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학교는 떠들썩했다. 체육 시간을 맞이한 친구들은 운동장에서 즐겁게 뛰놀았다. 잔디 하나 없이 휑한 운동장은 신발에 채일 때마다 부연 흙먼지를 뿌려댔다. 그러든 말든 축구공을 뻥뻥 차대는 아이들은 별 신경조차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나는 차양 아래에 앉아 있었다. 어째서인지 내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늘진 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아이는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수치심과 아쉬움, 그리고 불안함 섞인 시선은 저 멀찍이 무리지어 노는 아이들에게 향해 있었다.


아이의 단짝은 운동장을 쏘다니고 있었다. 주변 친구보다 머리통 하나만큼 더 큰 호랑이는 상대 수비수를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뻥, 하는 소리와 함께 골대에 축구공이 박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단번에 여기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까지도.


이쪽으로 성큼성큼 달려온 소년이 아이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땀으로 흥건한 옷을 펄럭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입가엔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내 어깨를 흔들면서 보채는 모습은 영락없이 또래 어린애였다.


‘방금 봤지?’


물속에 들어간 듯, 목소리가 윙윙 울렸다.


‘봤냐니까.’

‘봤어.’

‘나 골 세 개 넣었다?’

‘잘했어.’


웅얼웅얼 대답하자 소년은 만족스럽게 어깨를 으쓱댔다.


얼마 있지 않아 종소리가 울렸다. 영 아쉬운 듯 운동장에서 미적거리던 애들도 선생님의 불호령에 모일 수밖에 없었다. 엉거주춤 일어난 나는 단짝을 졸졸 따라가 쭈뼛쭈뼛 줄을 섰다. 뒤쪽에 선 아이가 키득대며 단짝에게 말을 거는 것이 들려왔다.


‘최호범. 오늘 피시방 안 가?’

‘안 가.’

‘왜?’


그때 너는 무어라 대답했었나.


교실로 올라가는 길에 문득 옆을 보았다. 내 곁에서 터벅터벅 걷던 소년이 하품하다 말고 이쪽을 마주 보았다. 고개를 갸웃하는 어린 호랑이는 느닷없는 시선이 의문스럽다는 낯빛이다. 껌뻑거리는 눈동자에 내 모습이 설핏 비쳐 보였다.


‘애들이랑 피시방 안 가?’

‘피시방?’


소년은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내가 거길 왜 가?’

‘가서 같이 놀면 재밌잖아.’

‘오늘 우리 집에서 같이 놀기로 했잖아. 바보야. 기억 안 나?’


아이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가고 싶으면, 피시방 가도 되는데.’

‘거기 별로 재미도 없거든.’


주둥이를 삐죽 내민 채로, 소년이 말을 마쳤다.


이제 막 아홉 남짓한 나이였음에도 아이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가령 단짝을 제외한 다른 동급생들이 저를 어떻게 취급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워낙 허약해서 깍두기 취급도 못 해주는 아이, 요즘 유행은커녕 방영하는 TV 프로그램조차 제대로 모르는 아이. 아주머니께서 입학 기념으로 선물한 새 책가방과 옷으로도 피부 깊숙이 배어든 빈곤의 냄새는 전혀 지울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때의 나는 아마 불안했던 듯싶었다. 일곱에 만난 단짝은 여전히 저를 끔찍이 챙겨주었지만, 이 호의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언제 어디서나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녀석이 과연 무엇이 아쉬워서 운동도 못하고 재미도 없는 아이를 절친이랍시고 데리고 다니겠는가. 오히려 질릴 대로 질려서 내버리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는가.


녀석이 다른 친구와 웃을 때마다, 나는 두려웠다.


‘걔네랑 안 놀아. 나는.’


심란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대뜸 뒤에서 아이를 끌어안았다. 히히 웃으며 볼을 비비적거리기도 했다. 보푸라기처럼 부드러운 털이 살갗과 마찰할 때마다 가르랑대는 소리가 피부를 타고 들려왔다. 어린애치곤 제법 커다란 소리였다.


‘너랑 노는 게 더 재밌거든.’


애정 섞인 장난에 아이도 결국 웃고 말았다. 상대가 무게를 싣자 버티지 못하고 옆으로 기우뚱하기까지 했다. 다행히도 바닥에 코를 처박는 일은 그나마 피할 수 있었다. 넘어지기 직전 단짝이 저를 번쩍 일으켜 세웠던 까닭이다.


‘너랑 놀 거야.’


차츰 흐릿해지던 시야는 이내 완전히 암전했다. 감으나 뜨나 보이는 것이 없었기에 아이는 그냥 눈을 감기로 했다. 윙윙 울리던 목소리는 이제 형체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메아리처럼 뿔뿔이 흩어져서는 몇몇 단어만을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또 괴롭히는 놈 있으면, 나한테 말해.’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가…….’


그때 내가 네게 하고 싶었던 말은…….


“……아.”


감겼던 눈이 스르르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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