무 날카로웠나, 싶었던 까닭이다. 불과 몇 달 전에도 비슷한 짓을 했다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적이 있었지.


“어, 음. 그래.”


막상 녀석은 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목을 가다듬은 내가 시선을 올렸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녀석은 손가락으로 코끝을 쓱쓱 문지르는 와중이었다. 털이 한 올 한 올씩 일어나기 시작하는 꼬리. 시선은 마치 딴청이라도 피우듯 내 반대편, 저 멀리로 떨어트린 채였다.


“그리고.”


공격적인 말투에 당황이라도 했나 싶었지만, 아니었음을 빠르게 깨달을 수 있었다.


“바, 방학 때 뭐 하냐?”


이어지는 녀석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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