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다소 놀란 눈치였다. 두 눈은 휘둥그레 뜨고 있었고, 입술은 조금 헤벌어진 채다. 어째 망연하기까지 한 시선은 제 앞에 펼쳐진 궁상맞은 풍경을 담는 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마치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는 것처럼.
“그런데요.”
“이건 예상했던 것과 좀 다른데. 혹시 별장인가요?”
A가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세상천지 어디에 이렇게 다 쓰러져 가는 별장이 있겠는가.
“아니요.”
“흠……. 이상하군요.”
재차 부정하니 남자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분께선 당신 세계에서 영웅으로 추대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아닌가요?”
“…….”
“그런데 이렇게나 후미지고 허름한 곳이라니……. 아무리 청렴하신 분이어도 이보다는 좋은 곳에서 지내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러니까요!
“……그렇죠.”
격하게 동의하고픈 마음을 꾹 억누른 A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쌓아두고 다니던 불만거리를 아주 속 시원하게 짚어주는 발언이었다. 한 몸 희생해 마왕까지 잡아낸 B에게 이 무슨 초라한 대우란 말인가. 어디 아방궁에서 평생 떵떵거리며 살아도 모자랄 판에.
하다하다 이계 생물에게 공감을 다 하게 될 줄은 또 꿈에도 몰랐다. A는 경계심이 한결 누그러진 눈으로 남자를 흘끔댔다. 마냥 수상하고 뺀질뺀질하게 느껴졌던 아까와 다르게 솔솔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호감. 거기다 금상첨화로 늑대인간이기까지.
이제 보니 그렇게 수상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들어가면 될까요?”
되도 않는 내적 친밀감을 쌓던 A가 정신을 퍼뜩 차렸다.
“어…… 아뇨. 잠깐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러곤 금방이라도 문가로 향하려는 남자를 빠르게 만류했다.
“일단 제가 먼저 가서 말씀드릴 테니까.”
“그러시죠.”
남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어물거리던 A가 슬금슬금 현관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을 느릿느릿 내디디는 와중에도 시선은 몇 번이고 뒤쪽을 흘끔거리곤 했다. 팔짱을 낀 남자는 오솔길 인근 나무에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저거랑 만나게 해도 되려나.
뒤늦게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미 이곳까지 데려온 시점에서 부질없는 후회이기도 했고 말이다. 혹시 우리 B 씨한테 무슨 해코지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짓만 봐서는 별 악감정은 없어 보이는데. 뭔 짓을 저지를 만큼 강해 보이지도 않고.
“……후.”
고민하는 것도 잠시였다. 속으로 기합을 넣은 A가 초인종을 눌렀다.
요란한 차임벨 끝엔 정적이었다. 내심 예상하고 있었던 A는 이내 현관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손등에 알루미늄 문이 맞닿을 때마다 똑똑, 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귀를 기울이니 굳게 닫힌 문 너머로부터 TV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A가 상대를 불렀다.
“B 씨, 저예요.”
동시에 TV 소리가 뚝 멈췄다.
나름 조용했던 안쪽은 곧 소란스럽게 변했다. 문에서 한 걸음 떨어진 A는 얌전히 상대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짓눌렸던 소파가 풀썩 돌아오는 소리, 옷깃이 모피에 쓱쓱 스치는 소리, 묵직하고 재빠른 쿵쿵 발걸음 소리. 문고리를 붙잡고 홱 돌리는 소리.
“뭐, 뭐야.”
끼익, 음산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덩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시간에.”
B였다.
엉거주춤 문을 연 자세 그대로, 늑대가 A를 멀뚱멀뚱 내려다 봤다. 답지 않게 동그랗게 뜬 눈동자에서 그가 당황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보통 수요일을 제외한 주중에는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왜 왔어.”
짐짓 퉁명스레 꿍얼거려도 몸은 반가움을 전혀 숨기질 못했다. 겨울을 맞이해 한결 도톰해진 꼬리가 마치 날갯짓처럼, 늑대의 허리 양옆을 쉴 새 없이 파닥거린 것이다. 닫힌 주둥이 사이로는 분홍빛 혀가 빠끔 나왔다가, 말았다가 했다. 다소 긴장한 모양새였다.
예상보다 훨씬 격한 환영이 좋기도 했고, 착잡하기도 했다. 다음부터는 피로로 기절하는 한이 있어도 자주 와야겠다고 다짐한 A가 부스스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머릿속으로는 지금 처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골머리를 싸매는 와중이었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나고.
“어…… 그게요.”
이제 막 운을 한 번 떼어보려던 A가, 별안간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세요?”
늑대가 지은 표정 때문이었다.
붕붕 흔들리는 꼬리가 무색하게도, B는 인상을 슬며시 찌푸리고 있었다. 가늘게 뜨인 눈과 찌그러진 콧잔등, 한 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벌름거리는 까만색 코. 슬쩍 벌어진 잇새에선 나지막한 으르렁거림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분노보다는 불쾌감에 가까울 성싶었다. 책잡힐 일을 만든 적도 없었던 A가 당혹스럽다는 양 눈을 껌뻑였다. 하물며 당사자인 늑대마저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허리를 이쪽으로 슬쩍 기울인 채로 코를 킁킁거리기나 했다.
어쩐지 익숙한 모습.
“아니, 그게.”
한참이나 냄새를 맡던 B가 웅얼댔다. 시종일관 으르렁거리는 것치고는 제법 유순한 어조.
“냄새가…….”
“역시.”
그러나 말을 끝마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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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B를 눈앞에서 ntr 당했다 - dc App
내 남자에게서 낯선 개 냄새가 난다
만약 주인공이 '혈랑이 제 첫사랑이었어요'하고 고백하면 B가 개질투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