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들르는 지하 주차장은 퍽 어두침침했다. 희미한 조명 아래 간격을 두고 듬성듬성 주차된 차량 여럿. 빛이 닿지 않는 구석 내벽은 페인트칠이 벗겨져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코끝을 맴도는 퀴퀴하고 눅눅한 물때 냄새는 덤이었다.


이런 공간에서 K의 차량은 세상 이질적이기 그지없었다. 매끈한 광택을 자랑하는 고급 스포츠카가 주차장 한 구석에 진열하듯 세워져 있었다. 몇 주쯤인가 전에 자주 타고 다니던 것과는 또 다른 차종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건 완전히 망가진 채로 B 씨 마당에 방치되어 있으니까.


뚱한 시선이 모로 기울어졌다. 차문 옆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K가 눈에 들어왔다. 친히 문까지 열어주고 안을 턱짓하는 그는 다소 머쓱한 미소를 매달고 있었다. 적어도 평소 보아 버릇하던 특유의 뻔뻔스러운 웃음이 아님임은 명백했다.


점잖은 에스코트에 A는 반응하지 않았다. 터벅터벅 조수석으로 들어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기나 할 따름이었다. 전면 유리 너머, 허둥지둥 운전석으로 향하는 K를 바라보며 드는 이런저런 생각. 그냥 따라오지 말걸 그랬나. 꼴도 보기 싫은데.


간절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따라오긴 했다만, 지금에 이르러선 그저 후회막심이었다. 물론 그런들 제게 선택권이 있는 것도 아니긴 했지만 말이다. 현 대한민국에 공식적으로 한 명만이 남았다는 S급과 대놓고 척을 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따라 안으로 들어온 K가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였다. 언뜻 조심스러운 어조.


“얼어 죽진 않았어요. 보시다시피.”


A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감기로 일주일 정도 쉬기는 했는데.”

“……죄송합니다.”


염치는 있었던 모양인지, K가 얌전히 사과했다. 이쪽을 향해 꾸벅 목례하는 모습이 퍽 진중하게 느껴졌다. 그런들 언짢은 마음이 풀린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긴 했지마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다른 후유증이 남으셨다면 치료비도 드릴 테니…….”

“그 정도는 아니고요.”


이런들 저런들 눈앞의 남자와 더 엮이고픈 생각도 없었다. 딱 잘라 거절한 A가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하실 말씀 끝난 거죠? 이제 가도 될까요?”

“아뇨, 그게.”


그마저도 제지당했지만.


A가 부루퉁한 눈으로 옆을 샐쭉하게 흘겼다. 어색한 미소를 대롱대롱 매단 K는 A의 어깨를 붙들고 있었다. 짜증 섞인 시선에 곧장 떼어내기야 했지마는 말이다. 잠깐만 기다리라는 듯 시트를 손짓하는 모습이 언뜻 처량하게까지 느껴졌다.


“잠시 얘기 좀 할까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A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그간 많이 걱정했어요. 진작 찾아뵀어야 했는데, 그날 이후로 생각이 좀 많아져서 말이죠.”


도로 조수석에 착석하자 K가 술술 이야기를 시작했다. 관심도, 의미도 없는 본인 신변잡기 여럿. 자연스레 별 흥미도 동하지 않았던 A는 심드렁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기나 했다. 이따금 졸음 섞인 하품도 간간이 내뱉어 가면서.


“용건이 끝나자마자 A 씨 만날 생각이었는데, 운이 좋았네요.”


운이 나쁜 거 아닌가.


“그 녀석은 잘 지내나요?”

“네?”


속으로 구시렁거리던 A가 고개를 홱 틀었다. 날카로운 눈빛에 실수했음을 인지한 듯, K는 재차 가볍게 목례했다.


“그렇죠. 이제 와서 안부를 묻는 것도 염치가 없네요. 가장 힘들었던 건 제가 아닌 녀석이었을 텐데.”


이어지는 이야기는 혼잣말에 가까웠다. 쓰게 웃은 K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은연중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녀가 희생한 이유도, 마지막에 내가 아닌 녀석을 택했던 이유도.”

“…….”

“저나 그녀나 녀석에게 지울 수 없는 짐을 떠안겼네요. 잔인하게도…….”


이후로는 잠깐 정적이었다. A는 대답 대신 K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튼.”


아무튼.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K가 손뼉을 가볍게 쳤다. 느닷없는 행동에 놀란 A는 어깨를 움찔했다. 못마땅함, 그리고 의아함 섞인 시선은 앞쪽으로 기울어졌다. 운전대 오른편, 대시보드에 설치된 좁은 서랍 안쪽을 뒤적거리는 손아귀.


“제가 오늘 여기 온 건, A 씨가 괜찮은가 확인하기 위해서였어요.”

“아, 네.”

“사실 다른 목적도 있어요.”


다른 목적.


길쭉한 손가락 끄트머리에선 곧 무언가가 딸려 나왔다. 한 손에 폭 담길 법한 크기의 정육면체 선물 상자였다. 은은한 보랏빛이 감도는 검은색 포장지는 한 눈에 보아도 퍽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굳이 따지자면 귀금속 보관함에 가까울까.


“선물을 하나 드리려고요.”

“네? 싫은데요.”

“제가 그때 저지른 짓이 워낙 죄송해서야 말이죠. 사죄의 의미로 드리는 것이니 부디 받아주셨으면 좋겠네요.”


구구절절하게도 떠든 K가 상자를 열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내용물이 드러났다. 웬 반지 하나가 보관함 한가운데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철제 금속 특유의 짙은 회색빛이 도는 그것은 광택이 상당히 바래 있었는데, 우둘투둘 돋은 녹 사이로는 기이한 문자가 판각되어 있었다.


“……이게 뭔데요?”


꺼림칙하게 중얼거린 A가 반지를 넘겨받았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심히 민망한 비주얼이었다. 그보다는 어디 무슨 오컬트 잡지에나 나올 법하다고 해야 할까. 몇 세기에 출토된 저주받은 반지가 어쩌고저쩌고, 하며.


빙그레 웃은 K가 대답했다.


“아티팩트입니다.”


아티팩트.


-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