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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있을리가요
















































































"정신 차려 좀."


"으으..."


등에 있던 짐짝을 소파에 던졌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늑대개는 소파 하나를 다 채우고도 남아서 다리와 머리가 바깥쪽으로 삐죽 튀어나왔다.


"술도 잘 못 마시면서 왜 그렇게 마셨는데."


"그치만... 오랜만에 만나서 기분 좋았는걸..."


몸에서 술냄새를 풍기던 늑대개가 부스스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1.5인분의 자리를 차지하는 늑대개가 소파의 가운데에 앉으니 소파가 1인용이 된 것처럼 귀여워졌다.


"옆으로 비켜 나도 좀 앉게."


"응..."


몸을 소파의 끝 쪽으로 옮긴 늑대개의 옆에 나도 같이 앉았다.


이 늑대개가 워낙 거대한 몸집을 가졌으니 그걸 등에 매고 2층까지 올라오느라 금방 지쳐버렸다.


이제 나도 나이가 있어서 이런식의 노동은 무리가 있다고...


"좀 쉬면서 정신 차리고 있어."


"그정도로 취하진 않았는데..."


"취했어."


반쯤 뜬 눈을 꾸벅꾸벅 감았다가 뜨면서 멍하게 앉아있는 꼴을 보니, 어떻게봐도 술 때문에 머리가 멍해진 꼴이었다.


붉어진 얼굴로 술냄새를 그렇게 풍기면서 안취하긴 뭐가 안취해.


나도 같이 술을 마시긴 했으니 조금 정신을 차리기 위해 늑대개의 옆에 앉아서 마른세수를 몇 번 했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서 몇 시간 전.


우리 가족과 형의 가족끼리 연휴에 만나서 놀기로 계획을 잡아놔서 독채 펜션을 빌리고 다같이 술판을 벌였다.


워낙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가 쌓이기도 했고, 마침 우리 막내 아들이 성인이 되어서 술도 마실 수 있게 됐으니 옳다꾸나하고 신나게 술을 들이켰다.


그렇게 열심히 떠들고 놀기를 몇 시간.


내 와이프와 형수님과 형의 딸끼리 여자들의 이야기를 나누겠다며 펜션 안 쪽의 방으로 들어갔고,

우리집은 아들만 셋이니 남자들끼리 술판 벌이자며 2차로 술을 더 쭉쭉 들이켰다.


그 와중에 이 멍청한 늑대개는 술도 잘 못 마시면서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자기 아들과 내 아들들이랑 신나게 웃고 떠들면서 들이키다가 뻗어버렸다.


나름 젊은 애들끼리 노는데 우리 같은 아저씨들이 짐이 되면 안될 것 같아서 일단 애들끼리 놀라고 하고 이 늑대개를 들고 펜션의 2층으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노니까 그렇게 좋았어?"


"그러게... 옛날 생각도 많이나고... 그랬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입을 다물고 몇 초간 숨만 쉬었다.


1층에서는 여전히 떠들고 있는 여편네들과 아들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야... 지치지도 않나... 애들은 그렇다쳐도 형수님도 체력이 대단하시네."


"그럼. 누가 고른 여잔데."


1층에서 떠드는 목소리를 들으니 2층에 조용히 앉아있는 우리들의 정적이 괜히 크게 느껴졌다.


분명히 애들이 어렸을 땐 우리가 저렇게 늦게까지 웃고 떠들었던 거 같은데, 나이가 차니 이제서야 우리 아버지가 왜 먼저 올라가셔 쉬셨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세월 앞에선 장사 없구나.


이젠 기력이 딸려서 놀지도 못하겠다.


"우리도 참... 늙긴 했나봐."


"그렇지... 니네 막내도 이제 성인됐고... 내가 내일 모레면 50이고..."


"그걸 아는 양반이 술을 그렇게 퍼먹었어?"


"너도 같이 마셨으면서 왜 그래."


"형은 나보다 술 못마시잖아."


"그렇긴 해..."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잇는 늑대개.


술을 많이 마시긴 했는지 한숨 속에 알코올 냄새가 한가득 배어서 방 전체에 퍼져나갔다.


"암튼... 정신 좀 차려. 물 좀 줄까?"


"응..."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가서 물통과 컵을 챙겼다.


바로 2층으로 올라가서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늑대개는 계속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애들이랑 놀 때 그렇게 호탕하게 떠들더니 금세 저렇게 지쳐버린 걸까.


"나잇값 좀 해. 형 이제 그렇게 놀면 골로 가."


컵에 물을 따라서 형에게 건내줬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나를 본 늑대개는 그대로 컵을 받더니 순식간에 컵 한 잔을 전부 들이켰다.


"괜찮을줄 알았는데 지치긴 하네..."


"으휴. 20대 애들이랑 우리랑 같겠냐고."


"너는 괜찮냐?"


"나는 아직 괜찮은 거 같은데."


"너는 아직 젊나봐."


컵을 바닥에 내려놓은 늑대개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한 번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어두운 방에서 달빛을 받는 늑대개의 모습이 꽤나 수수하게 느껴졌다.


듬직한 덩치와 수컷다운 외모로 옛날엔 꽤나 멋있었던 늑대개.


하지만 지금은 털색이 바랬고 눈가에 주름이 패였고 근육보단 살이 더 보이는 체형이 되어, 정말 아저씨처럼 늙어버린 늑대개.


그렇게 강하던 형이 이렇게 지쳐 늙어가는 모습을 보니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웠다.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나봐. 형도 이제 예전 같지 않네."


"너도 똑같이 늙어가는 거 알지? 자식들이 벌써 다 성인이 되어가지고..."


"형은 곧 있으면 손주도 볼 수 있지 않아?"


"너는 손주 언제 보여줄래?"


"왜 우리 아버지처럼 말하냐."


실실 웃는 늑대개는 술이 어느정도 깼는지 아까보단 정신을 조금 차린듯한 모습이었다.


"형은 이대로 계속 쉴 거야? 아니면 더 마실 거야?"


"애들끼리 노는데 뭘... 이제 우린 쉬어야지."


"당연히 애들이랑은 못 마시지."


애들끼리 노는 판에서 중간에 빠져놓고 다시 들어가는 짓은 못하지.


그래서 나는 아까 1층에서 물을 가져오면서 몰래 챙겨왔던 고급 양주를 늑대개에게 보여줬다.


"아저씨들은 아저씨들끼리 놀아야지."


"참나..."


형은 허탈하게 웃으며 잔을 받아들였다.


형의 잔에 양주를 따르자, 형도 병을 들고 나에게 양주를 따라줬다.


그렇게 소파에 나란히 앉아 가볍게 술잔을 부딛히고 양주를 한 모금 홀짝였다.


"캬... 이런 술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숨겼냐?"


"애들이 이 맛을 아나. 나중에 형이랑 마시려고 숨겨놨지."


형은 내 아부가 맘에 들었는지 기분 좋게 술을 계속 들이켰다.


"후우... 너랑 이렇게 술마시는 게 얼마만이냐."


"글쎄다. 지호가 대학교 갔을 땐가..."


"오래됐네."


가볍게 술을 마시며 이야기가 오고가니 서로의 술잔도 금세 가벼워졌다.


서로의 잔이 줄어들 때마다 서로 잔을 따라주며 가볍지만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너도 이제 애들 다 키웠으니까 한시름 좀 놓겠네..."


"에이. 막둥이 대학교 졸업까진 시켜야 한시름 놓지."


"그래도 고생 많이 했네... 애 셋이나 놓고 지금까지 바쁘게 살고..."


"왜 이래 낯간지럽게. 형도 지금까지 고생 많이 했잖아."


"난 그래도 아들 하나 딸 하나니까... 아들만 셋인 너보단 편했겠지."


"사실 딸 낳을 때까진 하고 싶었는데 와이프가 힘들까봐..."


"딸 있으면 좋지... 시도는 해보지 그랬냐."


"지금이라도 만들 수 있긴 해. 여러모로 힘들어서 안하는 거지..."


"그렇냐..."


술을 홀짝이며 이야기하던 늑대개는 생각에 잠겼는지 말이 없었다.


그런 형을 따라 덩달아 나도 말 없이 술을 홀짝였다.


"...제수씨랑 사이는 좋냐?"


"좋지. 나름 성격도 잘 맞아서 싸운 적도 별로 없으니까. 형은..."


형은 어떻냐고 물어보려고 한 순간 말이 잠깐 멈췄다.


형수님과 사이가 좋냐고 물으면 당연히 좋다고 하겠지.


형이 그동안 형수님께 얼마나 잘해드렸는지는 친척들도 다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친척들이 모르는 사실 하나를 알고 있다.


형이 게이라는 사실을.


"사이 좋으면 됐다."


형이 팔을 뒤로 뻗고 그대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어깨동무하듯이 팔을 두르고 그대로 내 어깨를 주무르는 형의 손길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손길의 무게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게이인 걸 숨기고 결혼한 늑대개.


형수님께 아무리 헌신하고 잘 대해줬다고는 해도 한계는 있었겠지.


그런 형에게 나와 우리 와이프는 어떻게 보이는 걸까.


"...형은 형수님이랑 여전하지?"


"..."


내 질문에 형은 섣불리 답하진 않았다.


마치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여전...하지... 그래... 늘 그랬지..."


입을 뗀 늑대개는 그대로 술잔을 높게 치켜들고 내용물을 입속에 다 털어넣었다.


거칠게 목울대를 꿀렁인 늑대개는 쩝쩝거리며 입 안에 남아있는 술맛을 되새겼다.


"...너는 알잖아? 내가 어떤 놈인지."


여기서 말하는 어떤 놈이 뭘 말하는지는 바로 감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섣불리 대답하진 않았다.


"...알지."


"나도... 나도 너처럼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애 만드는 것부터 쉽지 않더라..."


비어있는 술잔을 쳐다보며 말을 잇는 늑대개.


술잔을 기웃거리며 조금씩 말을 꺼내는 늑대개의 목에는 약간의 슬픔 잠겨있었다.


그런 슬픔에 내가 감히 대답할 말을 찾기가 힘들었다.


"어찌저찌 둘이나 만들긴 했는데... 그 이상은 버거웠어. 잘 서지도 않는 거시기를 잡고 꾸역꾸역해도 회의감만 들고..."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지금까지 형수님이랑 잘 지냈잖아."


"그치... 알지... 아는데..."


천천히 말을 잇는 늑대개의 목소리가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걸 보니 꽤나 참고있는 모양이었다.


"아이고... 술이 주책이지 진짜... 늙으니까 자꾸 이러네..."


늑대개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양옆으로 세차게 돌렸다.


형의 눈물에 살짝 당황해버렸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형의 손을 잡았다.


지금까지 숨기고 살면서 마음고생 심하게 했겠지.


그리고 가족 중에서 이걸 아는 사람이 나 뿐이니까, 형을 이대로 두면 안될 것 같았다.


"괜찮아. 지금까지 잘 견뎌왔고 형도 많은 노력을 했잖아. 형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그것 때문에 좋은 아빠가 못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형은 형수님이랑 애들한테 충분히 해줄 수 있는 거 다 해준 좋은 아빠잖아."


"..."


"그래도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면 언제든지 얘기해. 어차피 나한테 밖에 말 못하잖아?"


"...그렇지."


"얘기만 해도 풀리는 게 있으니까 말만해. 다 들어줄게."


"...고맙다."


형은 내 어깨를 주무르던 손을 그대로 꽉 쥐었다.


아마 눈물을 참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것이리라.


...악력이 워낙 세서 아프긴해도 참아야겠지.


"내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게 너 밖에 없다."


형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배시시 웃어보였다.


분명 웃는 얼굴이었지만, 마냥 웃기만 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늑대개의 얼굴 곳곳에 깊게 패인 세월의 흔적들이 그동안 쌓였던 고민과 마음고생들을 조금이나마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런 형을 향해 내가 할 말은 많지 않았다.


"빨리 이거 마시고 잊어버려. 형도 이제 남은 인생 즐겁게 살아야지."


"고마워... 내가 너한테도 미안한 게 많아..."


내 어깨에 있던 형의 손은 어느샌가 내 머리위에 있었다.


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기 시작한 형의 손은 조금 아프긴 해도 확실히 애정이 담겨있는 손이었다.


그런 정 많은 형이 나에게 미안할 일이 있을까.


지금 상황에서 미안한 일이라고 하면 그거겠지...


"다 지난 일인데 뭐... 우리 둘 다 어렸잖아."


"어렸지... 근데... 내가 너한테 안 좋은 영향을 끼친 거 같아서..."


"에헤이. 또 그 소리하네. 나 진짜 괜찮다니까?"


어렸을 때 자위하는 법을 알려주겠다더니 그대로 내 자지를 물고 빨았던 형.


나는 그 일로 형의 자지도 입에 물게 되었고,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 사라지게 되었다.


그덕에 남자도 사귀어봤지만, 여자가 불가능하게 된 건 아닌지라 무난하게 결혼하고 가장으로써도 잘 해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형의 영향이 있긴 했어도 내 가족들에게 영향을 끼칠 일은 아니었으니 큰 신경 쓰지 않기로 했지만, 형은 아니었던 것이다.


형은 그런 내 생각도 모른 채, 내 말을 들을 생각도 안하는지 계속 내 머리를 쓰다듬기만 했다.


이런식으로 대놓고 동생취급 받는 게 어색하긴 하지만, 형이 아니라면 이렇게 해주는 사람도 없으니 그렇게 싫진 않았다.


그래도 술이 들어가서 힘조절이 안되는가, 너무 세게 문지르니 슬슬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비면 털끼리 꼬여서 아프다고...


"으휴. 계속 그런 소리 할 거면 그냥 잠이나 자."


형의 팔을 떨쳐내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1층에서는 여전히 떠드는 소리가 계속 울려퍼졌다.


1층의 열기가 금방 식을 것 같진 않으니 일단 나도 내려가봐야지.


"형은 먼저 자러 갔다고 얘기할테니까 좀 쉬고 있어."


소파에 앉아있는 형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덩치도 커다란 늑대개가 저렇게 몸을 움츠리고 있으니 왠지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뭐 마려운 거 같기도 하고, 할 말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왜 저렇게 안쓰럽게 쳐다보는 걸까.


"왜? 뭐 할 말 있어?"


"...현서야."


눈을 꿈뻑이던 늑대개는 천천히 입을 열어서 어려운 말을 꺼냈다.


"오랜만에 같이 잘까?"









*아빠이름 강현서, 삼촌이름 강현수



이제 무기한 유기 예정...