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살아, 그냥.”


저런 소리를 꺼내는 걸 보면, 아쉽기로는 상대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고개를 모로 기우뚱한 A가 늑대를 올려다보았다. 저를 멀뚱멀뚱 마주 보는 검붉은 눈동자 한 쌍. 털이 오소소 솟은 세모꼴 귀는 양옆으로 접혀져 있었다.


“안 돼요.”


짐짓 울상을 지은 A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취방 계약도 한참 남았고.”

“…….”

“근무지도 여기서 너무 멀단 말이에요.”


마음 같았으면 진작 여기에 살림을 차리고도 남았겠지만, 이래저래 현실적인 장애물이 발목을 붙잡았다. 구태여 따지자면 교통편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제아무리 B를 향한 사랑이 극진한들 한 시간이 넘는 출근길은 또 별개의 문제였으니까.


집은 서울 외곽 그린벨트 한가운데.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은 걸어서 30분.


버스에 지하철까지 합쳐서 소요되는 시간은 45분!


A가 요즈음 운전 학원을 등록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면허를 딴다면 그만큼 출근 시간도 단축될 테니 말이다. 적어도 이른 아침부터 숲길을 30분 이상 걸어야 할 일은 없어지겠지. 영복부에서 차량도 지원해 준다고 했고.


“그만 둬, 그럼.”


생각을 이어가던 A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 백수 되라고요?”

“내가 먹여 살리면 되지.”


그러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 마디 툭 내뱉은 늑대는 A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언뜻 무덤덤한 척 TV만 마냥 바라보고 있었지만, 막상 보이는 모습은 덤덤함과 거리가 멀었다. 접혔다 폈다가를 반복하는 세모꼴 귀라든지, 시종일관 자꾸만 씰룩거리는 콧잔등이라든지.


머쓱한 것인지 불편한 것인지, 묘하게 허둥거리는 모양새였다. 털을 다 밀어버린다면 얼굴 전체가 벌겋게 물들어 있을 것만 같다고 해야 할까.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빤한 눈빛을 이따금 흘끔거리며 나직이 으르렁거리는 꼴이.


“……뭘 그렇게 쳐다 봐.”


혀로 마른입술만 축이던 B가 꿍얼댔다.


“싫어요.”


한참이나 히죽거리던 A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이거 합격하려고 공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요? 아까워서 못 그만두죠.”

“…….”

“되게 편해요. 하는 일도 마음에 들고…….”


말끝을 흐린 A가 지난날을 되짚었다. 처음에야 기피 부서랍시고 괜한 선입견을 갖고 죽을상이었지, 막상 일을 하다 보니 또 괜찮은 듯했다. 어디 괜찮다마다. 하는 일은 편하고 동료는 착하니 그야말로 거대 꿀단지라 칭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눈앞의 늑대가 가장 컸다. 이 직업을 택하지 않았다면 B와 이어질 일도, 하물며 만날 일조차도 전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자연스레 없던 애사심도 쏙쏙 샘솟지 않겠는가. 애인까지 점지해 준 영복부에게 정년까지 한 몸 쇄신할 생각이었다.


“근데 진심으로 그런 소리 하신 거예요?”


상념은 짧았다. 빵긋 웃은 A가 말을 이었다.


“와, 어이없다. 저번에 제가 말실수 했을 땐 뭐, 사람 하나 잡아먹을 것처럼 구시더니.”

“아니……. 그건.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리고 먹여 살리려면 제가 먹여 살려야죠! B 씨 백수면서.”


제 평생소득보다 까마득히 많은 금액이 상대 통장에 있긴 했다마는, 대충 넘기기로 했다.


몸을 홱 튼 A가 널따란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어서는 양팔을 뻗어 늑대의 주둥이에 손을 올렸다. 온몸을 덮은 모피와 다르게 짤막하게 자란 털은 보푸라기처럼 부들부들했다. 둥그렇게 덮인 입술 안쪽에선 날카로운 이빨이 느껴졌다.


조그만 손바닥은 곧 주둥이를 조물거리기 시작했다. 까만색 코끝에서부터 볼까지 가볍게 쓸어내리나 싶더니, 이내 양손을 동그랗게 만들어 중간 부분을 감싸 쥐었다. 손을 잠깐 떼어낼 때마다 슬쩍 벌어지는 입술에선 불편 섞인 으르렁거림이 샜다.


“백수 아저씨.”


장난기 가득한 손길.


“자꾸 놀리지, 또.”


오래 할 수는 없었지만.


끝끝내 픽 웃은 B가 허리를 홱 굽혔다. 털 부숭부숭한 손아귀로 A의 양 팔목을 그러쥐고 아래로 스윽 내려 보냈다. 가슴께에 가지런히 포개지는 두 손. 갓난아기처럼 얌전히 안긴 꼴이 되는 것도 금방이었다.


B는 이내 입술을 슬쩍 벌렸다. 반쯤 벌어진 늑대의 주둥이는 곧 A의 정수리를 가볍게 깨물었다. 머리털 아래 살갗에 닿는 날카로운 이빨. 힘을 거의 들이지 않아 아프다기보다는 간질간질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장난에 대한 응징이라기보다는 애정 섞인 행위에 가까울 성싶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던 A는 저항 대신 낄낄대며 몸을 뒤척이기나 했다. 요즘 틈만 나면 이러시네. 처음에 할 때는 무서워하시더니. 이제 익숙해졌다 이건가.


그건 그렇고…….


“……음.”


기분 좀 이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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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