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버리는 거 맞지?”

“네?”


A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가요?”

“그거.”


검붉은 눈동자는 봉투에게로 향해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몰래몰래 보관하는 쌈짓돈처럼 꼼꼼하게 싸인 신문지. 단순 쓰레기로 치부하기엔 묘하게 소중한 취급.


“에이, 그럼요. 당연히 버리죠!”


A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걸 얻다 쓰겠어요? 뭐, 무슨 이불 만드는 데 쓸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하지.”


진심으로 물어본 것은 아니었는지, B는 얌전히 수긍했다. 다만 조금 당혹스럽다는 눈으로 A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나 할 따름이었다. 질문 하나에 과할 정도로 구구절절 떠들어댄 A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지만, 속으로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와중이었다.


눈치 되게 빠르네.


B의 의심대로, A는 이렇게 모은 늑대인간 털을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당장 몇 달 전 소파에서 몰래 꼬불친 털 한 움큼도 서랍장에 고이 모셔둔 마당에 이걸 미쳤다고 버리겠는가.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다.


딱히 쓰임새가 있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이번엔 양이 많으니 이래저래 활용할 여지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야 했지마는 말이다. 절반은 늑대인간 컬렉션에 추가하고 나머지는 가내 수공예로 인형이나 하나 만들어 볼까, 뭐 이런 느낌 정도로.


“아이고, 피곤해.”


세상에는 밝히지 않아 더욱 아름다운 진실이 있기 마련이지만.


결론지은 A가 소파 등받이에 벌러덩 늘어졌다. 화제를 돌리고자 부러 과장스럽게 하품하고는 기지개까지 켰다. 따지고 보자면 정말로 피로한 것 같기도 했다. 널따랗기가 무슨 태평양이나 다름없는 등을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빗질했으니.


A는 시큰대는 팔목을 주무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겨울이 되니 해 떨어지는 속도도 확연하게 빨라진 듯했다. 이제 막 오후 여섯 시였음에도 어두침침하기 그지없는 바깥. 잎을 다 털어내 앙상하게 변한 나뭇가지가 강한 바람에 나부꼈다.


“이리 와.”


황량한 숲을 보던 A가 흠칫했다.


어느새 소파로 올라와 앉은 B가 팔을 뻗었다. 투박한 짐승의 손아귀는 야윈 어깨를 그러쥐고 가볍게 잡아당겼다. A는 별 저항 없이 스르르 기울어지기나 했다. 저항은커녕 기다렸다는 듯 엉덩이를 들어 B의 허벅지 사이로 쏙 들어갔다.


늑대의 품에 폭 들어간 꼴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소파 등받이 대신 단단한 가슴팍에 기댄 A는 눈을 감았다. 만족 섞인 그르렁거림이 귓전에 맴돌았다. 제 정수리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대는 소리까지도.


“아…… 돌아가기 싫다.”


실눈을 뜬 A가 나직이 혼잣말했다.


소파 맞은편 TV는 마침 기상 뉴스를 방영하는 참이었다. 만면에 친절한 미소를 매단 기상 캐스터가 일주일 날씨를 알려주고 있었다. 주말 동안 날씨가 꽤나 추워졌다니 어쩌니, 내일 출근길부터는 옷을 껴입고 다니는 것을 추천한다니 어쩌니.


“가지 말든지.”


상대의 정수리에 턱을 얹은 채로 늑대가 말했다.


A는 수요일과 금요일, 매주 두 번 이곳을 방문했다. 금요일엔 아예 이틀 동안 이곳에서 자고 갔고 말이다. 수요일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늦은 밤까지 눌러앉아 있다가 떠났으니, 거의 일주일의 절반 정도를 B의 집에서 보내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둘에겐 마냥 부족하기만 했다. 종일 통화하고, 또 주말마다 자고 가도 감질이 나서 죽을 것만 같다고 해야 할까. 이제 막 커플이 되었다면 일주일 내내 물고 빨고 염병 첨병을 떨어도 시간이 모자랄 터였으니 말이다.


“여기서 살아, 그냥.”


저런 소리를 꺼내는 걸 보면, 아쉽기로는 상대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내심 기분이 좋아진 A가 위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저를 멀뚱멀뚱 마주 보는 검붉은 눈동자 한 쌍. 털이 오소소 솟은 세모꼴 귀는 양옆으로 접혀져 있었다.


“안 돼요.”


짐짓 울상을 지은 A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취방 계약도 한참 남았고.”

“…….”

“근무지도 여기서 너무 멀단 말이에요.”


마음 같았으면 진작 여기에 살림을 차리고도 남았겠지만, 이래저래 현실적인 장애물이 발목을 잡았다. 굳이 따지자면 교통편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제아무리 상대를 향한 사랑이 극진한들 두 시간 넘는 출근길은 도무지 참기가 힘들었으니.


요즈음 A가 운전 학원을 등록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면허를 딴다면 그만큼 출근 시간도 단축될 테니 말이다. 적어도 이른 아침부터 숲길을 30분 이상 걸어야 할 일은 없어지지 않겠는가. 영복부에서 차량도 지원해 준다고 했고.


“그만 둬, 그럼.”


생각을 이어가던 A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 백수 되라고요?”

“……내가 먹여 살리면 되지.”


그러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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