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놀러갈 계획도 없고?”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였다.
조금은 답답하기도 했다. 녀석은 과연 진심으로 이런 소리를 꺼내는 걸까. 방학을 맞이했답시고 하하 호호 놀러갈 계획이나 짤 여유가 내게 있다고 믿는 걸까. 꾀죄죄한 시장 골목에서 비루하게 지내는 나에게. 입에 풀칠하며 살기도 버거운 나에게.
아마 그렇겠지.
녀석에게 아무런 악의가 없음을 알았기에 더욱 화가 났다. 이것이 결국에는 거울에 비친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까닭이다. 줄곧 숨기고만 싶었던 내 추하디추한 밑바닥을, 순수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물음이 적나라하게 비추는 것이다.
가난과 열등감, 분노.
그리고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나를.
“……없지.”
나는 웃기나 했다.
최호범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또 목소리를 가다듬기 시작하기나 했다. 눈을 마주하지 않았음에도 녀석이 나를 흘끔거리고 있음을 선히 느낄 수 있었다. 서투르고 멋쩍고, 어색하고. 또한 어수룩한 모습.
그러고도 또, 몇 초.
“나 방학에 경기 있는데.”
한참이나 머뭇거리던 녀석이, 드디어 본론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구경하러 올래?”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입술이 슬쩍 벌어졌다가, 도로 다물렸다. 말뜻을 이해하긴 했지만 할 말은 없었던 까닭이다. ‘경기’란 아마 야구 경기를 뜻하겠지. 당장 교문에도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었으니까. A고등학교 야구부가 5년 연속 B배 전국 고교 야구대회에 진출했다면서.
“경기?”
“야구 경기.”
“학교에서 하는 거야?”
“아니, 거기. G 구장 알지? 거기서 하는데.”
그걸 왜 내게 묻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만.
“주말 리그에서 2등 해서 진출했거든?”
“와, 진짜? 되게 잘했네.”
“그게, 흠. 아니, 뭐……. 그렇지.”
경청하는 척 빙그레 웃어도 정신은 저 멀리 가 있었다. 당혹과 의문이 번잡한 머릿속에서 어지러이 교차했다. 녀석은 왜 굳이 내게 이런 제안을 꺼낸 것일까. 같이 갈 친구가 없는 걸까. 같은 학교에만 해도 쌍수 들고 따라갈 애가 수십은 될 텐데.
흥미보다는 부담감이 앞섰다. 녀석이 수많은 친구들 중 굳이 나를 택한 저의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말이 소꿉친구고 짝꿍이지, 지금의 우리는 그저 데면데면한 ‘같은 반 친구’ 정도의 사이가 아니던가. 그럭저럭 가깝고, 또 그럭저럭 대화하는.
거절해야 하나.
“재미있을걸.”
속으로 고민하던 찰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안간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앞으로 향하고 저벅저벅 걷는 최호범은 시선만 이쪽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짙은 호박색 눈동자 안쪽에 점처럼 박힌 까만색 동공. 흔들림 하나 없는 시선에서는 듬직함보다는 뻣뻣함이 느껴졌다.
최호범은 또한 웃고 있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그다지 편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무던하게 보이려고 용을 쓴다고 해야 할까. 일그러지다시피 한 눈가와 벌름거리는 분홍빛 코. 벌어진 주둥이 사이론 맹수 특유의 두꺼운 어금니가 뾰족 튀어나와 있었다.
뚜렷한 호의, 모호한 태도.
그런 녀석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타인인 나로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이런저런 추측만을 속으로 이어나갈 뿐이었다. 녀석은 어째서 나를 이렇게 특별 취급하는 걸까. 녀석은 어째서 나를 상대할 때만 저런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일까.
어쩌면 담임과 비슷한 이유일는지도 몰랐다. 어릴 적, 아주머니가 녀석에게 가르치고 싶어 했던 원칙을 이제야 체득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집이 물에 잠겨버린 편모가정에게 기꺼이 방 하나를 내주듯,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학생에게 비용을 대신 내주듯.
동정심.
차라리 그랬다면 내 마음이 훨씬 편했을지도 몰랐다. 네 선심을 값싼 동정으로 치부한다면 그만큼 선을 긋기에도 편해졌을 테니 말이다. 네가 건넨 제안을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내 알량한 자존심이 좁디좁은 마음 한 구석을 내주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누군가 내게 호의를 내비칠 때마다, 나는 화가 났다.
“……그럼.”
네가 내게 호의를 내비칠 때엔,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일단 엄마한테 허락 받아보고. 갈 수 있으면 갈게.”
아니, 그보다는…….
상념은 짧았다. 느릿느릿 말을 마친 내가 볼을 긁적이며 머쓱하게 웃었다. 와중에도 시선은 비스듬히 들어 올려 위를 흘끔댔다. 멀뚱멀뚱, 이쪽을 마주 내려다보는 호랑이 한 마리. 약간의 놀람을 머금은 짐승의 눈은 동그랗게 변해 있었다.
“진짜?”
귀를 쫑긋 세운 최호범이 재차 물었다.
“가는 거 맞지?”
대답 대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범아빨리좆집순애엔딩해다오
점붕이 자존감 낮은거 안타깝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